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03화 (403/649)

403화. 탐색

출발일은 눈 깜짝할 새 찾아왔다. 구조팀의 다섯 팀원은 날이 밝기 전 분분히 개인 정비를 마쳤다.

출발하기로 한 시간까지 약 1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시간을 확인한 장목화가 백새벽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일단 차로 대문 근처까지 이동하자. 줄 안 서도 되게.”

해가 떠오를 때 전진 캠프를 오가는 유적 사냥꾼들이 상당히 많았다.

구조팀은 길이 막히는 시간까지 고려해, 차량이 몰리는 반대 방향으로 우회해 성 뒤쪽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때, 성건우가 동쪽 한구석을 가리키며 웃었다.

“양범구네요.”

바로 장목화의 시선이 돌아갔다.

가무잡잡한 피부의 양범구는 평소와 다름없는 옷차림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서서 붉어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사실 양범구는 떠오르고 있는 태양을 직시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성벽이 그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양손을 들어올린 양범구가 날개를 펼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뒤이어 그는 때로는 손을, 때로는 발을 움직이며 기이한 박자에 맞춰 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춤을 추는데요?”

성건우가 중얼거렸다.

장목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춤 같지는 않은데⋯⋯. 굿이나 종교의식 같은 거 아닐까?”

몇 분을 들인 끝에 모든 동작을 마친 양범구는 성 본채 옆문으로 향했다. 그러다 양범구도 곧 구조팀을 발견했다.

“어? 너희 벌써 준비 다했어?”

성건우는 바로 창을 내리고 고개를 쏙, 내밀었다.

“방금 춤을 춘 거였어?”

성건우 눈빛엔 흥분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잠시 흠칫했던 양범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체력 단련하는 운동. 구세계 한 폐허 도시에서 발견한 건데, ‘독수리의 비상’이란 것도 있고, ‘시대가 부른다’란 것도 있고, 뭐 정확한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빠진 동작들이 있어서 내가 멋대로 첨가했어. 아무튼 이런 운동이 체력 단련에 꽤 효과가 좋아.”

“⋯⋯.”

박학다식한 장목화는 애써 웃음을 꾹 참으며 성건우를 바라봤다. 성건우는 실망하긴커녕 당장 해보고 싶다는 듯 의욕 가득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한번 흘겨본 뒤, 양범구와 인사를 나눴다.

“크흠, 그래. 대문에서 만나.”

“좋아.”

양범구도 얼른 본채 안으로 들어갔다.

* * *

사람 8명, 지능인 하나로 이뤄진 두 팀은 날이 밝자마자 차를 타고 전진 캠프를 떠나 전의 그 동굴에 도착했다.

다들 RC카로 전방을 정탐한 뒤 이동했던 지난번처럼 신중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조급하다거나 덤벙대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아침 10시 즈음, 저 멀리 활짝 열린 금속 대문이 보였다.

“전자 제품은 전부 두고 가.”

양범구의 말에, 장목화가 제안했다.

“게네바한테 지키고 있으라고 하면 돼.”

독행 사냥꾼들이 가진 전자 제품이란 무전기 따위가 전부였다. 그래서 그들도 별걱정 없이 그것들을 게네바에게 넘겼다.

다만 성건우만은 너무 아쉬운 얼굴로 스피커를 건넸다.

“잘 보살피고 있어야 해! 어디 부딪히거나 하면 안 돼!”

“⋯⋯걱정하지 마.”

잠시 침묵하던 게네바가 어렵사리 답했다.

가지고 있던 전자 제품을 모두 내려둔 구조팀 네 명은 빠르게 무장을 시작했다.

사신 바주카포를 짊어지고 허리춤에 연합202와 아이스모스를 찬 장목화는 자라목 기관단총을 쥐었다. 성건우는 폭군 유탄발사기를 등에 메고,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안은 채 허리춤엔 장목화와 같은 권총 두 자루를 찼다.

언제나처럼 오렌지 소총을 멘 백새벽은 자라목 기관단총을 쥐고 있었고, 베르세르크 돌격 소총을 안은 용여홍은 화염 분사기를 짊어졌다. 두 사람 역시도 장목화와 성건우처럼 권총 두 자루를 소지했다.

