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화. 소문
“그래서, 약속 장소는 어딘데?”
장목화도 일단 성건우의 말을 받아주었다.
“모르죠.”
성건우가 깔끔하게 답했다.
“7일 후 새벽 3시에도 이번처럼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까요?”
이번엔 용여홍이 그를 도왔다.
“아까 문 열어줬을 때 들어오지 않고 7일을 더 기다리려는 이유는?”
장목화가 바로 파고든 지적에, 용여홍은 입만 벙긋거렸다.
곧이어 백새벽이 토론에 가담했다.
“하지만 팀장님 논리대로면, 저희한테 직접 정보를 전달했어도 됐어요. 굳이 문을 두드려가며 암호를 쓸 필요가 있을까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니면 문을 두드린 사람은 우리랑 직접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런 방식을 이용한 것일 수도 있어. 음, 그럼 7일 후에는 우리랑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그날 새벽 3시에 우리를 찾아오려는 거지.
근데 굳이 미리 찾아와 문을 두드린 이유는 뭐지? 조금 더 기다렸다가 아예 직접적인 소통이 가능할 때 찾아왔어도 됐잖아?”
성건우가 냅다 외쳤다.
“의식! 특수한 상태에 처해있어서 문 두드리는 의식을 거행해야만 7일 후에 우리랑 교류할 수 있는 거예요.”
백새벽이 다른 가능성을 덧붙였다.
“우리가 그 전에 시카라 사원을 떠날 것을 걱정한 것일 수도 있고요.”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두 가지 이유 다 나름 합리적이야. 그걸 다 검증하려면 7일 후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네. 7과 3이란 숫자에 다른 뜻이 있는지도 몰라. 수정의식교의 각도에서 보면 7은 7층탑을 의미하기도 하고 7층 높이인 시카라 사원의 7층, 그러니까 우리가 있는 여기 위층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어.”
이 대목에서 장목화는 고개를 들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야.’
용여홍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방금 성건우가 했던 아무 근거도 없는 추측에 비하면 불교 조직의 특색에 기반한 추측이 훨씬 그럴듯했다.
다시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만약 7이 시카라 사원 7층을 가리키는 거라면, 3은 거기 자리한 방 호수를 뜻하겠지. 문을 두드린 사람은 우리가 자길 찾아오기를 원하는 걸까?”
용여홍은 말없이 백새벽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둘 다 그럴 가능성도 작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갈까요?”
성건우가 의욕적으로 물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장목화가 답했다.
“아니야, 급하게 굴지는 말자. 만약 함정이라면? 지금으로서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일지 좋은 사람일지 판단할 수가 없어.
어쩌면 그 사람은 잔나가 대사와 직접 대항해선 수석 자리를 쟁탈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이런 방식으로 우릴 끌어들이려는 건지도 몰라. 규칙을 위반한 우리를 질책하면서 잔나가 대사에게까지 타격을 입히려는 거지.
그 사람 힘은 그 방에만 국한돼있고, 밖으로 낼 수 있는 건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 수도 있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를 그 안으로 끌어들여야만 하는 거야.”
그녀의 말을 들으며, 용여홍도 최대한 신중한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장목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날이 밝으면 기회를 봐서 사원 7층에 뭐가 있는지, 3호 방 주인이 누군지 물어보자. 결정은 그다음에 하면 되지. 이제 진짜 자자. 불침번 맡은 사람은 계속 수고해주고 뭐 이상한 거 있는지 더 경계해줘.”
토론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밤이 다 끝날 때까지 구조팀에게는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 *
이른 아침, 전의 그 젊은 중이 오트밀과 토스트를 가지고 왔다.
장목화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이 사원 꼭대기 층엔 누가 삽니까? 간밤에 무슨 기척이 느껴지던데요.”
젊은 중의 얼굴엔 의혹이 드리웠다.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
용여홍은 순간 정말로 귀신을 만난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경전을 놓아두는 곳인가요?”
