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화. 양범구의 정보
전진 캠프, 주차장 어느 구석.
“과연 불모지 13호 유적.”
배불리 먹고 마신 용여홍이 감탄했다.
장목화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패링턴이 그 폐허 도시로 가지 않고 다른 출구로 떠난 거면 좋겠네.”
패링턴은 거울 교파에 관해 알고 있다는 유적 사냥꾼이었다. 만약 불모지 13호 유적에 들어갔다면 그 실종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말일 터였다.
“아직 모든 실종자가 발견된 건 아니잖아요. 살아있을지도 몰라요.”
성건우가 드물게도 진지하게 대꾸했다.
“그래,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장목화가 한숨을 내뱉었다.
짧은 침묵 후, 용여홍이 입을 열었다.
“폐허 도시엔 전부 이상하고 무시무시한 존재가 하나씩 다 있는 걸까요?”
늪 1호 유적을 떠올리면서 갖게 된 의문이었다. 그곳에는 무심자의 왕이라 의심되는 수종이가 있었고, 불모지 13호 유적에는 오하명이 있었다.
“변이 생물의 출몰로 보면 폐허 도시는 아홉 개 연구원과도 관련된 것 같다.”
게네바가 덧붙인 말에, 장목화가 살짝 웃었다.
“하지만 그 관계는 딱히 밀접하지 않을 거야. 너희 머신 헤븐도 원래는 제3 연구원이었지만⋯⋯.”
순간 장목화가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팀원들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이 갔다.
만약 머신 헤븐에도 다른 폐허 도시처럼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존재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소스 브레인일 것이었다.
게네바 역시 장목화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린 듯했다.
“근데 우리 쪽에도 변이 생물은 없어.”
“하하, 그냥 추측이야. 가설은 대담하게, 실증은 조심스럽게 해야지.”
장목화는 곧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을 돌아보았다.
“며칠 뒤에 불모지 13호 유적, 다시 탐색해 볼까?”
용여홍이 바로 나섰다.
“너무 위험해요.”
백새벽도 같은 뜻을 보였다.
“오하명은 지금 우리가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우리 위력 대부분은 첨단 기술 제품에 달려 있어요. 그런 제품들은 회로나 회로판에서 벗어날 수 없죠. 오하명 앞에선 우린 손발이 묶여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구조팀 중 첨단 기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각성자 성건우뿐이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장목화가 말했다.
“여태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오하명은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이 자리한 그 구역을 떠나지 못하는 것 같아.”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디마르코가 생각나네요.”
지하 방주에 봉인된 디마르코 역시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이때 용여홍이 의견을 덧붙였다.
“디마르코보다는 오하명이 훨씬 위험한 것 같아. 또 각자 우세한 능력을 보이는 영역도 다르고.”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아. 오늘 상황으로 볼 때 방송국에 접근하지만 않으면, 또 전자 제품을 휴대하지만 않으면 오하명의 영향은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 그 사람 부하, 애완동물, 그 전자 꼭두각시로 인한 방해만 경계하면 돼. 우리도 그 정도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잖아.
음, 그 도시 유적 안에 강력한 생물이 또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 우리가 일부러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않는 이상 만날 일은 없겠지만.
그런 생물에게는 영역 의식이라는 게 있고, 오하명이 또 다른 구역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할 테니까.”
짝짝짝!
어김없이 들려온 성건우의 박수 소리에, 장목화가 인상을 구겼다.
“아직 말 안 끝났어! 그러니까, 또 탐색하겠다면 행동 목표를 좀 바꿔야 해. 더는 그 유적의 비밀을 파헤치려 해선 안 돼. 빚 갚는데 쓸 물자를 수집하고 그 김에 패링턴을 찾아보자.
도중에 유용한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고, 그 흰 늑대를 잡을 수도 있어. 그러면 가장 좋기야 하겠지만 안 될 상황에 굳이 노력하지는 말자고. 이러면 위험은 최대한 피할 수 있을 거야.”
용여홍은 전의 경험을 떠올려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네, 물자 수집만 하고 심하게 먼 곳까지만 안 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이제 와 돌이켜보니 전의 모험에서 흰 늑대의 습격을 받았을 때를 제외하면 전부 지레 놀랐던 것일 뿐, 실질적인 위험은 없었었다.
성건우가 웬일로 용여홍의 말에 동조하며 웃었다.
“맞아. 정말로 오하명을 만나고 싶다면 이두형 선생님이나 수종이를 데려가야 할 거야.”
