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55화 (455/649)

455화. 숙명

그로부터 몇 분 후, 성건우와 용여홍은 콜론자의 집 정문을 두드렸다.

장목화와 백새벽 역시 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다가갔다.

콜론자의 집 정문은 금세 열렸다. 안에서 나온 건 정장 차림에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집사였다. 집사는 의혹 가득한 얼굴로 외부인들을 훑어보았다.

“누구십니까?”

위장한 성건우가 곧장 답했다.

“뻔하지 않나요? 보세요. 이 구역 전기 회로에 고장이 났습니다. 우리는 전력 수리 회사의 옷을 입고 있고요. 그러니까⋯⋯.”

집사는 순간 깨달음을 얻은 듯 답했다.

“고장이 났다고요? 어쩐지, 갑자기 정전됐다 했습니다.”

그는 아무 의심도 없이 성건우, 용여홍에게 바로 길을 내주었다.

장목화와 백새벽 역시 전력 수리공 제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 * *

구조팀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장 2층으로 올라 가리발디가 말한 그 구석 게스트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 미처 가까워지기 전, 걸음을 늦춘 장목화가 고개를 틀어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성건우도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의식이 두 개가 느껴지네요.”

원래 건물의 구체적인 구조를 몰랐던 구조팀은 1층에 있었을 땐 목표가 어느 방에 있는지 판단하지 못했다.

다른 방에도 인간의 의식이 있었는데, 두 개의 인간 의식이 느껴지는 곳과 가리발디가 숨어있는 곳이 똑같았다. 어쩌면 한 하인이 그 안에 숨은 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청소 중인지도 몰랐다.

뒤이어 성건우가 덧붙였다.

“전에는 세 개였을 거예요.”

서로를 돌아보던 구조팀은 잔나가의 감시 아래 다시 빠르게 걸음을 옮겨 구석의 게스트룸 앞에 이르렀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은 장목화는 바로 문을 잡아당겼고 용여홍, 백새벽, 성건우는 곧장 흩어지면서 습격에 대비했다.

방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중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한 남자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상당히 잘생긴 사람이었는데, 안색이 너무 초췌해 잠들어 있는 건지, 혼수상태에 빠진 건지 분간이 가진 않았다.

남자는 바로 구조팀이 구조하려 한 가리발디였다.

다른 남자는 1인용 소파에 앉아있었다. 짙은 파란색 눈동자와 또렷한 팔자주름을 가진, 흰머리가 몇 가닥 섞인 머리를 말끔히 뒤로 빗어넘긴 그 남자는 콜론자였다.

콜론자의 옆으로 항구가 보이는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매복은?”

콜론자는 약간 혼란이 어린 복잡한 표정으로, 몇 초간 침묵하다가 답했다.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어.”

용여홍이 혼란과 우스움을 동시에 느끼는 사이, 콜론자가 덧붙였다.

“그 여자가 가진 능력 중 하나가 육감이거든.”

‘육감이라……. 위험을 예감하고 바로 창문으로 뛰쳐나간 건가? 그 여자가 위험하다고 느낀 건, 우리를 따라온 잔나가 때문일까?’

장목화도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 매복을 담당한 각성자의 결단력은 너무나도 강해서, 방 안의 콜론자는 여태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로써 장목화는 잔나가가 조금 전 했던 예언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했다. 뜻밖의 상황이 없다는 것, 그건 그 같은 강자가 구조팀을 따랐을 경우를 전제로 한 이야기였다. 그가 일단 구조팀을 도울지 말지는 차치하고, 그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육감을 가진 적은 그대로 놀라 달아난 것이었다.

또한 매복을 맡은 욕망 성인 교파의 초월자에게 육감이란 능력이 없었더라면, 잔나가가 이 현장에 있든 없든 충돌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이때 성건우는 콜론자를 향해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건 정말로 함정이었던 건가?”

