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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385화 (385/649)

385화. 웃음거리?

의아한 얼굴로 시선을 거둔 장목화는 성건우와 함께 포카스 주위에 자리한 호위병을 따라 VIP 귀족석의 사방을 살폈다.

전에 이미 다 관찰했던 격투장 상황이 다시금 시야에 담겼다.

아래쪽 무대는 관중석에 둘러싸여 있고 관중석은 통로 여러 개로 나뉘었다. VIP 귀족석을 제외한 나머지 자리는 전부 하늘 아래 그대로 드러나 있고, 사방에서는 특제 팔걸이를 두드리는 웅장한 소리가 계속 울렸다.

각 구역엔 팻말이 하나씩 세워져 있었는데, 그 팻말의 꼭대기 부분은 한 사람의 전신을 다 비출 수 있는 거대한 거울이었다. 그 수많은 거울이 햇빛을 반사하며 VIP 귀족석을 감싼 방탄 유리벽과 함께 반짝이고 있었다.

장목화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건 퍼스트 시티의 풍습일까? 아무튼 여태까진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주위를 한 번 훑던 장목화, 성건우는 출입구에서 통로로 들어오는 보안요원 여럿을 보았다. 관객들의 질서 유지 담당인 것 같았다.

계속해서 걷던 그들은 귀족석과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멈춰서더니, 한 관중에게 자신들을 따라오라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왜죠?”

지목당한 관중이 큰 소리로 물었다.

빙원인 혹은 레드리버 인종에 속하는 얄가이인으로도 추정되는 그는 키가 190센티미터가 넘었고 금발에 파란 눈동자이며, 몸은 상당히 다부져 보였다.

관람에 방해받은 불쾌감을 그대로 드러내는 관중을 보고, 보안요원 중 수장으로 보이는 이가 차갑게 이야기했다.

“우리에겐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이 조사에 협조해줘야 할 사건이 있어요. 문제가 없다면 경기를 놓치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내 그와 부하들이 손에 들고 있던 기관단총을 들어 올렸다.

“무슨 문제라도 찾아내는 게 좋을 겁니다.”

조용히 중얼거린 관중은 얌전히 일어나 통로 쪽으로 향했다.

그 이후 몇몇 보안요원들이 자신을 그를 포위하러 다가가는데, 갑자기 그가 밖으로 냅다 돌진해버렸다. 아무 낌새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너무 급작스러운 상황에 미처 그를 막지 못하고 떠밀린 보안요원들은 곧장 뒤돌아 그를 쫓으려 했다.

하지만 돌아서는 사이, 보안요원들은 방금 막 걸음마를 배운 아기가 된 것처럼 몸의 균형을 잡지 못했다.

쿵! 쿵! 쿵!

보안요원들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지만, 저들 혼자 계단 통로에 넘어져 버렸다. 그들 눈앞에는 별이 빙빙 돌고 있었다. 아마 몸에 기관단총을 걸어두고 있지 않았다면 가지고 있던 총들도 잃어버렸을 게 분명했다.

‘각성자야. 방금 저 귀족을 질식시켜 거의 죽음에 이르게 할 뻔한 게 도망친 그 남자 짓인가? 이 정도 거리면 기원의 바다 급은 아닐 거야. 근데 저들은 어떻게 범인을 특정한 거지?’

장목화는 두근대는 심장을 안고 피해자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여러 귀족에 둘러싸인 피해자를 한 귀족이 응급처치해주고 있었다.

주위 바닥은 떨어진 물잔 때문에 축축이 젖어가고 있었고, 곳곳에 흰 물잔의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장목화는 다시 빠르게 도망치는 각성자를 눈으로 좇았다. 체격이 굉장히 건장한 남자는 단숨에 보안요원들과의 거리를 벌리며 출입구로 돌진했다.

그 와중에 남자는 의도적으로 다른 관중들 뒤편에 몸을 숨기기도 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을 다른 보안요원이든, 근처에 있을 관중이든 혹시라도 그에게 총을 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수작이었다.

퍼스트 시티 주민들은 무예를 숭상하는 이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종종 총을 뽑아 들고 직접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탕! 탕!

드문드문 울리는 총성 속, 건장한 금발의 남자는 벌써 출입구 근처에 이르렀다. 그곳에도 보안요원들이 있었지만, 남자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곧장 돌진하려 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남자의 두 다리가 휘청이더니 아무 장애물도 없는 평탄한 바닥에 그대로 자빠져버렸다.

