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70화 (470/649)

470화. 비과학적

구조팀 네 사람은 전술 대형을 유지한 채 차례로 폐쇄식 광장 옆문을 통해 노천 주차장에 이르렀다.

일찍이 수백 번씩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그들은 어렵지 않게 사파이어색 지프를 찾은 뒤 서로를 엄호하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용여홍이 부축하던 주세페에게 떠밀렸다.

그러나 이젠 용여홍도 경력이 꽤 쌓인 터라 반응이 빨랐다. 그대로 넘어졌다가 몸을 홱 굴린 그가 권총을 꺼내 상대를 겨눴다.

주세페의 상태를 확인한 용여홍은 순간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꼭 얼음 호수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잘생긴 주세페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눈빛도 약간 뻣뻣했다.

높은 하늘에 걸린 옅은 달빛 아래, 그의 얼굴에 한 겹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리고 내내 침묵하던 승려들과 달리, 주세페는 입을 쩍 벌려 소리를 냈다.

“호움⋯⋯.”

그가 막 그 단어를 내뱉었을 무렵, 화살처럼 냅다 앞으로 튀어나온 성건우가 주먹 쥔 오른손을 휘둘렀다.

퍽!

주세페는 눈을 그대로 까뒤집으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성건우는 즉각 쓰러진 그의 몸을 잡아주었다.

장목화 역시 머뭇거리지 않고 세 번째 명령을 내렸다.

“먼저 차에 타!”

주세페를 반쯤 안고 둘러맨 성건우는 차로 돌진해 주세페를 안에 쑤셔 넣었다. 백새벽이 발 빠르게 리모컨 키로 잠금을 해제해준 덕분이었다.

이제 나머지 팀원들도 속속들이 차에 올라 각자 자리를 잡았다.

백새벽은 시동을 걸고 시카라 사원 노천 주차장 출구 하나로 차를 몰았다. 이를 보고 용여홍은 조금 얼떨떨한 얼굴이 됐다.

‘이렇게 수정의식교 본부에서 도망치는 건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카라 사원은 외부에 신경 쓰기보다 내부에서 더 단단히 결집해 구조팀에게 도망칠 틈도 주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지가 눈앞이었다.

물론 7층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과 분명 관련돼 있겠지만 그런데도 용여홍은 이 상황이 꿈 같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너무 공교롭지 않나요?”

운전대를 잡은 백새벽이 주차장 입구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퍼스트 시티 정세에 변화가 일어나 잔나가가 급히 나가자마자 7층에 있던 악마가 이상 현상을 보였다. 분명 지나치게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이런 일이 매해 몇 번 발생한다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지만, 하필 바로 이때 발생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수상했다.

“그 악마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까요?”

성건우는 그 악마가 일부러 이상 현상을 일으켜, 구조팀이 시카라 사원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라 믿는 모양이었다.

보조석의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까 주세페가 ‘호움’이란 말을 한 건 이 사건 자체에 악마의 의지가 개입돼 있다는 뜻이야. 근데 문제는 우린 며칠만 더 있으면 곧장 여기서 벗어날 수 있어. 근데도 왜 굳이 이때 이상 현상을 일으켜 우리를 내보낸 걸까?

우리가 호움 난임 센터로 가기로 한 대도, 급하게 가진 않을 거 아냐. 일단 퍼스트 시티 상황을 관찰하면서 열흘에서 보름은 더 기다릴 텐데.”

“지금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건지도 모르죠.”

성건우가 음산한 말투로 대꾸했다.

그러자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지프가 부디 순조롭게 주차장 출구를 빠져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분부했다.

“음, 주세페 한번 깨워봐. 방금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물어보자.”

성건우는 곧장 늘 써보고 싶었지만 도통 기회가 없던 방법들을 시도했다. 꼬집기, 겨드랑이 간질이기, 뾰족한 걸로 찌르기, 흔들어 보기 등등이었다.

지프가 주차장을 나와 바깥 거리에 이르렀을 무렵, 주세페가 깨어났다.

그는 충격과 분노,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난 왜 때린 거야?”

성건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네가 빙의됐었으니까.”

주세페는 흠칫했다.

