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90화 (390/649)

390화. 전진 캠프

구조팀이 도착한 캠프는 뭇 산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곳이었다. 그 앞쪽 대부분은 이미 차량 통행이 불가해서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장목화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 캠프의 대략적인 구조부터 확인했다.

구세계 어느 오래된 성을 기반으로 지어진 이곳은 외부엔 돌로 쌓아 만든 벽이, 내부엔 5층 높이 본채와 주위에 흩어진 별채가 자리해 있었다.

이곳엔 넓은 광장도 하나 딸려 있었는데, 아주 오래전에는 병사들의 훈련장이었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자동차로 가득한 주차장이 돼 있었다.

또한 장목화는 성 외곽 벽이 울창한 녹색 식물뿐 아니라 대량의 총알구멍과 또렷하게 남아 있는 불탄 흔적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 모든 게 이곳이 그렇게까지 안정적이진 않다는 걸 드러내고 있었다.

성으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운 장목화는 팀원들과 함께 드문드문 자리한 유적 사냥꾼 사이를 지나, 본채 1층 코스 술집으로 향했다.

사실 술집이라곤 해도 이곳엔 술이 없는 때가 더 많았다. 가끔 운이 좋을 때만 상인단에게서 밀주를 살 뿐이었다.

주위를 대충 훑어보던 용여홍도 유적 사냥꾼 대부분이 이곳을 식당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저기 바 테이블에 혼자 앉은 남자의 잔에도 술이 아닌 걸쭉한 뭔가가 들어 있었다.

대충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인데, 얼굴엔 수염이 좀 난잡하게 자라있었다. 며칠간 면도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수염이 그렇게까지 짙거나 빽빽하지 않다는 건, 전에는 외양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다녔다는 뜻이었다.

남자는 잔에 든 것을 마시며 음미하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이따금 고개 숙여 비통한 얼굴로 손에 쥔 낡아빠진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어느덧 다가가 스툴에 앉은 성건우가 잘 아는 사람처럼 친근하게 굴었다.

남자도 고개를 틀어 그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너희들, 새로 온 녀석들이냐? 그 흰 늑대 잡겠다고 온 거지?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뭇 산 안에 다른 기회들도 많아. 높은 보수에 눈멀지 말라고.”

따라서 자리에 앉은 장목화가 신중하게 물었다.

“그게 네가 얻은 교훈이야?”

남자의 황갈색 머리도, 녹색 눈동자도 어쩐지 좀 쓸쓸해 보였다. 그는 그렇게 조금씩 표정 변화를 보이다 긴 한숨을 내뱉었다.

“당연하잖아. 사냥꾼이 뭇 산에 들어와 기회를 잡고 자기 안전을 보장하려면 반드시 팀을 꾸려야 해, 너희들처럼. 여기서 혼자 움직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 간혹 보이긴 해도 무서울 정도로 강한 사람이고.”

이내 남자는 잔에 든 걸 마시고 몇 번 씹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난 이미 동료를 잃었어.”

그의 목소리가 매우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그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백새벽이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 흰 늑대의 발톱에 죽은 거야?”

잔을 내려놓은 남자는 돌연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우린 그 흰 늑대의 활동 패턴을 파악했어. 녀석의 그 기이한 매혹 능력 적용 범위 밖이라면 마취총으로 녀석을 맞출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

근데, 근데……, 녀석은 어느새 우리 존재를 발견하고 때맞춰 방향을 틀면서 우리가 숨어 있던 쪽으로 우회해서 돌아왔어. 그,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지는 너희도 짐작할 수 있겠지?”

손을 내린 남자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남자는 그 악몽 속에서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구조팀이 아무런 호응도 하지 않자, 남자는 입꼬리를 뒤틀더니 점점 광기와 혼란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내가 어떻게 도망쳐 나왔는지 모르겠어. 그 흰 늑대가 이미 배를 불린 까닭에 날 놔준 건지도 모르지.