쿵!

장목화는 남자의 두 다리가 뻣뻣해진 걸 목격했다. 마치 누군가 납이라도 주입한 듯한 모양새였다.

“다리 동작 불능일까요?”

성건우가 상기된 얼굴로 속삭였다.

“그런 것 같아.”

장목화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용여홍도 그쪽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출입구에서 밀려든 보안요원들은 기관단총을 아래로 내려 바닥에 쓰러진 각성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들은 기이한 능력이 있는 적을 마주한 상황에서는 상대가 혼수상태에 빠진 게 아닌 이상 생포할 생각은 말라는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다다다-

검은 총구 끝에서 불꽃과 함께 엄청난 양의 총알이 쏟아졌다.

이를 보고 용여홍은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각성자는 어느 급에 이르렀든 매우 강한 자들이었지만, 그래도 무기를 이길 순 없는 법이었다.

곧이어 엄청난 총성이 멈췄다.

그 순간, 용여홍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저 엄청난 공격을 받고도 각성자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게 일어났다.

‘뭐야? 총격에 끄떡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건가?’

지금 용여홍이 선 자리에선 보이지 않지만, 조금 전 남자가 쓰러진 자리엔 수도 없는 총알구멍이 사람 윤곽대로 남아 있었다. 그 많은 총알이 오직 그 남자 한 사람만 비껴간 것이었다.

그리고 각성자는 두세 걸음 만에 출입구에 당도했다.

그때, 위쪽에서 밧줄 하나가 내려왔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밧줄이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각성자는 어떤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지니고 있던 무기를 꺼내 그 밧줄을 향해 미친 듯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그가 꺼내든 건 권총이 아닌 라이터였기 때문이었다. 권총은 여전히 그의 허리춤에 얌전히 꽂혀 있었다.

탁- 탁- 탁-

라이터는 불똥을 튀기기만 할 뿐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보안요원들이 도착했다. 이미 불가사의한 일을 겪은 그들은 이번엔 총을 쓰지 않았다. 그런 난사에도 멀쩡히 살아남은 상대에게 총이 다 무슨 소용일까. 남자는 그야말로 기적을 행했다.

보안요원들은 상대를 제압하려 위로 몸을 날리거나, 상대를 마비시키기 위해 전기 충격 기능이 있는 몽둥이를 꺼내거나, 또 누군가는 기절시킬 용도로 주먹을 휘둘렀다.

참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번 일은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남자는 위에서 내려온 밧줄을 끝내 지나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손에 들린 게 권총이 아닌 라이터라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다.

결국 다시금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뱀, 아니 구불거리는 생물이 그렇게 겁이 났나? 그 두려움이 정신을 차리지도 못할 정도로 저렇게 강하다고?’

의문을 표하던 장목화가 갑자기 인상을 굳혔다. 뭔가가 떠오른 것이다.

4월의 달지기, 왜곡의 그림자!

장목화는 이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까진 파헤칠 생각이 없어서, 끌려 나가는 각성자를 보고 용여홍, 성건우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웃음거리로 끝난 암살 시도 사건을 목격한 건가?”

낮게 웃던 장목화는 다시 그 물 마시다 죽을 뻔한 귀족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장목화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귀족은 너무도 멀쩡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질식당할 뻔했던 흔적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전방 테이블 위에 놓인 흰 도자기 컵도 멀쩡했다.

심지어 바닥까지도 젖은 구석 하나 없이 바짝 마른 상태였다.

굳어버린 장목화와 성건우의 시선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튼 용여홍 역시 그대로 굳고 말았다. 조금 전과 지금 중 어느 게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때였다.

둥! 둥! 둥!

여전히 요란한 소리 속, 무대 양쪽 철책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장목화는 무대로 나온 격투사에 관심을 두기보다, 별생각 없는 척 충돌이 있던 곳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출입구 근처 보안요원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관중들은 수시로 그쪽을 힐끔대고 있었다.

이는 즉, 저 수천의 인원이 모종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 이상, 조금 전 누군가 출입구를 향해 질주했던 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증거였다.

장목화가 지금 VIP 귀족석에 앉아 있지만 않았더라도, 그곳 바닥에 총알구멍이 남아 있는지, 갈황색 밧줄이 남아 있는지 벌써 다 확인했을 터였다.

