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13화 (413/649)

413화. 선물

일부러 한 바퀴를 돈 후 다른 방향에서 레드리버를 건넌 구조팀은 퍼스트 시티 동남쪽으로 가 시내에 진입했다.

전진 캠프 주둔군이 구조팀에 군용 외골격 장치가 여러 대 있다는 걸 벌써 상부에 보고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설령 친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구조팀을 도와줄 수 없었고, 상황은 더 골치 아파질 터였다.

그러나 이 퍼스트 시티 동남쪽은 북안 입구에 비해 검문이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다. 대량의 장원이 있어 매일 수많은 주민이 오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격투장 암살 기도 사건의 공범 수사가 시작된 지 이미 며칠이나 지났으니, 병사들이 전만큼 그 작업에 열과 성을 다할 리도 만무했다.

구조팀이 무사히 도시에 진입해 안전 가옥으로 돌아왔을 때, 팀장 장목화는 하늘의 색을 한번 살폈다.

“오늘 임무는 휴양하고 정비하는 거야. 대신 내일은 진짜 일 세 개를 처리해야 해. 첫째, 렌트카를 바꾸고 지프는 원래대로 도색 하기. 둘째, 골든그레인에서 거울 교파의 스미스 찾기. 셋째, 가장 중요한 일이지? 수종이 만나기.”

무심자 왕의 본능으로 퍼스트 시티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든, 수종이에게 특정 문제에 대한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든, 우선 구조팀은 수종이와 만나 이야기를 해봐야 했다.

성건우에게 있어서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짝짝짝!

성건우가 장목화의 계획에 박수를 보냈다.

“수종이는 그래도 우리한테 꽤 호의적이겠지⋯⋯.”

용여홍이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듯 중얼거렸다.

백새벽도 동조했다.

“우리가 수종이를 화나게 하지만 않으면, 수종이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른다면 분명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이때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그래도 찾아가는 건데 빈손으로 가는 건 실례겠지?”

순간 어리둥절해진 용여홍은 솔직히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반고 바이오 내 평범한 직원들은 배급도 한정적이고, 공헌점수도 많지 않은데다, 물자도 충분하지 않아 명절이든, 일상적으로 방문할 때든 아무 선물도 하지 않았다. 대개 서로 간의 왕래는 마실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그렇죠.”

백새벽은 팀장의 말에 동조했다.

황야유랑자와 유적 사냥꾼 집단도 기본적으로 물자가 부족하고 굶주린 상태였기에, 타인의 집에 찾아갈 때 따로 선물을 준비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물자가 부족한 환경일수록 선물을 줬을 때의 효과는 강하게 발휘되는 법이었다. 백새벽도 가끔 이렇게 위법적으로 도움을 청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 물건을 모아 경비원이나 주관자를 매수하곤 했었다.

“어떤 선물을 해야 하지?”

게네바는 인간의 선물과 관련한 데이터도 풍부한 편이었다.

장목화는 답하기 전, 성건우를 힐긋 쳐다보았다. 그는 이 화제에 아무 관심도 없어 보였다.

‘친구 사이에 마음이 중요하지, 선물이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장목화는 다시 시선을 거두고 생각에 잠겼다.

“음, 먹을 거? 수종이도 먹는 양이 적을 뿐이지, 뭘 먹긴 한다고 했잖아. 거기다 고등 무심자들한테 불로 끓이고 굽는 것도 가르쳤고.”

“그럼 소고기 한 덩이랑 통조림, 감자를 가져갈까요?”

용여홍은 이 대화에 유난히 열성적이었다. 애쉬랜드에 사는 사람이면 누군들 이런 선물을 거절할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수종이를 사람이라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그것들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면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장목화는 조금 더 예의를 차릴 수 있는 선물을 원했다.

그러자 백새벽이 예전의 경험을 되짚었다.

“전 보통 먹기 쉬운 것들을 선물했었어요. 통조림은 괜찮은데 감자랑 소고기는 빵이나 퍼스트 시티에서 유명한 피자로 바꾸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빵도 크림이 든 게 제일 좋아요. 레드울프에 있는, 조건이 좋은 곳으로 가면 살 수 있을 거예요. 아이들은 다 빵을 좋아하잖아요.”