난 그 사람들의 눈빛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야. 낯섦, 증오, 냉담까지, 참 여러 가지가 섞인 눈이었지. 마치 그 늑대의 종이 된 것처럼.

하……. 그 후에 용기를 내서 다시 거기로 돌아갔는데, 이 손목시계가 있더라고. 사치가 가장 아끼던 물건이지. 지금은 이 모양 이 꼴이 됐지만.”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이미 몰살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구조팀은 조용히 시선을 주고받으며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 흰 늑대는 설마 인간의 의식을 감지할 수 있는 건가? 그래서 이 유적 사냥꾼 팀의 매복을 가볍게 피할 수 있었던 건가?

“이건 불공평해.”

성건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장목화는 그 말뜻을 대충은 이해했다. 인간 각성자는 야수를 감지할 수 없는데 변이 생물은 인간 의식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원망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

“뭐가 불공평하다는 거지?”

“인간에게 불공평하다고.”

성건우는 솔직하게 답했지만, 뒷말은 생략했다.

이내 남자는 깊은 동감을 표했다.

“맞아. 야수가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지? 그렇게나 기이한 능력을 가졌다고? 실제로 그 흰 늑대를 맞닥뜨리고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다 포기했어. 반면에 너희처럼 아직 뭘 모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도 계속 나타나고.”

말하는 동시에 구조팀을 바라보던 남자가 잠시 흠칫했다. 이제야 게네바를 발견한 것이었다.

“로봇이 있네⋯⋯. 행운을 빌어.”

일부 유적 사냥꾼들에게 로봇이 특이한 능력에 저항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상식과도 같았다.

장목화는 새로운 제안을 건넸다.

“혹시 너희가 알아낸 흰 늑대의 활동 패턴, 우리한테 공유해줄 수 있을까? 당연히 보수는 지불할게.”

남자가 자조하듯 웃었다.

“거참 좋은 거래네. 이따 얘기해줄게.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

“좋아, 이름이 뭐야?”

장목화가 물었다. 그녀는 현재 최대한 평범하게 화장한 상태였다.

남자는 거침없이 답했다.

“웨트.”

‘분명히 가명이겠지.’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뭘 마시는 거야? 냄새가 상당히 좋은데.”

웨트는 바 안쪽 사장을 가리켰다.

“여기서 만든 육수.”

그 말에 나이가 들어 머리가 하얗게 센 사장이 고개를 들었다.

“뭇 산에서 가장 흔하게 수확할 수 있는 건 바로 짐승들이야. 맛있고, 특이하고, 위험하지 않은 건 전부 귀족들이 가져가 버리고, 육질도 나쁘고, 시고, 냄새나거나 자체적인 문제가 있어 장기적인 섭취가 어려운, 판매 가치 없는 것들만 남지.

그래도 고기는 고기잖아. 난 그런 고기를 사서 잘게 다진 뒤, 산에서 나는 각종 식물이랑 같이 끓여. 냄새는 좋은데, 솔직히 맛은 그냥 그래. 그냥 허기를 달래는 용이지.”

장목화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그런 고기만 사 먹는 사람도 있겠지?”

“선택지가 있는 상황에선 거의 없어. 애초에 다양한 선택지를 가진 사람이 많지도 않지.”

사장이 간단하게 답했다.

짧은 침묵이 이어지는 와중, 용여홍이 뭔가를 떠올리고 황급히 물었다.

“여기도 사냥꾼 길드 사무소가 있어?”

웨트가 소리 내 웃었다.

“있을 리가 있나.”

“왜 없는데?”

용여홍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웨트는 밖을 가리켰다.

“최근 10년간 여긴 두 번이나 파괴됐어.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 수많은 무심자의 공격이랑 변이 생물의 이주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근데 길드에서 어떻게 이런 곳에 직원을 보내겠어? 여기서 퍼스트 시티에 가는 것도 한나절이면 되니까, 차라리 그곳에서 임무를 맡기고 접수하게 하는 게 더 낫지.”

