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51화 (451/649)

451화. 그리운 것은

용여홍, 백새벽에게서 소식을 들은 장목화도 같은 시간 콜론자의 집이 자리한 마스가르 거리 길 양쪽에 대량의 차가 멈춰서는 걸 목격했다.

수많은 가로등 불빛 아래 속속들이 차 문이 열리고 안에선 차림의 남녀가 한 명씩 내렸다.

경호원에 둘러싸인 그들은 당당히 콜론자의 집 정문으로 들어갔고, 경호원과 하인들은 딱 문밖까지만 고용주를 배웅한 뒤 분분히 차로 돌아왔다.

그곳 상황을 한동안 자세히 관찰하던 장목화가 결론을 내렸다.

“전부 귀족들이네.”

그녀와 성건우는 격투 경기 관람을 준비할 당시 귀족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은 했었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에게 어떤 칭호를 써야 할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상대를 알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만 정체를 폭로 당할 위험을 최대한 피할 수 있었다.

성건우가 한 남자 귀족을 가리키며 웃었다.

“맞아요, 저 사람 기억나네요. 디노가 하마터면 상류사회에서 최초로 사레에 들려 죽은 사람이 될 뻔했다고 비웃던 사람이네요.”

디노는 격투장 암살 사건 주인공 중 하나로, 살해당할 뻔한 대상이었다.

“이름이 펠프스였던 것 같은데⋯⋯.”

장목화는 별 자신 없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펠프스 역시 아크슨 인으로 검은 머리, 파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고, 볼 근육이 약간 아래로 쳐졌지만, 유전자 개량을 받은 듯 키도 크고 얼굴도 꽤 잘생긴 편이었다.

콜론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장목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파티라도 열리는 건가?”

확신은 없었다. 파티를 열기엔 아무래도 부적합한 시간이었다.

그녀가 알기론 귀족들 파티는 주로 저녁 식사 시간에 열려 자정까지 이어졌고, 중간에 언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다. 그렇지만 11시가 다 되어 열리는 파티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번 파티 주제가 귀신이나 유령인지도 모르죠.”

성건우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추측했다. 당장이라도 입이 뾰족한 원숭이 가면을 쓰고 파티에 참석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이제 능숙하게 그를 무시하고 혼자만의 추측에 접어들었다.

“모든 창문에 커튼을 친 게 저 모임 때문일까? 후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뭐지? 특별히 초청된 귀빈? 평범한 파티면 경호원이 들어가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아? 저 귀족들은 왜 저렇게 마음을 놓고 혼자 들어간 거지?”

그녀는 물음에 하나도 답을 찾지 못했다. 성건우가 옆에서 여러 가능성을 제기하긴 했지만, 하나같이 얼토당토않아 보였다.

장목화는 하는 수 없이 무전기를 들어 용여홍과 백새벽에게 당부했다.

“계속 감시해. 모임 끝날 때까지.”

* * *

감시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콜론자의 집 정문이 다시 열린 건 새벽 3시가 넘었을 때였다. 멋들어진 옷차림의 남녀는 피곤하지만 참 개운해 보이는 모습으로 속속들이 나와 차에 올랐다.

동시에 후문에도 세단들이 도착해 비밀 방문자들을 조용히 실어 갔다.

하지만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백새벽과 용여홍은 여전히 그들의 생김새를 제대로 살필 수가 없었다.

“팀장님, 목표 하나를 택해서 미행해봐야 할까요?”

용여홍이 장목화에게 의견을 구했다. 지금 백새벽과 당장 아래로 내려가 지프에 오른다면 세단 한 대 정도는 쫓을 수 있을 터였다.

장목화는 몇 초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아서 정말 신중히 행동해야겠어. 한 귀족을 쫓아 K 집에서 대체 어떤 모임이 열렸던 건지, 후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확인하는 거야.”

흔적을 드러내지 않은 비밀 방문자나 수수께끼투성이인 콜론자보다는 집도 있고 가족도 있고 권력의 가장자리에 있기까지 한 귀족들이 더 적합하고 안전한 목표였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별 고민도 하지 않고 펠프스를 낙점했다.

그들은 펠프스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것이 있었다. 상대의 조부는 일찍이 원로 중 한 명이었으나 가문의 후손을 위한 길을 잘 닦아놓지 못한 채 비교적 일찍 생을 마감했다. 그 때문에 펠프스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권력의 핵심에서 점차 밀려났고, 현재 펠프스 대에 이르러서 가문은 거의 몰락한 상태였다.

