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정보 교환 (1)
왕래하는 인영 사이, 듀카스의 시선은 옆쪽 칸에 자리한 세 남녀에게 향했다. 둘은 귀족, 나머지 하나는 시종 겸 경호원인 애쉬랜드인이었다.
왜였을까, 듀카스는 그 두 귀족이 유난히 낯이 익었다.
갈색 머리 남자 귀족은 눈자위가 깊은 데다 얼굴선이 입체적이었으며, 남성적인 기질까지 물씬 풍겨서 상당히 멋있어 보였다.
아크슨인인 듯한 여자는 눈동자가 짙은 파란색에 피부는 약간 거칠었고, 살짝 구불거리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저들을 대체 어디서 본 건지 듀카스가 기억을 헤집는 동안, 그 귀족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듀카스는 안 왔네.”
먼저 입을 연 것은 남자 귀족이었다.
여자 귀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카시엘도 안 왔어. 근데 두 사람은 포카스 장군 개인 경호원이 아니라 도시 방위군 장교잖아. 수시로 따라다닐 수는 없겠지. 왜, 위장한 참에 팔씨름해보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듀카스는 특정 사건이 떠올라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남자 귀족은 다시 아래쪽 격투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진지하게 말했다.
“아니요, 팀장님이랑요. 만약 듀카스가 팀장님을 못 알아본다면, 여자한테 또 패배한 거잖아요. 충격받으면 더는 근육을 안 믿지 않을까요? 그럼 더 이상 가녀린 여자를 얕잡아 보는 일도 없을 거고.”
“⋯⋯.”
듀카스의 관자놀이 혈관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박동했다. 얼굴마저도 하마터면 빨갛게 달아오를 뻔했다. 자신의 사회성이 금방이라도 처형당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던 그때, 그의 귓가에 약간 나이가 든 남자의 목소리가 닿았다.
- 자네는 저들을 알고 있겠지. 나한테 저들의 원래 신분을 알려주게.
* * *
구조팀은 다시 또 식재료를 가지고, 수종이 있는 아파트 문을 두드렸다.
“왔네!”
수종은 기쁘게 인사하면서도 컴퓨터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전보다 훨씬 친근한 태도였다. 구조팀을 제 사람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성건우가 집 안으로 들어서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게임 해?”
수종이 대꾸했다.
“지난번에 하던 거. 너 이번엔 네 컴퓨터 가져오겠다고 했잖아. 나랑 온라인으로 게임하겠다고.”
“이 순간만 기다렸지.”
성건우는 웃으며 자신의 전술 배낭을 내려놓았다.
수종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내가 이거 하는 동안만 기다려줘.”
장목화는 이를 보고 용여홍, 백새벽을 불러 함께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딱히 할 일이 없던 게네바는 수종이의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몇 분간 관찰 끝에, 게네바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이 게임에 문제가 있네. 제공된 선택지 중에 가장 좋은 선택지가 없어. 아무래도 알고리즘에 결함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안 돼. 문제가 생길 거야⋯⋯.”
주방 가장자리에 있던 용여홍은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겐, 안 돼! 수종이한테 게임 중독이면서 실력은 형편없다고, 게임 인공지능도 지금 수종이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알려주는 거잖아! 수종이를 화나게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수종은 게네바에게 무슨 대꾸를 하는 대신 약간 고민 끝에 계획을 바꿨다. 그리고 잠시 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이겼다!”
수종이 게네바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너 진짜 대단하다! 이따가 더 많이 가르쳐줘.”
“그건 치트키잖아! 진짜 인공지능한테 게임을 도와달라는 게 어딨어?”
성건우가 항의했다.
* * *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정오가 되었다. 성건우와 수종은 못내 아쉽다는 듯 컴퓨터 앞을 떠나 식탁 앞에 앉았다.
“수면 고양이는?”
성건우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물었다.
젓가락을 집어 든 수종이 답했다.
“레드리버 북안에 갔어. 내 말을 찾을 겸 산책하러.”
