471화. 모든 것이 허상이고 꿈인데
“나도 그런 꿈을 꿨어.”
“뭐?”
정도연이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때, 게네바도 붉은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그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들, 실제적인 꿈에 끌려든 거냐?”
“어떤 꿈이었지?”
한명호가 정도연에게 캐물었다.
정도연은 꿈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대략적인 상황 정도는 묘사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한명호가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꾼 꿈과 똑같아.”
“그게⋯⋯.”
정도연의 얼굴에 두려움과 혼란이 떠올랐다. 이런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게네바가 설명했다.
“만약 실제적인 꿈에서 죽음을 맞으면 현실에서도 죽게 된다. 아무래도 수종이 존재와 큰 흰둥이랑 작은 흰둥이, 작은 빨강이 행방이 꿈 주인한테 알려진 것 같다.”
“그럼 어쩌지?”
정도연이 물었다.
“서시월 팀한테 전보를 보내 주의시켜야지.”
한명호가 침착하게 답했다.
정도연은 스스로를 위로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늦지 않길 바랄 뿐이야. 북안 불모지 환경은 복잡해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 한 하루 안에 퍼스트 시티에 도착하기는 불가능하니까.”
비행기라도 이곳의 극단적인 날씨는 수시로 피해야 했다.
하지만 상대 역시 퍼스트 시티에 있는 동료에게 전보를 보낼 수 있었다.
* * *
“그럼 어쩌죠? 지금 당장 시키라 사원으로 돌아갈까요? 그곳에는 부처의 응신도 있고 원각자들도 많으니. 적을 포기시킬 수 있을 거예요.”
무의식적으로 질문한 용여홍은 알아서 제안도 했다.
장목화는 밤하늘 아래 거리를 응시하며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우리가 시카라 사원으로 돌아간다 한들 모든 게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둘째, 난 오늘 밤에 일어난 우연이 단순한 우연이 아닐 거라 생각해. 그 목적도 우리를 호움 난임 센터로 보내는 게 아닐 수 있어.
7층에 있는 특정 존재가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적을 감지하고, 일부러 이상 현상을 일으켜 우리를 시카라 사원 밖으로 몰아냈을 가능성도 있어. 적들의 손에 우리를 넘겨, 잠재된 위험을 제거하려 한 거지.”
그럼 상대는 구조팀을 호움 난임 센터로 보낼 생각이 없는 것일 터였다.
자세히 생각해보던 용여홍은 팀장의 이 추측이 매우 논리적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말대로라면 모든 문제가 설명되었다.
이내 백새벽이 차 속도를 늦추며 물었다.
“적은 대체 누구고, 왜 우리를 노리는 걸까요? 우리가 달지기 여명을 신봉하는 교파의 미움을 산 것도 아닌데요. 그리고 그자는 우리가 시카라 사원에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안 걸까요?”
의미 있는 질문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낸다면 그 강력한 적에 대항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장목화는 일찍이 그 문제도 고민한 듯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세 가지 가능성이 있어. 첫째는 우리를 체포하기 위해 온 퍼스트 시티의 강자일 가능성. 여명 영역 각성자가 꼭 여명을 믿으리라는 법은 없지.
하지만 만약 정부 세력이라면 우리가 맞닥뜨린 게 겨우 이 정도에 그칠 리는 없어. 게다가 가상세계의 주인이 왔을 가능성도 크고.
둘째는 7층에 있는 그 존재의 친구. 7층에 있는 존재가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 특별히 그 친구에게 부탁을 청한 거야.
근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어. 그는 과연 어떻게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을까? 제한받고 있으니 그런 일을 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이 대목에서 장목화는 목소리를 한층 더 낮췄다.
“셋째, 줄곧 어둠에 숨어 구세계 파괴 단서를 제거하던 비밀 세력. 우리가 불모지 13호 유적 비밀 실험실 진입에 필요한 암호를 얻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우리를 제거하러 온 거야.