또한 장목화는 전의 격투장 암살 사건에서 모습을 바탕으로 펠프스의 경호원과 시종 중에는 각성자가 없으리라고 판단했다.

이런 요소들을 합치면 펠프스는 상당히 보기 드문 수월한 목표였다.

장목화는 곧장 건물 아래로 내려가 상대를 쫓지는 않았다. 인적이 드물고 사방이 고요한 이 심야에 움직였다간 발각될 가능성만 컸다.

중은 도망칠 수 있어도 절은 도망칠 수 없는 법이니, 날이 밝은 뒤 펠프스 집에 방문하기만 해도 충분히 그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장목화는 떠나는 귀족들의 차량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상황만 파악하면 가리발디를 구출할 방법도 어느 정도 생길 거야.”

사실 고려할 요소가 많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실행 가능성 있는 한 가지 계획을 내놓을 수 있었다.

콜론자가 사업 문제를 처리하고 뜻밖의 여러 상황을 해결하러 밖으로 나왔을 때 그 집에 몰래 잠입하거나 친구를 이용해 가리발디를 구하는 것이었다.

가리발디가 콜론자의 집에 순조롭게 잠입했고, 며칠이나 발각되지도 않고 숨어있었다는 걸 보면 이 계획의 성공률은 상당히 높았다.

물론 정작 그 안에 들어가 숨은 가리발디는 주위 환경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까닭에 그곳에서 꼼짝도 못 하는 중이었다.

* * *

다음날 오후, 휴식을 마친 구조팀은 다른 이와 친구를 맺어 차 한 대를 임시로 빌린 뒤, 그 차를 타고 골든애플 구역으로 향했다. 펠프스라는 귀족 자제와 교류할 기회를 찾기 위해서였다.

“휴⋯⋯.”

성건우가 돌연 긴 한숨을 뱉었다.

용여홍은 바로 걱정과 동시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왜 그래?”

성건우가 침통한 얼굴로 답했다.

“디마르코 선생이 그리워서.”

“왜?”

더 영문 모를 얼굴이 된 용여홍을 보고, 장목화가 코웃음을 쳤다.

“하, 그 사람이 그리운 게 아니라 그 숙명통이 그리운 거겠지.”

성건우가 솔직하게 인정했다.

“숙명통은 정말 유용한 능력이었어요. 심지어 전 디마르코 선생이 사랑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니까요.”

‘뭐? 사랑스러워?’

용여홍이 성건우를 위아래로 빠르게 훑어내렸다.

하지만 장목화는 성건우의 말에 동조했다.

“확실히 숙명통이 있었다면 펠프스란 힘없는 귀족 자제를 만나겠다고 이렇게 기회를 노릴 필요도 없었겠지. 펠프스가 차에 오르기만 기다렸다가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빙의해 관련 기억을 직접 소환하면 되니까.”

소리소문없이 치러질 이 과정은 일반인이 쉬이 눈치도 챌 수 없었다.

성건우가 조금 더 깔끔하게 일 처리를 한다면, 환경을 좀 더 알맞게 조성한다면 펠프스는 그 일이 있어도 자신이 누군가에 씌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터였다. 최근 지나치게 즐긴 탓에 몸이 허약해져서 잠깐 현기증이 난 모양이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곧 구조팀의 차량이 비교적 구석진 거리에 진입했다.

그때, 한 사람이 무단 횡단을 하더니 길 중간에 멈춰서 움직이질 않았다.

레드리버인으로 보이는, 회색 가운을 입은 남자의 박박 민 대머리가 햇빛에 비쳐 반짝였다. 전체적으로 꽤 마른 편인데, 구체적인 나이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혈색은 좋은 편이었고 정신 상태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반쯤 감은 눈 사이론 녹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한 손은 가슴팍 앞에 대고, 다른 한 손엔 염주를 쥔 그가 마주한 구조팀을 향해 예를 갖췄다.

“나무아뇩나라삼먁삼보리. 시주님들, 저지른 죄가 많아도 뉘우치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법입니다.”

레드리버어를 쓰는 그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마치 궁전에 울리는 종소리처럼 구조팀 모두의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중 때문에 용여홍은 바짝 긴장했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엔 물음표가 출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느닷없이 보리를 믿는 중이 나타나? 미친 사람인가?’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보조석에 앉은 장목화의 옆얼굴이 사뭇 진지해보였다.

