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40화 (440/649)

440화. 고양이에게 길을 묻다

순간 멍한 표정을 드러낸 장목화는 무의식적으로 어색하지만 무례하지는 않은 웃음을 짜냈다. 그제야 자신에게는 고양잇과 생물과 대화할 능력이 없음을 깨달은 탓이었다. 여태껏 수면 고양이가 보인 모습 때문에 미처 그 문제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목격한 성건우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참았다. 그러다 그는 역시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백새벽을 발견했다.

그 순간, 다시 게임에 열중하려던 성건우의 눈이 반짝였다. 수종이에게 잠시 게임을 잠시 멈추고 수면 고양이의 말을 통역해달라고 부탁하면 어떨까? 물론 그 통역이 정확한지는 다른 문제였다.

그때, 수종이 중얼거렸다.

“방금 막 북안 뭇 산에서 돌아왔대. 오는 길에 퍼스트 시티 공무원을 마주친 적은 없었고.”

‘……정말로 통역을 할 수 있었어? 근데 야옹이라는 그 짧은 말에 정말 그렇게 긴 뜻이 담겨 있었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는 재차 급히 수면 고양이를 돌아보았다.

“그 길, 차로도 갈 수 있어?”

야옹-!

이번에 수면 고양이가 내놓은 대답엔 살짝 짜증이 묻어나왔다.

수종이도 역시 게임을 하며 그 말을 통역해주었다.

“갈 수 있대.”

장목화는 기쁨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물었다.

“그 길, 우리한테 안내해줄 수 있어?”

야옹!

수면 고양이의 답은 전보다 훨씬 짧았다.

“저녁 6시부터 새벽 6시까지, 원하는 시간을 고르래.”

수종은 계속 컴퓨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통역해주었다.

이 이야기에 겨우 정신을 차린 구조팀원들은 그제야 조금 전 팀장 장목화가 품었던 의혹을 느꼈다. 용여홍도, 백새벽도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야옹에 그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 있나? 이게 바로 고양이어란 건가? 그나저나 수면 고양이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모양이네. 수종이 도움을 받지 않고도 바로 답한 걸 보면.’

같은 시각, 수종이가 평범한 아이가 아님을 알아차린 정도연과 한명호는 비로소 구조팀이 위험에 처한 이 상황에도 이곳까지 와 청소하고, 밥을 차려주는 정성을 보인 이유를 깨달았다.

“그럼 저녁 7시로 하자.”

장목화는 잠깐의 고민 끝에 답했다.

그보다 더 늦으면 거리의 행인도, 통행하는 차량도 적어져 시선을 끌기 쉬웠다. 그러나 더 이른 시각은 사방이 지나치게 밝아 위험했다.

아직은 태양이 마음껏 하늘을 뛰놀다 가는 여름날이었다.

수면 고양이는 이제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하품만 했다.

“알겠대. 그때 따라오래.”

하품 역시 대답이었고, 수종이도 통역을 충실하게 마무리했다.

약속을 마친 장목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명호와 정도연을 한번 훑어보더니 웃으며 입을 뗐다.

“너희도 놀고만 있으면 안 되지. 가서 침실 정리 좀 해줘.”

장목화는 둘은 몸이 좋지 않으니 옆에서 쉬란 말 대신, 제일 쉬운 일을 맡겼다. 한명호와 정도연 역시도 군말 없이 그 지시에 따랐다.

* * *

하늘이 어둑해졌을 무렵에도 가상 세계의 주인 나시스는 여전히 안타나 스트리트 서북쪽에 위치한 주차장 옆 건물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작 자세만 서 있던 것에서 앉은 자세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시스의 옆방엔 또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원각자의 예언이 틀릴 수도 있는 건가?”

미남의 신사, 콘스탄츠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시어도어는 멍하니 전방을 응시한 채 대꾸했다.

“예언은 늘 예언자가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실현되는 법이지. 그러니 지나치게 중시할 필요는 없어. 게다가 그 승려들 예언은 보통 모호한 암시로만 이뤄져 있잖아. 종종 그 예언을 잘못 해석할 때도 있지.”

예언에만 의지해 구조팀을 잡는 데 성공한다면 시어도어가 전에 저지른 작은 실수도 분명 다 발각될 것이었다. 그러나 시어도어는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뱉으며 오직 자신의 판단에만 기댔다.

