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28화 (428/649)

428화. 단서

레드울프 구역, 로스타 스트리트 19호. 정원이 딸린 건물.

이곳은 퍼스트 시티의 법무기관, 질서의 손 본부였다.

벽 같은 체형의 월은 펜과 종이를 쥔 채 회의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그의 지인들이 몇몇 자리해 있었다.

골든애플 구역 질서관의 조수로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잘생긴 신사 콘스탄츠, 월과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은, 골든애플 구역 질서관의 또 다른 조수 시어도어⋯⋯.

격투장에서의 사건은 레드울프 구역 소관이었다. 그러나 귀족과 관련한 사건이라 상부에서 매우 중시하고 있는 만큼 골든애플 구역의 질서관인 델리온도 유능한 간부를 파견한 것이었다.

이번 회의의 주최자는 레드울프 구역의 질서관, 그러니까 월의 직속 상사 트레비스였다.

귀족인 그는 몸에 딱 맞춰 제작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 짙은 얼굴선에선 세월이 쌓아놓은 기질이 물씬 풍겼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던 트레비스는 모든 이들이 도착한 것을 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번 사건의 자세한 상황에 대해 반복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월은 뚜껑을 씌운 펜으로 종이를 두드리며 답했다.

“필요 없습니다.”

“사안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재차 강조할 필요는 없을 거야. 이건 원로원에서 직접 우리 질서의 손에 맡긴 사건이니까.”

트레비스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장 호명했다.

“월,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월은 고개를 숙여 종이에 기록된 중요한 단어들을 살피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가장 의문스러운 부분은 그들이 대체 무슨 짓을 했느냐는 겁니다. 현장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는 걸로 보였습니다.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린 이도 없었고요.”

“그들은 아주 중요한 정보를 훔쳐 갔어. 마커스에게서. 그 외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자네들로선 알 수가 없지. 나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

트레비스는 꽤 친절한 답변을 건넸다. 월이 바로 새로 승급한 원로 가이우스의 사위이기 때문이었다.

‘마커스?’

콘스탄츠, 시어도어, 월을 비롯한 이들 모두가 그 이름에 집중했다.

이내 서로를 돌아본 그들은 각자 표정에 떠오른 의혹을 확인했다.

마커스는 출신은 훌륭하지만 그 출신 때문에 제한을 받아 정치에 입문할 수도, 군대에 들어갈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철창 안에서 키워진 진귀한 동물처럼 존중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지위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어떤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에?

머리를 굴리던 와중, 자신이 월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어도어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그는 상대에 대한 혐오감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이윽고 월이 재차 질문했다.

“질서관님, 그 세 용의자에 대한 다른 정보는 없습니까? 실력적인 방면에 대한 정보 말입니다.”

이 사건에서 발생한 전투는 없어 보였다. 그 때문에 용의자들의 실력과 관련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일선에 있는 질서관의 조수, 치안관에게 이는 그들의 생명을 결정지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트레비스는 직접 답하는 대신, 자신의 조수에게 눈짓했다.

조수는 즉각 자료 하나를 들어 그 내용을 읽었다.

“세 목표 중에는 각성자가 적어도 한 명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과격하고, 모험에 익숙하며, 자신의 생명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 유형이다. 그는 한 개, 혹은 그 이상의 초월적 물건을 가지고 있다. 그 세 사람은 합작을 통해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 한 명을 속이는 데 성공했다.”

시어도어, 콘스탄츠, 월을 비롯한 이들은 원체 덤덤한 편이었음에도 모두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 사건에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도 연루돼있었다니! 세 용의자가 그런 강자 앞에서 중요한 정보를 훔쳐 갔다니! 어쩐지, 원로원에서 이 사건을 중시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군.’

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더 이상 질문은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흐릿한 갈피만 잡힐 뿐이군요.”

“다른 사람의 제안에서 영감을 얻을 작정인가?”

검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 평범한 생김새를 가진 시어도어가 비웃었다.

이내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말을 이었다.

“현재 생각해 볼 수 있는 조사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세 용의자가 남긴 영상을 이용해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위장하고 있었으니 정말로 그들을 아는 이들을 찾지 못하는 이상 수확을 얻기는 힘들겠죠. 둘째는 그들이 타고 왔던 차부터 조사하는 겁니다. 셋째는 마커스에게 평소 그에게 접근을 시도했던 낯선 자가 있는지 묻는 거고요.”

시어도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레드울프 구역의 한 치안관이 덧붙였다.

“저는 이미 그들의 차를 조사해봤습니다. 한 렌터카 회사의 차더군요. 차를 빌린 이는 가명을 썼고, 방문했을 당시에도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제기랄, 차를 빌릴 때부터 신분 검사를 제대로 했으면 좀 좋아?”

레드울프 구역 질서관 트레비스의 또 다른 조수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에게 호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현장에 나와 있는 모든 질서의 손 구성원은 퍼스트 시티의 행정 능력과 애쉬랜드의 혼란한 환경 아래, 그렇게 일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뒤이어 언급된 하나하나의 방법들은 곧장 기각되거나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곳에 자리한 베테랑들의 눈을 반짝이게 할 정도의 진전은 없었다.

끝내 월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말씀드릴 두 가지 사안이 있습니다. 첫째, 전 당시 사실 저 세 용의자를 마주쳤습니다. 하지만 때마침 총격 사건이 발생해 그쪽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죠.”

이후 그는 격투장에 전기 자동차를 충전하러 갔다는 사실을 알린 뒤 덧붙였다.

“그때는 아무 의심도 안 했지만 지금 보니 두 사건이 연결돼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격 사건은 용의자의 동료가 그들의 순조로운 도주를 위해 벌인 짓인 겁니다. 탄도의 흔적을 바탕으로 용의자의 동료가 어디서 사격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후 목격자를 찾으면 됩니다.”