이 가능성에도 한 가지 문제는 있어. 그들은 어떻게 우리가 시카라 사원에 있다는 걸 알았을까? 예언? 아니면 다른 방법이나 경로를 통해서?”
장목화가 말을 마친 이때, 주세페가 깨어났다.
그는 충격과 분노가 느껴지는 얼굴로 말했다.
“너희들, 처음에는 나를 기절시키더니 이제는 전기충격까지 가해?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어⋯⋯.”
주세페는 한창 말하던 도중, 자신의 몸에 전기충격의 흔적 같은 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 *
전보 보낼 시간을 기다리던 한명호가 문득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
“나랑 정도연을 실제적인 꿈에 끌고 들어간 그 사람 말이야, 근데 왜 정보를 얻은 후에 우릴 꿈에서 제거하지 않은 거지?”
그랬더라면 그들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살아남은 한명호와 정도연이 구조팀에게 전보를 보내 경고하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꿈에서 죽이는 방식을 활용하면 게네바를 직면할 필요도, 자신들의 능력이 로봇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게네바는 여러 가능성을 탐색한 뒤 중저음 합성음으로 말했다.
“어쩌면 당시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 그자를 놀라 달아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 * *
“적습이 있었어.”
장목화는 상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주세페에게 간단히 얘기했다.
이때 성건우의 시선은 이미 옆 차창으로 향해 있었다.
바깥의 밤 풍경과 건물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의 대비로 거울이 된 차창은 성건우의 모습을 또렷하게 비추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봐봐. 이 세상은 한바탕 꿈일 가능성이 커. 진지할 필요가 없어. 우리는 언제 정신을 차리고 있을지, 언제 꿈을 꾸고 있을지 몰라. 그러니까⋯⋯.”
잠깐의 침묵 끝에 성건우는 스스로를 향해 결론을 내렸다.
입꼬리를 씩, 말아 올린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실 줄곧, 시종일관 꿈속에 빠져있다는 거야.”
의혹 가득한 얼굴이 된 용여홍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거울이 없어도 스스로에게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기껏해야 추리 광대에 필요한 조건을 읊으면 되었다.
이내 성건우가 당당히 대꾸했다.
“이렇게 안 하면 너랑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시범을 보이겠어?”
보조석의 장목화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과 꿈을 구분하기 어려우니까, 모든 상황을 꿈으로 여기겠다는 거지? 그러면 그 사실만 기억해도 꿈속에서 치명적인 상해로 진짜 죽음을 맞는 일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잠재의식 속에 꿈이란 인지가 새겨져 있다면, 꿈이 아무리 실제 같아도 그저 놀라게만 할 뿐 쇼크사까지 가진 않을 것이었다.
“현실이란 게 존재하긴 하나요? 전부 다 꿈이죠!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진지하게 임할 필요 있을까요?”
성건우는 결연히 양팔을 펼치고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그가 조금 전 발휘한 추리 광대 능력엔 바로 이 신룡교 교리가 반영돼 있었다. 이는 추리의 순조로운 성립과 훌륭한 효과를 뒷받침하는 기반이었다.
“우리도 그런 이념을 갖기를 바라는 거야?”
표현을 고민하던 장목화는 성건우가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의 뜻에 맞춰 물었다. 추리 광대는 상반되는 사실이나 특정한 말로 쉬이 무효화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추리’보다는 ‘이념’이라는 표현이 성건우의 인지에 더 적합했다.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예, 꿈에선 뭘 맞닥뜨리든 꿈일 뿐이니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해요. 우리가 이 사실을 똑똑히 이해하고 파악하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예요.”
그는 단호한 태도로 장목화의 질문에 간접적으로 답했다.
