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25화 (425/649)

425화. 현상금

격투장 귀족석.

정전은 귀족들의 격투 시합 관람에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조이란 격투사가 오늘 마주한 상대는 빙원인 노예였다.

그는 부상을 대가로 끝내 상대를 죽여버리는 데 성공했다.

의자 팔걸이를 두드리는 소리와 높은 환호성이 가라앉았을 무렵, 한 귀족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 건너편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또 다른 쥐새끼가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대대적인 정전이 발생⋯⋯”

그러나 전화를 받은 귀족이 자세한 상황에 관해 묻기도 전, 핸드폰에서도 잡음이 들려왔다.

지직- 지직-

이곳 신호에도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전화를 받은 귀족은 모종의 분노를 느꼈다.

마찬가지로 이 소식을 알게 된 마커스의 표정도 굳어졌다.

* * *

안전 가옥으로 돌아와 다시 모인 구조팀은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맹목의 고리에 남아있던 힘에는 문제없지?”

장목화는 수확에 관해 묻기보다 일단 그것부터 챙겼다.

성건우는 맹목의 고리에 남은 힘을 자신의 심령 세계로 이전시켜둔 상태였다. 이는 각성자 영역에서는 일종의 금기였다. 상응하는 기운의 주인이 성건우 심령 세계의 위치를 파악하고 직접 강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령의 복도 급 강자들도 심령의 복도 안에서 종종 그런 일을 겪곤 했다.

성건우가 가상 세계의 주인을 속일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었다.

“괜찮아요, 그 힘이랑 숙명주에 남은 힘을 함께 가둬뒀거든요. 어쩌면 그들 사이에 먼저 다툼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하, 이이제이라 이거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수확은?”

성건우는 마커스의 어머니가 남겼던 말을 전했다.

첫째, 머신 헤븐을 경계하고 소스 브레인을 믿지 마라.

둘째, 제8 연구원을 조심하라.

셋째, 아비아와 거리를 유지하라. 그녀는 아주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

넷째, 불모지 13호 유적에는 구세계 실험실이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암호는 ‘메시아’다.

성건우의 말을 듣고, 게네바는 침묵했다. 왜 소스 브레인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그를 힐긋 살피며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빙빙 돌아 다시 제8 연구원을 마주하게 됐네. 보니까 오레이는 분명 여러 비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그가 이 비밀을 아비아에게 남겨뒀는지, 불모지 13호 유적 실험실에 남겨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자신의 특정 연구 성과도 이렇게 처리했겠지.”

오레이는 인공지능과 로봇 전문가였다.

장목화가 뒷말을 덧붙인 건, 게네바가 그에 가장 신경 쓰고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네바는 오레이가 남긴 자료와 연구 성과를 찾아 지능인 핵심 모듈 안에 존재하는 갖가지 제한을 해제할 수 있는지, 그로 인해 영혼을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다.

동시에 소스 브레인의 아버지로 짐작되는 과학자가 지능 로봇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여기는지 알고 싶어하기도 했다. 이러한 태도는 보통 유언을 통해 드러나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 아비아와 접촉할 기회를 찾든가, 위험을 무릅쓰고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가서 그 실험실을 열든가 해야 한다는 거네요?”

용여홍은 그 두 선택지 모두 탐탁지 않았다.

너무 위험했다. 구조팀이 오늘 진행한 작전보다도 몇 배는 더 위험했다.

마커스에게 있던 일을 숨길 수 있는 시간은 15분에 불과했으니 가상 세계의 주인과 퍼스트 시티의 고위층도 지금쯤 상황을 파악했을 터였다.

현재 구조팀 실력으론 수종이의 도움을 받는다 한들 성공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상대도 당연히 앞으로 더 경계하고, 더 충실히 준비하지 않겠는가.

굳이 비교하자면 불모지 13호 유적 실험실이 그나마 안전했다. 구조팀이 보기에 오하명과 수종이의 급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곳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는 죽어버린 오레이를 비롯한 몇몇을 제외하곤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용여홍을 위로했다.

“우리가 결정할 순 없어. 회사에 보고한 뒤 지시를 기다려야지.”

