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20화 (420/649)

420화. 의외의 수확

아침이 되어, 구조팀은 수종이가 사는 집으로 갔다. 오늘 역시 식재료 약간과 함께 특별히 각종 게임이 깔린 최신형 휴대용 컴퓨터를 챙겨왔다.

똑똑-

이번엔 수면 고양이가 아닌, 수종이가 직접 문을 열었다. 방문자가 구조팀이라는 걸 진즉 알고 있었던 듯했다.

“게임 어떤 거 있어?”

수종이도 너무 다짜고짜 물은 것 같았는지, 다시 질문을 덧붙였다.

“음식은 뭘 가져온 거야?”

장목화가 웃으며 소개했다.

“오늘은 요리를 네 개나 해줄 거야. 수프도 하나 하고. 애쉬랜드 가정식이야.”

뒤이어 성건우가 컴퓨터에 깔린 게임들을 요란하게 설명한 뒤 아쉽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드디스크 용량이 큰 게 아니라, 모든 게임을 다 깔 순 없었어.”

“질리면 그때 바꾸면 되지!”

수종은 휴대용 컴퓨터와 용여홍, 백새벽이 든 식재료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당장 게임부터 즐겨야 할지, 밥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장목화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주방으로 향했다.

“이 요리 다 하는 데 한 1시간 정도는 걸릴 거야.”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는 그녀를 보며, 수종이 조용하게 중얼거렸다.

“우리 엄마도 저렇게 마음이 열려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아니니까 저렇게 이야기하는 거지.”

성건우가 정색하고 답했다.

몇 초간 침묵하던 수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성건우는 바로 수종이를 데려가 각종 게임을 같이 해주었다.

* * *

정오 무렵, 홍소육, 민물고기찜, 닭강정, 채소볶음, 토마토 계란탕이 차례로 식탁에 올랐다.

전과 비교해 훨씬 많아진 양이었다. 구조팀 4명도 함께 식사하면서 한결 더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원래 밥상 앞에서는 안 되던 대화도 술술 풀리는 법이었다.

수종은 일단 그릇에 고개를 박고 음식에 열중하다가 뒤늦게 감탄했다.

“이런 음식, 너무 오랜만이야⋯⋯.”

장목화가 웃었다.

“얼른 먹어. 꾸물거리다간 쟤한테 다 뺏겨.”

성건우를 가리킨 말이었다.

수종은 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식사에 집중했다.

다들 어느 정도 배를 채웠을 때쯤, 장목화가 담소하듯 말했다.

“우리는 최근에 오하명을 좀 이용하고 있어.”

“뭐?”

수종은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장목화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눈빛엔 큰누나를 보는 듯한 마음도 조금 섞여 있었다.

장목화는 구조팀이 도와 전자 제품 수리 프로그램을 녹음했고, 그것으로 효과도 직접 체험했다는 이야기를 전한 뒤에 한숨을 내쉬었다.

“안타깝게도 오하명을 움직여 우리가 원하는 말을 하게 하거나 효과를 발휘하도록 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젓가락을 든 수종이는 식탁에 남은 음식 한번, 또 한쪽에 놓인 휴대용 컴퓨터를 한번 쳐다보다가 잠시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내, 내가 녹음해줄까?”

“뭐?”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은 어찌나 놀랐는지 동시에 소리를 쳤다.

원래는 수종이에게 좋은 방법을 들을 수 있을지만 확인하려 했을 뿐이었다. 뜻밖에도 자발적으로 도와주겠다니, 수종이의 반응이 몹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성건우만은 좋은 친구를 뒀다는 굉장히 흐뭇한 표정을 보였다.

“좋지.”

장목화는 잠깐의 고민 끝에 사양치 않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행여 또 수종이 이 일을 다소 진지하게 여겨, 한 말을 다시 취소할까 걱정이었다.

그때,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그런데 수종이 너도 오하명처럼 전자 제품을 통해 방송한 내용으로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마커스가 화장실에 가고 싶게 만들 수가 있는 거야?’

