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50화 (450/649)

450화. 앞뒤

배를 불린 구조팀은 무선 통신기를 꺼내 회사의 새로운 지시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에 여지없이 반고 바이오의 전보가 도착했다.

이번 전보의 내용은 평소보다 훨씬 길었다. 장목화는 단락을 기준으로 해독한 내용을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우리가 조를 나눈 걸 칭찬해주네. 그리고 북안 불모지에 남기로 한 팀은 정보 수집에 집중하고, 퍼스트 시티로 돌아온 팀은 가리발디를 도우래⋯⋯.”

용여홍은 단박에 가리발디를 떠올렸다.

‘뭐? 가리발디는 회사 정보원이잖아?’

미간을 찌푸린 백새벽이 물었다.

“잡힌 걸까요? 아니지, 붙잡혔다면 도움이 아니라 구하라고 했겠네요.”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을 마저 해독했다.

“회사로부터 통지를 받았을 때 가리발디는 계획을 실행할 여유도 없었대. 갖고 있던 원수의 열쇠를 이용해 그 집에 숨을 수밖에 없었다는 거야. 발각당할까 무서워서 매일 식량과 물도 조금씩만 훔쳐먹는데, 지금은 가진 게 거의 바닥나서 더 버티기도 힘든 상태라나 봐. 음, 그 원수의 이름은 K래.”

장목화의 이야기를 들은 성건우는 감명받은 듯 가리발디를 칭찬했다.

“굉장히 창의적인 녀석이네.”

대략적인 임무 내용을 듣고, 백새벽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회사는 퍼스트 시티에 완전한 정보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요. 동원할 수 있는 인력도 우리 팀만 있는 건 아닐 거고요. 그런데 왜 가리발디 일을 저희에게 맡기려는 걸까요?”

그들보다는 정보 계통 사람들이 가리발디에 대해서도, 상황에 대해서도 더 잘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우리가 그만큼 대단하니까!”

성건우가 가장 먼저 대꾸했다.

용여홍은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성건우는 분명 그냥 한 말이겠지만, 그 역시 정확히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내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실패해봤자 우리 팀 하나와 가리발디에만 손실이 미치지만, 다른 이들이 실패하면 온 정보 네트워크가 사라질지도 모르잖아.”

“⋯⋯.”

용여홍은 그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분명 일리가 있었다. 그래도 그건 너무 냉정하고 무정한 이유 아닌가?

그의 반응을 보고, 장목화가 가볍게 웃었다.

“알았어, 농담이야. 가리발디가 잡히면 퍼스트 시티에 펼쳐진 회사의 정보 네트워크는 심한 타격을 받아. 내가 부장이었다면 이미 가리발디와 만났던 사람들한텐 얼른 퍼스트 시티에서 철수하고, 다른 사람들한텐 가리발디와 연결을 끊으라고 했을 거야. 그래도 최악보단 차악의 결과를 바라면서.

회사가 우리한테 가리발디 구출을 맡긴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거야. 첫째, 지금 퍼스트 시티 정세가 긴장돼 있어서, 회사에선 여기 있는 정보원들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 폭로된 위험을 최대한 줄이는 걸 목표로 해서 이 긴장된 정세의 여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게 좋지.

그런데 우린 퍼스트 시티 내 질서의 손이 보기에 이미 도시 밖으로 나간 상태고, 그들 시선에서 벗어나 있으니 움직이기 훨씬 편해. 둘째론 우리 실력이 상당히 강하다는 거지.”

장목화도 결국 웃음이 터졌다. 두 번째 이유는 그냥 아까 전 성건우의 말을 따라 해본 모양이었다.

물론 반고 바이오에선 정말로 이런 면을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비중이 그리 크진 않을 것이었다. 가리발디를 구출하는 작업은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백새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장목화는 전보의 나머지 내용도 해독했다. 주로 K의 상황에 관한 내용인데, 상당히 간단했다.

“K의 본명은 콜론자, 수출입 상인으로 원로 몇몇과 여러 귀족과 연계된 데다 암흑가 조직들과도 연이 있대. 그중 레드셔츠 군대란 암흑가 조직은 수출입 사업에 연루돼 있어 K와 관계가 엄청 안 좋다네.”