다시 이어진 장목화의 질문에, 젊은 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 보리를 섬기는 작은 대전이 있기도 하고요.”
“세자재여래는요?”
성건우가 궁금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저희는 우리 보리를 위주로 모시고 있습니다.”
젊은 중은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전혀 숨기지 않았다.
“다른 건요? 7층엔 또 어떤 방이 있죠? 쥐가 들어갈 만한 방은 없나요?”
장목화는 질문을 그치지 않았다.
잠시 생각하던 끝에 젊은 중이 입을 열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경계가 삼엄하거든요. 7층에는 법기를 놓아두는 방이 있고, 그리고 또⋯⋯, 부처의 응신이 잠들어 계시는 선방이 있지요.”
말을 잇던 그의 표정이 순간 엄숙해졌다.
부처의 응신이 잠든 선방?
그 말이 마치 천둥처럼 귓가를 때리는 듯했다. 구조팀은 순간 심신마저 뒤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가까스로 표정 변화를 억누른 장목화가 웃으며 물었다.
“7층에 머무르는 원각자는 없나요?”
“7층은 우리 부처 보리께 바친 곳이자 부처의 응신이 잠든 곳이니까요.”
젊은 중의 답은 직접적이진 않지만 확실했다. 부처를 신실하게 섬기는 원각자들이라면 절대 달지기와 나란히 있지 않으려 할 터였다.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요?”
성건우가 물었다.
젊은 중은 낮게 염불을 외웠다.
“부처의 응신이 계신 곳은 그 자체로 신묘한 곳이지요. 외부의 마(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원각자들은 그곳에 머물지 않을 뿐, 교대로 그곳을 지키고는 계십니다.”
이 대목에서 좌우를 둘러보던 젊은 중이 소리를 잔뜩 낮췄다.
“한 가지 알려드릴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성건우가 곧장 반문했다.
“7층에 멋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요?”
곁에서 용여홍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바보냐? 우리는 이 방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고.’
젊은 중은 계속 온화한 태도를 유지했다.
“시주님들이라면 그런 생각은 안 하시겠지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재차 목소리를 낮췄다.
“소문에 따르면 부처의 응신이 잠든 곳에는 무시무시한 악마가 하나 짓눌려 있다고 합니다. 자유롭게 활동하진 못하나 부처의 응신이 잠든 관계로 외부에 약간의 힘을 내, 갖가지 이상 현상을 만들어낼 수는 있답니다.
그러니 어떤 유혹을 받든, 어떤 광경을 목격하든 7층에 올라가지는, 부처의 응신이 잠든 선방에 접근하지는 마십시오. 잘못했다가는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기이한 죽음을 맞습니다. 이로 인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가 여태까지도 나타나지 않은 승려들이 있어요.”
‘우리가 어젯밤 겪은 일이잖아? 기이한 노크 소리로 암시를 주며 우리를 7층으로 꼬드겼어.’
용여홍은 두려움을 느끼는 동시에 팀장의 신중함을 높이 평가했다.
이내 장목화가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각자가 교대로 7층을 지킨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도 그곳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그러자 성건우가 인간의 본능적인 졸렬함을 알고 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원각자 중에도 나태하고 해이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젊은 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닙니다, 그건 아마 악마가 만들어낸 영향이 원각자들의 감각기관을 가려서일 겁니다. 감시에 아무 허점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죠.”
“정말 강한 악마네요.”
장목화가 감탄했다. 동시에 그녀는 오하명을 떠올렸다.
“그러니 부처의 응신께서 직접 진압하셔야 하는 거겠죠.”
젊은 중의 답을 듣고, 몇 초간 고민하던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소문이라고 말씀하신 건, 실제로 그런 상황을 본 적은 없단 뜻이겠죠?”
젊은 중은 합장하며 염불을 외웠다.
