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66화 (466/649)

466화. 탈주

쾅!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장목화는 돌연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희박해졌다기보다는 진득해졌다. 마치 실체로 응집된 듯, 철판으로 변해서 사람이 들이마실 수 없는 형태가 돼버린 것 같았다.

공기는 아예 수축하기도 해서, 그녀는 강철 손 한 쌍이 제 목을 다 틀어쥔 듯한, 한 겹씩 덮이는 진흙이 자신을 매장해버릴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간신히 사력을 다해 고개를 튼 장목화는 용여홍과 백새벽의 안색 역시 그다지 정상은 아님을 확인했다.

단순한 질식이었다면 반응이 이렇게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용여홍은 마치 귀신 이야기 속에 들어온 듯 누군가가 목을 콱 움켜쥔 듯한 이 느낌에 정신이 다 아득해졌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고 저항을 시도했지만, 굳어버린 주변 공기 때문에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용여홍 근처에 다른 이의 목을 틀어쥘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용여홍은 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적을 찾지도 못한 와중에 무슨 수를 쓸 수 있겠는가.

이 광경을 보고 허리와 등에 힘을 줘 억지로 두 걸음 이동한 장목화가 용여홍 곁에 이르렀다. 뒤이어 그녀는 왼손으로 용여홍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들어 마치 투포환 던지듯 계단 입구로 냅다 던져버렸다.

키가 175센티미터밖에 안 될지라도 그래도 엄연히 유전자 개량을 받은 성인 남성이 마치 새처럼 가볍게 날아갔다.

쿵!

그렇게 계단 옆 벽에 충돌한 뒤 튕겨 계단 중턱으로 떨어진 용여홍은 데굴데굴 아래로 굴러갔다.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끊임없이 계단에 얼굴과 등을 부딪치고 쓸리는 사이, 용여홍은 머리가 아찔하고 눈이 어질어질해졌다. 그러나 이 상황을 멈출 도리가 없었다.

2, 3초 만에 그는 층계참까지 굴러왔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목을 조르는 듯한 느낌은 적잖게 약해져 있었다. 호흡이 어느 정도 돌아왔고, 이곳의 공기가 진득진득한 정도는 7층보다 훨씬 약했다.

다른 생각을 할 틈 따위는 없었다. 용여홍은 본능과 경험, 관성을 바탕으로 6층으로 향하는 계단마저 굴러 내려갔다.

쿵- 쿵- 쿵-

용여홍은 마침내 6층으로 돌아왔다. 일순간 코끝으로 주변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되자 너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용여홍이 계단 입구로 날아갔을 때, 성건우가 왠지 좀 아쉽다는 빛을 보였다. 이참에 친구 용여홍을 한번 던져보려 한 것 같았다.

그래도 성건우는 장난 같은 생각은 얼른 접고 백새벽을 찾았다.

쿵! 쿵! 쿵!

이제 성건우가 백새벽에게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매우 묵직한 뭔가를 끌고 달리는 사람처럼 표정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몇 걸음 만에 바로 백새벽 뒤에 이른 성건우는 한껏 힘을 실어 백새벽의 등을 밀어주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인 성건우가 이 조그만 체구의 백새벽을 미는 데도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 써야 할 정도였다.

백새벽은 그 즉시 계단 입구 쪽으로 날아가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그제야 숨을 꾹 참고 계단을 향해 돌진했다.

그들은 마치 보이지도 않고 강력한, 또 어디에나 존재하며 점점 더 강해지는 적을 마주한 것처럼 그야말로 온 힘을 다했다.

어마어마한 노력을 들인 끝에 장목화와 성건우는 연달아 계단 입구에 도착했다. 뒤이어 그들은 얼굴을 가린 채 중력에 기대 아래로 굴러갔다.

한달음에 6층까지 구른 후에야 마침내 정상적인 공기를 마주한 장목화는 안도할 새도 없이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용여홍과 백새벽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일단 방으로 돌아가!”

조금 전 정말 1초라도 늦게 반응했다면 구조팀 네 명은 전부 7층에서 주검으로 발견됐을 것이다.

숨이 턱 막히는 느낌과 매장당하는 듯한 느낌은 갈수록 강해졌었다.

신선한 공기 속에서도 아직 떨치지 못한 질식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구조팀 네 사람은 속속들이 가리발디가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

계단에 남은 회색 가운 차림 승려의 시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엄두도 나지 않았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었다.

* * *

방문을 꼭 닫고 성건우가 용여홍을 한번 훑어보았다. 용여홍은 금세 눈이랑 코가 부어 멍까지 들어있었다.

성건우는 이제야 장목화에게 원망을 표했다.

“작은 흰둥이를 던지셨어야죠.”

아무래도 성건우는 여자인 백새벽에게 힘을 썼다는 미안함 반, 또 이참에 용여홍의 엉덩이를 걷어찰 기회를 놓친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팀의 전술 가이드에 가장 가까운 동료를 먼저 살피라고 나와 있어.”

‘맞아, 맞아. 나도 걷어차이고 싶지는 않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용여홍은 백새벽을 한번 살펴보았다. 백새벽의 얼굴엔 멍든 부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계단을 구르는 와중에도 나름대로 빨리 반응해 머리를 보호한 모양이었다.

