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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461화 (461/649)

461화. 부처의 응신(應身)

그리고 가리발디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던 장목화가 물었다.

“수정의식교와 친한 퍼스트 시티 세력이 어딘지 알아?”

가리발디는 별 확신이 없는 듯 답했다.

“그들은 개혁보다는 질서 유지를 더 선호해.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이런 환경 조건이 계속 유지되기만 하면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수행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그럼 보수파에 기울어져 있겠네.’

용여홍이 가리발디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읽어냈다.

그가 막 이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가리발디가 덧붙였다.

“수정의식교 내부도 그렇게 똘똘 뭉쳐있진 않아. 그들의 원각자한테 각자만의 이념과 생각이 있거든. 아, 원각자는 수정의식교 고위층 구성원이야.”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수정의식교 계층 구분에 대해 더 아는 거 있어? 아 참, 이름이 뭐야? 계속 널 가리발디라고 부를 순 없잖아.”

“주세페라고 부르면 돼.”

주세페 역시 본명은 아닌 듯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수정의식교에 대해 아는 것들을 계속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아는 건 정말 얼마 안 돼. 회사엔 이쪽 방면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음, 그들은 신도를 오식인(五識人)이라고 불러. 그 위로 갈수록 육식자(六識者), 칠식사(七識師), 그리고 원각자가 되는 거지.”

주세페가 아는 모든 정보를 알려주었을 때, 완전히 어둑해진 여름밤이 찾아왔다. 구조팀이 회사와 전보를 주고받을 시간이었다.

무선 통신기를 꺼낸 뒤, 다들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반고 바이오의 회신을 기다렸다.

그로부터 몇 분 후, 무선 통신기가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 도착한 전보의 내용은 적지 않았다. 장목화는 내용을 다 해독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들였다.

그녀가 전보 내용을 옮겨 적은 종이를 쥔 채 가리발디를 바라보았다.

“회사에선 이미 네 상황을 알고,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아. 그런 상황에선 극도로 특수한 사람이 아니고선 누구도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

너한테 두 가지 선택지를 주네. 하나는 퍼스트 시티 산하 어느 도시 국가나 다른 세력에 남아 여전히 회사를 위해 일하는 거야. 필요한 약은 누군가 갖다줄 거고. 다른 하나는 회사로 돌아가 내근직으로 전환하는 거야.”

퍼스트 시티에서 이미 발각당한 가리발디, 그러니까 주세페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주세페의 표정이 잠시 아득해졌다.

“회사로 돌아가야지⋯⋯.”

이를 본 장목화가 뭔가를 깨달은 듯 물었다.

“너 혹시, 여태 한번도 회사에 간 적 없어?”

주세페가 느릿하게 한숨을 토해냈다.

“맞아. 우리 아버지는 회사 직원으로 퍼스트 시티에서 희생당했고, 난 아버지를 대신해 회사 정보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거든.”

‘외부로 파견된 회사 직원 대부분은 이미 다 결혼했는데.’

용여홍은 이를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때, 눈동자를 살짝 굴리던 장목화가 캐물었다.

“너희 아버님은 퍼스트 시티에서 몇 년을 사셨는데?”

주세페가 기억을 더듬었다.

“거의 20년을 사셨지. 아버지는 몇 년에 한 번씩 보고하러 회사에 돌아가셨어. 난 아직 그 기한을 다 채우지 못한 상태고.”

용여홍은 바로 관련 규정을 떠올렸다.

‘회사에서 외근직 기한은 4, 5년 정도 아니던가? 본인이 신청하지 않는 이상 같은 임무로 외부에 파견되지는 않을 텐데.’

장목화는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제안했다.

“이 기회에 회사로 돌아가 보고하면 되겠네. 그 후에 그곳에 남을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서 정보원 일을 할지 결정하는 거야.”

잠시 침묵하던 주세페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세페의 거취를 결정한 장목화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회사에서는 최대한 빨리 수정의식교와 협상하겠다고 했어.”

‘협상?’

용여홍이 속으로 그 단어를 반복했다.

계속해서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수정의식교에 관한 정보도 있어. 그들의 종교 지도자는 부처의 응신이라고 불린대. 그는 일찍이 새로운 세계에 진입해 분화된 의식으로 애쉬랜드 위에 육신을 유지하고 있고, 거의 항상 잠들어 있는데 가끔만 움직인대.”

