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심야
구조팀은 코스 술집으로 들어가 바비큐 식사를 했다.
전진 캠프에 남은 고기의 육질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산에서 난 몇몇 식물의 향이 고기의 기이한 냄새를 덮어주어서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다시 술집을 나와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가는데, 성건우가 푸념했다.
“너무 질겨요.”
하지만 장목화가 그의 말은 듣지도 않고 몇 발짝 뒤처져서, 성건우는 그냥 혼잣말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장목화는 용여홍과 나란히 걷기 위해 의도적으로 물러난 것이었다. 그녀가 곧 용여홍 곁에서 짐짓 여유로운 말투로 물었다.
“그 유적 사냥꾼을 죽인 뒤부터 계속 표정이 안 좋던데, 무슨 일 있어?”
몇 초간 침묵하던 용여홍은 밥의 가족과 그가 그토록 해맑게 말하던 꿈과 이념 등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 사람이 결국, 제 총에 맞아 죽었어요.”
장목화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음, 그래. 아는 사람을, 그것도 꽤 괜찮은 호인을 죽인 건 생판 모르는 나쁜 사람을 죽이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지. 네 마음이 어떨지 충분히 이해해. 그래도 너한테 말해주고 싶은 건, 그런 상황에서 네가 그런 선택을 한 것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는 것뿐이야.
밥의 부모님과 동생들 때문에 슬퍼? 그럼 너희 부모님이랑 동생들은? 네가 마음이 약해져 망설이다가 결국 총에 맞은 게 너라면, 너희 가족분들이 어떨지는 생각해본 적 없는 거야?”
따뜻하게 웃는 그녀를 보고, 용여홍의 표정에도 순간 변화가 일었다.
장목화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넌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그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가야지. 마주한 건 뭐든 거침없이 해치워야 해.”
재차 침묵하던 용여홍은 10여 초가 흐른 뒤에야 답했다.
“네, 팀장님. 말씀 잘 알아들었어요. 최대한 빨리 마음을 추스를게요.”
“좋아.”
장목화는 더 이상의 말을 잇는 대신 웃으며 백새벽을 따라잡았다.
이때, 이번엔 성건우가 의도적으로 용여홍과 발을 맞췄다.
“뭐 하러 왔어?”
용여홍은 당연히 경계부터 했다.
‘뭐야, 얘도 설마 날 위로하려고 온 건가?’
성건우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널 비웃으려고.”
그 후 그는 용여홍을 보며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 하하. 하하.”
정확히 세 번 웃음소리를 낸 성건우가 바로 용여홍과 거리를 벌렸다.
“⋯⋯.”
용여홍은 이를 부득 갈며 욕을 뱉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그러나 이후,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제 상태가 꽤 좋아진 것을 깨달았다.
* * *
다음 날 정오, 구조팀의 팀원들은 재차 코스 술집에 들어섰다.
한번 주위를 둘러보니 양범구가 보였다. 그는 현재 몇몇 유적 사냥꾼과 함께 앉아 뭔가 토론에 한창이었다.
그러다 양범구도 구조팀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또 차를 내버려 두고 온 거야? 가지고 있는 물자도 많으면서, 어떤 사람이 이판사판으로 나가면 어쩌려고 그래. 경보기와 감시 카메라만으론 그 사람들 막기는 힘들 텐데.”
성건우가 곧장 대꾸했다.
“난 그 사람들이 50미터 정도 먼저 앞질러 달려가게끔 할 수 있어.”
양범구도 몇 가지 상황을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 어디로도 분류할 수 없는 성건우의 대답에 그는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다행히 성건우는 일찍이 양범구를 무시하고, 주변에 있는 다른 유적 사냥군들을 슥 훑곤 시선을 거뒀다.
동시에 용여홍과 백새벽도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틈을 타 당당하게 양범구와 함께 앉아 있는 이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용여홍은 팔다리가 상당히 긴 남자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갈색 머리, 파란 눈을 가진 남자는 상당히 튼실해 보이는 것과 달리, 검은 가죽옷 지퍼를 끝까지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한여름에 그리 옷을 꼭 껴입었음에도 왠지 추위에 떨고 있는 듯 보였다.
아무리 산속 기온이 더 낮다고 해도 긴 팔만 입으면 누구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몸이 허한 걸까? 아니면, 전에 부상이라도 당했나?