반면, 처음으로 계단을 구른 용여홍은 뭐, 묵사발이 된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곳곳이 다 멍든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어마어마한 힘으로 자신을 내던진 장목화를 원망할 순 없었다.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

이때, 백새벽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생각에 7층에 한 명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이는 구조팀을 유인해 그 방에 들어가게 하려 했고, 어떤 이는 방문이 열리지 않도록 막았다. 또 어떤 이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썼고, 또 어떤 이는 그들을 모두 죽여 입을 다물게 하려 했다.

이런 행위 중 일부가 서로 모순되는 걸 보면, 단순히 한 사람의 행위인 것 같지는 않았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의 상황으로 보면 적어도 두 명이 서로 맞서고 있어. 우린 그 갈등에 쓰인 일종의 도구일 뿐이고. 근데 그 사람이 야랑 비슷하게 인격이 분열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 분열된 인격끼리 현실에서 서로를 견제하며 장기적으로 대항하고 있는 거야.”

“그럴 줄 알았다니까!”

성건우가 진즉에 알아봤다는 듯 말했다. 그는 전에 부처의 응신이 여든한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었다.

용여홍이 기억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문 여는 힘과 닫는 힘이 동시에 존재했었던 것 같은데요. 분명한 교착 상태가 나타났어요. 분열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왼손과 오른손을 직접 맞붙게 할 수도 있나요?”

이는 한 각성자가 아무 도구에도 의지하지 않고 동시에 두 가지 능력을 사용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장목화가 고개를 틀어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성건우는 약간 아쉽다는 듯 대꾸했다.

“지금은 안 돼요. 심령의 복도에 들어간 뒤에나 가능하겠죠.”

장목화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인격 분열설은 실증이 안 되는 가설이라는 거야. 악마 진압설에도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다는 거지.

어쨌든 그건 문제의 중점이 아니고, 우린 이미 도망쳐 나왔잖아. 앞으론 어떤 상황이 됐든 7층에 안 올라가면 돼. 지금 중요한 건 방에 있는 그 존재가 사력을 다해 중얼거린 ‘호움’이 무슨 의미냐는 거지.”

“파흐 지방 호움 난임 센터?”

용여홍이 가장 먼저 떠올린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백새벽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거라고 생각해요. 방에 있던 그 존재는 우리가 5대 성지 중 한 곳인, 불모지 13호 유적 호움 난임 센터에 가기를 바라는 거예요. 어쩌면 그곳에 우리가 발견했으면 하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죠.”

“그래.”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었다.

순수하게 단어만 놓고 보자면 호움은 낮은 땅, 작은 섬이라는 뜻일 뿐 특별히 지향하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구조팀에겐 이보다 더 조건에 부합하는 다른 장소를 떠올릴 수 없었다.

“이제는 악마설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우네요.”

성건우가 불쑥 끼어들었다.

‘사실 나도⋯⋯.’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불모지 13호 유적 어딘가에는 무시무시한 악마 오하명이 봉인돼 있었다. 그리고 시카라 사원 7층 3호 방에 있는 특정 존재는 구조팀에게 그런 불모지 13호 유적의 호움 난임 센터로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부처의 응신이 악마 하나를 진압하고 있다는 소문과 결합해보면 누구라도 이와 비슷한 연상을 하지 않을 순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면 또 부처의 응신이 회색 가운 차림의 승려를 죽여 입을 다물게 했다는 기이한 결론이 도출되었다.

장목화가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 성건우가 매우 의욕적으로 물었다.

“가볼까요?”

장목화가 대충 대꾸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호움 난임 센터가 그 비밀 실험실과 다른 곳이라도 분명 위험하긴 할 거야. 일단 회사에 보고한 뒤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한번 보자. 근데 말이야, 이런 토론을 할 때마다 잔나가 대사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 것 같네. 설마 타심통이 방해받기라도 하는 걸까?”

그녀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다 고개를 틀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백새벽도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요. 어떻게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성건우는 동경하는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침대에 묶여 있던 가리발디 주세페가 의혹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너희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성건우는 용여홍을 가리키며 길게 늘어진 말투로 답했다.

“우리, 귀신을 봤어⋯⋯.”

기대 앉아있던 주세페는 성건우의 손가락을 따라 용여홍을, 그의 목에 난 자국을 보았다. 자국은 붉었지만 드러난 손자국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자 주세페는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정말로 귀신이 있다고?’

짧은 적막이 흐르던 그때,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간으로 보면 전의 그 젊은 중이 아침 식사를 가져온 것 같았다.

구조팀의 예상대로 곧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단로라는 그 젊은 중이 오트밀과 토스트를 가져다주었다.

“오늘 아침입니다.”

단로의 표정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계단에 쓰러져 있던 회색 가운을 입은 승려 시신은 못 본 건가?’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이 질문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자신들이 한 짓 역시 들통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무슨 계획이 있나요?”

장목화가 웃으며 물었다.

단로는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층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걸 제외하면. 시주님들은 자유입니다. 계획이야 시주님들의 마음에 달려 있지요.”

성건우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네요. 새로운 수석은 선출됐습니까?”

“아직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중요한 일은 절 안에 있는 모든 원각자의 토론으로 결정되지요.”

단로가 솔직하게 답했다.

“그렇군요.”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백새벽과 용여홍을 불러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단로는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는 여전히 7층으로 이어진 계단 위에 질식사한 승려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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