대충 간추린 설명을 듣고, 용여홍이 말했다.

“듣고 보니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요.”

그리고 백새벽은 또 새로운 질문을 제기했다.

“가리발디는 왜 그 사람이랑 원수가 됐고, 또 어쩌다 그 사람이 보낸 사람한테 총을 맞게 된 걸까요?”

장목화가 고개를 저었다.

“전보에 그런 내용까지는 안 나와 있어.”

그때, 성건우가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제 생각엔 치정 때문일 것 같은데요.”

장목화도 막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려는데, 성건우가 다시 자문자답하듯 덧붙였다.

“K는 가리발디를 좋아하는데, 가리발디는 다른 사람한테 마음이 떠나버려서 K를 차버린 거예요.”

순간 할 말을 잃은 용여홍은 한참 후에야 빈정거리듯 물었다.

“그러니까, 가지지 못할 바에야 부숴버리고 말겠다고 생각한 거라고?”

“응, 그런 사람 엄청 많아. 너도 조심해.”

성건우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목화는 다시 분위기를 집중시키려 목을 가다듬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우리가 지금 할 일은 K에 관한 정보를 더 모으고, K가 사는 곳, 즉 가리발디가 숨어있는 그곳을 관찰하고 실행 가능성이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K가 사는 곳이 건우 친한 친구가 사는 곳이랑 상당히 가까워.”

성건우의 친한 친구란, 곧 테렌스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실제로 콜론자의 집은 테렌스 집에서 고작 세 블록 떨어져 있어, 골든애플 구역에 더 가까웠다.

장목화가 자조하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담이 작아지나 봐. 퍼스트 시티에 막 도착했을 땐 우린 대담하게도 테렌스 집을 직접 방문해 테렌스를 설득하자고 용기를 냈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겁도 안 났어.

근데 지금은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완벽한 방안이 세워지지도 않았으니, 일단은 가리발디에게 조금 더 굶고 있으라고 하는 게 좋겠어. 잠깐 굶는다고 금방 죽지는 않을 거잖아.”

백새벽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때랑은 상황이 다르죠. 당시 저희는 늑대 소굴 암흑가 조직원을 통해 테렌스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었어요. 게다가 행동 방안의 관건은 선수를 치는 거였고요. 테렌스가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도 아니고, 건우의 능력과 대가를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면 우리는 얼마든 친구가 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지금, 현상 수배가 내려진 구조팀으로서는 콜론자를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성건우의 능력을 이용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튼 이번에는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가야 해. 성급히 굴면 안 돼. 그래, K가 귀족 대부분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도 주의해야 해. 언제라도 뜻밖의 상황이 펼쳐질지 몰라.”

* * *

잠깐 쉬면서 정비를 마친 구조팀은 비 오는 밤을 틈타 차를 몰고 레드울프 구역으로 향했다. 오늘 밤 콜론자와 그가 사는 곳을 기본적으로 관찰하고, 안전 가옥도 몇 채 더 마련할 참이었다.

비도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줄기는 가로등 불에 스치며 까만 밤 몽환적인 빛 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위장한 구조팀은 직접 방문하거나, 친구를 통해 새로운 안전 가옥 세 곳을 마련했다. 그 후 구조팀은 콜론자의 집이 있는 마스가르 스트리트에 이르렀다.

저 멀리 54호 건물을 보던 장목화는 의자 등받이에 느릿하게 기댔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닌데 모든 창문에 커튼이 쳐졌네.”

정말 54호 건물 모든 창에 커튼이 쳐져 있었다. 딱 한 곳, 주방으로 보이는 곳에서만 불빛이 새어 나왔다.

“정상적이지는 않네요.”

백새벽이 말했다.

지금은 겨우 9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그린올리브 구역 중노동자들에게는 분명 휴식을 취해야 할 때겠지만, 레드울프 구역의 자산가들에겐 초저녁과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콜론자는 분명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이런 전제를 둔다면, 거리 쪽 거실 창문에 커튼을 쳐 안의 상황을 꽁꽁 감춘 건 분명 수상쩍은 일이었다.

“그림자놀이를 하는 걸 수도 있지.”

성건우는 커튼에 이따금 비치는 검은 그림자를 보며 감탄을 내비쳤다.

