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45화 (445/649)

445화. 타진

친구에게 주둔군 순찰 루트와 드론 감시 패턴, 초봄 마을 주위 지형을 안내받은 아스의 강도단은 엄폐물이 많은 길을 따라 대포와 장갑차를 몰고서 목표 지점 부근에 은밀히 도착했다.

지금 밤하늘 높이 뜬 달빛은 초록과 검은빛이 함께 춤추던 대지를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초봄 마을은 한 구릉에서 흐르는 개울 근처에 자리해 있었다. 구세계 대형 농장을 개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 울타리는 이미 가늘고 긴 돌로 바뀌어 있었고, 내부 건물도 상대적으로 조악하긴 해도 수가 꽤 많은 편이었다.

퍼스트 시티 주둔군은 크게 네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한 무리는 마을 안, 한 무리는 정문을 지켰고, 한 무리는 뒤쪽 출구에, 또 한 무리는 마을에서 수백 m 떨어진 곳에 나와 있었다.

한꺼번에 몰살되는 일을 막고자 분산된 것 같았다.

망원경으로 마을 입구를 막은 황토색 장갑차와 같은 색의 탱크를 확인한 아스는 웃으며 몇몇 심복을 돌아보았다.

“역시 친구가 준 정보가 맞네. 장비는 제대로 갖춰져 있는데 사기는 없어. 다들 집에 대한 그리움에 나태해졌어. 이번 일만 잘 해결하면 우린 불모지 모든 강도단 중 최고 수준의 화력을 갖추게 돼. 때가 되면 특수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도 모집할 수 있겠지.”

아스의 심복 중 하나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두목, 근데 퍼스트 시티를 건드리면 복수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 역시 이것이 흔치 않은 기회란 건 알았지만, 그 배후에 잠재된 엄청난 위험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스의 자신감은 꺼지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우리를 소탕하려고 군을 조직한 사람들이야. 그렇지만 불모지는 이렇게 넓고, 유적은 곳곳에 널렸지. 조심만 하면, 몸만 잘 숨기면 아무 걱정할 필요 없어.

설마 퍼스트 시티가 불모지에서 우리를 찾겠답시고 군대를 통째로 보낼까?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대도 북쪽으로 가서 화이트 기사단 세력 범위에서 잠시 머무르면 돼.”

아스의 심복들도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는 대신, 두목의 분부에 따라 부하들의 조를 나누고 상응하는 임무를 맡겼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아스는 망원경으로 초봄 마을을 순찰하는 병사들 몇 쌍을 다시금 확인한 뒤, 높이 쳐든 오른손을 아래쪽으로 홱 휘둘렀다.

“대포조, 출격!”

여기까지 끌려온 대포들이 미리 설치된 진지에 진입했다.

두 조로 나뉜 대포 중, 한 조는 마을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주둔군 캠프를, 다른 한 조는 초봄 마을 정문의 적을 맡았다.

콰릉! 콰릉!

달빛만 존재하는 어두운 밤, 화염과 포성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발사된 포탄들은 두 목표 구역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로 인한 연기가 치솟고 거친 충격이 퍼져나가는 사이, 분분히 일어난 폭발에 대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초봄 마을 주둔군을 향해 미처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습격한 아스는 과감하게 두 번째 명령을 내렸다.

“장갑차가 앞에 있다. 형제들, 진격!”

앞으로 진격한 독수리 강도단 장갑차는 대전차포의 엄호 아래 초봄 마을 입구로 돌진했다. 동시에 나머지 인원은 차로, 혹은 뛰며 뒤따랐다.

요란한 포성과 총성 속, 확실히 나태해져 있던 퍼스트 시티 주둔군은 혼란에 빠진 나머지 한동안 유효한 반격에 나서지도 못했다.

마을을 눈앞에 둔 이때, 아스는 친구가 제공한 정보를 더욱 깊이 신뢰했다. 주둔군이 약하다는 것에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았다.

그러다 포성이 살짝 잠잠해진 그때, 초봄 마을 안에서 갑자기 음악이 울려 퍼졌다. 바로 일어나 몸을 흔들고 싶어질 정도로 강력한 리듬감을 자랑하는 열정적인 노래였다.

환각이 아니었다. 장갑차 안에 앉은 독수리 강도단의 두목 아스는 못 참겠다는 듯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화들짝 놀란 아스는 무의식적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언제 일어난 건지 장갑차 운전수가 양팔을 높이 쳐들고 미친 듯 흔들고 있었다. 차는 애초에 다 잊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 가! 가! 좋아! 잘한다!