“거의 항상 잠들어 있다고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든 용여홍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시카라 사원이 수정의식교의 본부라면 부처의 응신은 이론상 이 사원의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터였다.

“염호와 비슷하네요.”

성건우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그 말에 굳은 표정을 드러낸 백새벽이 염호와 관련된 금기를 읊었다.

“섬 위의 다른 지역에서 최대 사흘을 넘기면 안 된다. 신전 부근에서 최대 30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 신전 안에서 최대 15분을 넘겨서는 안 된다.”

‘그건 염호의 신전을 탐색하기 전에 회사에서 알려준 주의 사항이잖아. 마, 만약 그 부처의 응신과 염호의 상태가 비슷하다면, 그런 주의 사항은 여기에도 적용되는 거 아냐? 우, 우리는 벌써 여기서 하루 하고도 반 정도를 지냈는데!’

마음이 졸아들자 용여홍의 생각이 마구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마냥 똑같지는 않을 거야. 적어도 사원 내의 승려들은 아직 아무런 문제도 보이지 않았잖아.”

장목화가 팀원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성건우는 용여홍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용여홍도 군말 없이 입을 꾹 다물었다.

다시 고개를 숙인 장목화는 전보의 내용을 마저 읽었다.

“부처의 응신이 잠들어 있을 때, 수정의식교의 구체적인 일은 원각자 중 수석이 담당한대.”

어젯밤 열반에 오른 수석?

구조팀은 이제야 수석이 뭘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잠시 고민에 잠겨 있던 장목화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수석은 수정의식교 내에서 표면적으로 가장 강한 자였다는 거야. 그의 죽음은 나약해진 퍼스트 시티 균형에도 큰 타격을 줬겠지.”

전보는 여기서 끝이었다.

구조팀은 이제 각자 다른 일로 바삐 움직였다.

* * *

온몸에 금칠하고 위엄있고 엄숙한 얼굴을 한 승려의 시신이 화장탑 안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강철 용광로의 문이 닫히기 전, 이 시신의 얼굴은 돌연 매섭게 구겨지기 시작했다.

쾅!

문이 닫힘에 따라 그 안쪽에서는 찢어질 듯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용여홍이 눈을 번쩍 떴다.

악몽에 놀라 깬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천천히 일어나 앉은 용여홍은 이마의 식은땀을 훔치며 옆에 놓인 수낭을 집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불침번을 서는 성건우가 창밖의 옅은 달빛을 맞으며 자신을 빤히 응시하는 것이 곁눈에 들어왔다.

“왜? 놀라서 깼어?”

성건우가 웃으며 물었다.

흠칫 놀란 용여홍이 내뱉듯 물었다.

“너도 그 꿈 꿨어?”

그러나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성건우는 여태껏 불침번을 섰으니 잠들지도 못한 사람이 꿈을 꿨을 리는 없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무슨 악몽을 꾼 거야?”

두 사람의 대화에, 불침번을 서던 백새벽도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잠들었던 장목화 역시 느릿하게 깨어났다.

이 방에 있는 사람 중, 여전히 잠들어 있는 건 금단 현상에 대항하느라 진을 다 뺀 주세페뿐이었다.

머뭇거리던 용여홍이 말했다.

“꿈에서 입적한 그 수석을 봤어. 시신이 화장탑 안으로 옮겨졌는데 거기서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더라고, 거기다 비명까지 지르고.”

간단한 설명을 마친 용여홍이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팀장님, 팀장님도 이런 꿈을 꿨나요?”

장목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잘 잤는데.”

용여홍은 다행이라 안도하며 본인 스스로를 분석해보았다.

“어쩌면 그 수석이 투신자살하는 광경이 너무 충격적이라 저한테 깊은 인상을 남겼나 봐요. 무의식 속에서 그 광경이랑 다비식이 한데 섞이고 저는 거기에 놀라서 깨어난 거고요.”

성건우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까 아무래도 그 이유는 아닐 것 같아.”

“야.”

용여홍은 무기력하게 친구의 장난을 저지했다.

