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화. 회사의 답변
대략 40분 정도 흘렀을 무렵, 구조팀은 생존자들이 치료를 받는 성 본채 3층에서 다시 만났다.
제일 먼저, 용여홍이 나서서 보고했다.
“지금은 흰 늑대에게 다른 소굴이 있는지, 다른 추종자들이 있는지 파악할 수가 없어요.”
곧이어 백새벽이 메모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한 가지 특이한 게, 전부 다 최근 한 달 안에 영향을 받았어요.”
장목화가 말을 받았다.
“우리가 물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성건우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전에 영향받은 사람들은 유통기한이 지나서 내버려 둔 걸까요?”
유통기한……?
순간 구조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게네바만은 아무렇지도 않게 호응했다.
“동굴에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이 엄청 많았잖아. 그 사람들 목숨을 부지시키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거야.”
생각에 잠겼던 장목화는 잠시 머뭇대다 입을 열었다.
“아직 탐문하지 못한 생존자가 두 명 더 있어. 다른 생존자들 말이 다들 늑대에 영향을 받았을 때 그 두 사람은 이미 흰 늑대를 따르고 있었대. 이름이 리처드랑 루이스야.”
리처드는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었기에 치료받고 휴식을 취하니 금세 자유로운 거동이 가능했다. 흰 늑대 일로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이곳을 떠나 이미 퍼스트 시티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러니 당분간은 만나기가 힘들었다.
반면, 루이스는 그간 모아둔 돈이 많은지 캠프 여관방에 묵고 있었다.
* * *
똑똑똑-
용여홍이 루이스의 방문을 두드렸다.
나무 문은 빠르게 열렸고, 약간 부스스한 린넨색 머리칼이 보였다.
이내 구조팀과 마주한 루이스는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지더니 저도 모르게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워, 원하는 게 뭐야?”
성건우가 온화한 웃음을 보였다.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눈빛이 굳어진 루이스는 더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거칠게 소리쳤다.
“난 복수할 생각이 없어! 난 복수할 생각이 없다고!”
순간 용여홍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이제 보니 루이스는 전에 한이 맺힌 눈으로 용여홍을 바라보던 바로 그 생존자였다.
장목화는 조용히 눈썹을 추켜 올렸고, 성건우는 실소를 터뜨렸다.
이를 보고 한층 더 긴장한 루이스가 뒤로 물러나면서 애원했다.
“새, 생각은 해본 적 있어. 근데 나한텐 그, 그럴 능력이 없어! 난 이미 포기했어. 정말로 포기했다고. 나, 난 쓸모없는 놈이야. 그들한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 견딜 수가⋯⋯.”
악다구니를 쓰다 털썩 주저앉은 루이스는 얼굴을 감싸 쥐며 흐느꼈다. 방 안을 메우는 그의 절망과 공포, 슬픔에 용여홍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장목화는 루이스가 감정을 어느 정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너한테 지금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첫째는 우리한테 죽는 것. 둘째는 우리 질문 하나에 답한 뒤 여길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거야. 우리와 절대 마주치지도 않게.”
몇 초간 침묵하던 루이스는 황급히 얼굴을 가린 두 손을 내렸다. 드러난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무슨 질문인데?”
장목화는 미리 생각해둔 질문을 던졌다.
“네가 흰 늑대를 막 따르기 시작했을 때, 그 곁에 수십 명의 사람이 함께 있었을 거야. 그 사람들 다 어디로 갔어?”
루이스의 표정이 한 차례 변했다.
“그, 그 사람들……. 늑대를 따라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
그의 눈빛에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 사건은 이미 루이스에게 떨칠 수 없는 악몽이 돼버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구조팀은 본능적으로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동굴 깊은 곳?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보내진 건가?’
곧이어 루이스를 쫓아낸 뒤 이 일을 더 심도 있게 이야기한 구조팀은 마침내 통일된 결론을 내렸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은 불모지 13호 유적과 관련돼 있을 확률이 아주 크다는 것이었다.
다만 흰 늑대가 그들을 불모지 13호 유적으로 보낸 이유는 아직 단서가 충분치 않아 실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그때, 성건우가 소름끼치는 가능성 하나를 제시했다.