“뭐? 그런 느낌 없었는데? 내가 본 건 갑자기 네가 달려와서 나한테 주먹을 날리던 게 다야.”

이번엔 장목화가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 안 나?”

주세페는 고개를 힘껏 내저었다.

“응,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사실 그는 성건우의 말은 전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믿음직한 장목화조차 비슷한 태도인 걸 보면 정말로 빙의가 되긴 됐던 모양이었다.

“영향받았을 때는 기억을 못 하는 모양이네. 음, 어쩌면 그런 영향을 받은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런 건지도 몰라. 걱정하지 마, 이제 괜찮을 거야.”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장목화가 위로하듯 덧붙였다.

“그래, 그래.”

용여홍도 주세페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때, 우렁찬 굉음이 들려왔다.

콰르릉!

퍼스트 시티 어딘가에서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난 듯했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거대한 버섯처럼 피어올랐다.

그 굉음 속에서 비행기들이 저공비행으로 도시 위를 지나치며 폭탄들을 떨어뜨렸다. 그 폭탄들은 구조팀이 탄 사파이어색 지프 주위에도 떨어졌다.

아무래도 그들의 목표는 구조팀인 것 같았다.

뒤이어 어디서 발사됐는지 모를 정밀 유도 미사일이 밀집된 상태로 떨어져 내렸다. 구조팀을 완전히 뒤덮고 삼켜버리려는 느낌이었다.

용여홍은 절망했다.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게 바로 진짜 전쟁인가? 인간은 정말이지 너무 나약하구나. 그냥 저런 무기들의 노예인 거야. 사람의 생명으로 저들의 영광을 빛내는 거지.’

용여홍은 구조팀이 자리한 이 구역을 하나하나 뒤덮듯 떨어져 내리는 폭탄과 쉴새 없이 날아드는 미사일을 보았다.

이 지프에 장갑이 더해져 있어도 저 정도의 폭격을 막긴 무리였다.

구조팀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오직 운에 달린 문제였다.

용여홍은 꼭 죽음의 초읽기에 들어간 듯 절망하고, 미련에 슬퍼했다.

도망칠 도리가 없는 이 상황이 그저 절망스러웠다. 그래도 당장 차에서 내려 몸을 굴려 숨는 것보단 명중당하지 않는 한 얄팍한 방어막이라도 되어줄 이 지프에 남는 게 더 나았다.

하지만 정말로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았다. 생에 미련이 남았다. 언젠가는 반고 바이오로 돌아가 가족들에게 지상에서의 성과도 자랑하고 각종 경험도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얻어온 물자로 풍족하고 평안한 삶을 살고 싶었다.

바로 그때였다. 뒷좌석에 앉은 성건우가 크게 소리쳤다.

“이건 비과학적이야!”

‘뭐가 비과학적이라는 거야?’

순간 멍해진 용여홍은 눈앞에 주먹을 휘두르는 성건우를 목격했다. 성건우가 날린 주먹은 정확히 용여홍의 귀 뒤를 노리고 있었다.

‘야! 뭐야! 이 상황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날 때리려는 거야?’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한 용여홍은 결국 성건우의 주먹에 가격당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기 직전, 용여홍은 곁눈으로 의자에 지탱해 몸을 일으켜 세운 보조석의 장목화를 보았다.

장목화는 곧 오른손을 뻗어 백새벽을 치고, 왼손으론 주세페를 때렸다.

그녀의 동작은 성건우보다 약간 느렸을 뿐이었다.

잠시 후,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어둠이 점차 옅어지며 용여홍은 서서히 사고를 되찾았다.

‘건우는 왜 비과학적이라고 외친 거지? 그래서 날 때려야 했던 이유는? 근데 이것도 나쁘진 않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폭격당해 죽는다면 적어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을 거잖아.’

갖가지 생각이 떠오르던 중, 용여홍은 어둠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흔들림이 점점 격렬해짐에 따라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틈이 억지로 벌어졌다. 그 사이로 눈 부신 빛이 파고들었다.

눈을 번쩍 뜬 용여홍은 주세페 위를 가로지른 성건우를 발견했다. 그는 한 손으론 자신의 어깨를 흔들며, 손전등으로 제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흠칫 놀란 용여홍은 그제야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만, 그만!”

