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60화 (460/649)

460화. 다비식

짧은 공백이 생긴 와중, 용여홍이 돌연 기발한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불모지 13호 유적의 비밀 실험실은 일찍이 파흐 지방 호움 난임 센터가 있던 곳이지 않을까요?”

조금 머뭇거리던 장목화가 말했다.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는데, 난 둘 사이에 일정한 연계가 있긴 해도 같을 거라 생각하진 않아. 수정의식교는 줄곧 5대 성지에서 예불을 드렸어. 과연 그런 성지 중 한 곳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있을까? 그들이 불모지 13호 유적 비밀 실험실에 들어갈 때 필요한 암호를 알고 있을 리도 없고.

하하, 전에 난 기계 승려 정법을 만난 뒤에 구세계 불경들을 읽어본 적이 있어. 그런 불경들 내용과 이번 사건을 결합하면 아주 흥미로운 게 하나 나와. 불모지 13호 유적에 있는 비밀 실험실에 들어가는 암호, 기억나?”

장목화는 더 이상 잔나가의 타심통은 신경 쓰지 않았다.

“메시아요.”

용여홍이 답했다.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불경엔 미륵이라 불리는 미래불이 한 명 나와. 그 미륵과 메시아의 어원이 같아. 즉, 이 두 단어는 구세계 고대의 어느 언어에선 같은 단어였다가 각기 다른 지역에서 점차 변천하고 발전된 결과라는 거야.

또 수정의식교와 승려 교단 교리에서 보리와 세자재여래 외의 모든 부처, 보살, 명왕들은 미륵을 포함한 이 두 달지기의 화신이고.”

이렇게 본다면 5대 성지 중 한 곳인 파흐 지방의 호움 난임 센터와 불모지 13호 유적의 비밀 실험실은 기본적으로 연계된 셈이었다.

물론 공교로운 우연일 가능성도 컸다.

구조팀이 한창 토론을 진행하는 동안, 가리발디가 금단 현상으로 인한 발작에서 조금 회복된 모습을 보였다.

구조팀은 분명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가리발디는 그들이 하는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을 지킬 줄 아는 구조팀원들은 이쯤에서 5대 성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쳤다. 물론 아는 정보가 너무 없어서 더 얘기할 거리가 없기도 했다.

* * *

오후 4시, 음식을 가져온 중이 구조팀의 방문을 두드렸다.

“먹을 것은요?”

문을 연 성건우가 젊은 중의 두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젊은 중은 합장하며 염불을 외웠다.

“시주님들, 혹시 수석의 다비식에 참여하고 싶으십니까?”

‘화장식?’

용여홍의 머릿속에서 다비식은 자연스레 화장식으로 번역되었다.

장목화는 경전 속 쪽지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입니다.”

* * *

네 구조팀원은 가리발디를 방에 두고, 젊은 중을 따라 시카라 사원 1층으로 내려갔다.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뒤에 딸린 폐쇄식 광장이었다.

광장에는 새카만 금속광을 번득이는 기괴한 탑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이미 광장에 모인 상당수의 승려가 각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눈을 감은 채 수행하고 있었다.

구조팀은 앞으로 한참을 걸어 나간 끝에 잔나가를 발견했다.

비쩍 마른 잔나가는 그곳에 서서 불탑을 빤히 응시하는 중이었다.

“선사.”

성건우가 예의 바르게 그를 불렀다.

이에 잔나가는 그를 돌아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장목화는 순간 뭔가가 떠올라 얼른 입을 열었다.

“선사, 도움을 청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여기서 말하긴 불편하다는 듯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잔나가는 곧 한 손을 앞에 세우고 다른 한 손으로 가슴팍을 가리키며 마음속으로 이야기하면 된다는 뜻을 표했다.

장목화는 즉각 속으로 이야기했다.