물론 그의 이야기에 대꾸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몇 초간 고민하던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조를 나눠서 정문과 뒷문을 감시하자.”

* * *

얼마 지나지 않아 장목화와 성건우는 두 블록 떨어진 한 아파트 건물 옥상에서 적합한 감시 장소를 찾았다.

백새벽과 용여홍 역시 차를 몰고 이동해 콜론자의 집으로부터 몇 블록 떨어진 어느 건물 옥상에 도착했다. 후문을 관찰하기 좋은 곳이었다.

감시 시간은 보통 매우 무료했다. 그러나 장목화와 성건우는 일찍이 이러한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유일하게 이들을 괴롭히는 건 도무지 그칠 기세가 없는 비였다. 거기다 건물 옥상 바람은 아래보다 거세서 몸이 다 홀딱 젖어버렸다.

1분 1초 흘러가는 와중, 장목화는 거리 쪽 콜론자의 집 정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몇 사람이 나오는 걸 목격했다.

그중 한 사람의 몸집은 크고 두꺼워 마치 벽 같아 보였다. 구조팀도 잘 아는 치안관 월이었다.

월을 문밖으로 배웅하는 여러 사람 중 한 명은 흰색 셔츠, 검은 조끼 차림에 말끔히 뒤로 빗어넘긴 머리엔 조금씩 흰머리가 섞여 있었다.

팔자주름은 다소 깊었고, 눈동자는 짙은 파란색, 그 위론 살짝 구겨진 미간이 있었다. 남자는 바로 구조팀의 이번 목표 K, 콜론자였다.

미소를 띤 콜론자는 몇몇 수하들과 월이 차에 오를 때까지 그를 배웅했다.

장목화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월은 역시 가리발디란 단서를 쫓고 있었어. 거기다 K까지 찾아냈고. 우리가 무턱대고 저 집 문을 두드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시선을 옮긴 그녀는 월이 탄 경찰차의 특징을 기억해 두었다. 차의 특징을 기억하면 상대의 대략적인 위치를 판단하고 사전에 조심할 수 있었다.

“솔직히 우린 일찍이 치안관 월과 친구가 됐어야 해요.”

성건우가 깊은 아쉬움을 표했다.

* * *

같은 시각, 백새벽과 용여홍이 자리한 곳.

백새벽과 용여홍은 다른 거리에서 꺾어 들어와 콜론자의 집 후문에 멈춰선 검은 세단 한 대를 발견했다.

숨겨진 후문은 빠르게 열렸다. 마치 누군가 그곳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안에서 걸어 나온 건 한 하인이었다. 짙은 색 커다란 우산을 든 그는 검은 세단 문을 열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곧장 우산 아래로 들어가더니 고개를 숙인 채 후문으로 빠르게 향했다.

어두운 밤인데다 시야를 흐리는 비에, 빛도 부족해서 백새벽도, 용여홍도 차에서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시야에서 거의 사라질 즈음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상대가 여성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용여홍, 백새벽은 망원경으로 콜론자의 집 후문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며 방문자의 생김새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부근의 가로등들이 다 고장 난 상태라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긴 불가능했다.

“겐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용여홍이 저도 모르게 한탄했다. 여러 기능을 겸비한 지능인에 비하면 탄소기반인에게는 별도의 장비가 많이 필요했다.

물론 용여홍은 장목화가 수시로 하던 말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군자는 타고나길 남다른 게 아니라, 사물을 잘 다룰 줄 아는 것이다!

용여홍의 푸념을 듣고, 백새벽도 깊이 동조했다.

“사방이 빛 한 점 없이 어두운 게 아니면, 겐에겐 분명 방법이 있⋯⋯.”

순간 말을 하던 백새벽이 콜론자의 집 후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또 차 한 대가 그 앞에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전에 발생한 일이 한 번 더 반복됐다. 콜론자의 집 하인이 큰 우산을 들고나와 손님을 맞았고, 근 30분간 20명에 가까운 손님들이 가로등이 고장 난 뒷문에 도착했다. 옷차림을 보면 그중엔 여자도, 남자도 다 섞여 있었다.

용여홍과 백새벽은 어떻게 된 것인지,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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