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화. 지연
각자 어느 정도 물자를 취득한 두 팀은 옆쪽 한 주거 구역에 진입했다.
이곳은 그 검은 빌딩에서 가장 가까운 주거 구역이었다.
“저 빌딩에서 일하던 사람 중 여기 살던 사람이 있으려나⋯⋯.”
장목화가 팀원들을 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성건우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구세계 각종 콘텐츠를 보니까, 도시 핵심 구역 집값은 평범한 회사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던데요.”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돈을 감당할 수 있는 건 고위층뿐이지. 그래야 더 가치가 높아지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 집에 세 들어 살 가능성도 있잖아. 직장 근처에서 사는 게 여러모로 편할 테니까.”
이제 그들은 무기를 들고, 주거 구역에 조심스레 발을 들였다.
여태까진 어떤 위험도 맞닥뜨리지 않았지만, 이곳의 기이한 분위기 덕에 이미 모두가 긴장하고 있었다.
막 입구를 통과한 여덟 명은 동시에 전방의 관상용 연못으로 눈이 갔다.
그 연못에 또 시신이 떠 있었다. 물에 퉁퉁 불어 썩어버린 시신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모습이었다.
“흰 늑대가 여기 데려온 사람 중 한 명인가?”
용여홍이 전의 경험을 토대로 추측했다.
‘저 사람은 관상용 연못에서 자살한 걸까? 흰 늑대가 13호 유적에 데려온 사람들은 폐허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살한 건가?’
“헉…….”
이는 용여홍의 소리가 아니었다. 뒤에서 들려온 웨트의 숨소리였다.
하지만 용여홍도 웨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솔직히 웨트가 조금 빨랐을 뿐이지, 용여홍도 곧 숨을 들이마실 참이었다. 계속 펼쳐지는 이 기이한 상황들은 이미 용여홍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곧이어 양범구가 잠시 전방의 시체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여기 오래 머물러 있다가는 이 사람들처럼 아무런 징조도 없이 갑자기 자살하게 될까 봐 무섭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
장목화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순간 눈이 살짝 휘둥그레진 웨트가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그냥 돌아갈까? 물자와 책은 돌아가는 길에 탐색해도 되잖아.”
웨트도 이미 충분한 물자를 얻은지라 계속 탐사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장목화는 성건우, 용여홍, 백새벽을 돌아본 뒤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아.”
이는 그녀의 상상마저 뛰어넘을 정도로 기이한 상황이었다. 장목화 역시도 신중하게 구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약간 아쉬움을 보인 성건우를 제외하면 용여홍, 백새벽도 동의했다.
이를 보고 그레이와 파르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인이라도 이런 곳에 오래 머물고 싶진 않을 텐데, 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강호에서 오래 구를수록, 담은 더 작아진다.
애쉬랜드의 속담에는 틀린 말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여기서 수백 미터, 혹은 그보다 더 멀리 떨어졌을지 모를 어딘가에서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우--!”
아주 정확한 늑대 울음소리였다. 다만 늪 1호 유적에서 들었던 괴물 소리만큼 공포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흰 늑대인가?”
성건우가 상기된 눈빛을 반짝였다.
이때 양범구도 몇 초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잡아버릴까?”
이건 어마어마한 보수가 걸린 임무였다. 양범구 팀과 구조팀이 북안 뭇 산까지 온 목적이기도 했다.
장목화가 무슨 답을 하기도 전, 성건우가 또 난감하다는 듯 대꾸했다.
“주인을 화나게 할까 봐 걱정되는데.”
‘주인? 그래, 흰 늑대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온 게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분명 누군가에게 복종하고 있는 거야.’
용여홍의 심장이 가파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곳 불모지 13호 유적에 흰 늑대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오하명.
용여홍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다들 불모지 13호 유적에 대해 아는 건 그 정도였고, 이곳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지금까지는 오하명 밖에 없었다.
양범구가 문득 포효가 울려 퍼진 곳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저쪽은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과 완전히 반대 방향인데.”
지난번 진입했을 당시 게네바는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이 어느 쪽에 있는지 대략이나마 파악했다. 두 팀이 약속이나 한 듯 그 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탐색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들 얻은 정보를 통해서든, 스스로 판단했든, 오하명이 각종 전자 제품에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인간에게 대적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당시 두 팀은 후속 검사를 통해 동굴 출입구에 붙은 금속 대문이 전기로 통제되는 문이라는 걸 파악했었다. 이 역시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대문은 너무도 묵직해서 매일 인간의 힘으로만 여닫기엔 매우 불편했다. 당시 게네바, 장목화, 성건우가 나서서 대문을 닫았던 건, 처음엔 전기가 통할 거란 생각은 못 한 데다가 본인들 힘에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두 팀이 오하명, 혹은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과 1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만나게 된다면 아니, 그보다 더 가까이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직접 그 상황을 경험하고도 살아남지 않는 이상에야 답이 없었다.