용여홍도 성건우의 방법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틀리거나 빠뜨린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잠시 생각 끝에 말했다.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걸 꿈으로 여기면, 실제적인 꿈의 영향이야 피할 수 있을 거야. 근데 우리가 정말로 현실에 자리해 있는 상황이라면? 모든 걸 꿈이라고 여기는 태도로 현실적인 습격을 맞닥뜨리는 건 그다지 안전하지 않은 방법 같은데⋯⋯.”
그럼 방심하고, 둔하게 반응하고, 홀시하게 될 테고, 또한 현실에서의 습격은 죽음을 직접 초래할 수도 있었다.
성건우가 웃었다.
“애쉬랜드 자체가 하나의 꿈이야.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계속해서 그 꿈속을 맴돌 뿐이라고. 진정한 현실 같은 건 없어.”
‘궤변이야, 궤변.’
용여홍은 성건우의 이론이 맞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어디가 틀린 지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었다.
그 사이 성건우의 말이 이어졌다.
“게다가 꿈에서 우린 속수무책으로 잡히거나 누군가에게 유린당할 수는 없어. 게임 할 때 현실이 아니라는 이유로 멋대로 조작하면서 남의 손에 죽고 경험치와 장비도 잃을 거야?”
“그럴 순 없지.”
용여홍에게도 그런 방면에서의 승부욕은 분명 있었다.
성건우가 재차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이 말이 나오자마자 용여홍은 바르르 몸서리를 쳤다. 자신이 어느새 추리 광대의 영향을 받게 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그러니까, 현실이든 꿈이든 우린 최선을 다해 피해야 해. 만약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꿈에선 다시 살아날 기회라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진짜 게임 끝이잖아. 차라리 모든 걸 꿈으로 여기는 게 낫지.”
성건우가 보다 더 심층적으로 설명했다.
‘맞아, 꿈에서 피할 수 없는 거면 현실에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일 거야.’
용여홍은 기본적으로 성건우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시간이 없어. 아직 모두가 소통할 수 있는 틈을 놓치면 안 돼. 현실이든 연결된 꿈이든 교류할 수 없는 개인적인 꿈보다는 나으니까.”
장목화가 성건우를 재촉했다.
성건우는 곧장 추리 광대를 이용해 교리를 전파하고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 주세페가 이 애쉬랜드를 하나의 꿈이라고 믿도록 했다. 습격과 상해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굴 필요가 없다고 여기게 한 것이다.
지금 그는 추리 광대로 한 번에 아홉 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응하는 조건이 공유될 수 있는 것이라야 했다.
물론 최종적인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었다. 모든 이의 경력과 인지가 서로 다른 까닭에, 같은 조건 아래에서도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성건우로서는 그들을 최대한 잘 인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차 안에 있는 네 사람은 꿈에 대해 비슷한 결과를 도출했다.
“차 속도 좀 늦춰줘. 조금만 더.”
장목화의 지시에 백새벽이 여유롭게 대꾸했다.
“꿈이잖아요. 게다가 이 정도 속도면 도시 안에서도 꽤 느린 편이에요. 제가 보고 있는 한 교통사고가 날 리는 없어요.”
장목화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지금 우린 꿈속의 꿈에 빠져있는지도 모르잖아. 차 속도를 늦추지 않으면 외부의 꿈에서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꿈속에서는 교통사고가 나도 상관없긴 하지만, 그것 역시 실패는 실패야.”
백새벽은 곰곰이 고민해봐도 장목화의 말뜻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차 속도를 늦추는 건 절대 못 할 일은 아니었기에 논쟁을 피하려 속도를 늦췄다. 지프는 정말 달팽이처럼 느릿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이때 한 오토바이가 지프를 추월해 나아가고. 자전거 한 대도 지프를 지나쳤다.
“하하!”
몇몇 행인이 웃으며 지프를 앞질렀으며. 뒤쪽 차가 느릿한 지프를 채근하거나 우회해갔다.
그래도 백새벽은 굴하지 않고 계속 느릿하게 차를 몰았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것은 꿈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