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화. 사후
양범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하명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사람이네. 이전까지만 해도 정말로 이 폐허 도시의 비밀을 파헤치고 그 사람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싶었는데.”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웨트가 놀란 새처럼 입을 열었다.
“오하명은 전기를 통한 방식으로 도는 회로, 회로판, 전자 제품 안에 있다고 두 번이나 말했었잖아. 그것도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거 아닐까?”
“거기에 주관적인 경향에 관련한 의미는 없었어. 별문제 없었을 거야.”
장목화가 단호하게 부인했다.
곧이어 그레이도 가죽옷을 단단히 여민 후 대화에 참여했다.
“그 두 번 동안 오하명은 왜 확신도 없고 쓸모도 없는 말을 했을까?”
누구도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지만, 성건우는 웃으며 대꾸했다.
“강박증 같은 것일 수도 있잖아. 일단 목표한테 전도해야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야.”
“그럴지도⋯⋯.”
몇 초간 생각에 잠겨 있던 양범구도 동조했다.
계속 대화가 오가는 동안에도 아홉 명의 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마치 뒤편에 그들을 삼키려는 괴물이 따라붙은 것만 같았다.
아니,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그랬다.
그렇게 스피커가 설치돼 있을지 모를 건물을 우회한 아홉 명은 다시 한번 그 공원을 마주하게 되었다.
* * *
전진 캠프로 돌아온 구조팀은 퍼스트 시티 엘리트팀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보고 여기서 하룻밤을 쉰 뒤 하산하기로 했다.
석양 아래, 구조팀과 양범구 일행은 패링턴에게서 찾은 신문을 살피기 시작했다. 지방지에 속한 신문엔 파흐 지구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을 위주로 국제 정치, 연예계 스캔들 따위가 실려 있었다.
빠르게 내용을 살피던 장목화는 한 기사에서 시선을 멈췄다.
「제29회 바이오 기술 국제 박람회가 파흐에서 거행됐다. 북방 회사에서는 최신 유전자 연구의 성과를 전시했다⋯⋯.」
장목화는 다음으로 티 나지 않게 시선을 돌려 다른 기사를 살폈다.
그렇게 아홉 명이 모두 다 신문을 돌려 보고 난 뒤,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주의할 만한 기사 있었어?”
외부인이 있었기 때문에 게네바는 현재 평범한 로봇인 척하고 있었다.
먼저 파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조하듯 웃었다.
“전부 다 아주 정상적인 기사들이었어. 난 원래 폐허 도시에서 찾아낸 옛날 신문을 보는 걸 좋아하거든. 보고 있으면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지금보다 어느 면이 더 나았었는지 알 수 있어. 지금 이 애쉬랜드를 잊고, 내 삶도 그렇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음, 이 신문은 내가 여태까지 본 그런 신문들이랑 다를 게 없어. 형식이랑 내용도 거의 일치해.”
양범구, 웨트, 그레이 역시 가치 있는 기사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두의 의견을 듣고, 조금 망설이던 장목화가 대꾸했다.
“근데 오하명은 우리랑 농담 따먹기를 하자고 패링턴한테 이 신문을 가져가게 한 게 아닐 거야.”
그 말에, 양범구는 조금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쩌면 우리 식견이 충분치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몰라. 신문 내용을 좀 베껴가도 돼? 하하, 나중에라도 식견이 넓은 사람을 만나면 한 번 물어보게.”
“그럼.”
장목화가 호쾌하게 답했다.
뒤이어 성건우가 양범구의 배낭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으로 베껴가려고? 그보단 다른 사람한테 카메라 빌려서 한 장씩 촬영해. 그다음에 전자 문서로 만들면 되잖아.”
양범구 배낭엔 운행 속도가 느린 구식 컴퓨터가 한 대 들어있었다.
“근데 여기 카메라 가진 사람 있어?”
양범구는 설마 내가 그 쉬운 방법을 몰라서 이랬겠냐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성건우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게네바를 가리켰다.
“다기능 로봇은 있지.”
‘아이고, 그렇게 종알거린 게 겐을 자랑하려고 그랬던 거야?’
장목화가 남몰래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내 게네바 덕분에 양범구, 그레이는 신문 문서 파일을 획득했다. 반면 파르스, 웨트, 패링턴은 컴퓨터도 없고, 그 신문에 특별히 가치 있는 정보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서 일부 기사만 손으로 베껴 챙겼다.
양범구 일행이 떠난 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장목화는 신문을 들고 바이오 기술 국제 박람회 관련 기사를 가리켰다.
“뭐라도 알아차린 사람?”
성건우가 곧장 웃으며 답했다.
“북방 회사요.”
‘유전자 연구의 성과가 중점이 아니었단 말이야?’
용여홍은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백새벽도 고개를 끄덕였다.
“북방의 모처, 북방의 어느 병원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에요.”
전자는 검은 늪 황야 철강 공장에서 발견한 병력의 주인, 즉 한 식물인간이 새로운 치료를 받기 위해 보내진 곳이었다.
그리고 후자는 병원이라고는 해도 강소월이 혼수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원자 자격으로 참가했던 실험이 이루어진 어느 비밀 기구였다.
구조팀은 그 두 조직이 하나일 거라 의심하고 있었다.
“공통적으로 ‘북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게네바가 백새벽의 사고 흐름 분석에 들어갔다.
이어, 장목화가 답했다.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했어. 다만 종합적인 사건을 다루는 신문이라서 바이오 기술 국제 박람회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지도, 북방 회사에서 어떤 연구 성과를 전시했는지 알려주지도 않았다는 게 아쉽네.”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간단하죠. 모든 지역에는 전문적인 과학 신문이 있잖아요. 그런 신문에는 상응하는 내용이 더 자세히 실려 있을 거예요.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돌아가서 도서관 등을 한 번 더 뒤져보면 충분한 수확이 있을 거예요.”