“실험 대상이 된 것일 수도 있죠.”
* * *
다음 날, 구조팀은 회사와 정해진 연락 시간에 전보를 받았다.
「팀의 상황은 파악했음. 오하명의 능력은 언어를 이용하지 않고도 멀리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스마트 로봇을 포함한 각종 전자 기기에만 적용되는 듯함. 만약 불모지 13호 유적을 탐색하고 싶다면 사전에 이러한 방면에 잠재된 위험을 제거해야 할 것임.」
“회사에서는 우리가 어느 정도 탐색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네.”
장목화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는 지원밖에 못 하겠네.”
게네바의 목소리엔 실망과 낙담이 고루고루 묻어있었다.
구조팀은 이제 무선 통신기를 거두고 본격적으로 이 일을 논의하고 있는데, 저 멀리 가로등 불빛 아래 낯익은 인영이 보였다.
양범구였다.
구조팀 가까이로 다가온 양범구가 진심 어린 얼굴로 이야기했다.
“생각해봤는데 오하명의 도는 전자 기기나 전자 제품에 존재하는 것 같아.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소지하지 않는다면 그의 영향을 피할 수 있을 거야.”
순간 용여홍의 눈이 살짝 커다래졌다.
장목화와 백새벽도 흠칫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양범구의 말은 회사의 제안과 거의 일치했다.
‘양범구한테 이런 경험이 있나? 아니면 뒤에 누군가 있는 건가?’
장목화는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척했다.
그러자 양범구가 웃음을 지었다.
“너희가 당장 결정 내리지 못할 거란 거 알아. 괜찮아, 언제든 생각 끝내면 날 찾아와.”
성건우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런 모험을 하지 않겠다고 결론 내도 너한테 알려줘야 해?”
순간 양범구는 목이 턱 메는 듯했지만, 그래도 미소를 유지했다.
“그건 너희 마음대로 해.”
성건우는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근데 만약에 우리가 계속 아무 답도 안 주면 넌 가을이 되고 내년이 될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하잖아? 생각 정리하면 찾아오라고 한 건 너니까.”
장목화는 성건우의 의중을 가볍게 파악했다.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허점을 남긴 건 양범구지, 성건우가 일부러 트집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용여홍은 터져 나오려는 실소를 애써 참고 있었다.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성건우에게 괴롭힘당하는 모습에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백새벽을 보니, 그녀 역시도 눈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양범구는 한창 입을 벙긋거리다 느릿하게 한숨을 토했다.
“그래, 그런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건 아냐. 사흘, 사흘 안에 너희가 아무 답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알아서 출발할게.”
이번엔 장목화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계속 불모지 13호 유적을 탐색하겠다고 했다고?”
양범구는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욕심이 사람을 죽이는 법 아니겠어? 웨이트는 죽은 동료들을 위한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어떤 모험이든 하려고 해. 나머지 둘은 모두 독행 사냥꾼이라 능력도 있고 자신감도 충분하고. 그리고 웨이트도 실력이 없는 건 아니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 뒤지지 않을지도 몰라.”
이 말은 애쉬랜드어로 이야기했다.
백새벽은 마음 같아선 끼어들고 싶었지만 끝내 입을 열지는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늦어도 내일까지는 답을 줄게.”
양범구가 웃었다.
“좋은 소식 기다릴게. 너희가 간다면 훨씬 더 안심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로봇이랑 군용 외골격 장치는 못 가져간다는 거 알지?”
그것 역시 본질을 따지자면 전자 제품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핵심 부품에는 회로도 들어갔다.
양범구도 조심스럽게 전한 말이었다. 다만, 장목화가 고압 전류를 방출했던 장치는 전자 제품인지 확신이 가지 않아 따로 언급하진 않았다.
“알겠어.”
장목화가 간략히 답했다.
이내 양범구가 떠난 뒤, 장목화가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용여홍이 이런 위험을 무릅쓸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다고, 정 무릅쓰고자 한다면 회사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하려던 그때였다.
성건우가 그보다 더 대답이 빨랐다.
