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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433화 (433/649)

433화. 분초를 다투다

운전대를 잡은 성건우는 답을 다 마친 뒤 끝으로 덧붙였다.

“전 작은 빨강이가 아니에요.”

장목화도 바로 알아들었다.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묻거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는 용여홍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야구 모자를 집어 든 성건우가 그대로 머리에 쓰고 챙을 아래로 푹 눌렀다.

장목화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너 이거⋯⋯.”

성건우는 진지하게 말을 받았다.

“가짜 신부에게서 배운 위장술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진짜 빌런 같잖아.”

장목화는 다시 전방을 보며 점점 가까워지는 안타나 스트리트를 응시했다. 이곳은 퍼스트 시티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혼란스러운 암시장이었다.

* * *

가게가 어지럽게 늘어서 있고, 어둑한 안타나 스트리트를 오가는 이들은 전부 다 눈에 경계심이 그득했다.

이때,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안경을 낀 남자가 간판 없는 레지의 총포사로 들어갔다. 한명호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위장한 정도연은 그 뒤를 바짝 따르며 능숙하게 주위 상황을 관찰했다.

한명호가 레지 앞의 카운터를 두드리며 물었다.

“제가 부탁한 그 무기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수염이 하얀 레지는 고개를 들어 한참을 보고서야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였군. 위장이 아주 훌륭한데. 내력도 심상치 않아 보이고. 전에 누군가가 자네를 찾았어. 내가 아는 사람이었지.”

한명호가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무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왜 무기를 사려 하는지 묻지 않는 걸 철칙으로 하던데요.”

레지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물을 수야 있지. 자네가 무기를 꺼내 이 자리에서 강도 짓을 한다면 그때는 좀 골치가 아파지겠지만 말이야. 하하, 자네가 이야기했던 그 물건은 이미 준비됐어. 돈은 충분히 가져왔길 바라.”

한명호는 어깨에 멘 작은 가방을 두드렸다.

“여기 있습니다.”

그의 말이 막 떨어졌을 무렵, 총포사 밖에서 몇 사람이 들어왔다.

맨 앞에 선 사람은 셔츠에 조끼를 받쳐입고 있었다. 평범한 체격에 평범한 생김새, 머리카락은 검고, 갈색 눈은 나무 조각처럼 조금 뻣뻣하게 움직였다.

질서의 손의 유능한 간부, 골든애플 구역 질서관 조수 시어도어였다.

이내 그 곁에 있던 한 남자가 레지에게 복원한 사진을 내밀었다.

“이 사람 본 적 있나?”

사진 속 인물은 눈썹이 덥수룩하고 얼굴에 가로 세로로 한 갈래씩 흉터가 나 있어 거칠고 흉악해 보였다.

바로 한명호의 초상이었다.

레지가 사진을 확인했을 때, 모자를 쓰고 안경을 낀 한명호 역시 사진 속 인물이 자신임을 알아차렸다.

그의 몸은 긴장감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굳어갔고, 가게 안쪽을 향한 오른손은 조용히 허리춤으로 향했다.

허리춤에는 권총 한 자루가 숨겨져 있었다. 한명호는 레지가 자신을 가리키는 순간 곧장 추격자들을 향해 총을 쏜 뒤 달아날 작정이었다.

서로 어떤 감정도 없는 레지가 자신을 숨겨줄 것이라는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질서의 손에 자신을 팔아넘기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반응이었다.

레지가 입을 다문다는 건, 그냥 한명호가 현장에 있기 때문일 터였다. 만약 한명호가 자포자기한 채 너 죽고 나 죽자는 마음을 먹는다면 레지도 꽤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사실 정말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한들, 한명호는 그를 원망할 생각이 없었다. 레지는 그냥 보통 사람이면 할 만한 선택을 한 것일 뿐이었다.

한명호는 그저 추격자들을 공격한 뒤 달아날 길이 있기만을 바랐다.

레지의 시선은 사진에 고정돼 있었다. 어디서 봤는지 고민 중인듯했다.

바로 그때였다. 정도연이 쿵쿵 뛰는 심장을 억누른 채, 시어도어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다지 자신감 있는 태도는 아니었다.

“저, 이 사람 본 것 같은데요.”