그 외 나머지 유적 사냥꾼 세 명에겐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전진 캠프의 다른 이들보다 옷이나 안색도 꽤 괜찮아서, 상당히 넉넉한 생활을 하는 듯했다.
‘양범구가 말했던 다른 독행자들인가?’
용여홍이 낯선 이들을 관찰하는 사이, 장목화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곤 바 테이블에 앉으며 티 나지 않게 시선을 거뒀다.
구조팀이 코스 술집에 온 건 점심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차에 충분한 식량을 준비할 수 없어서 때 되면 식당을 찾아야 했다.
“양범구는 각성자일까요?”
장목화를 따라 자리에 앉은 용여홍이 조용히 속삭였다.
양범구는 척 봐도 유전자 개량이나 기계 부품으로 개조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독행 사냥꾼으로 살아간다는 건, 웨트가 그를 무서울 정도로 강하다고 평가했다는 건, 분명 뭔가 뛰어난 부분이 있기 때문일 터였다.
유전자 개량, 기계 부품 개조. 이 두 가능성을 제외하면 남는 건 변이와 각성뿐이었다. 외형으로 봐도 양범구가 아류인일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만약 그렇다면, 치른 대가는 뭘까요?”
백새벽이 낮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양범구의 말이나 행동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기에 대가가 뭔지 짐작하긴 쉽지 않았다.
“비교적 잘 숨길 수 있는 대가겠지.”
장목화의 답에, 성건우가 진지하게 끼어들었다.
“변태적인 성향일 수도 있죠. 동물을 좋아한다거나.”
이는 성건우가 무근자 팀의 어느 각성자에게서 받은 영감에 흰색 늑대를 쫓는 현재 상황을 결합해 고안해낸 가능성일 것이다.
“아냐.”
장목화와 백새벽이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는 여자의 직감이었다. 그녀들은 양범구가 이성을 상당히 좋아하고 갈구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이 독행 사냥꾼은 매우 절제적이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 혐오감을 유발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구조팀의 네 탄소기반인은 오늘의 점심을 먹었다.
녹말이 가득한 어느 야생 식물의 뿌리를 구운 것은 향기로우면서도 끈적했고, 손바닥 여러 개만 한 민물고기를 육질이 나쁜 짐승의 기름으로 튀긴 건 미칠 정도로 바삭거렸다. 그 외에 비교적 흔한 야생 채소도 있었다.
* * *
점심 식사를 마친 구조팀은 충전을 완료한 게네바와 함께 성 본채 3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은 생존자들이 치료를 받는 곳이었다.
흰 늑대가 돈이나 먹을 수 없는 물자, 입고 있던 옷을 뺏진 않아서 생존자들도 치료 비용을 내기엔 충분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장목화가 로엔을 발견했다.
로엔은 곧장 가볍게 뛰어와 넉살 좋게 물었다.
“날 찾아온 거야?”
갈비뼈 부상 때문인지 로엔은 뛰는 자세가 약간 이상했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응, 패링턴이라는 사냥꾼 본 적 있어?”
거울 교파에 대해 알고 있는 그 유적 사냥꾼은 구조팀이 이곳으로 온 목적 중 하나이기도 했다.
성건우가 패링턴의 외양을 설명하자, 로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흰 늑대에 통제되기 전에 본 적 있어. 그 사람도 흰 늑대를 찾고 있었지. 근데 그 후부터는 통 만나지 못했어.”
‘그러니까 패링턴은 흰 늑대에 매혹당해 앞잡이가 되진 않았다는 건가?’
장목화는 좌우를 살피며 각각 다른 생존자들을 탐문하는 용여홍, 백새벽,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몇 가지 질문을 이어 나가던 용여홍이 누군가 앞으로 다가갔다.
복부에 총을 맞고도 힘겹게 살아남은 유적 사냥꾼이었다. 침상에 누운 남자는 입술이 약간 창백했으며, 정신 상태도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일단 용여홍은 조리 있게 패링턴을 묘사했다.
“혹시 회색 머리에 눈동자는 짙은 갈색이고, 산탄총을 즐겨 쓰는 사냥꾼 본 적 있어?”
침상에 누운 유적 사냥꾼이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입을 열었다.
“본 적 있어.”
용여홍이 흠칫 놀랐다.
“언제?”
유적 사냥꾼은 무의식적으로 돈을 요구하려다가 구조팀의 실력과 자신의 상황이 생각나 순순히 답했다.
“흰 늑대, 한테, 통제되었을 때.”