“이건 우리가 사냥꾼 길드를 통해 받은 임무고, 구조팀으로서의 주요 임무와도 관련돼 있을 수 있어요. 거기다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까지 얻었잖아요. 가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그의 말이 옳았다. 구조팀은 사냥꾼 길드에게 살리든, 죽이든 어쨌건 흰 늑대를 잡아 오라는 임무를 받았다.
장목화는 말없이 백새벽을 쳐다보았다.
2초간 정적 후, 백새벽이 발언했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이었다면 이런 상황에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을 때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을 거예요. 근데 지금 우리 배후엔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이 버티고 있잖아요. 조금 더 대담하게 굴어도 될 것 같아요.”
그러자 장목화가 웃었다.
“회사 힘이 여기까지 미치지는 못할 거야.”
뒤이어 그녀가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네 생각은 어때?”
‘건우랑 새벽이도 찬성했고, 팀장님도 이미 마음이 동한 것 아닌가요? 이 상황에 제가 반대해봤자 다들 날 겁쟁이라고 생각할 거잖아요.’
용여홍은 잠시 망설이다 이야기했다.
“제 생각에는 회사에 전보를 한 통 더 보내, 무슨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부터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좋아. 겐, 너는?”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인 뒤, 마지막으로 게네바에게 물었다.
게네바는 조금 뭉클했다. 구조팀은 지능인인 자신도 이 팀에 완벽히 녹아들 수 있게 해줬으며, 동등한 팀원으로 존중까지 해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게네바가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난 밖에서 지원만 담당할 텐데, 무슨 위험한 일이 생길 리는 없잖아. 너희들 선택이 중요한 거지.”
“그래, 그럼 일단은 가는 걸로 하고, 난 회사에 바로 전보를 보낼게.”
장목화가 최종적으로 마무리했다.
반고 바이오의 답변은 굉장히 빨랐다.
「조심하도록.」
“⋯⋯.”
성건우와 게네바를 제외한 구조팀 세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회사씩이나 돼서, 너무 쩨쩨한 거 아냐?’
한숨을 내뱉은 장목화가 스스로를 위로하듯 웃었다.
“회사는 우리가 꼭 갔으면 하나 봐. 만류 한 번을 안 하네.”
‘만류한다면 듣기나 할 건가요?’
용여홍이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래도 말린다면 장목화야 수긍할지 몰라도, 성건우는 절대 뜻을 굽히지 않을 것 같았다.
잠깐의 침묵 후 장목화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기초적인 계획을 짜볼까? 겐, 때가 되면 넌 동굴 안에 남아서 장비를 지키고, 지원을 맡아줘. 작은 흰둥이랑 작은 빨강이는⋯⋯.”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백새벽이 끼어들었다.
“저도 같이 갈래요. 양범구 팀은 네 명이에요. 만약 유혹적인 뭔가를 발견해서 마음을 바꾸게 되면 팀장님과 건우만으론 수세에 몰릴 거예요.”
게다가 그곳은 위험이 도처에 깔린 불모지 13호 유적 안이었다.
백새벽의 단호한 눈빛에, 장목화가 잠시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음, 여홍이 네가 겐이랑 같이 있을래?”
용여홍은 순간 머리를 수백 수천 번 굴리다 이를 악물었다.
“겐은 누가 보살펴야 할 만큼 약하지 않잖아요. 저도 따라갈게요.”
2초간 침묵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좋아.”
백새벽이 물었다.
“팀장님, 생체 공학 의수에 있는 보조 칩도 무슨 수를 써야 하지 않을까요? 오하명의 영향이 미칠 것 같은데.”
장목화는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럴 필요는 없어. 내 보조 칩은 신경과 직접 연결돼있는 데다, 통상적 의미의 회로가 아니라 특수한 메커니즘을 따르거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보조 칩은 생물 전기를 저장하는 조직 구조로 둘러싸여 있어서 외부 신호를 격리할 수 있어.”
다음날, 구조팀은 양범구에게 결정을 전했다. 그리고 두 팀은 이틀간 준비한 뒤 모레 날이 밝으면 출발하기로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