열정적인 음악 속, 독수리 강도단 구성원들은 총을 쳐들거나, 제자리에 서거나, 끊임없이 엉덩이를 튕기거나, 양팔을 휘두르며 리듬에 몸을 맡겼다.

순간 포성은 잠잠해졌고 총성도 멎어버렸다. 초봄 마을 밖의 검은 전장은 광란의 광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 사이 노랫소리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초봄 마을 주둔군은 이 기회를 틈타 대열을 갖추고 반격에 나섰다.

다- 다- 다-!

중기관총의 난사에, 강도들은 낫에 베인 수확 철의 밀처럼 쓰러져갔다.

콰릉! 콰릉!

황토색 탱크 두 대는 포탄을 발사하며 땅을 짓누르고 지나갔다.

붉은 피와 끔찍한 고통에 정신을 차린 여러 강도는 이제야 현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자신이 감히 퍼스트 시티 군에 정면으로 맞서려 했다니!

아스도 마찬가지였다. 꼭 귀신에 씌었다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강도단 주제에 대체 뭘 믿고 퍼스트 시티 군에 맞서려 한 거지? 게다가 상대는 패잔병도 아닌 장비를 완전하게 갖춘 정규군인데!’

맹렬한 화력에 압도당한 강도단은 급히 도망치려 했으나 신나는 노래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엉덩이를 실룩대고, 자꾸 리듬을 타는 팔로 겨우 반격에 나섰다. 음악에 미친 사람들에게 정확성이라는 게 있을 리는 없었다.

* * *

“독수리 강도단은 끝났네.”

구릉 꼭대기, 망원경을 쥔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독수리 강도단이 결국 비참하게 패할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빨리, 이렇게나 허무하게 스러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구조팀의 목적은 달성됐다. 독수리 강도단의 진격으로 초봄 마을 내 심령의 복도 급 강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 강자가 전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했다.

물론 장목화는 딱히 놀라진 않았다. 오하명의 음성으로 독수리 강도단의 신뢰를 산 이후,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일반 사람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존재인지 똑똑히 깨달았었다.

그중에서도 복도 깊은 곳까지 탐색한 이들의 위력은 더 어마어마했다. 디마르코나 타르난의 고등 무심자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안타깝네요.”

성건우는 장목화의 말에 동조하면서 박자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에게 실망한 기색 같은 건 없었다. 되레 기대감만 어려 있을 뿐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초봄 마을에서 울려 퍼진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데도, 성건우는 기어이 독수리 강도단이 추는 춤동작에 박자를 맞췄다.

“일단 철수하자. 발각되면 안 되니까.”

장목화가 망원경을 거두며 말했다.

성건우 말고는 이 제안에 이의를 표하는 이는 없었다.

독수리 강도단이 겪은 저 상황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주둔군 내 강자는 확실히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다만 철수 직전, 구조팀은 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장목화는 백새벽, 한명호, 게네바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렌지 소총을 설치한 백새벽은 아까부터 스코프에 눈을 가져다 댄 채 총구로 특정인을 쫓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총구에서 튀어 나간 총알은 초봄 마을을 관통해 독수리 강도단 장갑차 근처로 날아가더니 아스의 머리를 꿰뚫었다.

가까스로 춤의 충동을 억누른 채 통제력을 잃은 장갑차를 탈출했지만, 결국 독수리 강도단 두목 아스는 총성 속 붉은 불꽃놀이처럼 터져버렸다.

거의 동시에 한명호와 게네바 역시 원거리 사격을 마쳤다.

탕! 탕!

딱 두 발의 총성과 함께 아스의 두 심복도 줄줄이 쓰러졌다.

이들은 장목화, 성건우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대화한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그때를 또렷이 기억하고 두 사람의 외모까지도 묘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강도들은 거리도 멀고, 비 오는 밤에 고작 횃불과 손전등 빛에 의지하고 있었던 지라 성건우와 장목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목격자들을 처리한 구조팀과 한명호는 정도연의 안내를 따라 으슥한 길로 구릉을 내려온 뒤, 차에 올라 먼 곳에 자리한 한 폐허 마을로 향했다.

뒤에서 울리는 총성도 한동안 그치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 * *

폐허 마을, 구 경찰서.