자라목 기관단총 두 자루와 조악한 화염 분사기는 구조팀이 지난 이틀간 별도로 준비한 무기로, 모두 전리품과 교환한 것이었다.

양범구 팀의 네 사람도 모두 완전무장을 갖췄다.

이제 장목화는 양범구, 웨트, 그레이 외에 한 사람의 이름도 알게 됐다.

파르스라는 이름의 남자는 금발 머리, 파란 눈동자에, 유적 사냥꾼 사이에선 상당한 장신에 속했다. 용여홍과 비슷한 키였다.

주위를 한번 둘러본 장목화가 모두에게 말했다.

“출발하자.”

여덟 일행은 통로를 따라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이어지는 금속 대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밝은 햇살 아래, 잡초로 뒤덮인 대문 밖의 광경은 그날 저녁보다 훨씬 더 또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목화가 전방 인공 호수를 보며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함께 움직이기로 했으니 본격적인 행동에 앞서 미리 알려줄 게 있어.”

“뭔데?”

양범구, 그레이, 웨트, 파르스 모두 경계심 어린 얼굴을 했다.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작전에는 강령과 목표와 계획이 있어야 해. 언제나 마음속으로 계산을 해둬야지 다짜고짜 벌떼처럼 달려들면 안 돼. 그건 서로의 발목을 잡아끄는 꼴만 되는 거야. 우리 팀이 이런 탐색을 진행할 때 늘 준수하는 철칙이 있어. 한입에 뚱뚱이가 될 순 없다.”

“뭐, 뚱뚱이?”

그레이가 되물었다. 가죽옷을 입었는데도 여전히 떨고 있는 남자는 장목화가 친절하게 레드리버어로 얘기한 애쉬랜드 속담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퍼스트 시티도 하루 만에 세워지지는 않았다는 뜻이야.”

양범구를 제외한 나머지 세 유적 사냥꾼이 그제야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장목화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번 탐색으로 단번에 이 폐허 도시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기를, 평생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 정도의 수확을 얻기를 바라면 안 돼. 그건 완전히 비현실적인 목표야.

탐색은 몇 차례로 나눠서 진행할 거야. 매번 약간의 수확과 정보를 얻어가며 조금씩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만 주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 또 그러는 동안 상황에 따라 후속 탐색을 포기할지 말지도 결정해야 해.”

성격이 급한 사람에게는 고문처럼 느껴질 제안이었다. 하지만 양범구 일행은 잠시 고민 끝에 지금 상황에선 가장 안전한 방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거대한 폐허 도시는 1년을 들여도 다 탐색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단 몇 번에 성과를 얻기를 바라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이곳 도처에 위험이 깔려 있어, 퍼스트 시티의 정규군도 깊이 들어오지 못한 곳이었다. 맹목적으로 달려들었다간 목숨만 잃을 터였다.

그때, 웨트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치 있는 물자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야.”

아직 개발되지 않은 폐허 도시 앞에서 세운 것치고는 작은, 딱 한 번의 탐색만으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였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장목화가 전에 구조팀이 상의한 방안을 설명했다.

“이번 탐색은 출구에서 2킬로미터 반경 안으로 제한했으면 좋겠어. 물자 수집과 단서 탐색 위주로 하는 거야.”

‘왜 2킬로미터지?’

이는 지난 토론 때 용여홍이 성건우의 비웃음만 산 질문이었다. 하지만 용여홍도 답은 알고 있었다. 그저 이 양범구 팀이 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한 것뿐이었다.

곧이어 양범구 일행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한 방안이네.”

차 없이 걸어서 움직여야 하는 이때, 2킬로미터는 이들이 뛰어서 도망칠 수 있는 한계치였다. 유전자 개량도 하지 않고, 달리기 관련한 능력을 단련한 적도 없는 사람들이 5킬로미터를 달린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콘크리트로 잘 닦아놓은 길을 달리는 것과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가 멋대로 자란 들을 달리는 것은 전혀 달랐다.