일단 그녀의 직감으론 그런 흔적들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이내 어렴풋하게 뭔가를 파악한 장목화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죽을 뻔했던 귀족의 곁에서 한 동료가 농담을 건네고 있었다.

“하하! 하마터면 상류 사회에서 최초로 물 마시다 사레들려 죽은 사람이 될 뻔했어. 그 사람 다음으로 창피한 죽음이었겠네. 어때? 소감이?”

죽을 뻔했던 귀족이 어두운 얼굴로 대꾸했다.

“그건 내 암살 시도였어! 내가 누구의 미움을 산 건지도 몰라! 하, 일단 격투나 보자. 그 이야기는 이따 하고.”

장목화는 그제야 그 귀족의 생김새를 제대로 보았다. 나이는 대략 27, 8세 정도로 추정되는 아크슨인이었다.

검은 머리를 하나로 깔끔히 땋아 내린 상대는 보아하니 유전자 개량을 받은 것 같았다. 그의 이목구비는 하나하나 떼놓고 보면 그렇게 출중한 건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조합은 나름 멋졌다. 흡사 재야의 예술가처럼 보였다.

파란 눈동자가 맑게 반짝이는 걸 보면 취한 것 같진 않았고, 키는 앉아 있기에 정확한 판단이 어려웠다. 그래도 용여홍보단 클 것 같았다.

“디노, 암살당할 뻔했다는 걸 핑계로 삼으면 안 되지.”

다시 귀족 동료가 낄낄댔다.

‘저 사람들, 디노란 남자가 물 마시다 죽을 뻔한 걸 다 봤어. 당시엔 디노도 절대 물잔을 똑바로 쥐지 못하고 떨어뜨렸을 거야. 디노도 자기가 암살당할 뻔한 걸 알고 사레들린 것도 부인하지 않아. 그렇지만 지금 물잔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테이블에 놓여 있고, 바닥에 쏟아진 물도 없어.’

장목화는 하나하나 꼼꼼히 짚어가며 진상을 추측했다. 앞서 얘기가 나왔던 창피한 죽음의 주인공에 대해서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 귀족은 교외에서 급작스러운 복통을 느끼고 한 농부 집에 무작정 쳐들어가 변소를 썼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이른 나이에 추락사했다고 했다.

그때, 장목화는 마커스가 다시 또 전처럼 비웃음을 흘리는 걸 포착했다. 뒤이어 그는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 순간 장목화의 귓가에 성건우의 낮은 웃음소리가 닿았다.

“가상컴퓨터네.”

‘가상컴퓨터?’

장목화는 전자, 컴퓨터 영역을 연구해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그런 방면의 사물을 접해본 적이 있었다.

거기다 생체 공학 의수에 보조 칩을 장착한 이래론 그 분야 이해도가 더 깊어져서, 가상컴퓨터가 무엇인지 정도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가상컴퓨터는 상응하는 기술로 시뮬레이션 된 컴퓨터 운영체제로, 기능이 원판과 같아서 사실 가상컴퓨터 사용이나 원판 사용이나 다를 게 없었다.

또 가상컴퓨터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건 거울에 비친 반영에 불과해서 원판에 미치는 영향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위험한 작업 시 사용됐다.

성건우가 이 상황을 가상컴퓨터에 비유한 건, 귀족석과 그 주위 일정 구역에 있는 모두가 한 가상 세계, 혹은 대규모 환각에 동기화됐다는 의미였다.

모두의 데이터와 반응은 전부 복제된 것이었고, 그 안에서 발생한 교류와 교류의 결과는 이 환각을 만든 강력한 각성자가 한번 선별한 후 모두에게 반영된 것이었다.

즉, 구조팀이 지금 보는 사람과 듣는 말 전부 세 번 전환을 거친 결과였다.

누군가 현실에서 입을 열면 그 말과 표정, 동작은 일단 가상 세계에 동기화가 되고, 가상 세계 속의 사람들은 그제야 동기화된 상대의 말을 듣거나 표정과 동작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받아들여진 데이터 정보가 현실과 동기화되는 건 그 후의 일이었다.

아주 정상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이 교류에는 사실 아주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메커니즘이 깔린 셈이었다. 목적은 안전 보장이었다.

그러니까 이 구역에서 이뤄지는 사람과 사람 간의 혹은 사람과 사물 간의 모든 교류가 전부 가상 세계 안에서 미리 한 차례 걸러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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