외벽에 남은 각종 흔적을 떠올린 용여홍은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웨트가 다시 사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면 누가 이런 곳에 술집을 열려 했겠냐고.”

“나야 이미 나이가 들었으니까.”

사장은 덤덤하게 답했다.

웨트는 이내 구조팀을 돌아보았다.

“애쉬랜드인이라면⋯⋯.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나 봐? 그래서 이 얘기도 못 들어본 거지?”

성건우는 어떤 것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데 혹시 패링턴이라는 유적 사냥꾼, 만나봤어? 키는 얘만 하고, 머리는 회색에 눈동자는 짙은 갈색이야. 산탄총을 좋아한대.”

여기서 ‘얘’는 용여홍을 가리켰고, 패링턴은 블랙셔츠파 세컨드 보스 테렌스가 말한, 거울 교파에 대해 알고 있는 유적 사냥꾼이었다.

웨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이 술집 사장이 답했다.

“그 사람은 흰 늑대를 쫓아갔어. 돌아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군.”

장목화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누군가 술집으로 들어왔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170센티미터가 조금 안 되는 키, 30대 정도의 남자는 기운 흔적이 남은 검은 긴팔 티셔츠와 짙은 파란색 캔버스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는 구조팀에게 가장 먼저 정보를 알려준 유적 사냥꾼, 양범구였다.

전술 벨트를 허리에 맨 양범구는 권총 두 자루만 찼을 뿐, 그 외에 휴대한 무기가 없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는 내내, 아는 유적 사냥꾼들과 인사를 나눴다.

“윌리엄슨, 어때, 그 버려진 군사 기지는 찾았어? 로크! 아직 살아있었네? 그 흰 늑대 찾으러 간 거 아니었어? 오늘은 어떤 사냥감을 잡았는데? 산속 무심자랑 변이 생물은 여전히 말썽 피우고 있고?”

애쉬랜드인 양범구는 이곳 토착민처럼 모든 사람과 알고 있는 듯 각자와 한두 마디씩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천천히 바 테이블 앞에 이른 그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주문했다.

“육수 한 잔.”

동시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튼 양범구가 웨트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구조팀을 발견한 양범구는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가 몇 초 후에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 드디어 왔네.”

양범구는 일부러 애쉬랜드어를 쓰지 않았다.

“우리를 알아본 거야?”

성건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는 두 여자 팀원에 비하면 비교적 위장을 적게 한 편이었다. 가발을 쓰고 얼굴에 화장만 살짝 했는데, 어쨌든 고작 한번 본 사이에 사람을 알아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양범구는 장목화를 힐긋 바라보며 웃었다.

“워낙 깊은 인상을 받아서. 너희 팀은 아무래도 유적 사냥꾼 같지 않았거든. 어, 로봇도 있네?”

그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칭찬이 담겨 있었다. 로봇을 가진 유적 사냥꾼 팀은 어디에서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었다.

“퍼스트 시티 주위 구역엔 흔한 일이잖아. 근데 그 흰 늑대, 만나봤어?”

나름대로 대꾸한 장목화가 바로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양범구는 자조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벌써 만났다면 너희랑 만나지도 못했을걸. 길드에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긴 해도, 유적 사냥꾼 상당수가 그 늑대 때문에 죽고 실종됐으니까.”

그리고 양범구가 웨트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 이 사람, 모든 동료를 잃었다지만 절대 얕보면 안 돼. 어쨌든 살아 돌아왔다는 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평범하지는 않다는 뜻이니까.”

순간 약간의 표정 변화를 보인 웨트가 반박했다.

“내가 겉보기에 평범해?”

‘평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부인 안 하네. 조금 전 슬퍼하고, 겁에 질린 것 같은 공황은 꾸며낸 연기였나? 아니면 실력이 약하지 않은 유적 사냥꾼인데도 흰 늑대를 맞닥뜨리자마자 겁을 먹게 된 걸까?’

장목화는 속으로 중얼댔지만, 겉으로는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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