‘오늘은 웬일로 또 멀쩡하대?’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백새벽까지 고개를 끄덕이자, 장목화도 웃었다.
“그럼 이렇게 결정하자. 일단 회사에 오늘 있었던 일들 보고하고 상부에서 어떻게 나오는지도 한번 보자.”
* * *
저녁에 구조팀이 막 전보를 보냈을 때, 양범구가 찾아왔다.
“어? 다 모여있는 게 아니었네?”
주위를 한번 둘러본 그가 성건우, 용여홍의 부재를 알아차렸다.
장목화가 웃었다.
“화장실.”
매일 많은 유적 사냥꾼이 오가는 전진 캠프는 공용 화장실이 충분했다. 다만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 그다지 깨끗하지는 않았다.
화장실의 끔찍한 악취는 그 장소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여관에 묵는 이들에게까지 퍼질 정도였다. 오래된 성을 고쳐 만든, 이 크지도 않은 캠프엔 딱히 냄새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또 이곳은 치안 상태도 별로인 데다 질서가 잘 지켜지지도 않았다. 본인 실력에 충분한 자신이 없다면 화장실에 갈 때도 반드시 동료와 함께여야 했다. 안 그럼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다가 갑자기 모든 물건을 다 뺏길 수도 있었다.
용변을 보다 벌렁 나자빠진 사람이 강도를 어떻게 제압하겠는가.
양범구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린 불모지 13호 유적에 한 번 더 가 보기로 했어. 너희는?”
“거기에 다시 가 보겠다고?”
장목화가 의도적으로 되물었다.
이때 백새벽도 그녀를 도와 덧붙였다.
“그렇게 위험한 곳에?”
양범구가 웃었다.
“돌아와 안정을 찾은 뒤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사실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니더라고. 흰 늑대가 나타났던 때를 제외하면 습격을 받은 적도 없고. 또 오늘 수확으로 모두 굉장히 풍족해졌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장목화는 픽 웃으며 언젠가 양범구가 했던 말로 되받아쳤다.
“욕심이 사람을 죽이는 법이지. 그래, 우리도 다시 한번 가 보려고 준비하고 있었어. 이번엔 작전의 목표도 바꿨어.”
그녀가 팀에서 토론한 내용을 간추려 설명하자, 양범구는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퍽 감명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게 제일 온당한 방안 같네. 그럼 모레 어때? 그보다 더 늦었다가는 조금 더 골치 아파질 거야.”
“왜?”
장목화는 양범구 말에 담긴 뜻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양범구는 성 본채 쪽을 한번 돌아보았다.
“여기 주둔군이 흰 늑대의 최신 상황을 상부에 보고했대. 퍼스트 시티에선 한 엘리트팀을 보내서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에 그 위험한 생물을 처리할 계획이라나 봐.
명목상으로는 흰 늑대에 현상금을 건 귀족들이 더 기다리지 못하고 군의 자원을 이용해 목적을 이루려는 거라고 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그들이 흰 늑대 뒤에 꽤 큰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아.”
“엘리트팀⋯⋯.”
장목화가 생각에 잠겨 조용히 그 말을 되풀이했다.
양범구는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퍼스트 시티 정규군 내 엘리트팀은 너희랑 비교해도 절대 약하지 않아. 각자 다른 분야에 특기가 있어. 총 열두 명인데, 최소 장비 여섯 대를 갖춘 외골격 장갑조도 있고, 각성자 대여섯이 모인 각성자팀도 있어.
하하, 우리처럼 우연히 만나 조성된 팀이랑 다르게 철저한 선발 절차를 걸쳐서 결성된 조직이지. 그만큼 각자 특기로 서로를 보완하기 때문에, 심령의 복도급 강자는 없어도 힘을 합친 상황에선 무시무시하게 위력적이야.”
“그렇구나.”
사실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장목화는 적당히 대꾸했다.
계속해서 양범구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 캠프에 너희가 외골격 장치를 갖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해. 난 스스로 잘났다고 자부하는 그 녀석들이 너희를 노려 무슨 내기라도 할까 걱정 돼. 그래서 최대한 빨리 탐색하고 그들이 오기 전에 떠나고 싶어.”
“좋아, 그럼 모레 출발하는 걸로 하자.”
장목화는 아무리 강한 용이라도 그 지방의 뱀을 이기진 못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지방의 뱀이라고 할 수 있는 엘리트 팀은 뱀보다는 용에 더 가까운 존재였다.