“아이를 꽤 잘 다루는 것 같네.”

장목화가 웃었다.

백새벽은 몇 초간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때로는요.”

게네바는 이번엔 이해가 좀 어려운 듯 백새벽에게 되물었다.

“그게 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야?”

“…….”

장목화가 인상을 팍 구겼다.

‘야이씨! 겐! 넌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제발 가슴으로 생각하라고! 곧 있으면 아주 건우랑 결혼이라도 하겠네, 저렇게 잘 맞아서야, 원.’

거기에 그녀는 게네바의 질문을 미처 막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잠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백새벽은 몇 초 후에야 답했다.

“응.”

그녀의 목소리가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말투는 모호했지만 분명 화를 내는 건 아니었다.

장목화는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먹을 거 말고 수종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도 괜찮을 것 같아.”

“게임팩?”

순간 성건우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수종이를 위한 게임팩을 직접 골라 선물하고 싶은 듯했다. 수종이가 가진 구세계 게임기엔 게임팩이 들어갔다.

“여태 온전하게 보존된 게임팩은 엄청나게 적지. 쉽게 얻을 수 없을 거야. 근데 우린 컴퓨터 게임을 엄청 많이 가지고 있잖아.”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타르난에서 수집한 구세계 콘텐츠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장목화는 여전히 알쏭달쏭한 얼굴을 한 용여홍을 보고 다시 풀어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수종이한테 최신형 컴퓨터를 한 대 주고, 그 컴퓨터에 갖가지 게임을 다 깔아주는 거야!”

‘그렇게 해서 무심자의 왕이 게임에 완전히 빠지게 되면 더는 세계를 파멸시키지도 못하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용여홍이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진짜 비쌀 텐데요.”

특히나 이 퍼스트 시티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백새벽도 동조했다.

“최신형 휴대용 컴퓨터는 여기서 8~900 오레이 정도는 할 거예요. 심지어는 그보다 더 비쌀 수도 있고요.”

“8, 900?”

장목화도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그녀도 비쌀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비쌀 것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머신 헤븐의 타르난에서는 최신형 휴대용 컴퓨터라도 100오레이 정도에 불과했다. 출시된 지 조금 된 컴퓨터로 눈높이를 낮추면 5, 60오레이로도 충분히 구매할 수 있었다.

“거의 그 정도 가격이야.”

게네바가 백새벽의 말에 힘을 실었다.

머신 헤븐 대표단은 위드 시티 사람들과 거래할 때 그 주위 구역의 전자 제품 가격에 신경을 썼다. 덕분에 게네바는 이곳의 컴퓨터 가격을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빠르게 감정을 추스른 장목화가 다시 고민 끝에 말했다.

“두 가지 방안이 있어. 하나는 상부에 경비를 신청하고, 블랙셔츠파에는 아직 빚을 그대로 남겨두고 1, 2주 정도 시간을 더 끄는 거야. 그래도 그쪽은 우릴 재촉하지 못해. 다른 하나는 팀에서 가지고 있는 컴퓨터 한 대를 수종이한테 주는 거고. 음, 내 걸 주자.”

“아니에요, 제 거 주세요. 팀장님 컴퓨터엔 자료가 많잖아요.”

백새벽이 덤덤하게 제안했다.

“좋아. 돌아가서 갚을게!”

장목화는 짐짓 떳떳한 척 손을 휘둘렀지만, 다시 또 머뭇거렸다.

“근데 처음부터 이렇게 비싼 선물을 주는 게 맞나? 수종이가 어디서 이유 없이 잘해주는 건 사기꾼 아니면 도둑놈이다는 말을 들었으면 어떡해.”

백새벽은 용여홍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잠시 방안을 생각해보았다.

“컴퓨터는 두 번째로 만날 때 줘도 되겠네요. 처음 만나러 갈 때는 먹을 것만 가지고 가서 도와달라는 부탁도 하지 말고 순수하게 이야기만 나누면서 더 친해지기만 하는 거예요.”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그래, 그러는 게 낫겠다.”

“팀장님, 가는 김에 옷도 한 벌 챙겨갈까요? 수종이가 지하실 기계실에서 1층으로 나올 때 옷 말고 게임기랑 그 액세서리만 챙겼던 게 생각나서요.”