‘예, 선사. 저희한테 심한 병을 앓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둘 다 급히 치료받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저희가 이번에 퍼스트 시티로 돌아온 것도 그것 때문이고요. 저희가 친구들 혈액 샘플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믿을만한 의료 기구나 관련된 실험실로 보내 실험을 맡기고 싶습니다. 이걸로 친구들 병을 확실히 파악하고 최적의 약을 찾아주고 싶어서요.’

그녀가 이를 통해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뜻은 지금 이렇게 시카라 사원에 갇혀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은 세상 그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였다.

잔나가는 염불을 외웠다.

“그 일은 빈승에게 맡기시지요.”

“감사합니다, 선사.”

장목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팀원들과 함께 적당한 자리를 찾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들이 직접 나서거나 회사의 정보 네트워크를 동원하는 것보다는 수정의식교를 통해 의료 기구를 찾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나았다.

* * *

서서히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자 승려 네 명이 노승의 시신을 지고 앞으로 나섰다. 노승은 더 이상 그렇게 끔찍한 모습이 아니었고, 장엄해 보이는 몸은 뭘 바른 것인지 옅은 금빛으로 번득이고 있었다.

네 승려는 수석의 시신을 검은 금속광으로 번득이는 괴상한 탑 앞에 내려놓은 뒤, 주위로 흩어져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광장의 승려들 역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시신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염불을 외웠다.

“극락세계는 깨끗하고 장엄하다. 고통도, 어려움도, 악도, 번뇌도 없으며 사계도, 밤낮도, 추위와 더위도, 폭우와 가뭄도 없느니라⋯⋯.”

구세계의 불경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염불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용여홍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려 했다. 그러는 사이 눈으론 수석의 몸과 얼굴을 훑었다.

금빛으로 번득이는 장엄한 얼굴엔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고, 지우기도 어려운 고통의 빛이 남아있었다.

‘바닥에 추락한 순간, 생물학적 고통이 수정의식을 압도한 건가?’

용여홍은 이러한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겁이 나서 허튼 생각 같은 건 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이 광장에는 타심통 능력을 가진 승려가 아주 많을 것이었다.

간단한 의식을 치른 뒤, 검은 금속광으로 번득이는 불탑 앞에 다시 모여든 네 승려는 묵직한 탑문을 열고 수석의 시신을 그 안에 들였다.

그제야 장목화는 그것이 불탑이 아닌 화장탑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녀는 예불을 드리는 주위 승려들의 공손한 태도에 화장탑도 탑이라고, 제련과 제강을 하는 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둘 모두 사리탑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탁!

화장탑 문이 닫힘에 따라 수석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다비식이 끝난 후 장목화는 다시금 잔나가를 찾았다.

“수석도 예언에 능하셨나요?”

잔나가는 한 손은 가슴팍 앞에 세우고 다른 손으로는 염주를 굴렸다.

몇 초간 침묵하던 그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 * *

시카라 사원, 구조팀이 갇힌 6층 어느 방 안.

“설마 뭔가를 예언한 수석이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일부러 우리에게 이런 쪽지를 남긴 걸까요?”

용여홍은 원래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상황을 확인한 뒤 물으려 했었다. 하지만 잠시 고민 끝에 아무 의미도 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수정의식교 대본영에 자리한 이상 아무리 주의해도 들킬 만한 건 들킬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자조하듯 웃었다.

“우리가 뭘 어쩔 수 있다고?”

실력으로 따지자면 구조팀은 퍼스트 시티란 흐린 물 안에선 겨우 중간 수준에 불과했다. 친분으로 따져도 사원의 승려들은 차치하고, 수정의식교와 퍼스트 시티 정부 세력의 관계만 봐도 구조팀이 감히 댈 것이 아니었다.

또한 그들이 죽은 수석에게 정보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반고 바이오라는 대형 빌런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도 아닐 터였다.

퍼스트 시티에는 반고 바이오의 정보원과 다른 임무를 집행하는 팀도 아주 많았기 때문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성건우가 정색을 한 채 말했다.

“전 인류를 구원하는 우리를 예언한 것일 수도 있죠.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조금 도움을 주려고 한 거예요.”

