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62화 (462/649)

462화. 노크 소리

유전자 개량으로 최상의 결과가 난 성건우의 균형 능력은 거의 원숭이와 맞먹었다. 레드스톤 마켓에 있었을 때도 무너진 건물 위를 마치 평평한 땅처럼 여유롭고 안정적으로 걷던 사람이 바로 성건우였다.

게다가 잔나가는 구조팀이 감시당하는 처지라도 편의를 많이 봐줬지만, 방에 군용 외골격 장치를 가져오는 것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현재 구조팀은 자신의 안위를 지킬 경무기만을 소지하고 있었다.

“잔나가 대사가 진짜 잠든 건지 어떻게 알겠어. 지금도 몰래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지. 우리의 도주 계획도 파악하고, 어떤 능력을 숨기고 있는지도 확인하려고. 됐어, 얼른 자.”

장목화도 이젠 진지하게 정색하고 채근했다.

성건우는 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시무룩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타심통은 만능이 아니었다. 구조팀이 특정 능력에 관한 생각을 내내 하지 않고 있었다면 잔나가라도 그 능력을 알 순 없었다.

용여홍은 다시 자리에 누워 이불을 끌어당겼다. 악몽으로 인한 충격과 불안도 일찍이 다 가신 상태라,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똑-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드린 듯했다.

똑!

또 한 번 울려 퍼진 소리에 미처 눕지 못한 장목화의 표정이 이상하리만치 진지해졌다.

성건우는 나무 문을 돌아보며 음산하게 말했다.

“귀신이다⋯⋯.”

백새벽은 마음 같아서는 바로 문을 열고 한밤중 자신들을 찾아온 방문객을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장목화, 성건우가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귀신은 무슨⋯⋯.”

용여홍이 투덜대며 일어나 앉았다.

장목화는 그 어느 때보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성건우에게 물었다.

“아무도 없지?”

‘아무도 없다고?’

순간 용여홍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 느껴지는 인간의 의식이 없네요.”

성건우도 더는 으스스한 말투로 장난치지 않고 진중하게 답했다. 일단 문을 두드렸다면, 아무리 본인 의식을 숨길 수 있는 각성자라도 성건우의 감응을 속일 수는 없었다.

용여홍과 백새벽도 두려움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장목화의 반응을 보면 그녀 역시 인간의 존재를 감지하지 못한 듯했다.

똑-

또 한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 열어 봐.”

장목화가 아이스모스 권총을 뽑아 들었다.

성건우는 진즉부터 그러고 싶었다는 듯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등이 드문드문 설치된 복도는 어둡고 고요했다. 여름밤 따뜻한 바람은 복도를 자유로이 오가고 있지만, 역시 이곳에 사람은 없었다.

용여홍은 황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권총을 집어 들었다.

“아무도 없어요.”

상반신을 아예 복도 쪽으로 내밀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성건우가 느릿한 소리로 물었다.

“문 두드리신 분, 누구십니까?”

그러나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와, 저 배짱 좀 봐.’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은 용여홍은 성건우가 부러울 따름이었다.

“조금 더 기다려 봐.”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분부했다.

그녀는 그다지 긴장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어쨌든 이곳은 수정의식교 본부였고, 잔나가는 자비로운 승려이기 때문이었다.

그 선사가 알아서 흑화한 것이 아닌 이상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구조팀은 한동안 더 기다렸지만,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재미없네⋯⋯.”

성건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문을 닫았다.

똑!

그와 동시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용여홍은 하마터면 자리에서 펄쩍 뛸 뻔할 정도로 놀랐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얼마나 더 두드릴지 보자.”

“좋아요!”

성건우는 다시금 신난 듯 답했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소리는 장장 7번을 울린 뒤에야 오랫동안 멈추었다.

이 소동에 주세페도 몽롱하게 깨어났다.

“일곱 번 노크했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한번 정리한 장목화가 구조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성건우는 일찍이 생각했던 답을 말했다.

“귀신이 돌아온 밤! 수석이 돌아온 거예요!”

약간 놀란 용여홍이 반문했다.

