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06화 (406/649)

406화. 경솔한 성격?

이내 장목화가 성건우의 말을 받았다.

“흰 늑대의 매혹 능력에는 숫자 제한이 있긴 해도, 자발적으로 그 목표를 선택할 순 있는 모양이야.”

이는 차으뜸의 능력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늑대는 어떻게 제가 주위를 감지하지 않았던 그 틈을 정확하게 노려 효력 범위에 진입했을까요?”

성건우는 이에 관해 상당한 의혹을 안고 있었다. 동료 중 생물 전기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장목화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장목화도 그 부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번 주위를 둘러본 장목화는 갑자기 눈빛이 반짝였다.

“설마……. 저걸 이용했으려나?”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린 용여홍, 백새벽, 양범구 팀은 가로등에 달린 감시 카메라를 볼 수 있었다.

장목화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전자 제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이 폐허 도시에도 전자 제품이 없으리라 볼 수는 없어.”

“그럼 저, 저것들이 오하명의 눈이라는 건가요?”

용여홍이 거의 내뱉듯이 말을 쏟아냈다.

양범구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근데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어. 여기 전기는 일찍이 끊겼을 거야.”

그럼 오하명은 전기 없이도 전자 제품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내 백새벽이 반문했다.

“확인해보지도 않고 여기 전기가 끊어진 건 어떻게 확신하겠어?”

백새벽을 비롯한 구조팀은 늪 1호 유적을 방문한 경험이 있었다. 그곳은 정기적으로 전기가 통하던 곳이었다.

계속 거리 가장자리의 한 가게를 바라보던 장목화가 제안했다.

“들어가서 확인해보자. 등이 켜지는지 안 켜지는지.”

모두 이 구역에서 벗어나는 데 급급해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무시해버린다면 오히려 더 큰 화를 당하게 될지 몰랐다.

“좋아.”

양범구 팀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 * *

제일 먼저 앞장선 성건우가 거리 가장자리 가게에 들어가 총구로 스위치를 눌렀다. 하지만 가게에 걸린 등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등 자체가 망가져 버린 것일 수도 있어.”

용여홍이 다른 가능성을 말하던 순간이었다.

지직- 지직-

가게 등이 소리를 내더니 흰빛을 발했다.

불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전압이 굉장히 불안정한 모양이었다. 명암의 교차도 매우 불규칙했다.

“이건⋯⋯.”

웨트가 놀란 듯 탄성을 내뱉었다.

이 폐허 도시에 원래부터 전기가 존재했던 게 아니라, 누군가 이들이 등을 켠 것을 보고 의도적으로 이쪽에 전기를 공급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등은 스위치를 누르자마자 켜졌을 것이었다.

“역시.”

양범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는 정말 모종의 방식으로 생성된 전기가 존재하는 듯했다.

용여홍이 곧장 입을 열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철수하죠.”

장목화와 성건우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두 사람은 계속 번득이는 등을 바라보며 무슨 중대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요?”

백새벽이 물었다.

장목화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말했다.

“등이 깜빡이는 패턴이 꼭 모스 부호 같아서.”

“뭐?”

양범구 팀이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모스 부호라니……. 상상도 하지 못한 방향이었다.

이윽고 장목화가 보조 칩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빠르게 부호를 해석한 뒤 느릿하게 입술을 뗐다.

“해석해보니 이런 내용이네. 도는 회로, 회로판, 전자 제품 안에 있다.”

장목화가 해석한 내용을 듣고, 다들 머리가 다 저릿해졌다.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 주인 오하명이 이들을 향해 특별히 인사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용여홍은 입술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친구 성건우가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래, 굳이 말 안 해도 돼. 내가 대신 말해줄게. 휴, 그래도 여기 전자 제품은 아무 공격성도 발휘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서 다행이네.”

‘히익……!’

속으로 질겁한 용여홍은 습관적으로 성건우에게 반박하려 했지만, 사실 그런 상상을 안 해본 게 아니었기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가자.”

웨트가 용여홍에 이어 빨리 철수를 주장했다.

장목화, 성건우는 바깥 가로등을 쳐다봤다가 천천히 걸음을 뗐다.

8명은 각자 한쪽씩 차지한 채 질서정연하게 가게를 빠져나갔다.

그들이 떠나자, 가게 불이 완전히 꺼져버렸다.

“손님 대접이 아주 훌륭하네.”

성건우가 칭찬했다.

그러나 그 외의 나머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심스레 걸음만 재촉했다.

* * *

다들 전에 비교해 훨씬 더 긴장한 상태였다. 주위에 존재하는 갖가지 전자 제품이란 제품은 다 경계하고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이미 망가져 전기나 신호가 들어가도 작동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세상일엔 늘 예외가 있지 않은가. 수많은 전자 제품 중 조금 전 가게 안의 등처럼 아직 사용 가능한 게 있을지도 몰랐다.

그것이 오하명에게 통제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누구도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지만, 성건우는 꿋꿋했다. 돌격 소총을 들고 팀의 전술 대형에 충실하면서도 계속 웃으며 종알거렸다.

“그 흰 늑대가 사람이었다면 분명 경솔한 성격이었을 거야.”

“왜?”

양범구가 호응했다. 그는 아직 성건우를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습격했잖아. 우리 쪽에 로봇이 없다는 이유로.”

성건우가 웃으며 답했다.

이번엔 장목화도 피식 웃었다.

“우리 여덟 명이야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생각했겠지. 매혹 능력이면 몇몇은 자기 도우미로 삼고, 동시에 우리 쪽 전력을 대폭 약화할 수 있잖아.

그래도 경솔하긴 하지? 본질은 동물이라 지능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일 거야. 우리가 감히 다시 여기로 찾아와 자신을 쫓으려 했지만, 우리한테 매혹 능력을 약화하거나 예방할 수단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한 거지.”