그녀는 이미 추격자가 한명호의 사진만 꺼낸 것을 파악한 상태였다.

이내 흠칫 놀란 한명호가 무의식적으로 정도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서야 이 행동이 결국 추격자들 앞에 빌미가 될 것이란 걸 깨달았다.

지금 황급히 고개를 돌려 봤자 수상한 기색만 강화돼 남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결국 한명호는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상태를 유지했다.

다행히 시어도어와 그의 부하들은 정도연의 말에 이끌려 총포사 안의 다른 손님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어디서?”

시어도어가 정도연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도연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해머 스트리트 근처에서요. 여기랑 아주 가까워요. 얼굴에 흉터가 나 있어서 확실히 기억나네요.”

해머 스트리트는 한명호가 이전까지 머물렀던 곳이었다.

이 대답에 한명호는 얼굴의 상처를 숨기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이미 두꺼운 파우더와 피부색을 한층 더 짙게 만드는 화장품으로 얼굴 흉터를 덮어둬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긴 어려웠다.

시어도어는 고개를 끄덕인 뒤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해머 스트리트를 담당하고 있는 동료에게 연락해 이 사실을 알렸다.

이내 전화를 끊은 시어도어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두 조로 나뉘어 한 조는 그쪽으로 가서 지원하고 한 조는 이곳에 남아 계속 조사한다.”

지시를 내리던 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조금 전 일에서 뭔가 수상한 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약간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았다.

이를 느낀 정도연이 떠보듯 물었다.

“단서를 드렸으니 보수를 주시나요? 사냥꾼 길드에 임무를 의뢰하셨겠죠?”

그제야 미간을 푼 시어도어는 더는 다른 의혹을 품지 않았다. 그대로 가지고 다니던 펜과 쪽지를 꺼내 뭔가를 적은 후, 정도연에게 쪽지를 건넸다.

“이걸 가지고 사냥꾼 길드로 가서 네가 어떤 단서를 제공했는지 전해. 후에 이 단서가 유효했던 것으로 판정되면 사냥꾼 길드에 알려 상금을 지급할 테니. 사냥꾼 길드의 신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겠지.”

시어도어는 확실히 유능했다. 안타나 스트리트 암시장을 돌아다니는 이들 중 보수에 대한 욕심 없이 순순히 단서를 내놓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단서를 내놓는 사람은 한번 의심을 해봐야 했다.

정도연이 쪽지를 받아들었을 때, 조를 나눈 시어도어는 두 부하를 데리고 해머 스트리트로 향했다. 나머지 부하들은 부근 상점 조사에 나섰다.

다들 레지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시어도어가 빠르게 이동하던 중, 돌연 그의 부하 하나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아까 그 총포사에 있던 한 손님 반응이 뭔가 이상했습니다. 지나치게 긴장한 것 같았어요.”

시어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봤어. 그거야 아주 정상적인 반응이지. 안타나 스트리트에 출몰한 사람 중에 아무 문제도 없이 깨끗한 사람이 어딨겠어. 99퍼센트는 전과가 있잖아. 우리를 보고, 우리가 누군지 안다면 긴장하는 건 당연하잖아.”

조수도 사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듯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앞으로 실적이 부족하면 곧장 여기로 와 아무나 잡아도 되겠습니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였다. 뒤쪽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외쳤다.

“선생님! 선생님!”

몸을 돌린 시어도어는 소리의 출처를 확인했다. 조금 전 그 총포사였다.

레지는 다시금 큰소리로 외쳤다.

“단서가 있습니다!”

미간을 팩 찌푸린 시어도어는 뭔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총포사로 가볍게 뛰어갔다.

“왜 이제 떠오른 거지? 좀 전엔 아무 말도 없었잖아.”

시어도어의 추궁에, 레지는 손을 활짝 펼치며 손사래를 쳤다.

“그 사람이 바로 제 눈앞에 서 있어서 그랬습니다. 총으로 몰래 저를 겨누고 있는데 어떻게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라면⋯⋯. 모자 쓰고 있던 그자 말인가?”

시어도어의 눈이 커다래졌다.

레지는 한숨을 푹 쉬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선생님들도 발견하지 못하셨으니 저도 모른 척하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런 행위를 그냥 넘어갈 순 없겠더라고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행위를 했단 걸 용케 알고 있나 보군.’