즉, 양범구 말의 요지는 오하명이 정말로 흰 늑대의 주인이라도 그곳에서 흰 늑대에게 영향을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으리라는 뜻이었다.
“흰 늑대 근처에 전자 제품들이 놓여 있을지도⋯⋯.”
장목화가 중얼거렸다.
일반인이라도 이런 곳에 오래 머물고 싶진 않을 텐데, 경험이 풍부한 이들은 오죽하겠는가.
강호에서 오래 구를수록, 담은 더 작아진다.
애쉬랜드의 속담에는 틀린 말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여기서 수백 미터, 혹은 그보다 더 멀리 떨어졌을지 모를 어딘가에서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우--!”
아주 정확한 늑대 울음소리였다. 다만 늪 1호 유적에서 들었던 괴물 소리만큼 공포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흰 늑대인가?”
성건우가 상기된 눈빛을 반짝였다.
이때 양범구도 몇 초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잡아버릴까?”
이건 어마어마한 보수가 걸린 임무였다. 양범구 팀과 구조팀이 북안 뭇 산까지 온 목적이기도 했다.
장목화가 무슨 답을 하기도 전, 성건우가 또 난감하다는 듯 대꾸했다.
“주인을 화나게 할까 봐 걱정되는데.”
‘주인? 그래, 흰 늑대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온 게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분명 누군가에게 복종하고 있는 거야.’
용여홍의 심장이 가파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곳 불모지 13호 유적에 흰 늑대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오하명.
용여홍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다들 불모지 13호 유적에 대해 아는 건 그 정도였고, 이곳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지금까지는 오하명 밖에 없었다.
양범구가 문득 포효가 울려 퍼진 곳을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저쪽은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과 완전히 반대 방향인데.”
지난번 진입했을 당시 게네바는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이 어느 쪽에 있는지 대략이나마 파악했다. 두 팀이 약속이나 한 듯 그 구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탐색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다들 얻은 정보를 통해서든, 스스로 판단했든, 오하명이 각종 전자 제품에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인간에게 대적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당시 두 팀은 후속 검사를 통해 동굴 출입구에 붙은 금속 대문이 전기로 통제되는 문이라는 걸 파악했었다. 이 역시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대문은 너무도 묵직해서 매일 인간의 힘으로만 여닫기엔 매우 불편했다. 당시 게네바, 장목화, 성건우가 나서서 대문을 닫았던 건, 처음엔 전기가 통할 거란 생각은 못 한 데다가 본인들 힘에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두 팀이 오하명, 혹은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과 1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만나게 된다면 아니, 그보다 더 가까이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직접 그 상황을 경험하고도 살아남지 않는 이상에야 답이 없었다.
즉, 양범구 말의 요지는 오하명이 정말로 흰 늑대의 주인이라도 그곳에서 흰 늑대에게 영향을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으리라는 뜻이었다.
“흰 늑대 근처에 전자 제품들이 놓여 있을지도⋯⋯.”
장목화가 중얼거렸다.
양범구는 소리 없이 실소를 터뜨렸다.
“하긴, 그자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선 함부로 덤비지 않는 게 좋지. 누구도 그가 반드시 그 방송국에 있다고 단정할 순 없으니.”
순간 용여홍의 솜털이 쭈뼛 섰다. 이는 오하명이 언제든 그들 주위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때, 성건우가 옆에서 한술 더 떴다.
“오하명이 정말로 방송국을 떠날 수 없을지도 모르지. 안 그럼 벌써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럼 다른 방향으로 가 보자.”
웨트가 곧장 건의했다.
장목화는 용여홍과 백새벽을 한번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레이와 파르스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 * *
여덟 명은 원래의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쪽은 흰 늑대의 포효가 들려왔던 곳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이 자리한 구역도 피했다.
비교적 낯선 길을 선택한 탓에 두 팀은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가 없었다. 수시로 혹여나 당하게 될지 모를 습격에도 대비해야 했다.
이동하는 도중에도 좀 가치 있는 물건이 보이면 바로 챙겼다. 어차피 가는 길이었으니 먼저 손에 넣는 사람이 임자였다.
다들 물자가 충분해서 굳이 내분이 일어날 이유도 없었다.
회색 옷을 입은 성건우는 양쪽 소매를 모두 내려 손목을 가렸다. 뜨거운 태양 때문이었다.
그의 왼쪽 손목에 걸린, 검은 머리카락으로 짠 맹목의 고리는 일정 시간마다 타는 듯한 빛을 발산하며 더 넓은 범위를 감지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그 능력을 유지할 순 없었다. 그랬다가는 이 물건의 기운이 금세 소진될 테니, 몇 분 간격으로 한 번씩만 활성화해야 했다.