그때였다. 돌연 차창을 내린 성건우가 고개를 밖으로 쏙 내밀었다.

“왜 애쉬랜드어를 쓰지 않는 겁니까? 레드리버어로는 그 말의 운율을 제대로 살릴 수가 없다고요!”

‘와, 쟤 또 이상한 데 꽂혔네.’

용여홍은 친구의 대담함을 칭찬해야 할지,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눈치도 더럽게 없다며 욕을 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 비쩍 마른 회색 가운 차림의 중이 성건우의 말에 답을 했다. 말은 여전히 레드리버어를 사용했다.

“애쉬랜드어에는 서툴러서요. 하지만 부처를 공경하는 건 자신의 의식을 공경하는 것이고, 법리를 설명하는 건 본성의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니, 어떤 언어를 쓰는지는 그 본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성건우는 냅다 화제를 바꿨다.

“우리 앞을 가로막고 저지른 죄가 많아도 뉘우치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단 얘기를 하는 이유는 뭡니까?”

장목화는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일반적이지 않은 성건우의 사고라면, 중에게도 혼란을 일으켜 이 상황을 벗어날 틈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회색 가운 차림의 중은 재차 낮게 염불을 외웠다.

“빈승은 오늘 이 시간에 이 거리를 지나는 네 사람으로 이루어진 한 무리가 퍼스트 시티 안정에 영향을 미쳐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리라는 걸 예견했습니다. 자비로우신 우리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고난을 두고 보지 않으십니다. 빈승으로서는 여러분을 가로막고 한동안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구조팀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아직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상대는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은 것 같았다. 이는 예상치 못한 봉변이었다.

성건우는 다시 먼저 엄숙한 표정으로 외쳤다.

“고작 넷이서 어떻게 혼란을 일으켜 안정에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그런 건 저 귀족들, 원로들, 군대를 장악한 야심가들이나 가능하죠. 선사, 차라리 베울리스나 알렉산더, 가이우스 같은 자들을 찾아가 보는 게 어떻습니까? 그게 잠재 위험을 불식시키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겁니다.”

‘오, 토론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장목화가 속으로 감탄했다.

회색 가운 차림의 중은 몇 초간의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빈승은 그런 방면으로도 시도해 볼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시주님들을 지켜봐야겠습니다.”

그의 말투는 매우 온화했지만, 어쩐지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때 운전석에 앉은 백새벽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스님, 왜 저희가 퍼스트 시티에 혼란을 일으킬 거라 확신하십니까?”

물론 지금 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예언이 꼭 들어맞으리라곤 확신할 수 없었다. 시간이나 장소에도 착오가 있을 수 있었다.

성건우도 동조했다.

“맞아요. 생각해 보십시오. 예언을 잘못 해독하는 경우는 아주 흔합니다. 선사는 아마도 분명⋯⋯.”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중은 도중에 성건우의 말을 끊고 염불을 외웠다. 우렁찬 종소리 같은 음성이 다시 구조팀의 귓가에 퍼지며 성건우의 말을 성공적으로 압도했다.

뒤이어 그는 성건우에게 틈도 주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시주님, 능력을 이용해 빈승의 논리와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 하지 마십시오. 빈승은 타심통을 장악하고 있어 시주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뇌까렸다.

‘젠장! 타심통은 진짜 끔찍해! 여기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니까 무슨 공격을 하기도 전에 바로 저지할 거야. 그런 상대를 어떻게 공격해? 거기다 저 중이랑 거리는 10미터 이상이야. 그런데도 타심통으로 우리 생각을 저렇게 정확히 파악한다는 건, 상대의 급이 기계 승려 정법보다 훨씬 높다는 거야.’

중은 재차 입을 열었다.

“시주님, 시주님이 가진 스피커와 휴대용 녹음기는 꺼낼 생각도 마십시오. 시주님은 이미 빈승에게 그 안에 저장된 특정한 소리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성건우는 그의 만류를 듣기는 했으나 그 말에 완전히 따르지는 않았다. 휴대용 녹음기와 스피커를 전술 배낭에 그대로 두고, 버튼을 직접 눌러 음량을 높일 생각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내 침묵을 유지하던 장목화 역시 맹렬히 총을 뽑아 들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차 문을 받친 채 오른손을 밖으로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이 시도가 성공하길 바라진 않았다. 이를 통해 상대를 방해하고 능력 사용에 영향을 미쳐서 성건우가 오하명과 수종이의 녹음을 틀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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