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29화 (429/649)

429화. 세 가지

용여홍도 내내 이러한 방면에 대해 걱정해왔었다.

“그렇네요. 더 주의하고 미리 처리해야 할 일이 더 있을까요?”

그러자 게네바를 사이에 두고 그와 한 자리 떨어져 있던 성건우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세 가지.”

용여홍이 경청할 자세를 갖추자 성건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첫째, 네가 ‘드디어 안전해졌다!’, ‘분명히 별일 없을 거야.’, ‘회사로 돌아갈 수 있어!’ 이런 류의 말 안 하기.”

‘나도 그건 이미 다 신경 쓰고 있었다고.’

용여홍이 속으로만 삐죽거리며 덤덤히 대답했다.

“내 불운이 그렇게까지 잘 통한다면, 이젠 반대로 말할게.”

“나머지 둘은?”

운전 중이던 백새벽이 첫 번째 주의사항을 가볍게 넘겨주었다.

이제 성건우의 표정도 정말로 진지해졌다.

“현상금이 걸린 임무의 의뢰자는 초상화와 특징 묘사를 통해 맹목의 고리의 존재를 드러냈어. 난 우연히 그걸 인지하고 우리가 진짜 신부를 죽인 범인이란 사실을 확인한 반 지성교의 목자가 우리를 체포하는 무리에 가담할까 봐 그게 걱정스러운데.”

“그럼 확실히 골치 아파지지.”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목자 부이용은 아주 넓은 범위 안에 있는 이들의 기억을 뒤져볼 수 있는 각성자였다.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반 지성교뿐이라면 문제가 그렇게 크지 않아. 우리한테도 그 사람에게 맞설 능력이 있잖아. 근데 난 반 지성교가 우리에게 복수하려고 질서의 손에 은밀하게 도움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게 제일 걱정스럽네.”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용여홍이 다급하게 물었다.

장목화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음, 예를 들어 치안관 월이 작은 흰둥이가 일부러 소란을 일으켜 자기를 꾀어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그 후에는 자신을 왜 꾀어내려 했는지에 주목하겠지?

그럼 월은 전에 우리를 어디선가 봤을 수도 있겠다고 의심할 거야. 이건 사실이지만 우리의 만남은 꽤 오래전 일이었고 긴 대화를 나눈 사이도 아니니, 기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겠지. 충분한 계기가 뒷받침돼야만 해. 하지만 반 지성교가 개입한다면 상황은 달라져.”

반 지성교에는 기억을 다루는 능력이 있는 각성자가 적지 않았다. 목자 부이용은 그중에서도 특출난 인재였다.

이내 게네바가 말했다.

“만약 치안관이 너희를 떠올려내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거다.”

마커스의 기억에서 찾아낸 말을 들은 후부터 말이 없어진 게네바는 가끔만 토론에 참여할 뿐이었다.

용여홍은 간담이 다 서늘해져서, 스스로를 위로하듯 대꾸했다.

“그때 야랑 팀장님은 위장하고 있었잖아.”

회사의 정보원 가리발디를 만나기 전, 성건우와 장목화는 확실히 어느 정도 위장을 했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데 야가 전에 말했듯이. 우린 키랑 인종 때문에 눈에 좀 띄어. 무엇보다 그때 우린 반 지성교가 기억을 뒤져보리란 생각은 전혀 못했지. 아무 예방도 안 했잖아.

그렇게 조금씩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질서의 손은 언젠가 우리의 진짜 모습이 담긴 초상화를 그릴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사냥꾼 길드 내부에 저장된 사진과 비교해서 우리가 누구인지도 파악하게 되겠지.”

용여홍이 흠칫 놀랐다.

“그럼 사냥꾼 길드에서 멀어져야겠네요!”

최근 며칠간 구조팀은 사냥꾼 길드에 여러 차례 방문한 바 있었다.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조사에도 절차가 있어. 시간이 필요하지. 그들이라고 그렇게 빨리 조사를 진행하지는 못할 거야. 앞으로 조심하면 돼.”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용여홍이 순간 한 가지 문제를 떠올렸다.