“⋯⋯.”

용여홍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친구를 비웃진 않았다. 예언에 능한 승려라면 제정신이 아닐 테니, 어떤 이유에서 어떤 행동을 했든 이상할 건 없었다.

잔나가가 바로 살아있는 예였다.

“우리가 정말로 그렇게나 중요하다고?”

장목화는 농담하듯 가볍게 대꾸했다.

그때, 백새벽이 다른 질문을 제기했다.

“만약 수석이 정말로 일부러 이 쪽지를 남겨놓은 거라면, 왜 관련 정보를 더 확실히 알려주지 않은 걸까요? 쪽지에 적힌 건 5대 성지의 위치뿐이라 우린 기껏해야 추측만 할 수 있잖아요. 실질적으로 큰 효과는 없어요.”

성건우는 방 안 구석의 그늘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얼굴 위로 그림자와 빛이 겹치며 조금 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는 그 상태로 으스스하게 말했다.

“자세히 썼다가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지도⋯⋯.”

용여홍은 성건우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런데도 저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머릿속에선 수정의식교 수석이 사원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지면에 추락한 장면이, 깨진 머리에서 뇌수와 피가 흘러나오는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 연이어 떠올랐다.

이내 장목화가 성건우를 한번 흘겨보곤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수석 역시 5대 성지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까지는 알지 못할 수도 있어. 이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까지만 예언했기에, 일부러 가장 가까이에 있는 외부인에게 쪽지를 남긴 거야.”

‘팀장님 말은 그런 무당들 스타일에 꽤 잘 어울려.’

용여홍은 구세계 콘텐츠에서 배운 말로 예언에 능한 승려들을 비유했다.

이때 주위를 둘러보던 장목화의 시선이 가리발디에게 닿았다. 평안한 상태를 회복한 그는 침대에 누워 구조팀의 대화를 멍하게 듣고 있었다.

그 순간 뭔가 떠오른 그녀는 용여홍에게 가리발디가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을 수 있게 부축하고, 그의 입을 틀어막은 천도 빼라고 지시했다.

이윽고 장목화가 퍼스트 시티 주재 반고 바이오 정보원에게 물었다.

“수정의식교에 대해 알고 있는 거 있어?”

가리발디는 좌우를 두리번거린 뒤 입을 열었다.

“시카라 사원이었네. 어쩐지 중이 많다 했어. 난 주로 귀족들 정보를 담당해서 종교 세력은 잘 몰라. 내가 알기론 수정의식교는 퍼스트 시티가 창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 세력이야. 그 사람들은 여길 근간으로 삼고 정착민들을 대상으로 포교를 시작했어.”

용여홍이 화들짝 놀랐다.

“여기가 수정의식교 본부라고?”

시카라 사원이 수정의식교에서 중요한 부분일 것은 예상했지만, 본부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구조팀은 현재 기계 승려에게 붙잡혀 그들이 말하는 정토에 끌려간 상황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리발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거야. 수정의식교는 포교도 하고, 신도들 수를 늘리기도 하는데 이런 일에 딱히 적극적이진 않아. 그보단 자기 수행과 승려 모집에 더 집중해. 그들이 택한 방법은 구세계 도제제도랑 엄청 비슷해. 그래서 퍼스트 시티 내에 수정의식교 명성은 그리 크지도 않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

성건우도 가리발디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 만약 그들이 수시로 음식을 보시했다면 퍼스트 시티 하층 주민들이나 외부 유랑자들이 이미 여길 성지로 여겼겠지.”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수정의식교의 중은 승려 교단 기계 승려들이랑 다르잖아. 그들은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해야 해. 그들이 먹을 음식도 풍족하지 않으니 외부를 향한 보시는 가끔만 이루어지는 거야.”

게다가 수정의식교가 신도 확대와 포교에 적극적이었다면 그들과 퍼스트 시티의 관계는 지금처럼 조화롭지 못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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