이어, 성건우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용여홍을 향해 웃어 보였다.

“사실 네가 기꺼이 죽기를 각오한다면 회사에서도 너한테 두 가지 일을 다 맡기려 할 거야.”

‘내가 지금 그걸 묻고 있냐?’

용여홍은 그래도 이성적으로 성건우와의 논쟁을 피했다.

그때, 미간을 살짝 찌푸린 백새벽이 말했다.

“전 마커스에게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부 다른 사람,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네요.”

장목화가 웃었다.

“제8 연구원만 해도 의미가 크지. 게다가, 만약 마커스에게 중요한 정보가 없었다면 퍼스트 시티가 과연 마커스를 가상 세계로 보호하려 했을까? 순전히 오레이의 외손자라는 이유만으로?

심령의 복도에 이른 깨진 거울 경로의 각성자는 그렇게 한가로운 존재가 아니야.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메시아라는 암호가 관건인 것 같아. 엄청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야.”

용여홍과 백새벽도 그 분석에 일리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뒤이어 성건우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전에 반 지성교와 합작하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네요. 그러지 않았다면 일이 훨씬 간단해졌을 텐데요. 그들은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마커스와 아비아에게 관련된 기억을 지울 수 있었을 테니까요.”

장목화가 소리 내 웃었다.

“그게 낚시였을지 어떻게 알아?”

“그렇다면 그들의 낚시 솜씨가 형편없었다는 거고요.”

성건우가 솔직하게 평가했다.

구조팀이라는 물고기는 미끼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순조롭게 바다로 도망치기까지 한 짝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장목화는 이내 창밖으로 하늘의 색을 살폈다.

“일단 뭘 좀 먹고, 그 안전 가옥으로 가서 회사에 전보를 보내자.”

“좋아요!”

성건우가 가장 먼저 호응했다. 손도 이미 배를 문지르고 있었다.

다섯 팀원이 문으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성건우가 게네바의 어깨를 쳤다.

탕!

성건우는 웃으며 운을 뗐다.

“오레이가 남겼을 말이랑 자료, 기대되지? 그걸 손에 넣으면 넌 오레이가 왜 소스 브레인을 경계했는지, 왜 당시 머신 헤븐을 떠났는지 알게 될 거야. 사실 아버지와 아들이 갈등으로 인해 적이 되는 상황은 그다지 보기 드문 일도 아니지.”

“진짜 아버지와 아들인 것도 아닌데⋯⋯.”

프로그램에 따라 대꾸하던 게네바는 말을 채 맺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 * *

다음 날 오전.

안전부 부부장 제니가 646층에 자리한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일사불란하게 차를 우려내고 인트라넷을 좀 살피던 그녀는 옆에 놓여 있던 첫 번째 서류를 집어 들었다.

구조팀으로부터 온 전보였다.

‘또? 이번에는 경비를 요구하는 걸까, 정보를 요구하는 걸까.’

제니가 피식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전보를 맨 마지막 순서로 미뤄놓았으면 했다. 오전부터 성가신 일 하나를 늘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다지 어려운 난이도는 아니었지만.

때가 되면 부장은 결재서류에 이런 코멘트를 달아 보낼지도 몰랐다.

「부부장, 이들은 어째서 한 달 새 세 번이나 경비를 신청하는 거지?」

한숨을 토해내던 제니는 봉인된 봉투를 뜯어 전보를 꺼냈다.

빠르게 내용을 훑는 사이 그녀의 표정이 점차 다채로워졌다.

“가상 세계를 피해 마커스에게서 정보를 얻어냈다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제니가 보기엔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를 보내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마커스와 아비아가 가진 비밀은 진즉 유출되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런데 구조팀은 이 엄청난 난도를 자랑하는 임무를 해결했다.

아무렴 더 위험하고, 돌파하기도 어려운 아비아 대신 접촉할 여지가 있는 마커스를 선택했다지만, 그에게서 실험실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암호를 얻고 가상 세계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는 회사에서 평가한 제11 구조팀의 수준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제니는 계속 내용을 살폈다. 그 속도는 저도 모르게 느려져 있었다.