“그렇습니다. 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사원 내 승려들이 수시로 밖을 나가 애쉬랜드를 돌아다니면서 정신을 단련하고 의식을 수행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엔 끓는 피를 안고, 주위 동문에게 알리지도 않고 출발한 이들이 적지 않아요. 그러나 그들이 다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죠.”
‘되게 자유롭네. 수정의식교 고위층은 그런 방면은 신경 안 쓰는구나.’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젊은 중이 떠난 뒤, 구조팀이 진지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제일 먼저 정적을 깬 건 용여홍의 한숨 소리였다.
“난 대형 종교 조직 본부에서는 이렇게 기이하고 무서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 줄 알았어.”
“어제랑 그제는 그런 말 안 했잖아.”
성건우가 지적했다.
수석이 스스로 건물에서 뛰어내리며 육신을 벗어던지는 그 충격적인 광경은 용여홍에게 악몽까지 안긴 바 있었다.
민망해진 용여홍이 헛기침을 했다.
“내 말은, 우리 같은 외부인에겐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는 거지. 내부에서는 당연히 저들끼리 특수한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근데 지금 상황을 봐선 꼭 퍼스트 시티 안, 수정의식교 본부 안이 아니라 꼭 불모지 13호 유적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잖아.”
“무시하면 돼.”
백새벽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용여홍의 생각과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장목화는 고개를 틀어 다시 잠든 주세페를 바라보았다.
“무시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야. 음, 악마에 관한 소문이 꼭 진실이란 법도 없어. 또 다른 뭔가를 숨기기 위한 헛소문일 수도 있지.”
성건우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예를 들어 승려들이 7층에 들어와 특정 비밀을 발견하지 못하도록요?”
용여홍의 미간이 팩 구겨졌다.
“어차피 원각자들이 돌아가며 7층을 지키잖아요. 일단 승려는 물론이고 육식자, 칠식사라도 허락 없이는 7층에 진입할 수 없어요.”
“만약 원각자가 돌아가며 7층을 지키고 있다는 말이 반은 진실이지만 반은 거짓이라면? 매일 특정한 시간에는 원각자라도 7층에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심지어 주위 상황을 감응할 수도 없다면?”
성건우는 이 틈에 상상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출가인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용여홍이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장목화가 가볍게 웃었다.
“그건 대부분의 원각자들한테 규율일 뿐, 대가는 아닐 거야. 규율이야 종종 어겨질 수 있잖아.”
그 말을 들은 순간, 성건우가 곧장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누가 귓가에 속삭이⋯⋯.”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성건우는 장목화의 눈총 한 방에 제압됐다.
다시 장목화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말했다.
“염호가 잠든 곳에도 갖가지 위험이 있었잖아. 어떻게 보면 부처의 응신이 자리한 곳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근데 우린 수정의식교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여기 온 게 아니야. 설령 구세계 파괴와 관련된 비밀이 있다 해도 그건 5대 성지에 숨겨져 있겠지. 그러니 우린 우리 일만 신경 쓰면 돼.”
우리 일이란 도망칠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장목화가 말을 마치자 백새벽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까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잖아요. 가만히 있고 싶어도 옆에서 흔들어댈까 봐 걱정스러운 거죠.”
장목화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아까는 외재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을 말한 거고 지금은 우리 주관적인 태도를 말하는 거야.”
백새벽은 그녀의 말을 받는 대신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어쩌면 문을 두드린 그 사람은 중요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우리를 7층으로 보내려 한 것인지도 몰라요. 수정의식교에서 퍼트린 악마 관련 소문은 그곳으로의 진입을 막는 용도고요.”
장목화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기 전까진 모험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정말로 가만히 있고 싶은데 옆에서 흔들어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잔나가 대사를 찾아가자. 일단 우린 7층은 고사하고 이 방에서 나갈 수도 없어.”
성건우는 곧장 손을 들어 천장을 가리켰다.
“꼭 방문을 나가야 할 필요는 없죠.”
“⋯⋯.”
장목화는 결국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