순간 양범구 일행이 구조팀을 바라보았다. 장목화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린 탓이었다.

양범구에게 매혹에 대항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첨단 기술에만 의지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이 팀에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얘기였다.

다만, 그들이 여태까지 그런 능력을 발휘하지 않은 건 당시 흰 늑대는 독행 사냥꾼 팀만 노렸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흰 늑대가 구조팀을 택하지 않은 건 이들을 대적하기 힘든 상대라 여겼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성건우는 앞으로 나아가는 내내 허리를 살짝 굽힌 채 총구를 움직여 사방을 경계하면서도 열심히 호응했다.

“흰 늑대는 모를 수 있겠지만 오하명이 모를까요? 흰 늑대가 헤드셋을 착용한 걸 봤어요. 분명 그걸로 명령받았을 거예요.”

‘그건 좀 너무 말이 안 되지 않나?’

용여홍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흰 늑대가 정말로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전자 제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오하명이 그 헤드셋을 통해 명령을 내리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이었다.

“테스트였나?”

백새벽이 중얼거렸다.

“그럴지도.”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양범구가 뭔가 생각에 잠겨 말했다.

“다른 가능성도 있지. 군명유소불수(*君命有所不受: 전쟁터에서 장군이 제왕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라는 말도 있잖아.”

이는 구조팀에게 하는 말이라 양범구는 웨트와 그레이, 파르스가 알아듣지 못할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불필요한 불만을 불러오지 않기 위해 여전히 레드리버어를 사용하고 있기는 했다.

“아니야, 오하명은 부하를 통제하는 능력이 대단한 자일 거야.”

장목화는 수종이와 수종이를 위해 노동했던 가위 말, 고등 무심자들을 떠올리며 양범구의 말을 부정했다. 일단 조금 전 일을 겪고서, 기본적으로 흰 늑대가 정말 오하명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는 판단은 내린 상태였다.

그러자 양범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의도적으로 명령에 불복종한 게 아니라 성격적인 결함일 수도 있지. 변이 생물은 각성자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만큼 대가를 치를 수도 있잖아.”

장목화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되물었다.

“그 대가가 경솔이나 오만함이라는 거야?”

양범구는 확신에 찬 답을 하지는 않았다.

이때 가죽옷을 꼭 껴입은 그레이가 몸을 웅크리며 웃었다.

“너희들 정말 담이 크구나. 이런 상황에서도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다니.”

다른 팀이었다면 진작 모든 말수를 잃고,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에도 과민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었다.

장목화가 웃으며 대꾸했다.

“멈춰있는 것도 아니고, 주위에 대한 경계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말 정도는 할 수 있잖아. 토론하면서 상황을 확실히 파악해야 그 후에 발생할 뜻밖의 상황에 대해서도 유용한 조치를 할 수 있어.”

갑자기 웨트가 못 참겠다는 듯 튀어나왔다.

“근데 얘기하다 보면 집중력이 흩어지잖아. 난 너희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주위 경계에 집중할 수가 없다고.”

전보다 훨씬 신중해진 웨트는 더 이상 길에 세워진 차 문을 멋대로 열며 가치 있는 물건을 찾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별을 필수로 하고, 전기 자동차는 무조건 피했다. 전기로 움직이는 거라면 역시 오하명에게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성건우가 웃으며 웨트에게 답했다.

“안 그래, 우리는 수가 많잖아.”

웨트는 물론, 나머지 세 유적 사냥꾼 모두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8명은 계속 공원 쪽으로 나아갔다.

까악- 까악-

이따금 까마귀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외의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묵직한 적막감이 폐허 도시를 짓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 * *

마침내 공원으로 돌아와 인공 호수를 우회한 뒤,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묵직한 금속 문이 닫혀있었다.

“우리가 떠나는 걸 원치 않나 보네.”

성건우가 뿌듯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쩌지?”

웨트가 물었다.

그에 용여홍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도 묻고 싶던 말이었다.

“억지로라도 열어야지.”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문 앞으로 다가갔다.

대문 상황을 살피던 그녀는 옆쪽에 붙은, 개폐 스위치로 보이는 건 떼어낸 뒤 왼손을 그 안에 끼워 넣었다.

이번에는 침입이나 프로그램 파괴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래서는 오히려 오하명에게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장목화가 채택한 방법은 폭력적인 파괴였다.

파직!

구멍 안에서 번득인 밝은 빛과 함께 거친 전류가 마구 밀려들었다.

문 개방 시스템을 파괴한 뒤 장목화는 문 앞으로 돌아와 양손을 얹었다.

성건우도 바로 나와서 장목화를 도와 힘을 보탰다.

끼긱- 끼긱-

묵직한 금속 문이 느릿하게 뒤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양범구, 웨트, 그레이, 파르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난번 묵직한 금속 문을 닫은 건 게네바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평범한 삶이 괴물 같은 힘을 발휘해 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 넷이 힘을 다 합친다고 해도 미동도 없을 대문이었다.

“넌 왜 힘 안 줘?”

장목화는 성건우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성건우가 그녀를 한번 내려다본 뒤, 조용히 속삭였다.

“전 팀장님의 위력을 가려주는 용도죠. 저 사람들이 놀라 자빠지지 않게요.”

“⋯⋯아주 고맙다.”

장목화가 이를 부득 갈았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동굴로 무사히 돌아간 여덟 명은 게네바가 대기하고 있던 곳에 이르러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이 여덟 명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동굴 밖 13호 유적에서 마주했던 위기만큼 수확도 적지 않았다. 평소에는 1년, 심지어는 몇 년을 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상당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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