콘스탄츠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자정까지 여기서 기다리게 생겼는데. 전의 감시카메라 영상을 전부 가져와 돌려 보자고. 어쩌면 예언이 실제로 가리키는 부분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잖아. 어차피 지금 당장 따로 할 일도 없는데.”

질서의 손은 예언을 따라 주차장을 인수해 관리하기 시작했고, 물자를 동원해 망가진 감시카메라를 전부 교체하기까지 했다.

“좋아.”

시어도어가 눈을 비비며 답했다. 그의 움직일 수 없는 눈은 늘 쉬이 피로해지곤 했다.

바로 그때, 벽 같은 치안관 월이 방으로 들어왔다.

콘스탄츠는 바로 그에게 물었다.

“어때, 무슨 수확이라도 있었나?”

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서시월과 장우병이 거리에서 구했던 그 사람한테 정말로 문제가 있었어. 여러 피드백으로 볼 때 특정 세력의 정보원으로 의심돼.”

순간 정신을 번뜩 차린 시어도어가 물었다.

“잡았어?”

월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나타났는데, 그 후론 아무도 못 봤대.”

콘스탄츠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경고를 받은 모양이지.”

월이 말했다.

“근데 그 사람과 관계가 깊은, 아주 복잡하게 얽혀있는 한 사람을 찾았어. K라고 불리는데, 원로 몇 명과 여러 귀족이랑 연이 있는 모양이야.

표면상으로는 화이트 기사단, 연합 공업, 구세군과 모두 거래하는 수출입 상인이야.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직 못 알아냈고.

서시월과 장우병이 구한 사람 이름은 주세페고, 일찍이 K의 조수로 일하면서 두터운 신임을 얻었어. 근데 나중에 K의 정부와 바람이 나서 그 사람 경쟁 상대인 레드셔츠 군대에 뛰어들었다나 봐.”

“K가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

콘스탄츠가 웃으며 물었다. 이 미남 신사는 평소 귀부인 무리를 맴돌며, 그들과 종종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어, 월도 웃었다.

“서시월과 장우병이 그 사람을 왜 구했겠어? 음, 어쨌든 최대한 빨리 그를 찾아내야겠어.”

콘스탄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 소속 세력이 밝혀지면 전체적인 사건도 또렷해질 거야.”

그러다 콘스탄츠는 여전히 주차장을 관찰 중인 시어도어를 발견하고,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일단 뭘 좀 먹고 감시카메라 영상을 확인하면서 차량 내력을 조사하러 간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자고. 수확이 있었으면 좋겠군.”

* * *

저녁 7시, 구조팀은 무기 등의 물자를 전부 차에 실었다.

구조팀은 태연히 행동하며 한명호, 정도연을 따로 두지 않고 짙은 검은색 SUV에 함께 태웠다. 게네바만 그 차로 보냈을 뿐이었다. 게네바까지 타면 각종 물건을 가득 실은 지프는 앞으로 채 나가지도 못할 것이었다.

수면 고양이는 때로는 길거리 그림자 속에서 가볍게 뛰고, 때로는 건물 꼭대기를 거닐며 길을 안내했다.

오늘 운전대는 장목화가 잡았다. 백새벽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은 건 앞으로의 여정에서 수면 고양이는 인간을 피하려 잘 보이지 않는 곳만 골라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생물 전기 신호와 변이 생물의 의식을 통해서만 수면 고양이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즉, 지금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자는 장목화와 성건우뿐이었다.

두 차량은 이제 골든그레인 구역을 빠져나와 동북쪽으로 나아갔다.

장목화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질서의 손 임시 검문소가 어느 정도로 촘촘하게 설치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안타나 스트리트와 공장 구역이 있는 쪽으로 간다면 들킬 위험이 전보다 배로는 커졌으리란 짐작만 했을 뿐이었다.

* * *

그렇게 레드울프 구역을 가로질러 그린올리브 구역에 진입한 이들은 가로등 불빛 아래 익숙한 장소를 발견했다.

서쪽 항구!

퍼스트 시티의 서쪽 항구였다.

강가에는 배 여러 척이 정박해 있었고 창고들과 쌓인 컨테이너들은 어둠에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주위에선 항구 경비대가 수시로 순찰 중이었다.