확답을 얻은 양범구가 떠나려던 그때, 백새벽이 불쑥 물었다.
“네가 생각하기에는 흰 늑대에 현상금을 건 귀족이 누구일 것 같아?”
양범구가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도⋯⋯. 집정관 베울리스의 아들이겠지.”
“아, 그 사람.”
장목화는 바로 아수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후, 백새벽도 더 이상의 질문을 이어가진 않았다.
* * *
깊은 밤.
잠에서 깬 용여홍, 백새벽은 성건우와 장목화를 대신해 불침번을 섰다.
성건우는 지프 뒷좌석에 눕자마자 빠르게 잠들었다.
정신이 흐릿하고 몽롱해져 가는 가운데, 성건우의 시야에 문득 차창을 두드리는 총총한 짐승의 발 하나가 잡혔다.
가죽도, 털도 없는 그 발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성건우가 차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성건우의 눈앞에 전갈 같은 꼬리, 어깨에 가시처럼 돋은 날카로운 뼈가 들어왔다.
야옹-
피처럼 붉은 근육이 밖으로 드러난 수면 고양이가 옅은 울음소리를 내곤, 돌아서 꼬리를 살랑 흔들며 전방의 길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성건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수종이가 너더러 날 데려오라고 했어?”
야옹-
마치 대답하듯 수면 고양이가 한 번 더 울었다.
그렇게 성건우가 모퉁이에 이르러 왼쪽으로 방향을 꺾는데, 그곳에 익숙한 거리가 있었다. 레드울프 구역 근처, 골든애플 구역의 어딘가였다.
구조팀은 일찍이 이곳을 지나친 적은 있으나 멈춰선 적은 없었다.
계속 수면 고양이를 따라 거리를 가로지르고 골목을 건넌 성건우는 곧 길가의 한 건물 앞에 이르렀다. 그리 높지는 않은 건물이었다.
계단을 올라 5층에 가니, 성건우 오른쪽에 자리한 문이 약간 틈을 남긴 채 살짝 닫혀있었다.
끽-
수면 고양이가 몸으로 문을 밀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잔뜩 흥분한 성건우는 그 문을 홱, 열어젖힌 채 크게 외쳤다.
“수종아!”
안에는 노란색 옷을 입은 아이가 앉아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아이도 곧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고여덟 살 정도의 검은 머리칼을 가진 남자아이, 수종이가 맞았다.
순간 잠에서 퍼뜩 깨어난 성건우는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앉았다.
곧이어 또렷한 희색을 드러낸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수종이가 가위 말을 시켜 현재 있는 곳을 이런 방식으로 알린 건가?”
* * *
다음 날 오전.
성건우가 꿈에서 있었던 일을 동료들에게 공유했다.
“수종이가 거기 살고 있다고?”
장목화는 퍽 놀란 눈치였다.
레드울프 구역에 속한 그 거리는 골든애플 구역 근처였고, 그린올리브 구역과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장목화가 전에 했던 추측과는 영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녀의 추측은 그린올리브에서 폭발한 무심병이 수종이와 관련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한 것이었고, 어디까지나 그건 하나의 가설에 불과했다.
백새벽이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최근에야 그곳으로 이동한 것일 수도 있죠.”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다시 얘기해보자. 우리가 북안 뭇 산에 온 3대 임무 중 하나는 완수했네. 남은 두 개 중 하나도 이미 성공의 희망이 보이고.”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가위 말을 통해 수종의 행방을 파악하는 임무도 이렇게 완수했다는 뜻이었다.
흰 늑대를 체포해 빚을 갚는 임무는, 결국 흰 늑대를 잡지는 못하더라도 불모지 13호 유적에서 여태까지 얻은 물자에, 앞으로 한 번 더 탐색을 진행하면서 수확할 물자까지 더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정 모자라다 싶으면 회사에 한 차례 경비를 더 요청하면 될 테니 부득불 흰 늑대를 잡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다.
사냥꾼 임무는 접수 인원에 강제로 제한을 두지 않기에, 완수하지 못하더라도 신용 점수에 영향이 가진 않았다.
이로써 현재 유일하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임무는 유적 사냥꾼 패링턴을 찾는 일이었다. 구조팀도 그를 찾기 위해 세 번째 탐사를 결정했다. 패링턴은 잘못된 길을 들어 그 폐허 도시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무튼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구조팀은 다음 날 진행될 탐색을 마치고 바로 퍼스트 시티로 돌아가 그 후에 있을 격투를 관람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