남자는 행여 상처가 덧날까 조심조심 끊어 이야기했다.
“뭐?”
용여홍은 몹시 놀라 충격을 받았지만, 기쁨을 감출 순 없었다.
그 사이 장목화와 게네바가 근처로 다가왔다.
잠시 뜸을 들이던 유적 사냥꾼이 말을 이었다.
“흰 늑대는 우리를 경비원으로 삼아 각자 다른 구역을 경계하도록 했어. 기억나, 그날 밤, 나는 동굴 안의 한 출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사람을 봤어. 몰래 들어오려고 했었지. 나, 난 그때 총을 쏴서 그 사람을 죽이려 했는데, 그 사람은 깜짝 놀라 다른 길로 달아났어. 그 후론 안 나타났고.”
얌전히 이야기를 듣던 장목화가 물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흰 늑대한테 통제된 적이 없다는 거지?”
“응.”
유적 사냥꾼이 확신했다.
장목화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동굴 안에 있었다면서 그 사람은 어떻게 본 건데?”
“횃불이 있었거든. 처음 몇 번은 손전등을 썼어. 하지만 후에는 배터리가 방전돼 버렸어.”
유적 사냥꾼이 대꾸했다.
이때 성건우 역시 한 생존자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다른 출구를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그 두 사람 진술을 결합해보면, 패링턴은 다른 출구를 통해 동굴에 진입한 뒤 경비원에 발각돼 갈림길로 달아난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그 갈림길이 어디로 통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 *
구조팀은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갔다.
오는 내내 한숨 속에 고민하던 장목화가 잠시 후 게네바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그 동굴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양범구와 그 독행 사냥꾼 일행도 길을 찾겠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해야지. 음, 일단 간이 드론과 RC카를 제작해서 정탐한 뒤에 들어가는 식으로? 그렇게 조금씩 탐색해야 전에 그 폭발이나 붕괴 같은 걸 예방할 수 있을 거야.”
“그래, 그럼 난 최대한 많은 전자 부품을 모아서 나한테 장착된 부품이랑 결합해볼게. 근데 그러려면 오레이가 넉넉히 필요한데.”
게네바가 오른손을 펼쳐 보였다. 준법정신이 투철한 지능 로봇 사전엔 돈 없이 물건을 훔친다는 생각 같은 건 아예 없었다.
“내가 도와줄게.”
성건우는 흥미가 동한 듯 상당한 의욕을 보였다.
* * *
다시 찾아온 밤, 달이 마지막 하늘빛을 켜두고 있었다.
이 시간, 오늘의 당직인 장목화, 성건우가 각자 한 쪽씩 순찰 중이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엔 오늘도 변함없이 흔들리는 차들이 있었다. 들릴 듯 말 듯, 혹은 간신히 참고 있는 듯한 신음도 사방팔방에서 들려왔다.
‘카르페디엠.’
장목화는 불현듯 현재를 즐기라는 그 명언이 떠올랐다.
그때였다. 저 앞에 달을 보며 멈춰 선 성건우가 보였다. 입술까지 동그랗게 벌린 걸 보자니 장목화는 왠지 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저 사람들 흉내 내려는 건 아니겠지? 너무 치욕적이잖아!’
다음 순간, 성건우가 포효했다.
“아우!”
이 소리는 고요한 산에서 꽤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마치 그 흰 늑대가 이 전진 캠프에 잠입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동시에 사방팔방에서 들리던 모든 신음이 뚝 끊기더니, 흔들리는 차도 일순 멈추었다. 그저 약간의 여파만 남았을 뿐이었다.
열기가 넘치던 이곳 분위기는 삽시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 찼다.
전진 캠프 내 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도 전에 들은 포효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전보다 거리가 훨씬 가까워져서, 다들 경계를 곤두세웠다.
“⋯⋯.”
장목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제발 성건우와 모르는 사이인 척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흰 늑대와 싸운 뒤 구조팀은 이 전진 캠프에서 유명 인사가 돼 있었다. 모두가 네 사람과 로봇 하나로 이뤄진 구조팀을 알았다. 이들이 매우 강력한 팀이라는 것까지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야! 너 그랬다가 얻어맞아!”
결국 장목화가 성건우를 황급히 저지했다.
성건우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팀장의 명령이라 고분고분 따랐다.
곧이어 곳곳에서 손전등 불빛이 길게 섞여와 이쪽저쪽을 비췄지만, 당연히 위험한 야생 동물 같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