“그럼 우리 방문은 왜 두드린 건데?”

“그 사람이 그 쪽지를 우리한테 줬잖아!”

성건우의 논리는 너무나 또렷했다.

“그렇다면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일곱 번 두드린 이유는?”

계속 캐묻는 용여홍을 보고,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7층탑! 7은 수정의식교 행운의 숫자야!”

“근데 문을 연 뒤에도 아무 일도 안 벌어졌는데?”

용여홍이 최후의 발악을 하듯 대꾸했다.

“일곱 번의 노크가 끝난 뒤에 열어야 일이 시작되는 거지.”

성건우는 못 믿겠다면 당장 문을 열어 보일 태세였다.

결국 장목화가 목을 가다듬으며 나섰다.

“보리 영역의 각성자는 심령의 복도에 진입한 후에 물질에 간섭할 수 있어. 누군가 공기를 조종하고 풍압을 바꿔 문을 두드리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만들어낸 거 아닐까?”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재차 소리를 냈다.

똑!

약간 묵직한 노크 소리가 이 소담한 방 안을 울렸다. 이 안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심장을 때리는 듯한 소리였다.

‘또⋯⋯.’

용여홍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몇 초간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던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말했다.

“큰 소리로 누구냐고 물어봐.”

그녀는 이러한 방식으로 같은 층에 있는 승려들의 주의를 끌어 원각자들이 발휘한 능력으로 이 기이한 상황을 해결할 작정이었다.

문 옆에 있던 성건우가 목청을 높였다.

“누구십니까!”

질문에는 돌아오는 답도, 소리도 없었다. 문밖에는 바닥도 끝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 자리해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똑!

다시금 전과 같은 노크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 그 소리와 함께 나무로 만들어진 방문이 살짝 진동했다.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감지 능력이 없었더라면 장목화와 성건우는 당연히 문밖에 누군가가 서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성건우 사이를 가로막은 것은 겨우 문 하나뿐이었다.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나갈 것 같지는 않은데.”

마찬가지로 문가에 서 있던 백새벽이 자신의 느낌을 공유했다.

“우리가 고립돼있다는 거야? 격리돼있다는 거야?”

용여홍이 바짝 졸아든 심장을 안고서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장목화가 말했다.

“만약 누군가 정말로 물질에 간섭하는 능력을 이용해 공기를 조종하고 풍압을 바꿔 문 두드리는 소리를 흉내 낸 거라면, 그 사람은 소리를 딱 이 부근에만 국한할 수도 있겠지.”

똑!

장목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노크 소리가 한 번 더 울렸다.

문밖에 있는 이는 당장이라도 이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서 안달이 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문을 열까요?”

성건우가 팀장에게 의견을 구했다.

장목화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좀 더 기다리자.”

기다림은 거의 30분이나 이어졌다. 그 사이 문밖은 내내 고요했고, 더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던 이도 기다림 끝에 완전히 포기해버린 것 같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간 장목화가 바깥의 상황을 진지하게 감지해보다가 말했다.

“내가 문 열어 볼게. 준비해.”

백새벽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나 권총으로 문을 겨눴고, 용여홍 역시 비슷한 동작을 취했다. 다만 문에서 훨씬 더 먼 침대에서 살짝 앞으로만 나왔다.

성건우는 무장 벨트에 걸린 손전등을 쥐고서 거울도 집어 들었다. 그러다 자신을 바라보는 장목화의 시선을 느끼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주 관주한테서 배운 거예요. 정말로 귀신이면 어떡해요?”

‘……주 관주는 그때 귀신에 대적하려고 준비한 게 아니었잖아.’

장목화는 느릿하게 숨을 토해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왼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린 그녀가 아이스모스를 쥔 오른손으로 문고리를 잡아 뒤쪽으로 당겼다.

멀찍이 자리한 복도 등의 불빛이 점차 확대되는 문틈을 통해 방으로 스며들었다. 구조팀원들 얼굴에 교차된 빛과 어둠이 드리웠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등불이 닿지 않는 곳에 자리한 그늘 역시도 잠들어 있는 듯했다.

