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48화 (448/649)

448화. 조 짜기

“그럼 이제는 뭘 해야 하지?”

한명호가 자발적으로 물었다.

장목화가 답했다.

“일단 두 조로 나뉘어 움직여야 해. 한 조는 북안에 남아 수시로 흔적을 남기면서 퍼스트 시티의 사람들에게 우리가 여전히 초봄 마을에 관심을 두고 있는 척, 우리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척하는 거야.”

마음 같아선 반란을 꾸미고 있는 척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뭔가 지나치게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것 같아 장목화는 중간에 표현을 바꿨다. 스스로를 진짜 빌런으로 여기는 건, 별로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

설명을 다 마친 장목화는 주위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 사이, 다른 한 조는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 행동할 기회를 엿봐야겠지? 음, 일단 정도연이 북안 불모지 상황을 제일 잘 아니까 여기 남는 게 좋겠어. 명호와 겐이 정도연을 거들고.

너희한테는 군용 외골격 장치 한 대를 나눠줄게. 그거라면 행동력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야.

잊지 마, 절대 위세 부리면 안 돼. 주요 임무는 바깥쪽을 돌아다니는 거야. 퍼스트 시티 사람에게 발각됐다 싶으면 곧바로 철수해야 해.”

“알겠어.”

“문제없다.”

정도연과 한명호가 각각 답했다.

이들도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북안 불모지에 남아있는 게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전면적인 충돌을 빚을 필요도,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캐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드넓은 오염 구역에 두세 사람이 숨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노이스 강도단이 오랜 시간 동안 퍼스트 시티 정규군의 강력한 소탕 작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역시 지리적인 요인 덕분이었다.

장목화가 한명호, 정도연 조에 게네바를 보낸 건 두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첫째로 게네바의 외형이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였다.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도 어차피 게네바는 외출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발각된 순간 곧장 검문을 받게 될 테니 수행할 역할에도 한계가 따랐다.

“그전에 퍼스트 시티로 돌아갈 차량을 위장할 재료를 찾아야 해.”

장목화의 말에, 북안 불모지 상황을 잘 아는 정도연이 나섰다.

“그런 재료를 구하기 적당한 폐허 도시를 알아.”

“제가 맡을게요!”

어김없이 잔뜩 신난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는 입꼬리를 살짝 뒤틀었다.

“네가 맡아도 되긴 한데, 지나치게 화려하면 안 돼. 최대한 평범한, 아무런 특색도 없는 차가 필요한 거야. 알았지?”

혹시나 캐릭터가 포함된 요란한 도안으로 차를 꾸미기라도 한다면…… 검문은커녕 세상 어느 눈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네.”

성건우는 금세 잔뜩 풀이 죽었다.

* * *

골든애플 구역, 보니 스트리트 22호.

월은 정원과 잔디밭, 수영장이 딸린 이 저택 서재로 들어왔다. 새로 승급한 원로이자, 군대의 실권자이자, 변혁파 대표인 장인어른이 있는 곳이었다.

검은 머리를 뒤로 말끔히 빗어넘긴 장군 가이우스는 매부리코에 뺨이 약간 홀쭉해 상당히 엄숙한 인상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제법 긴장하게 되는 사람이었지만, 연설할 땐 또 매우 열정적이고 선동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짙고 파란 눈동자로 월을 한번 훑던 가이우스가 책상 맞은편을 가리켰다.

“앉게.”

직속 상사나 다른 귀족을 마주한 자리에서도 언제나 여유로웠던 월은 일단 깍듯이 인사부터 한 뒤 굉장히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인가?”

가이우스가 물었다.

마흔 살이 넘은 장군의 얼굴엔 수많은 전쟁의 흔적이 역력했다.

월은 먼저 구조팀의 상황과 군대가 노스 앙헤포드 구역에서 진행 중인 비밀 임무를 대략 간추려 설명한 뒤 물었다.

“그들이 빌린 힘은 대체 누구의 것일까요?”