시원하게 하품을 한번 한 장목화가 수낭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자. 어쨌든 그 수석은 뼛가루로, 아니 사리로 변했어. 정말로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야.”

그때, 성건우는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잔뜩 낮춰 으스스하게 말했다.

“이 세상에 귀신은 실제로 존재해⋯⋯.”

용여홍이 바로 반박하려는데, 성건우가 친절한 예시까지 들어주었다.

“디마르코를 봐.”

순간 구조팀 모두가 말을 잃었다. 디마르코는 육신이 사라지고도 귀신 혹은 유령 같은 상태로 한동안 존재한 사람이었다.

그는 보리 영역 각성자였고, 수석 역시 그랬다. 그러지 않고서는 천안통을 장악할 순 없었을 것이다.

즉, 그 수석의 의식체도 육신을 떠나 한동안 생존할 가능성이 작진 않다는 것이었다. 통속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그게 바로 귀신이었다.

몇 초 후,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육신을 잃은 디마르코는 얼마 살지 못했잖아. 그 수석은 어젯밤에 죽었, 아니, 새로운 세계에 진입했고.”

성건우가 반박했다.

“그 사람은 분명 디마르코보다 강할 거예요.”

“그렇다고 그렇게 큰 차이는 없을걸? 그 사람이 새로운 세계에 진입한 후에도 애쉬랜드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에는.”

이내 장목화는 몸을 틀어 창밖의 캄캄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자자. 한밤중에 토론이라니, 이건 좀 아니잖아.”

성건우는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아니, 궁금하지 마.”

장목화도 이제 면역이 생긴 듯 성건우를 간단히 저지했다.

하지만 성건우 역시 만만치 않아서, 꿋꿋이 마치 엄청난 난제를 마주하기라도 한 양 물었다.

“그래도 궁금한 게, 잔나가 대사는 과연 잠을 잘 필요가 있을까요?”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에게 잠이 얼마나 필요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방문 근처의 백새벽이 곧장 답했다.

“아마도 필요할걸. 적어도 디마르코는 그랬잖아.”

그러지 않았다면 구조팀도 당시 디마르코의 육신을 훼손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었다.

성건우가 말을 받았다.

“그럼 잔나가 대사는 지금 자고 있을까? 밤낮이 뒤바뀐 삶을 사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용여홍은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잔나가 대사가 지금 잠들어 있다면, 타심통으로 우리를 감청하거나 도주를 저지하지는 못하겠지?’

장목화와 백새벽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바로 성건우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이었다.

“선사, 주무십니까?”

성건우는 곧바로 전방의 허공을 향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를 보고 백새벽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지금 도망치자는 거야?”

장목화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잔나가 대사가 우리를 안 보고 있다고 다른 승려도 우리를 안 보고 있다고 보장은 못 해. 여긴 수정의식교 본부라고. 강자가 차고 넘칠걸.”

“맞아, 맞아.”

용여홍이 깊게 공감했다.

그는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발생한 기이한 사건이나 기묘한 우연이 없었더라도, 시카라 사원에서 얌전히 지내는 게 가장 나은 선택지라 여겼다.

어쨌든 구조팀의 계획도 퍼스트 시티에 혼란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기다림의 장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열흘 내로 퍼스트 시티에 정말 무슨 혼란이 발생한다면, 수정의식교에서도 더 이상 구조팀에게 아무 신경도 쓰지 못할 터였다.

“시도도 안 해보고 어떻게 알아요?”

성건우가 동료들을 꼬드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장목화는 조건반사적으로 구세계 콘텐츠에서 배운 표현을 썼다.

“시도했다가는 저세상으로 갈 텐데? 게다가 잔나가 대사는 예언에도 능하잖아. 어쩌면 우리가 오늘 밤 여기서 도망치지 못할 거란 걸 예측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잠든 건지도 몰라.”

“예언에는 늘 오차와 모호성이 따르는 법이죠. 어쩌면 예언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문을 통해선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이었는지도 몰라요. 근데 창문으로 나가서 한층, 한층 기어 내려가도 되잖아요.”

성건우는 구세계 콘텐츠로 얻은 풍부한 지식을 예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건 좀 위험하잖아.”

용여홍이 솔직하게 말했다. 위험의 주체는 역시 그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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