사실 구조팀 대부분은 체질적으로 그보다 더 먼 거리를 문제없이 질주할 수 있었지만, 팀엔 유일하게 유전자 개량을 받지 않은 백새벽이 있기에 그녀의 체력도 고려해야 했다.

이때, 용여홍의 표정이 어쩐지 좀 울적해 보였다. 독행자들이 실제론 아무 의문도 표하지 않아서, 괜히 본인만 바보같이 질문한 꼴이 되고 말았다.

장목화는 더 이상 꾸물대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시작하자.”

그녀는 곧장 자라목 기관단총을 쥔 채 누운 잡초를 밟으며 가장 앞서 인공 호수를 향해 걸어 나갔다.

* * *

두 팀은 먼저 그 공원을 탐색해 봤지만, 흰 늑대의 것으로 의심되는 배설물들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탐색을 진행하는 내내 모두가 신중하게 움직였다.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 주인 오하명이 다른 방식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상 현상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내 공원 밖으로 나온 두 팀은 좌우로 서서 도시 거리에 진입했다.

그렇게 막 방향을 틀어 한 구역에 들어선 순간, 용여홍은 곧바로 쌓여있는 백골 한 무더기를 발견했다.

이곳은 늪 1호 유적처럼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무심자들이 없으니 환경이 좀 처참했다. 길 양옆은 검게 썩은 진흙이 고여 있고, 자동차들은 난잡하게 세워져 있었다. 더러는 충돌한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자동차도 있었다.

그 사이에도 수많은 백골이 끼어있었다.

거기다 곳곳에 널린 유해들도 넝마가 된 천에 덮여있거나 완전히 발가벗겨진 상태로 있기도 했다.

구세계 파괴 당시 그대로 멈춰버린 곳이라고 해야 할까. 용여홍은 이렇게 많은 유해를 처음으로 마주한 충격에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마치 대량 학살된 사람들이 합장된 무덤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한여름의 강렬한 태양 아래 있어도 등골이 오싹했다.

양범구 일행도 충격을 받은 듯 걸음도 채 떼지 못하고 멈춰있었다.

이내 성건우의 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들 묻어주려면 작업량이 어마어마하겠네, 거의 불가능하겠는데.”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폐허 도시들 상황도 이거랑 비슷할 거야.”

폭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총에 맞아 죽거나 무심자들에게 잡아먹혀 뼈만 남은 듯했다.

“무심자들은 시신들을 자기 소굴로 끌고 가 저장하지도 않았네요. 이대로 거리에 남겨두고 매일 현장에서 먹었나 봐요. 밖에서 먹는 걸 좋아했나?”

성건우는 언제나 그랬듯 일반인과는 다른 부분에 집중했다.

“무심병에 막 감염돼 아직 동물적인 본능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그런 모순된 행동을 하곤 해. 이 구역은 무심병 폭발의 핵심 지대였을 거야. 수많은 무심자가 빠른 속도로 남아 있던 인간을 먹어 치운 거지. 다른 거리 상황은 여기랑 다를지도 몰라.”

장목화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들어 답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유적 사냥꾼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과거 무심자들이 지금의 우리랑 무슨 상관이지?’

곧이어 장목화가 백새벽, 용여홍에게 분부했다.

“둘씩 조를 이뤄서 여기 어떤 단서가 있나 조사해보자.”

이번에는 장목화와 용여홍이, 성건우, 백새벽이 한 조가 되었다. 실력 차를 보완하기 위한 배치였다.

웨트 역시 이 구역에서 가치 있는 물자를 찾기 시작했다.

차로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니만큼 체력도 비축해야 해서, 다들 부피가 큰 것보단 장신구처럼 휴대하기 편하면서도 가치가 높은 물건을 노렸다.

구조팀은 1시간 정도 간단한 조사를 진행했지만 유용한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당시에 있었던 일을 기초적으로 파악했을 뿐이었다.

거리에 있던 이들 중 3분의 2가 넘는 인원이 갑자기 발작하면서 정상인을 공격하고 그들을 뜯어먹은 것으로 보였다.

조사 도중 용여홍, 백새벽은 장신구와 기술 서적 등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은 늘 거액의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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