“깼어.”

보조석의 장목화도 성건우를 저지했다.

아쉽다는 듯 손전등을 끈 성건우가 다시 자리에 바로 앉았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제대로 일어나 앉은 용여홍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지프는 망가진 데 없이 멀쩡했고, 팀원들도 다 무사했다. 주위 거리는 약간 낡았어도 폭격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프가 시카라 사원 주차장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는 점이었다. 그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조금 전 구조팀은 당장이라도 다른 거리로 꺾어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이게 대체⋯⋯. 꿈인가요? 조금 전 실제적인 꿈에 끌려들었던 건가요? 우리 전부 다요?”

보조석에서 장목화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응, 그것도 똑같은 꿈. 1인용 게임에서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게임으로 바뀐 거야.”

성건우도 덧붙였다.

“하마터면 교통사고가 날 뻔했어.”

백새벽은 저도 모르게 잠든 채 꿈을 꾸었다는 사실에 아직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듯했다. 그녀는 꿈속의 폭격으로 죽음의 코앞에 이른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현실에선 그 짧은 찰나에 길가 다른 건물로 차를 몰아 그대로 충돌할 뻔하기도 했었다.

순간 깨달음을 얻은 용여홍이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비과학적이라고 했던 건, 진짜가 아니라 꿈이라 의심해서 그런 거야?”

성건우는 모처럼 진지하게 답했다.

“맞아. 우리는 퍼스트 시티에 있는 누구라도 우리를 대상으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공격을 퍼붓지는 않을 거란 걸 알아. 그건 지나친 낭비잖아. 우리한테 걸린 현상금을 다 합친다 해도 유도 미사일 몇 개밖에 안 될걸?”

‘하긴 그렇지. 그런 대우는 회사의 작전반이나 누릴 수 있는 거니까.’

용여홍은 조금 전 꿈을 떠올리며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성건우가 말을 이었다.

“꿈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자마자 너한테 실험해 보기로 했어. 실제적인 꿈에서의 혼수상태는 현실에서의 혼수상태랑 똑같아. 그렇게 의식을 잃게 되면 주위 환경에 대한 감지력도 잃기 때문에, 실제적인 꿈에서의 치명적인 타격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도 있어.”

몇 초간 머뭇거리던 용여홍이 겨우 입을 열었다.

“아주 고맙다!”

사실 용여홍도 크게 화가 나진 않았다. 만약 성건우가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면 그도 위험해졌을지 몰랐다.

이때 백새벽이 백미러를 바라보며 말했다.

“팀장님, 혹시 우리는 지금 여명 영역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의 표적이 된 걸까요?”

조금 전 구조팀이 겪은 꿈은 가위 말의 실제적인 꿈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상대는 강제로 잠들게 하는 능력까지 있었다.

구조팀이 가장 걱정했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강제 입면과 실제적인 꿈의 조합은 그야말로 무적이었다.

장목화는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부터 우리는 또 언제라도 다시 꿈에 빠질 수 있어. 우리의 인지가 우리를 속일 수 있다는 거야.”

* * *

북안 불모지.

반 바퀴를 돈 끝에 심각한 오염 지역을 빠져나간 한명호, 정도연, 게네바는 폐허 마을에 진입해 비와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았다.

이윽고 그들은 모닥불도 피우며 주변의 온기를 데웠다.

정도연은 모닥불 옆에 천천히 앉아 위에 걸린 물 주전자를 바라보았다.

일렁이는 불빛 속, 정도연이 홀연 웃음을 지었다.

“어릴 땐 어른과 함께 밖에 나가 사냥하고, 폐허 안에서 각종 물자를 찾을 수 있길 바랐어. 하지만 지금 바라는 건 오염되지 않은 논밭이랑 더는 모험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야.”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한명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넌 아직 널 생각하는구나.”

정도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당연하잖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면 누구든 더 나은 삶을 바라지 않아? 난 어젯밤에 내 병이 치료될 수 있다는 꿈까지 꿨는데.”

순간 한명호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뗀 건 몇 초 후의 일이었다.

“나도 그런 꿈을 꿨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