가이우스는 책상 가장자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13호 유적 안의 그 사람이지. 그자의 방송을 녹음해 쓸 생각을 할 사람이 있을 줄이야. 어쩌면 그 팀은 이미 그자의 꼭두각시가 됐을지도 몰라. 양측이 모종의 협의를 달성한 것일 수도 있고.”

귀족의 후예인 월도 불모지 13호 유적에 봉인된 그 위험한 존재를 어렴풋하게나마 알고는 있었다.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서시월 팀의 배후 세력이 그 악마를 풀어놓으려는 걸까요?”

침착하게 대꾸하던 가이우스가 냉소했다.

“그들이 얼마만큼 알고 있느냐를 봐야겠지. 유적 내 그 사람,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으니만큼 우리가 자기를 완전히 제거할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하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 대목에서 돌연 말을 멈춘 그가 월을 쳐다보았다.

“노스 앙헤포드 구역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이 처리를 담당할 테니 자네는 걱정할 것 없어.”

이내 찻잔을 받쳐 든 가이우스는 여유롭게 차의 향기를 즐겼다.

“알렉산더의 막내딸이 돌아왔네.”

퍼스트 시티 현임 감찰관인 알렉산더는 이 도시 3대 거두 중 하나였다.

흠칫 놀란 월이 되물었다.

“갈루란이요?”

* * *

밤, 북안 불모지.

변이로 기형이 된 나무로 둘러싸인 어느 버려진 마을엔 구조팀이 반고 바이오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반고 바이오의 회신이 도착했다.

이번 내용은 굉장히 짧았다. 장목화는 금세 해독한 내용을 종이에 써서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에게 보여주었다.

「그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할 것.」

그 일이란 퍼스트 시티가 불모지 노스 앙헤포드 구역에서 진행 중인 비밀 실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회사의 태도는 언제나처럼 안정적이고 침착하네.’

용여홍은 반고 바이오의 답이 자신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했다. 사실 굳이 예상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원거리 지휘만 가능한 상황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상사는 가능한 안정적인 방안을 택하며, 실제 일선에 나간 인원에게 최대한으로 자유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더 수집할 정보가 또 뭐가 있다고?”

성건우가 볼멘소리를 냈다.

초봄 마을과 관련해서 구조팀이 수집해야 할, 동시에 수집할 수 있는 정보는 이미 다 손에 넣은 상태였다.

장목화는 일단 그는 무시하고, 혼잣말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초봄 마을 주둔군 상황을 보고하자.”

그녀는 구조팀이 현재 파악한 정보를 회사에 여러 차례로 나눠 보고할 계획이었다. 한창 조사를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 우리가 두 조로 나뉘어 한 조는 불모지에 남아 비밀 실험을 관찰하고, 한 조는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 임무를 완수하려 한다는 것도 알려야지.”

장목화는 머릿속으로 전보문을 대강 작성했다. 조를 어떻게 나누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세세하고 꼼꼼한 정보였다.

곧이어 전보를 보내고 무선 통신기를 거두어 넣은 그녀가 한명호와 정도연 앞으로 걸어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 혈액 샘플을 좀 얻을 수 있을까?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면 사람을 시켜 좋은 의료 기구나 실험실을 찾아서 너희들 문제를 다시 검사하려고.”

“내 심장 상태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나빠지고 있고.”

한명호는 재검 따위 필요 없다는 듯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성건우가 끼어들었다.

“큰 흰둥이 말은 그게 아냐. 병이 심각한 건 맞는데, 너희한테 정확히 몇 달이 남았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거지. 미리 준비할 수 있게.”

‘애도할 준비?’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장목화도 눈을 한번 부라렸다.

“준비는 무슨! 그게 아니고, 어쩌면 검사하고 분석해보면 너희 수명을 늘려줄 더 좋은 약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없을지 모르겠지만 너희는 초봄 마을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겨울까지만 버텨도 큰 도움이 될 거 아냐.”

마지막 말에 마음이 흔들린 정도연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알겠어.”

동시에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런 방면에 정도연은 상당히 대범한 편이었다. 어차피 남은 시간은 몇 달뿐이니 두려울 게 없다는 마음이었다.

이를 보고 한명호도 경계심을 접고 팔을 걷었다.