망설이던 장목화가 대꾸했다.
“그건⋯⋯. 오하명의 진짜 목적이 뭔지 밝혀내지 못한 상황이라서 거길 다시 탐색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맞아, 맞아!”
용여홍이 얼른 동조했다.
그는 지금껏 자신이 불모지 13호 유적을 탐색하는 데 두 번이나 동의한 것도 전부 오하명의 영향 때문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절대 그렇게 담대하게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돌아가 수종이부터 만나고, 상황을 지켜보고 계획도 세워보자.”
친구와 모험 사이에서 2초간 고민하던 성건우는 곧 당장이라도 이 전진 캠프를 떠나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이때 용여홍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전자 연구에 집중하면 저희 회사가 떠오르지는 않나요?”
그의 말뜻은 북방 회사가 전시한 것이 유전자 연구 성과지, 식물인간 소생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애쉬랜드 내에서 비교적 식견이 넓은 이들은 유전자 연구에 관해 가장 먼저 반고 바이오를 떠올리는 편이었다.
장목화가 작게 웃었다.
“위치가 다르잖아. 회사는 서북쪽에 치우쳐져 있으니까. 북방과 유전자를 한데 엮어 보자면, 우리 회사보다는 화이트 기사단이 더 의심스럽지.”
“그러네요.”
용여홍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론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단서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 * *
하늘이 완전히 캄캄해졌을 무렵, 저녁 식사를 마친 구조팀은 성 본채에서 나와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갔다.
쾅!
그런데 위에서 갑자기 뭔가가 콘크리트 바닥으로 강하게 추락했다.
물건이 아니었다.
그건, 사람이었다.
그자의 머리에선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몇 차례 경련 끝에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투신자살? 아니면 누군가가 내던져버린 걸까요?”
용여홍이 물었다.
지금 구조팀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정확한 건 알 수가 없었다.
성건우는 상대를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 살피려는 듯 곧장 앞으로 달려 나갔다. 장목화, 게네바, 백새벽 역시도 생각할 것 없이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잠시 멍한 표정을 드러냈던 용여홍 역시 팀원들을 바투 쫓았다.
“여관 창문에서 뛰어내렸어⋯⋯.”
“자살했나 봐⋯⋯.”
주위 유적 사냥꾼들이 목격한 상황을 근거로 조용하게 수군거렸다.
그들을 지나쳐 사건 현장에 이른 순간, 용여홍의 눈이 커다래졌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이미 숨이 끊어졌다. 채 감지 못한 눈 속에 굳어버린 파란 눈동자가 보이고, 피에 젖은 머리는 본래 금색이었던 듯했다.
흔히 볼 수 있다면 볼 수 있는 금발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문제는 이 남자가 구조팀 모두에게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파르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조팀과 함께했던 독행 사냥꾼은 주검이 돼 있었다.
그 무서운 불모지 13호 유적에서 무사하게 돌아온 이때, 파르스는 별안간 건물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동시에 용여홍의 머릿속에는 불모지 13호 유적 내에서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자살한 유적 사냥꾼들이 떠올랐다.
그중에는 이렇게 투신자살한 이도 무려 다섯 명이나 있었다.
‘이번에는 파르스였지만, 다음에는 과연⋯⋯.’
용여홍의 솜털이 쭈뼛 솟았다.
다음 순간, 장목화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건우는 양범구를 찾으러 갈게. 겐은 그레이랑 패링턴을 찾고, 새벽이랑 여홍이는 빨리 웨트를 찾아. 그 사람들한테 아무 일도 없는지 잘 확인하고, 이동하는 중에도 서로를 살피면서 조금만 이상해도 주의해야 해.”
구조팀 중 아무 영향도 받지 않았으리라 확신할 수 있는 자는 첫 번째 이후로는 불모지 13호 유적에 진입하지도 않았던 게네바뿐이었다.
“네!”
성건우가 가장 먼저 답했다.
이윽고 구조팀 다섯 팀원은 3조로 나뉘어 성 본채로, 이 건물 4층에 자리한 캠프 여관으로 향했다.
* * *
쾅!
성건우가 양범구의 방문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동쪽을 보며 양손을 펼쳐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던 양범구는 어찌나 놀랐는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굴려 옆으로 피했다.
짝! 짝! 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역시 베테랑이네.”
“뭐야?”
양범구는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성건우가 원래 정상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정상이 아닐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파르스가 투신자살했어.”
장목화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양범구의 눈이 커다래졌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몰라.”
장목화는 게네바, 백새벽, 용여홍의 무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다른 방에 도착한 게네바도 성건우처럼 나무 문을 몸으로 들이받았다.
이곳에 있던 그레이는 등불을 켠 채 화로 주위를 맴돌며 한창 뜨거운 여름밤의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멈춰선 그가 고개를 틀었다. 그뿐만 아니라 습격을 피하려는 준비 자세를 갖추기도 했다. 다만 그레이는 인간의 의식을 감지하는 능력이 없어서 미처 반격할 준비까진 할 수 없었다.
뒤이어 그는 눈으로 붉은빛을 발하며 손발을 움직여 춤을 추기 시작한 로봇을 발견했다.
“⋯⋯.”
그레이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간단한 춤을 끝까지 춘 게네바가 입을 움직였다.
“야가 그랬어, 예의란 평등이라고.”
“무, 무슨 일이라도?”
혼란에 빠진 그레이가 물었다.
게네바의 굵직한 합성음이 울렸다.
“파르스가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어.”
“뭐?”
그레이는 순간 깊은 두려움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