수종이가 문득 용여홍을 힐긋 바라보았다.

“일단 먹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장목화는 애써 조급한 척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배를 든든히 불리고 설거지한 뒤 주방 정리까지 마친 구조팀 다섯 명과 수종은 다시 테이블 앞에 모였다.

그 사이 소파에 앉아 충전 중이던 게네바와 용여홍, 백새벽은 어젯밤을 지냈던 안전 가옥으로 돌아가 휴대용 녹음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시작할게.”

수종은 꼿꼿한 자세로 앉아 의욕적인 눈빛을 번득였다.

순간 발코니에 잠들어 있던 수면 고양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아래쪽 천막 위로 가볍게 뛰어내린 후, 그 뒤쪽 골목길로 사라졌다.

이를 목격한 장목화는 무의식적으로 귀를 막아야 하는 건지 고민했다.

뒤이어 입술을 뗀 수종이가 묘한 소리를 냈다.

“쉬⋯⋯ 쉬⋯⋯ 쉬⋯⋯.”

갑자기 용여홍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하복부가 불룩 부풀어 오르며 방광을 압박하는 것만 같았다. 이 짧은 몇 초 사이에 당장이라도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안 될 듯한 충동이 생겼다.

‘진짜 효과가 있잖아?’

용여홍은 다리를 살짝 흔들며 요의를 조금만 더 참아보려고 했다.

그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백새벽이 화장실로 향했다.

쉬,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와중, 결국 장목화와 성건우도 줄을 섰다.

이를 목격한 용여홍은 울상을 드러냈다. 마지막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정 안 되겠으면 발코니로 나가 화분에 물이라도 줄까? 아니야, 그랬다가 수면 고양이한테 혼나는 거 아냐?’

용여홍은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마침내 세 팀원은 개인적인 용무를 모두 해결했다.

용여홍은 100미터 달리기를 주파하듯 화장실로 질주하고 싶었으나 마음과는 달리 두 다리를 최대한 모은 채 종종걸음으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그가 한결 상쾌해진 얼굴로 나왔다.

수종이도 입을 다문 채 더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제야 용여홍은 잠든 수면 고양이가 돌연 밖으로 나간 이유를 알았다.

“녹음은 다 됐다. 효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게네바가 휴대용 녹음기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수종이 성건우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 가서 게임 해. 효과는 쟤네끼리 알아서 확인하라고 해.”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은 여지없이 화장실에 한 번 더 방문해야 했다. 다만 이미 용변을 다 해결한지라 그냥 요의만 느끼고 나왔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약 2시간 후, 장목화는 수종이의 못내 아쉬운 눈빛을 뒤로한 채 성건우를 끌고 나왔다.

* * *

돌아가는 지프 안, 장목화가 한껏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이런 수확을 얻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잠시 망설이던 백새벽이 의문을 제기했다.

“수종이의 목소리가 발휘하는 효과도 전자 제품으로 녹음될 수 있다니. 그들과 같은 급 강자의 공통점일까요, 아니면 수종이와 오하명이 같은 영역에 속해 있는 걸까요?”

각성자 성건우도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확성기를 통해서만 효력 범위를 조금 넓힐 수 있을 뿐이었다.

이내 장목화는 심령의 복도와 관련한 정보를 떠올리며 답했다.

“상응하는 기본 능력이 전자파만 방해하는 거고, 물질을 간섭하지는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은 디마르코보다 훨씬 더 강하잖아요.”

용여홍의 말은 수종과 오하명이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실력으로 따졌을 때는 적어도 심령의 복도 깊은 곳에 이른 자들과 같을 테니, 기본 능력 두 종류는 모두 다 갖추고 있으리라는 뜻이었다.

디마르코는 구조팀이 유일하게 정면으로 충돌했던, 비교적 정상적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라 늘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곤 했다.

신룡교의 고급 각성자도 있지만, 지능이 충분치 않아 가진 능력을 완벽하게 발휘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디마르코의 상태도 좋지는 않았지.”

장목화가 간단히 대꾸했다.