점차 원래 표정을 회복한 콜론자가 약간 비웃음 어린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이 자가 내 집에 들어올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만약 이 세상에 일반인만 있었다면 이 녀석도 그렇게 날 속일 수 있었을 거야.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않지. 이 자는 내 분노를 온몸으로 감당한 뒤 만다라의 주시 아래 모든 걸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가리발디는 진즉 그 존재를 들켰고, 그 후 회사에 구조 요청을 한 건 코드북을 장악한 콜론자와 그 배후에 존재하는 욕망 성인 교파였다는 말이네. 그래도 다행이야. 우리와 회사가 통신할 때 쓰는 암호와 정보 체계는 한 세트가 아니니까. 회사에서도 미리 다른 정보원을 준비해놓았고.’

장목화는 조금 의혹이 묻은 얼굴로 콜론자를 바라보았다.

“이런 함정을 설치한 이유는?”

그녀는 콜론자와 욕망 성인 교파가 자기 팀을 노리지는 않았으리라 믿었다. 가리발디가 발각당해 모든 상황을 사실대로 털어놓았을 때 구조팀은 이미 도시 밖으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그들 스스로도 다시 퍼스트 시티로 돌아오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콜론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유? 하나를 잡으면 그와 관련된 이들을 줄줄이 낚고 싶어지니까. 물론 우리는 퍼스트 시티 질서 수호자가 아니야. 이런 짓을 한 건 그저 어떤 거래를 할 수 있을지 보기 위해서였다. 거래를 하려면 가지고 있는 게 많아야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고.”

‘퍼스트 시티에 곧 일어날 혼란 속에서 회사 힘을 이용하려 한 건가?’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가 싶던 장목화가 콜론자를 보며 가볍게 웃었다.

“난 너희가 이미 퍼스트 시티의 귀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이익 공동체를 결성한 줄 알았는데.”

“귀족은 원래부터 단단한 한 덩어리가 아니잖아. 심지어 분란의 근원 대부분이 그들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교파의 강자를 놀라 달아나게 한 적을 마주한 상황에서도 콜론자는 가장 기본적인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이를 처음 접하는 콜론자는 당연히 매우 혼란스러워했다.

그 틈을 타 성건우는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너와 이 사람은 왜 원수가 된 건데?”

그가 가리킨 건 침대 위의 가리발디였다.

콜론자는 가리발디를 힐긋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만다라의 신도로, 욕망에 영혼이 있고 모든 감정은 욕망 안에서만 승화되고 연속된다고 믿어. 지난 수년간 난 줄곧 욕망의 바다에 잠긴 채 모든 걸 초월하는 영성을 찾고자 했어. 그러다 그 여자를 만났지.

그 순간 난 욕망을 강조하지 않는 감정에도 그것만의 매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언제나 침대 위에서 뒹굴 필요는 없다는 걸, 구세계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기이한 습관이 있는 이단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평안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이 대목에서 콜론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온몸이 다 떨릴 정도로 큰 웃음이었다.

“그런데 결국 그 여자는 이 녀석에게 넘어갔어. 마음과 마음의 소통은 끝내 욕망에 패배하고 말았지. 외재적이고 쾌락을 좇는 욕망에 패배했다고. 그건 나한테 정말이지, 엄청난 모욕이었다.”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콜론자가 자신의 사타구니를 두드리며 몹시 신실한 눈빛으로 말했다.

“만다라는 너와 나의 마음속에 계시니라. 그 일을 겪고 나서야 난 달지기의 말씀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게 됐지. 정도에서 벗어난 이전의 일탈로 이런 결과를 얻게 된 건 운명이 정한 바였다는 걸 깨달은 거야.”

콜론자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자조하듯 웃었다.

그는 이미 그 당시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굴었지만, 백새벽은 콜론자가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용여홍은 그렇게 숙명적인 이야기에 감탄했다. 또한 그는 그런 경험이 없기에, 평소 고기나 생선 등 비싸고 귀한 음식에 습관이 돼 있던 콜론자가 어느 날 맛본 맑은 죽에 독특한 매력을 느꼈으리라 생각했다.