휙-

이내 길가의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수면 고양이는 아주 우아한 걸음으로 고개를 도도히 든 채 1번 부두로 향했다.

순간 용여홍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떴다.

‘수면 고양이가 말한 길은 저기에 있는 건가?’

녹회색 지프와 짙은 검은색 SUV는 수면 고양이를 따라 컨테이너가 쌓인 곳에 이르렀다. 하지만 구조팀은 감히 앞으로 나아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차 부피가 이렇게 큰데, 이곳에서 1번 부두로 향하는 길에 숨을 엄폐물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항구의 가로등도 멀쩡해서 밤인데 그렇게 어둡지도 않았다.

1번 부두의 사람은 틀림없이 차의 접근을 쉽사리 눈치챌 터였다. 물론 그곳에 누가 있을 경우를 전제로 하긴 했다.

수면 고양이는 구조팀을 한번 돌아보더니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 쌓인 컨테이너 사이를 지나쳐 각종 그림자 속에서 1번 부두 쪽으로 향했다.

“한번 관찰해보자.”

장목화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 팀원들에게 말했다.

동시에 손을 뒤로 돌려 전술 배낭에서 망원경을 하나 꺼낸 그녀는 차에서 내려 좋은 자리를 잡은 뒤 1번 부두 쪽을 살폈다.

용여홍과 한명호 역시 그랬다.

다만 유일한 지능인 게네바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겐 망원경을 사용하지 않고도 멀찍이 떨어진 곳을 확인하는 기능이 있었다.

1번 부두 가로등은 주변과 똑같이 환했다. 하역장에는 수많은 나무 상자가 쌓여있었고 주위엔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였다.

부두 밖에 흐르는 레드리버의 수면은 광활하고도 새카맸다.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이 검은 밤이 모든 배를 다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배 한 척이 매우 조용히 1번 부두로 다가왔다. 조금씩 물을 가르는 소리와 엔진 소리만 어렴풋이 들릴 뿐이었다.

유도등의 안내에 따라 1번 부두에 정박한 배는 복부에 난 문을 열었다.

문밖으로 뻗어 나온 나무다리는 차 한 대가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했다. 부두에서 기다리던 사람들, 혹은 소형 트럭은 곧장 그 안으로 들어가 짐을 옮기거나 지게차, 크레인 등의 도구를 이용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작업은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이루어졌다. 왁자한 소음도, 대화 소리도 없었다.

망원경으로 그쪽 상황을 살피던 장목화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밀수네.”

배로 실어 온 물건을 다 내린 뒤, 사람들은 이번에 원래 부두에 쌓여있던 나무상자를 배에 실었다.

그 사이, 수면 고양이는 옆쪽에서 접근했다. 그리 크지 않은 체형과 민첩한 동작, 조용한 발소리 덕에 아무도 몰래 손쉽게 정박한 배 옆에 이르렀다.

그때였다. 배 문을 지키던 사람의 눈이 감기는가 싶더니 고개도 아래쪽으로 떨궈졌다. 꾸벅꾸벅하는 것이 그대로 꿈나라로 떠나버린 것 같았다.

이 기회를 틈타 몸을 날린 수면 고양이는 배의 복부에 난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뒤 쌓여있는 나무상자 뒤에 숨어들었다.

졸던 사람은 묵직해진 고개가 아래로 완전히 꺾였을 때야 번쩍 깨어나더니 놀란 듯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이를 목격한 용여홍은 상황을 대충 파악했다.

‘이게 바로 수면 고양이가 퍼스트 시티 공무원에게 들키지 않고 마음대로 들락날락한 방법이구나. 밀수선을 이용한 거야. 저 배는 레드리버를 순찰하는 퍼스트 시티의 군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텐데.’

이어, 한명호가 망원경을 내려놓고 장목화를 진지하게 돌아보았다.

“어떻게 차를 타고 배 안으로 들어가지?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상황에서 충돌이라도 발생한다면 규모가 작아도, 1분 안에 상황을 해결한다 해도 분명 다른 사람들 시선을 끌게 될 거야.”

한명호도 구조팀에겐 저런 밀수꾼들을 평정할 충분한 능력이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평정이 아니라 소리소문없이, 어떠한 기척도 일으키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었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상대편 사람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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