“맞아요. 그 사람 얘기는 그만두죠. 디마르코는 후에 우리한테 많은 도움이 됐으니까요.”

성건우가 동조했다. 숙명주를 시사하는 이야기였다.

이내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 탄 게네바가 화제를 전환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 녹음된 음성을 틀 때 어떻게 가상 세계 주인의 감지를 피할 것인가. 둘째, 어떻게 마커스만 화장실에 가게 할 것인가.”

그 순간, 흠칫 놀란 장목화가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잠깐, 우린 왜 수종이에게 요의를 자극하는 소리를 녹음해달란 거지? 최면 거는 소리를 녹음해달라고 하면 됐잖아! 가상 세계 주인한테만 영향을 써서 10여 초 동안만 졸게 해도 숙명주로 목적을 달성했을 텐데!”

그러니까 구조팀은 갖은 힘을 들이면서 한 바퀴를 크게 돈 끝에 고작 마커스를 화장실에 보내는 방법을 마련한 셈이었다.

서로를 돌아보는 백새벽과 용여홍 머릿속엔 똑같은 생각이 맴돌았다.

이게 다 성건우 때문이었다.

“그게 더 좋지 않나요?”

운전 중인 성건우가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는 듯 말했다.

“돌아가서 수종이한테 다시 녹음해달라고 할까요?”

용여홍의 제안에 장목화가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이번에도 겨우겨우 어렵게 한 거잖아.”

한 번 더 매달렸다가는 민망한 상황이 펼쳐질 터였다.

고민하던 장목화가 중얼거렸다.

“사실 지금도 실행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아. 수종이의 목소리를 어느 노래에 삽입하면 돼.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삼는 거지. 그리고 때가 되면 좀 무료하다는 듯이 노래를 트는 거야.”

“좋아요!”

성건우가 기다릴 수 없다는 듯 호응했다.

장목화의 말이 이어졌다.

“게다가 이건 오하명 목소리가 아니라 아이 목소리니까 단박에 감지당할 리는 없어. 녹음본의 효과는 원판만 못하니, 가상 세계의 주인은 거의 마지막에서야 반응을 보일 거야. 그때 마커스는 이미 화장실에 가 있을 테고.

귀족석에 있는 귀족 중에 마커스는 물을 제일 적게 마시는 사람이야. 거의 마시지 않을 정도지. 격투장으로 출발하기 전에도 그럴 게 분명해.

그러니까 모든 귀족이 영향을 받은 상황에서도 마커스는 비교적 오래 참을 수 있을 거야. 거의 마지막으로 화장실에 가려 하겠지.

귀족석에 전에 본 포카스 장군처럼 다른 강자가 없기를 바랄 뿐이야. 안 그럼 타이밍을 맞추기 힘들 테니까.

이 작업은 상황에 맞춰 융통성 있게 하는 수밖에 없어.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모레 있을 격투 시합보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도 좋겠고.”

“그렇죠.”

성건우가 자동차 클랙슨을 가볍게 두드렸다.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는 깊은 생각에 빠진 채 이 계획에 허점이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 * *

눈 깜짝할 새 돌아온 새로운 격투 시합 날이 돌아왔다.

역시 구조팀은 완벽한 위장을 한 뒤 격투장 부근에 도착했다.

“겐, 암호 잘 기억하고 있지? 때가 되면 전원 공급 회로를 끊어줘.”

장목화가 은백색 핸드폰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응.”

게네바에게는 조금도 어렵지 않은 임무였다.

장목화는 이내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넌 멀리 떨어진 감제고지에서 최대한 존재를 숨기고 있어. 우리 철수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에는. 그렇지만 상황이 잘 안 돌아간다 싶으면 내가 준 편지를 확인해.”

장목화가 말한 감제고지에서는 귀족석이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오직 도주 경로만 감시할 수 있었다.

백새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둔 오렌지 소총을 만지작거렸다.

한번 한숨을 토해낸 장목화가 성건우와 용여홍에게 말했다.

“휴⋯⋯.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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