속으로 중얼거리던 시어도어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으려는데, 레지는 도무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선생님들 수사에 진척이 생겨 목표가 이곳에 방문했었는데도 제가 그 사실을 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저는 꼼짝없이 공범으로 몰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겨우 입을 뗄 틈이 생겨 시어도어가 드디어 질문을 하려는데, 갑자기 또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시어도어는 급히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 탐문 결과 목표가 해머 스트리트에 확실히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아마 이 구역에 거주했던 것 같습니다. 동료도 하나 있는데 여자고, 키가 160이 안 될 정도로 아주 자그마하고 왜소하답니다.

전화 건너편 치안관이 새로이 전한 정보에, 시어도어의 관자놀이 혈관이 불룩 튀어나왔다.

‘키가 160센티미터가 안 될 정도로 왜소한 여자?’

그는 비로소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서시월 팀의 친구라는 이들 역시도 대담하고 세심하기 그지없었다.

“어디로 갔는지 봤나?”

시어도어가 황급히 물었다.

레지는 바로 전방을 가리켰다.

“저 골목길로 들어갔습니다.”

“쫓아!”

시어도어는 부하들을 데리고 곧장 그곳을 내달렸다.

그가 레지를 믿은 건, 안타나 스트리트에서 일정한 지위도 있고, 작지 않은 사업을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사람이 감히 질서의 손의 눈 밖에 나려고 한다거나 적대적으로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목표를 찾지는 못할 순 있어도, 레지는 얼마든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

* * *

미친 듯 달리는 시어도어 일행은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중에는 한명호 찾기 임무를 맡은 유적 사냥꾼도 적지 않았다.

단번에 낌새를 눈치챈 그들은 조용히 시어도어 일행의 뒤를 따랐다.

평소와 다른 상황이 벌어진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누군가 달리기 시작했다는 것, 목표의 행방을 찾았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안타나 스트리트에는 불법건축물이 잔뜩 지어져 있어, 길이 매우 협소했다. 특히 옆쪽의 골목길은 더더욱 그랬다. 건물들 사이에 걸린 각종 빨랫감 등등으로 햇볕도 들지 않아 컴컴하기까지 했다.

시어도어 일행은 한명호 여자 동료의 특징도 파악했고, 그들의 옷차림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빠르게 달려가는 동안 목격자도 몇 명 찾아내 지금 찾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확실히 한 뒤였다.

시어도어 일행은 마침내 한 낡은 건물 앞에 이르렀다.

목격자들 진술에 따르면 목표가 조금 전에 이곳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너희는 뒤쪽으로 가서 거길 막아.”

시어도어는 지시를 내린 뒤 솔선하여 정문으로 향했다.

그렇게 달려가던 그가 갑자기 자신의 검은색 가죽 지갑을 꺼내 건물의 홀 안으로 던져 넣었다.

탕!

총성 한 발과 함께 총알에 관통당한 지갑이 굴러떨어지더니, 그 안에 든 것들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이를 목격한 시어도어는 냉소를 지으면서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

목표의 사격 솜씨가 이렇게까지 훌륭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시험 삼아 지갑을 던져보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그가 저 지갑의 신세가 되고 말았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생존 여부는 오로지 운에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 총성을 바탕으로 시어도어는 목표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 느껴지는 인간 의식 한 줄기를 포착했다.

건물에 딸린 방들엔 인간의 의식이 너무 많아서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누가 누군지 판별할 수는 없었다.

한편, 지갑을 명중시킨 한명호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 곧장 소총을 거둔 뒤 위치를 바꿀 준비를 했다.

지금 한명호, 정도연 뒤쪽에는 추격자들이, 앞쪽에는 길을 막은 유적 사냥꾼이 있는 상황이라, 적당한 곳을 찾아 한 차례 반격에 나서면서 포위망에 빈틈을 하나 만들어낼 작정이었다.

막 허리를 굽힌 채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려던 그때, 한명호는 가슴이 돌연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귓가엔 심장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세차게 박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간, 눈앞이 캄캄해진 한명호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정도연은 황급히 걸음을 멈추고 그를 부축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 역시 곧 이상 현상을 일으켰다.

벗어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상황에 그녀도 결국 벽 옆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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