“확실히 아무도 없어.”

상황을 자세히 관찰하던 장목화가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다시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노크 소리가 더 들려올지를 확인했다.

구조팀은 장장 30분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꼭 꿈을 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용여홍은 지금 각자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목화, 성건우, 백새벽이 아니었다면 노크 소리도 전부 환각이었을지 모른다고 착각했을 것 같았다.

“끝난 것 같은데⋯⋯.”

장목화가 중얼거렸다.

백새벽이 미간을 팩, 찌푸렸다.

“그 사람은 뭘 위해서 문을 두드렸을까요?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그냥 떠나버리다니⋯⋯. 혹시 우리가 마지막 노크 3번이 울릴 때 문을 열었다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을 당하게 됐을까요?”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우리한테 안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어쩌면 우리는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영향을 받았을지도 몰라. 불모지 13호 유적에서처럼 아직 그 영향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뿐인 거지.”

용여홍은 즉시 오하명의 비밀스러운 영향 아래 자살했던 세 사냥꾼을 떠올리고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그럴 리가⋯⋯.”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계속 교대로 불침번을 서자. 서로를 지켜보면서 뭔가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싶으면 바로 깨워주는 거야.”

장목화의 태도는 신중했다. 또 구조팀은 이러한 방면에 어느 정도 경험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때, 여전히 꽁꽁 묶인 채 밥 먹을 때도 남의 도움을 받는 주세페가 조용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내 생각에는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여긴 수정의식교 본부야. 어떤 귀신도 파란을 일으키지는 못한다고. 퍼스트 시티 특정 지역에 귀신 소동이 일어날 때도 다들 수정의식교 승려한테 정화를 부탁해.”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귀신이 아닐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리고 그녀는 다시 생각에 잠겨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정말로 이상 현상이 생긴다면 수정의식교 승려한테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겠지. 만약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영향이 없는 거라면, 조금 전 발생한 일의 핵심은 문을 두드린 그 자체에 있는 거야.

음, 노크와 비밀스러운 영향은 충분히 공존할 수 있지. 오하명은 전파를 통해 자신의 힘을 전달했으니, 조금 전 그 사람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통해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야.

또 어쩌면 노크는 우리한테 뭔가 정보를 전달하는 건지도 몰라. 경전 속에 끼워 넣어진 쪽지처럼.”

장목화는 노크 사건과 성지 목록을 연관 지었다. 둘 다 구조팀이 시카라 사원에 들어와 수석의 입적을 목격한 뒤에 발생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백새벽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정보 전달⋯⋯. 처음에 노크는 일곱 번, 뒤에는 세 번 노크했어요. 이게 의미하는 건 뭘까요?”

구조팀은 암호 및 비밀번호에 관련된 전문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장목화가 답했다.

“간단하고 직접적으로 보자면 그냥 7과 3이란 숫자겠지? 외부인이 우리한테 전달하려 한 정보라면 그리 복잡하지는 않을 거야.”

“7, 3⋯⋯.”

용여홍도 이 두 숫자의 의의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이때 성건우는 벌써 생각한 답이 있는 듯 바로 의견을 밝혔다.

“지금 새벽이잖아요. 7일 후 새벽 3시에 밖에서 만나자는 뜻인 거죠.”

장목화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왜, 네 머리 딱 세 대만 때리려고?”

이는 장목화가 팀원들에게 얘기해준 손오공에 관한 이야기였다.

어느 날 수보리 조사가 손오공에게 본격적인 도술을 가르쳐주겠다 했지만, 불로불사밖에 관심이 없는 손오공은 거부만 했고, 수보리 조사는 화가 나 손오공의 머리 세 번을 때린 뒤 들어가 문까지 잠갔다.

사형들은 괜히 탐욕을 부려 사부님을 화나게 했다며 손오공을 타박했지만, 영특한 손오공은 한밤중 삼경에, 중문 아닌 뒷문으로 몰래 가르침을 청하라는 말임을 알아채고 그날 밤 바로 찾아간다.

성건우는 바로 이 이야기를 응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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