“우리 사냥꾼 길드에 가서 높은 보수의 임무가 있는지 확인하고, 명호를 찾아야 하지 않나요?”

성건우가 웃었다.

“임무를 확인할 레이븐과 장우병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용여홍은 그제야 자신이 괜히 과하게 긴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위장한 상태에서는 누구도 우리가 전하얀 팀이란 걸 모를 테니까. 질서의 손도 조사를 통해 나중에야 알아차리겠지? 전하얀 팀이 전하얀 팀을 잡는 임무를 접수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하네.’

“레이븐은 누구야?”

“내가 방금 지은 레드리버식 이름. 너도 하나 지을래? 라이더 어때?”

성건우가 잔뜩 신이 난 듯 물었다.

용여홍은 숨을 토하며 그냥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가 또 생각났다.

“어? 주의할 점이 세 가지라고 안 했었나? 아직 두 가지밖에 안 나왔어.”

“방금 얘기했잖아, 세 번째.”

“⋯⋯.”

용여홍은 10여 초 후에야 성건우의 세 번째 주의사항이 치안관 월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 *

퍼스트 시티, 어느 저택 안.

한 인영이 부하가 가져온 단서를 받아 들었다.

진짜 신부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한 단계 진척시킬 단서였다.

초상화 속 인물의 왼쪽 손목에는 인간의 머리카락으로 짜 만든 듯한 기이한 장신구가 걸려 있었다.

종이를 쥔 인영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 * *

질서의 손, 물증부.

한 동료 앞에 앉은 월은 컴퓨터에 뜬 각종 눈썹 모양, 눈 모양, 코 모양을 결합해 자신의 기억 속 두 인물의 생김새를 묘사했다.

계속된 피드백과 조정을 거친 끝에 물증부 직원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 안엔 남녀 한 쌍의 초상이 있었다.

“이렇게 생겼어?”

월은 초상화를 몇 초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긴 한숨을 토했다.

“맞아. 비슷해.”

적어도 전의 초상화보다는 훨씬 더 비슷했다.

이내 그가 덧붙였다.

“아마 위장한 상태일 거야.”

“이 얼굴에 있는 위장을 거둬 내서 원래 얼굴로 복원시킬 수 있어. 하지만 결과에 대해 너무 크게 기대하진 마.”

그는 그런 작업을 지원할 기술이 있다는 듯 말하면서도 확신하진 않았다.

“얼마나 걸리지?”

월이 물었다.

컴퓨터를 조작하던 물증부 직원이 답했다.

“모르겠다, 상황을 봐야지.”

그는 어떠한 약속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던 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일단 다른 단서부터 조사해봐야겠네. 당시 다친 사람은 별문제 없어 보이더라고.”

* * *

약속한 저녁이 되어, 구조팀은 무선 통신기를 켜고 회사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러나 오늘은 약속 시간이 끝나가도록 반고 바이오에서는 아무 전보도 오지 않았다.

“이게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용여홍이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회사는 보통 이르면 그날 저녁, 길어봤자 2, 3일 안에 구조팀의 보고나 문의에 답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용여홍은 발신에 실패한 건 아닌지 의심이 되었다. 오하명 같은 강자가 막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는 용여홍만의 헛된 생각일 뿐이었다. 구조팀은 당시 전보를 수신했다는 확인도 받았었다.

또한 회사와 주고받는 전보는 전부 다 암호로 이뤄져 있었다. 그러니 몇 번씩 전보를 주고받으며 암호의 규칙을 파악하고, 그걸 해독하는 데 성공하지 않는 이상은 외부인이 그걸 알아보거나 내용을 위장할 순 없었다.

장목화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회답 과정이 길어지고 있다는 뜻이야. 문제의 중요성이 높아졌단 거지.”

백새벽이 뭔가를 알아차린 듯 물었다.

“이사회?”

‘아, 우리가 이번에 얻은 수확이 이사회까지 올라갔다는 건가?’