콜론자가 여태까지 그것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건, 그가 그런 음식에 물리기 전, 누군가가 맑은 죽에 달걀과 살코기, 어포를 넣으며 그가 생각했던 아름다움을 망쳤기 때문이었다.

용여홍은 속으로 조용히 결론을 내렸다.

‘음, 구세계 콘텐츠 중 로맨스 소설 같은 이야기네.’

이 생각을 잔나가에게 들킬까 염려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잔나가가 구세계 콘텐츠에 빠지게 된다면 그건 팀을 위한 공헌이 될 터였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

성건우가 약간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자신이 상상했던 것만큼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망한 눈치였다.

그리고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잠든 건지, 혼수상태에 빠졌는지 모를 가리발디를 힐긋 바라보았다. 확실히 생명이 위독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이 사람을 쏴 죽이려고 한 거야? 여기서는 또 무슨 짓을 한 거지?”

K는 옷깃을 정리하며 답했다.

“당시 사격수를 고용한 건 너무 화가 나서였어. 여기서는, 하하, 나와 방금까지 이곳에 있던 그 사람이 이 녀석에게 진정한 욕망이 무엇인지, 모든 걸 초월하는 영성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얼마나 황홀한지 체험시켜줬지. 아마 녀석도 나한테 감사해할 거야.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줬으니⋯⋯.”

“성적으로 착취한 거야? 대마나 그런 비슷한 것들을 피우게 하고?”

백새벽이 콜론자의 말을 끊고 물었다.

콜론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의식을 보조하는 도구일 뿐이야. 나랑 이 자의 원한은 이미 끝났어. 녀석을 데려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

‘겁먹었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신선하게 하다니.’

용여홍도 이젠 현상의 본질을 파악했다.

“좋아.”

장목화는 곧 용여홍에게 가리발디를 옮기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때 성건우가 콜론자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너와 이 사람 사이에 있던 그 여자는? 지금 어떻게 됐지?”

콜론자의 표정에 몇 차례 변화가 일었다.

“당시엔 그 여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 하지만 그렇게만 해서는 내 울분을 다 풀어버리기 부족할 것 같았지. 난 그 여자가 후회하는 모습을, 울며 참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 그래서 그 여자에게 줬던 모든 걸 거둬들이고 그 여자가 하루하루 고통스러워지기를 기다렸어.”

‘나이가 몇 살인데 그렇게 유치하냐, 인간아⋯⋯.’

구세계 콘텐츠에 많은 영향을 받은 용여홍이 못 참겠다는 듯 속으로 빈정거렸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사람의 목숨을 해치지는 않았으니까.

이윽고 용여홍은 가리발디를 부축해 세웠다.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바로 눈짓을 보냈다. 용여홍을 도우라는 뜻이었다. 그리고는 콜론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만 헤어질 시간이야. 그쪽도 우리 양측의 관계를 더 이상 경직되게 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야기를 하는 사이 그녀는 의도적으로 활짝 열린 창문을 바라보았다. 너희가 우리를 치기 위해 매복시켜놓은 사람마저 위험을 느끼고 도망쳤고, 우린 너희에게 아무 악의도 없으니 더는 서로를 건드리지 말자는 뜻이었다.

장목화는 꼭 호랑이굴에 앞장서서 들어온 여우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한편 그녀는 우호적인 태도를 드러내고자 이곳에 매복하고 있던 사람의 상황을 묻지는 않았다.

“어쩌면 합작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콜론자는 재차 사타구니를 두드리며 욕망 성인 교파의 방식으로 예를 갖췄다.

구조팀도 정신을 잃은 가리발디를 데리고 콜론자의 집에서 나와 그들의 차로 돌아갔다.

“고맙습니다, 선사.”

장목화는 전방의 허공을 보며 진심을 담은 감사 인사를 했다.

-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잔나가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장목화가 말했다.

“선사, 여기까지 온 김에 가져가야 할 물건들 좀 챙겨도 되겠습니까?”

- 그러시죠.

잔나가도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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