건물 대부분이 무너진 이 폐허 마을에, 장목화는 경찰서였던 이곳을 한번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건 두 가지야. 첫째, 초봄 마을 퍼스트 시티 주둔군 중에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있다. 둘째, 그자가 가진 능력 중 하나는 수많은 사람을 음악에 맞춰 춤추게 할 수 있다.”

“음악 자체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요?”

용여홍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오하명과 수종의 녹음을 경험한 적이 있으니, 이런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의심도 들었다.

성건우가 웃었다.

“퍼스트 시티 병사들은 군무에 참여 안 했잖아.”

‘하긴.’

용여홍도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구조팀도 오하명의 녹음을 이용할 때마다 미리 귀를 막는 게 첫 단계였다.

그러나 조금 전 기습을 받은 퍼스트 시티 병사들은 처음엔 굉장히 허둥댔고, 반격조차 제대로 못 했으니 귀를 틀어막을 여유가 있었을 리는 없었다.

“어느 영역이지?”

망설이던 한명호가 물었다. 지난 시간 그와 정도연은 구조팀에게 각성자에 관한 상식을 적잖게 배운 상태였다.

성건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작열하는 문!”

답하자마자 그가 뜨거운 불에 덴 듯한 춤사위를 펼쳤다.

놀라서 입을 쩍 벌린 한명호와 정도연을 제외하곤 구조팀은 굉장히 덤덤했다. 이젠 성건우의 그 어떤 행동에도 익숙해질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

심지어 장목화는 성건우를 아예 무시한 채 말했다.

“현재 우리가 아는 것 중에 춤과 관련된 영역은 확실히 작열하는 문밖에 없어. 보아하니 그건 대가일 수도, 능력일 수도 있을 것 같네. 음, 그런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를 마주한 상황에서는 약점을 찾아내 그 부분을 노리는 게 가장 좋고 유일한 방법이야.”

만약 그런 강자 한 명만 마주한 상황이라면, 구조팀도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충분한 화력으로 제압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교대로 나서 상대에게 쉴 틈도 주지 않다가 그가 지쳐 더 이상 능력을 지속할 수 없을 때 총공격을 퍼부으면 되었다.

물론 이건 매우 이상적인 방안이었다. 이성을 잃지 않은 데다 상태도 온전한 각성자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힘을 소진할 리는 없었다. 게다가 기회를 노려 거리를 벌리면서 영향을 발휘하거나 주위 환경을 이용해 곧장 철수할 수도 있었다.

장목화는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지금 상황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는 현재 정규군 2중대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 화력은 겉으로만 봐도 구조팀에 뒤지지 않았고, 외려 더 능가하는 부분도 있었다.

즉, 구조팀은 상대에 비해 어떠한 점에서도 우세하다 할 수 없었다.

용여홍은 회사에서 제공한 자료를 떠올리며 느릿하게 말했다.

“작열하는 문 관련 영역 각성자가 흔히 치르는 대가는 음악을 들었을 때 저도 모르게 춤을 추게 되는 증상이에요. 근육의 무력화, 추위에 대한 두려움, 겨울철 기면증과 감정의 불안정 등을 겪기도 하고요.”

장목화가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첫 번째 가능성은 배제할 수 있어. 우리가 여태까지 접한 각성자 중에 대가와 능력이 같았던 자는 없으니까. 지금은 여름이니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대가가 추위와 관련됐는지 확인하긴 어렵고⋯⋯.”

순간 용여홍은 유난히 추위를 잘 타던 그레이가 떠올랐다. 원래는 그레이가 작열하는 문 영역 각성자일 거라 추측했지만, 후에 게네바의 말을 들으니 용광로 교파나 광란의 춤의 일원일 수 있겠다는 짐작도 들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여름이라도 어느 정도 추위를 잘 타는 모습을 보일 거예요. 만약 대가가 정말로 그거라면요.”

용여홍의 말에, 장목화도 그레이를 떠올린 듯했다.

“그렇지. 근데 문제는 우리가 그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거잖아. 정말로 그 사람이 추위를 잘 타는지 어쩌는지 확인할 수가 없어.”

“설령 정말로 추위를 잘 탄다 한들 그걸 노릴 방법도 없고요.”

백새벽이 정확하게 지적했다. 지금은 무더운 여름이었다. 물론 구조팀이야 겨울까지 기다릴 수 있겠지만, 한명호와 정도연에겐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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