“아니야, 아니야. 진정해. 피는 내일 뽑을 거거든.”

장목화는 미소를 지으며 게네바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겐은 두 사람 사진 좀 몇 장 찍어줘.”

게네바는 꽤 많은 검사 모듈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는 인체를 검사할 수 있게 개조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았다.

* * *

다음 날, 채혈과 사진 전송 등의 작업을 마친 장목화는 한명호와 정도연에게 당부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무선 통신기를 한 대 마련해야 해. 겐도 있지만, 불모지에선 충전이 쉽지 않으니 최대한 배터리를 아껴야 하거든.”

게네바를 위해, 장목화는 구조팀의 태양열 충전기마저 넘긴 상태였다.

지프에 아직 전량이 남아있고, 거기에 예비용 고성능 배터리도 두 개나 있으니 퍼스트 시티까지는 충분히 돌아가고도 남았다. 이제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면 배터리도 충전하고, 새로운 태양열 충전기를 살 수도 있을 터였다.

“그래.”

한명호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작별을 고한 장목화, 성건우, 백새벽, 용여홍은 바로 구조팀 지프에 올랐다.

장목화의 매서운 감시 덕에, 성건우도 예술 감각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발휘해서 지프는 무난한 사파이어색이 돼 있었다.

“괜찮네. 현대적이야.”

장목화도 새로 변한 차에 호의적인 평을 내렸다.

* * *

한명호는 레드리버 쪽으로 향하는 구조팀의 지프를 눈으로 조용히 배웅하다가 정도연의 의견을 구했다.

“이제 어디로 가지?”

그 역시 퍼스트 시티 주위에서 모험해본 적은 있지만, 북안 불모지에 대한 이해도만 놓고 보면 이곳에서 나고 자란 정도연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뭇 산 쪽으로 가자. 거긴 거래할 수 있는 거점이 많아. 퍼스트 시티에 대한 경계심도 상당하고.”

정도연은 일찍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듯했다.

한명호는 미간을 문지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뒤이어 그가 게네바에게 물었다.

“너한테는 따로 필요한 거 없어?”

이는 레드스톤 마켓 치안관이자 마을 경비대장으로 살았을 때 생긴 습관이었다. 그는 언제나 누구도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지 않게 모두에게 두루두루 신경을 쓰려 노력했었다.

게네바는 금속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답했다.

“아직은 없다. 그렇지만⋯⋯. 지금 북안 불모지의 대략적인 지도를 만드는 중이라, 네 의견이 필요하다.”

그가 정도연을 보며 붉은 눈을 몇 번 번득였다.

지능인이 이렇게까지 강한 자주성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던 까닭에 정도연과 한명호는 표정을 숨길 새도 없이 흠칫 놀라고 말았다.

* * *

떠나올 때와 달리 퍼스트 시티로 돌아갈 땐 아무 문제도 없었다.

다리 검문소도 도시를 빠져나가는 이들만 집중할 뿐, 들어오는 차와 사람에 대해서는 일상적인 수준의 검사만 진행했다.

언제나처럼 뇌물을 주고 검문자를 매수할 수도 있었다.

병사들은 열린 차창 너머로 오레이 한 다발을 받자마자 구조팀은 물론 트렁크에 실린 무기도 살피지 않고 그들을 곧장 들여보내 주었다.

익숙한 길을 따라 다리를 통과해 시내에 진입했을 때, 용여홍도 이제는 전과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굉장히 덤덤했다. 애쉬랜드 최대 도시에 입성했다는 사실에 대한 흥분한 기색 같은 건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백새벽은 핸들을 돌려 그린올리브 구역으로 차를 몰았다.

구조팀이 향하는 곳은 한명호가 전에 얻어둔 또 다른 방이었다. 한명호는 정도연과 그 안전 가옥에 단 몇 분만 머물러서 질서의 손에 들통났을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 차창을 보던 용여홍이 돌연 한숨을 내쉬었다.

“늑대소굴이다⋯⋯.”

지금 지프는 전에 애쉬랜드 여자들을 구한 그곳을 지나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