이 대목에서 그는 마침내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참. 너희들, 오하명의 목소리를 녹음하려면 주의해야 해.”
“왜?”
순간 긴장한 용여홍이 물었다.
수종은 침을 꼴깍 삼키며 답했다.
“전자 제품을 이용해 그가 남긴 힘을 저장하려다 발각되면, 그 사람은 너희들의 위치를 감지하고 일정 정도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어. 거리도 무시하고 말이야.”
그러자 장목화의 시선이 성건우에게로 향했다.
성건우는 전술 배낭에 들어있던 휴대용 녹음기를 꺼냈다.
그 순간, 용여홍이 성건우보다 앞서 물었다.
“우리가 여기 저장한 것에는 문제없지?”
“있어.”
수종이 솔직하게 다했다.
용여홍의 표정이 멍해지고, 백새벽과 장목화의 얼굴에 진지한 표정이 떠오르던 그때, 수종은 다시 자문자답하듯 말을 이었다.
“어젯밤 약간 기척을 보이더라고. 근데 내가 막았어.”
‘그러니까 수종이 너한테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거야?’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성건우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감탄스럽다는 듯 외쳤다.
“너 진짜 대단하다!”
수종은 젓가락을 휘두르며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그, 그 사람은 HP가 한 칸밖에 안 남은 보스일 뿐이니까.”
‘훌륭한 묘사네.’
장목화가 물었다.
“그러니까, 이 녹음기에 녹음된 건 오하명에게 감지되더라도 우리를 공격하는 데 쓰이지는 못한다는 거지?”
“지나치게 많은 걸 녹음하면 안 돼. 많아지면 나도 못 막아. 만약⋯⋯.”
수종은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지난번에 그가 제안한 탕수육을 집었다.
“최대 몇 개까지 녹음할 수 있어?”
이성적인 장목화는 세세한 부분을 더 꼼꼼히 신경 썼다.
“세 개. 세 개를 넘어가면 안 돼.”
수종이 우물거리며 답했다.
“네 쉬, 소리는 여러 차례 써도 저지 효과가 약화되고 그러진 않아?”
장목화는 이 일에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오하명은 이미 막으려야 막을 수 없는 강력한 위력을 보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효과가 완전히 없어지기 전까지는 똑같을 거야.”
수종은 간결하게 답한 뒤 밥을 먹는 데 몰두했다.
‘오하명의 원거리 통제도 그렇다는 뜻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 역시 눈앞에 놓인 탕수육에 집중했다.
* * *
그린 올리브 구역.
당분간 아무도 살지 않을 방 안에서 장목화와 성건우는 테이블 앞에 앉아 특정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는 컴퓨터를 바라봤다.
용여홍과 백새벽은 주변 높은 곳에서 감시하며 뜻밖의 상황에 대비했고, 게네바는 두 조와 멀지 않은 곳에서 신호 기지국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는 구조팀과 휴고 친구의 만남 방식이었다.
통제된 네트워크를 이용한 영상 통화. 이러면 뜻밖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구조팀은 기껏해야 컴퓨터 한 대만 잃을 뿐이었다.
* * *
한 여관방에선 누군가 구조팀이 휴고 편에 보낸 카드키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테이블 위 컴퓨터와 그 아래 눌린 종이 한 장이 보였다.
종이에는 연결해야 할 네트워크와 구동해야 할 프로그램이 적혀 있었다.
‘아주 프로답네.’
인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평가를 내렸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성건우는 컴퓨터 비디오 창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그 안에 떠오른 누군가를 발견했다.
순간 장목화의 눈이 커다래졌다.
상대는 장목화도, 성건우도 모두 다 아는 사람이었다.
품이 낙낙한 회색 가운 차림의 남자는 숱이 적어 황톳빛 머리가 듬성듬성 남았어도, 기세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위풍당당한 사자가 따로 없었다.
전에 구조팀과 합작한 적도 있는 원로원 원로이자, 도시 방위군 지휘관 중 하나로 중간파 대표이기도 한…… 포카스 장군이었다.