그 말에 시어도어가 웃음을 터뜨렸다.

“목표의 동료도 위장하고 있었겠지.”

“맞아, 하지만 단 하나의 단서라도 쉽게 놓치면 안 되지. 시종일관 완벽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실수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게다가 그런 실수는 종종 별 가치 없어 보이는 단서 안에 숨겨져 있지.”

월 역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내 콘스탄츠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적어도 우리는 지금 용의자가 세 명 이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군. 이건 아주 중요한 단서야.”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던 월이 표정을 점차 진지하게 굳혔다.

“이건 첫 번째 사인이었습니다. 두 번째, 당시 그곳에는 저 말고 보안요원 두 명밖에 없었습니다. 총격 사건은 대체 뭘 덮기 위한 거였을까요?”

“다른 거리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에이펙스 격투장 보안요원에게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아. 그들의 경계심만 높일 뿐이지.”

콘스탄츠가 협조적으로 나서며 분석해주었다.

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전 일단 그 총격 사건이 저를 꾀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저를 꾀어냈어야 할까요? 저는 그때 정전의 원인을 물어보기 위해 보안요원을 찾아가던 길이었습니다.”

회의실에 자리한 질서관의 조수와 치안관들 모두가 침묵한 채 진지한 표정을 드러냈다. 경험이 많은 그들로서는 어렵지 않게 그 원인을 짐작했다.

“제 생각에는 제가 세 용의자를 봤던 것 같습니다. 위장하지 않았던 그들을요. 그들은 제가 자신들을 알아볼까 봐, 멀리 있던 동료가 제 주의를 돌리도록 한 겁니다.”

월이 답을 내놓았다.

시어도어도 더 이상 딴지를 거는 대신 미간을 찌푸린 채 호응했다.

“하지만 자네도 방금 그랬잖아. 감시카메라 영상 속의 세 사람을 모른다고, 낯이 익지도 않다고.”

월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꾸했다.

“그거야 충분히 설명 가능해. 난 그들과 한두 번 만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본 적은 있지만, 그들에게 어떠한 인상도 받지 못했던 거야.”

“그럼 어떻게 조사하겠다는 건가?”

시어도어가 물었다.

이때 이번 회의의 진행자인 레드울프 구역 질서관 트레비스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정 의식교를 찾아가 그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도록 하지. 월이 자신의 기억을 열람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거야.”

* * *

휴고 여관.

휴식과 정비를 마친 구조팀은 홀로 돌아갔다. 방을 뺄 작정이었다.

그렇게 큰 사건을 일으켰으니만큼, 안전 가옥을 바꾸어 이전까지의 삶과 작별해야 했다.

퇴실 처리를 하는 휴고를 바라보던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이름과 생김새, 대략적인 거주 구역만 아는 상황에서 한 사람을 찾을 방법이 있을까요?”

“유적 사냥꾼에게 의뢰해. 아니면 예언을 할 수 있다고 떠들어 대는 승려를 찾아가 보든가.”

휴고가 고개를 들어 그를 힐긋 바라보았다.

승려?

장목화가 상대의 답을 되뇌는 사이 성건우는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아, 저희는 북안 뭇 산에서 가위 말을 만났어요. 녀석은 흰 늑대를 쫓고 있더라고요.”

순간 언제나 무표정했던 휴고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을 드러냈다.

곧 원상태를 회복한 그는 구조팀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군가가 너희를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

‘누구지?’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약간 머뭇거리던 장목화가 물었다.

“당신 친구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휴고가 답했다.

용여홍이 떠올릴만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휴고 친구가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우리랑 합작하여 그걸 사로잡으려는 건가? 수종이가 있는데 누가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

수종의 쉬, 소리는 용여홍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그러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좋죠. 친구가 많을수록 길도 더 많아지는 거니까요. 하지만 만날 시간과 장소, 방식은 저희가 정할게요.”

휴고는 친구와 길이 무슨 상관인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고개는 끄덕였다.

“그래.”

이는 용여홍의 예상을 벗어난 답이었다. 휴고는 친구를 대신해 답을 할 자격은 없는, 그저 말을 전달하는 중개인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때, 휴고가 용여홍을 보며 간단히 덧붙였다.

“그 사람은 너희가 그런 요구를 할 줄 알고 있었어.”

성건우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럼 그 사람은 저희가 언제, 어디서, 어느 방식으로 만나려 하는지도 알고 있는 겁니까?”

“그 사람은 예언할 수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승려가 아니야.”

휴고도 이젠 말도 안 되는 성건우의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장목화는 계속 말을 이어가려는 성건우를 막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시간과 장소가 정해지면 그때 알려드릴게요.”

* * *

움직이기 시작한 차 안에서, 뒷좌석의 용여홍이 여관을 힐끔 돌아봤다.

“휴고 친구가 저희를 만나 뭘 어쩌려는 걸까요?”

장목화가 웃었다.

“모르겠어. 뭐, 거절할 일이면 거절하면 되니까 만남을 꺼릴 필요까지는 없지. 이건 우리한테 최대한 빨리 전에 만난 사람이나 사건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교훈도 줘. 그러지 않으면 언제 그자가 우릴 찾아올지도 모르잖아.

생각해봐, 만약 우리가 퇴실하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저 여관을 들고 났다면 휴고 친구의 제안을 거절한 뒤엔 또 누군가한테 배신당하지 않을까 내내 걱정하게 되지 않았겠어?”

장목화는 룸미러로 뒷좌석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건 용여홍을 향한 질문이었다. 구조팀은 최근 이전까지 머물던 안전 가옥을 정리하고 새로운 안전 가옥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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