용여홍이 자발적으로 방안을 보완했다.

고민하던 장목화가 답했다.

“일단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 내가 생각하기엔 그 옷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거든. 그 옷을 갈아입었다가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라.

근데 그 말 덕분에 뭔가 생각났네. 수종이는 그때 토마토 달걀 볶음이라는 음식을 되게 먹고 싶어 했어. 그럼 우리 토마토랑 달걀을 챙겨갔다가 상황을 봐서 수종이에게 그걸 만들어주자.”

“좋아요!”

성건우가 손을 들어 입가를 훔쳤다.

“그래, 그럼 이렇게 결정하자.”

장목화는 한숨을 뱉으며 무선 통신기를 꺼냈다.

이번에는 전보를 보내지는 않고 받기만 할 계획이라 연락을 위한 전용 안전 가옥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반고 바이오에서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어젯밤 구조팀의 보고에 대한 회신을 보내왔다.

「불모지 13호 유적에 재방문하지 않고 사흘만 넘기면 괜찮을 것.」

“그럼 다들 사흘만 고생하자고.”

장목화는 손에 쥔 전보를 흔들며 말했다.

회사의 명확한 답에 용여홍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하룻밤이 지나는 동안 구조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구조팀은 일단 전에 빌린 차를 돌려주고 다른 곳에서 미니밴을 빌린 뒤 미리 정해둔 식량을 샀다. 도중에 회사에서 받은 지프는 원래의 녹회색으로 도색하기도 했다.

할 일을 마친 구조팀은 차 두 대에 나눠 탄 다음, 앞뒤로 레드울프 구역에 진입했다. 목적지는 성건우가 꿈에서 본 그 거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하니, 길가에 붙은 그리 높지 않은 한 건물이 있었다. 구조팀은 다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으로 5층까지 오른 성건우가 곧장 오른쪽에 붙은 문으로 다가갔다.

쾅쾅!

따로 수종이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그로부터 수십 초가 지났을 무렵, 문이 슬그머니 열렸다.

끼익-

안에선 붉은 근육이 밖으로 드러난, 무시무시한 고양이가 나타났다.

“야옹!”

이 소리를 낸 건 수면 고양이가 아닌, 성건우였다.

그는 새로 배운 고양이어로 직접 인사를 나누려고 했다.

그러나 수면 고양이는 성건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으로 비켜서며 구조팀이 방으로 들어올 수 있게 길을 내주었다.

안을 한번 들여다본 장목화는 대형 패널 모니터, 검은색 게임기와 그곳에 연결된 컨트롤러, 바닥에 놓인 빨간 책가방을 보았다.

그곳에 노란 옷을 입은 검은 머리의 남자아이가 있었다.

성건우는 진심으로 반갑게 인사했다.

“수종아! 밥은 먹었어? 피자랑 크림빵 사 왔어! 토마토랑 달걀도 가져왔지! 토마토 달걀 볶음 해줄 거야.”

잠시 머뭇거리던 수종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뒤 못내 아쉽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동시에 아이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

* * *

15분 뒤, 수종이는 맛있는 토마토와 달걀 앞에 앉았다.

“진짜 맛있어! 쟤네는 이런 걸 못 만들어. 끓이거나 굽는 것만 할 줄 알아. 그것도 까맣게 태울 때도 있고, 제대로 안 익어서 한 입 먹으면 피가 나올 때도 있다고.”

매우 만족한 듯한 수종이는 또 피자를 몇 입 베어먹었다.

“이거 만들긴 엄청 쉽지!”

장목화가 제안했다.

“한 번 가르쳐 보는 게 어때?”

그녀가 장장 15분에 걸쳐서야 토마토 달걀 볶음을 완성한 건, 심각하게 지저분한 주방 때문이었다. 용여홍, 백새벽과 정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망설이던 수종이 말했다.

“당분간은 필요 없어. 쟤네도 아직 배울 수 없을 거야.”

‘고등 무심자의 지능은 그 이상 회복될 수 없는 건가?’

장목화는 짐짓 실망한 척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아.”

그녀는 현재 주위에서 생물 전기 신호를 느끼기는 했으나 이곳은 아파트라 당연히 다른 이들도 살고 있을 것이므로 수종이를 보호하는 고등 무심자들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는 판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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