* * *
어지럽게 널린 차들과 일부는 녹색 식물로 점령당한 거리에 두 팀은 양쪽 가장자리로 나뉘어 걸었다. 지금 두 팀 사이 간격은 7~8미터 정도였다.
성건우는 구조팀 선두에서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쥐고, 전봇대와 가로수 사이를 착실하게 걸어 나갔다. 2분 전, 한 차례 감응을 마친 결과 100미터 반경에는 인간의 의식도, 변이 생물의 의식도 감지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양범구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장목화가 그쪽에 난 좁은 골목길을 바라보았다.
“뭔가가⋯⋯ 이상해⋯⋯.”
곧장 경고하며 자라목 기관단총으로 난사하려는데, 갑자기 장목화의 사고가 더뎌졌다. 싸늘한 한기에 습격당해 생각이 얼어붙은 것처럼, 아주 오래도록 수리받지 못한 골동품 컴퓨터처럼 머릿속 자체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장목화는 그레이가 이쪽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약간 거친 얼굴엔 열광적인 빛이 가득했고, 파란 눈은 굳은 채였다.
‘흰 늑대⋯⋯ 에⋯⋯ 매혹⋯⋯ 당했어⋯⋯.’
장목화가 이런 생각을 떠올린 찰나, 성건우와 백새벽도 약간 이상해졌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평소보다 3분의 1은, 그보다 배는 느려져 있었다.
반면 용여홍만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고 곧장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유리한 위치를 점거하고 양범구 일행 쪽으로 총을 쏴 화력으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용여홍이 오른발을 막 앞으로 디딘 순간, 근육이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근육이 수축하고 뒤틀림과 동시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쥐가 난 것이었다. 이렇게나 중요한 순간에 다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용여홍의 몸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기울어지던 그때, 순간 그의 시야에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파르스가 잡혔다.
파르스 역시 누군가를 위해 죽기를 각오한 듯 열광적인 얼굴이었다. 주먹은 불끈 쥐고, 눈동자는 깊고 짙은 빛으로 변했다.
거기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웨트가 보이질 않았다. 순식간에 어디론가 증발해버린 것만 같았다.
땅으로 서서히 기울어지던 중, 용여홍은 장목화의 왼팔이 빠르게 올라가는 걸 보았다. 오른팔과 달리 왼팔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편, 독행 사냥꾼 팀 중 가장 기이해 보이는 건 양범구였다. 그는 열광, 흠모, 복종 등의 표정이라기보단 철천지원수를 만난 듯 통한의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뒤이어 그가 자신의 팀원들을 향해 일갈했다.
“통한!”
그 순간, 그레이와 파르스의 얼굴에 드러난 열광과 흠모의 빛이 사라졌다. 그들은 금세 누군가에 대한 극도의 증오로 표정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빠르게 돌아선 그들은 옆쪽 골목길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미 그들보다 앞서 그쪽을 조준하던 장목화가 방아쇠를 당겼다.
그레이가 다시 돌아섰을 때, 장목화는 어느덧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앞서 그녀의 왼팔은 일찍이 예정된 위치까지 무기도 들어 올린 상태였다.
탕! 탕! 탕!
대량의 총알이 발사되며 한 전봇대를 집중적으로 때렸다.
성건우는 돌격 소총을 내려 몸에 건 뒤, 폭군 유탄발사기를 꺼내 함께 목표 구역을 겨냥했다.
콰광!
유탄 한 발이 튀어 나갔다.
요란한 폭발음 속에 흰 늑대가 뒤로 튕겨 나가더니 골목길 모퉁이로 숨어들었다.
살짝 검게 그을려 오그라든 꼬리털에, 머리엔 짙은 검은색 장치가 걸려 있었다. 헤드셋 같은 장치로 보였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흰 늑대는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쫓을까요?”
성건우가 장목화에게 물었다.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그녀는 다시 양범구를 돌아보았다.
“넌 흰 늑대에 매혹당하지 않았던데?”
양범구의 얼굴에 떠올랐던 통한의 빛은 벌써 다 사라진 뒤였다. 그는 전처럼 웃으며 대꾸했다.
“믿을 구석이 없었다면 저 사람들이 날 따라오려 했겠어?”
그레이, 파르스, 그리고 어느새 다시 나타난 웨트는 약간 감탄 어린 얼굴로 양범구를 보고 있었다.
“휴, 흰 늑대 녀석, 우리를 매혹하려 하지는 않았어⋯⋯.”
성건우가 살짝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랬다면 녀석을 깜짝 놀라게 해줄 수 있었을 텐데.’
용여홍도 이번엔 조용했다. 그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