그녀는 곧 제11 구조팀, 장목화 팀이 거둔 성공의 관건을 파악해냈다.

그들은 일단 신룡교와 거울교의 갈등을 이용해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의 대가를 추측해낸 뒤, 꾸준히 인내심 있게 기다리다가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을 특정 부분을 녹화했다.

그 준비를 마친 뒤에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녹음본을 한 노래에 합성해 듣는 이들이 저도 모르게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도록 만들었다.

제니는 웃음기가 묻은 소리로 의혹을 드러냈다.

“오하명의 말을 녹음하는 방법을 생각해낸 거야? 너무 위험하지 않나? 오하명이 그 사실을 인지한다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 텐데.

이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운이 중요해. 원하는 영향력을 가진 음성을 녹음하는 데까지는 열흘에서 보름, 심지어는 1년 반이 걸릴 수도 있잖아. 음, 답신을 보낼 때 이러한 시도는 최대한 지양하라고 알려야겠다.”

이를 통해 제니는 제11 구조팀의 성공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의 실력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증폭한 것은 아니었다.

“역시 실력보다는 머리가 더 중요하다니까.”

그런데 줄곧 찬사를 늘어놓던 그녀가 돌연 미간을 팩 찌푸렸다.

“불확실한 요소가 이렇게 많은 상황에도 곧장 행동에 나선 거야? 실패했을 때 어떻게 될지는 생각도 안 했나?”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제니는 여러 실패 사례를 떠올린 끝에 장목화가 어떤 대처 방안을 준비했을지 짐작해냈다. 어이가 없다는 듯 하늘색 도자기 찻잔을 집어 든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장목화 팀의 후속 계획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중요한 무언가와 연루된 상황이었으므로 안전부 부부장인 그녀가 멋대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이사회의 토론을 거쳐야 했다.

* * *

같은 시각,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구조팀 다섯 팀원이 퍼스트 시티 사냥꾼 길드에 도착했다.

오늘 이들의 목표는 한명호를 찾는 것이었다. 그 김에 앞서 의뢰한, 웨트와 그 동료의 가족들을 찾는 임무가 완수되었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급히 창구를 찾은 용여홍은 의뢰서와 자신의 사냥꾼 배지를 건넸다.

“결과가 있나요?”

창구 안쪽의 여자 직원이 바로 검색해본 뒤 답했다.

“있네요. 완수자와 직접 면담하실래요, 아니면 자료를 인쇄해드릴까요?”

용여홍이 막 면담을 선택하려던 그때, 백새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료만 보면 될 것 같아요.”

이에 용여홍은 의아한 얼굴을 했지만, 정작 다른 질문을 했다.

“꽤 간단한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왜 오늘에야 완수된 거죠?”

직원이 답했다.

“완수일은 어제였습니다. 전에도 두 차례 완수 기록이 있긴 하네요. 하나는 전부 저희가 거짓된 결과라고 판정한 겁니다. 어느 유적 사냥꾼이 두 분에게 보수를 편취하려 했던 모양입니다.”

“예?”

용여홍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에 백새벽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조건이 받쳐주는 상황에서는 길드가 결과를 확인해줘. 길드 운영의 핵심 요소는 신용이니까.”

‘그렇구나. 어쩐지 사냥꾼 길드가 이렇게까지 발전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였어.’

깨달음을 얻은 용여홍은 자료가 인쇄되기를 기다렸다.

한편 성건우와 장목화는 멍하니 대형 패널을 바라보며 최근에 의뢰된 특수한 임무가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거액의 현상금이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들 중 한 명만 잡아도 1만 오레이 지급. 횟수 제한 없음.」

“한 명만 잡아도 남은 빚을 다 탕감할 수 있겠는데요⋯⋯.”

중얼거리던 성건우는 시선을 위로 올려 의뢰의 주요 내용을 확인했다.

장목화 역시 이 의뢰에 상당한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이내 성건우가 입가를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상르 드라세⋯⋯.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인데.”

장목화는 입꼬리를 뒤틀며 그를 팩 노려보았다.

‘네 가명 아니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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