장목화도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휴고 친구가 포카스 장군이었다고?’
그 두 사람은 신분과 지위, 경력에서도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세상은 정말 기묘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네.’
장목화가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는 사이, 성건우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장군님, 아직 저희한테 축하연을 빚지고 계십니다.”
화면 속 포카스는 눈썹을 치켜세웠다.
- 휴고 친구랍시고 자네들한테 연락한 사람이 나라는 게 놀랍지도 않나?
“만약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게 진짜 사자였다면 깜짝 놀랐겠죠.”
아홉 중 누구인지 모를 성건우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꾸했다.
이제 원상태를 회복한 장목화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인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할지가 중요한 거니까요.”
그녀는 포카스가 무슨 일로 구조팀을 찾았는지, 게다가 왜 휴고를 통해 연락한 것인지 매우 궁금했다.
꼿꼿한 자세로 앉은 포카스에게선 전쟁이 빈번하던 시기를 겪은 베테랑의 느낌이 났다.
그가 침착하게 답했다.
- 난 자네들이 마커스에게서 뭘 얻었는지 알고 싶네.
장목화가 예상했던 많은 답 중 이런 답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우리가 한 짓을 알아낸 거지? 심지어 이 장군은 건우가 마커스에게 정보를 취했을 때 그 현장에 있지도 않았는데!’
언젠가 정체가 들통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적어도 2, 3일은 더 걸릴 것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구조팀이 별생각 없이 퇴실 절차를 밟기 위해 휴고 여관에 돌아갔다가 소식을 접한 것으로 보면, 포카스가 구조팀을 만나기로 결정하고 휴고에게 그 뜻을 전한 건 벌써 며칠 전이란 소리였다.
당시 구조팀은 에이펙스 격투장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마커스 기억 속 중요한 정보를 막 파악한 참이었다.
‘포카스 장군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그 범인이 우리란 걸 확신한 건가?’
장목화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반면 성건우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저희란 걸 아셨습니까?”
포카스가 웃었다.
- 자네들은 아직 어려 이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몰라. 게다가 여태까지 내내 운이 좋았으니 특정 부분에 대한 두려움은 잊고 있었던 거지.
애쉬랜드에는 수많은 기이한 능력과 구세계에서 기인하는 초월적 기술이 있어. 위장이 곧 절대적인 안전을 의미하지는 않아. 적어도 나한테 위장은 아무 효력도 발휘하지 못해.
자네들이 처음으로 에이펙스 격투장에 들어와 마커스를 관찰하고 환경을 확인했을 때 난 자네들을 알아봤어. 그 위장을 폭로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그냥 잠자코 있으면서 자네들이 무슨 짓을 할지 지켜본 거지. 그런데 자네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더군.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장군의 말에,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성건우와 눈을 맞췄다. 이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곤 해도 포카스가 한 말엔 틀린 부분이 없었다. 구조팀은 이 세계의 복잡성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너무나 큰 모험을 한 셈이었다.
‘위장을 무효화 할 수 있는 능력, 혹은 기술? 기술은 아닐 것 같은데. 당시 저 사람 몸에 다른 전기 신호가 느껴지진 않았어. 생물 방면의 성과인가?’
장목화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도 자신들을 어떻게 알아본 것이냐곤 묻지 않았다. 그건 포카스의 비밀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성건우는 전혀 거리낄 것도 없다는 듯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어떤 능력입니까? 개코? 저희 냄새를 기억하신 겁니까?”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지. 다음번엔 자극적인 향수를 써야겠어.’
장목화는 문제에 집중하느라, 성건우가 한 무례한 말을 지적하진 못했다.
그래도 포카스는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 능력도 본 적은 있지. 그거라면 확실히 자네들의 위장을 꿰뚫어 볼 수 있겠네. 자네들이 사전에, 음, 생물 영역 내 특정 연구의 성과를 뿌려두지만 않는다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