용여홍은 순간 조금 긴장했다. 이사회는 반고 바이오 내 모든 직원의 생사존망을 결정하는 기구이기 때문이었다.

장목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회사에서도 이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모양이네. 이사들이 우리를 위한답시고 미리 모일 수는 없을 테니, 일단 좀 기다려야지.”

반고 바이오에서 다음 명령을 내리지 않은 관계로 구조팀은 휴식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망중한이었다.

다들 책을 보거나, 모듈을 연구하거나, 구세계 콘텐츠로 시간을 죽이는 사이 밤은 깊어갔다. 밖은 매우 고요했다.

하나둘 구조팀원이 각자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함에 따라 거실도 이젠 완전히 비워졌다. 빈자리를 차지한 건 어둠뿐이었다.

그래도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있어, 그렇게 세세한 윤곽까진 아니더라도 방 안 사물이 어렴풋하게 보이긴 했다.

달빛이 느릿하게 이동하던 그때, 홀연 아무도 없는 거실에 움직임이 생겼다. 테이블에 놓인 휴대용 녹음기가 갑자기 소리를 낸 것이다.

지직- 지직-

마치 누군가에 의해 때맞춰 깨어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녹음기는 알아서 저장된 음성을 재생했다.

- 그러니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매력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가볍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배경음 속의 지직거리는 소음도 한층 또렷해졌다.

소리는 그 뒤의 말을 덮어 내용을 흐렸다.

- 쉬⋯⋯ 쉬⋯⋯ 쉬⋯⋯.

지직거리는 소리 속,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다음 순간, 모든 것은 잠잠해졌다. 여전히 그 자리에 놓인 휴대용 녹음기는 전과 아무런 차이도 없어 보였다.

* * *

다음 날 아침.

“무슨 생각해?”

장목화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음식을 앞에 두고도 멍하니 있는 성건우라니, 세상에서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던 사람 아니었나?

성건우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꿈에서 수종이를 봤어요. 우리가 오늘 그 애를 찾아 함께 게임을 하게 될 거란 뜻이죠.”

“하, 중요한 건 뒤쪽이지?”

잠시 망설이던 장목화가 결정을 내렸다.

“할 일도 딱히 없으니 가보자.”

수종은 퍼스트 시티 내 구조팀 비장의 카드였다. 수종과 관계를 강화할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게다가 수종은 겉보기에는 그냥 아이였다. 가족도 없이, 몇몇 추종자만 데리고 있는 아이는 아무래도 참 가엽고 외로워 보였다.

* * *

레드울프 구역, 로스타 스트리트 19호, 질서의 손 본부.

전화로 통지를 받은 도시 방위군 소령 듀카스가 차를 몰고 대문을 통과했다. 그는 자신이 왜 이곳에 소환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상사가 내린 명령에 따랐을 뿐이었다.

차에서 내려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듀카스는 주위에 있는 질서의 손 구성원들을 살펴보며 수시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사람은 너무 말랐어. 흠, 저 사람은 체격은 좋은데 근육이 부족하네. 저 근육은 말하자면 관상용이군. 단련 방법에 문제가 있네. 오직 외관에만 신경을 썼어.’

속으로 중얼거리는 와중 질서의 손 건물을 빙 우회한 듀카스가 그 뒤쪽 정원에 이르렀다.

그가 막 유리로 덮인 복도를 지나쳐 꽃들이 만발한 구석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눈앞의 정경이 변했다.

듀카스는 이제 정원이 아닌, 적잖은 칸으로 나뉜 공간에 자리해 있었다.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장식만 봐도 고급스러운 장소 같았다.

듀카스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속으로 판단을 내렸다.

‘에이펙스 격투장 귀족석?’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시야에 인영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몸에 맞춰 제작한 옷을 입고 시종을 대동한 그들은 전부 퍼스트 시티 내에서 이름께나 날린다는 귀족들이었다.

자리에 앉거나 서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들은 진짜 사람과 아무런 차이도 없어 보였다.

이 순간 듀카스는 자신이 전에 본 질서의 손 건물과 뜰, 정원도 전부 환각이 아니었을지 의심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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