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78화 (378/649)

378화. 낯선 느낌

코르네 스트리트는 레드울프와 골든그레인 경계에 있었다. 이곳은 치안이 나쁘지 않고, 주민의 구성이 복잡하다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구조팀은 여러 차례 비밀스러운 관찰 끝에 55호 아파트가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성건우는 맹목의 고리로 감지 범위를 대폭 확대해, 감시와 저격하기에 편리하면서도 비교적 먼 거리에도 인간의 의식이 없다는 걸 알아냈다.

구조팀은 다시 조를 나눠 움직였다. 백새벽과 용여홍은 군용 외골격 장치를 입고 높은 곳에서 사방을 감시하는 지원을 맡았고, 장목화와 성건우, 게네바는 55호 아파트에 진입하기로 했다.

아파트 2층으로 올라간 구조팀은 단번에 리만의 부하 두 명을 발견했다. 이들은 게네바를 제외한 구조팀 네 명과 레드스톤 마켓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오랜만!”

성건우가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자 부하 하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갑자기 무슨 일? 아직 거래 장소랑 시간 안 정해졌잖아?”

‘너희 사장이 살려달라던데?’

장목화가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며 정색했다.

“여기서 거래하기로 약속한 게 아니면, 너희가 여기 있다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두 부하는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인 듯 보였다.

그러나 장목화는 그들에게 딱히 생각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리만은 어디에 있지?”

“3층에. 근데 올라가면 안 돼.”

한 명이 본능적으로 답했다가, 바로 주의를 줬다.

장목화는 눈동자를 살짝 굴리며 성건우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내 성건우가 물었다.

“왜 올라가면 안 되는데? 우리는 리만과 아는 사이야. 거기다 거래하기로 약속했다고. 왜 올라가면 안 되는데?”

깊은 고민에 빠진 두 부하는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생각해보니 올라가지 못할 이유도 없는 것 같네⋯⋯.”

성건우는 더 이상의 말을 늘어놓는 대신 곧장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쳤다.

장목화와 게네바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 * *

3층에 있는 방은 총 여섯 개였다. 성건우는 본능적으로 리만에게 어디에 있냐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장목화의 손에 그대로 붙들렸다.

“겐에게 먼저 스캔하게 해야지.”

장목화가 잔뜩 낮춘 목소리로 말했다.

끼익-

그녀의 말과 동시에 계단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 두 개 중 한 곳의 나무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와 함께 리만의 얼굴이 쏙 튀어나왔다.

겉모습만 보면 성실한 농민이 따로 없는 무기 상인은 손까지 연거푸 흔들며 구조팀을 반겼다.

“여기야, 여기.”

리만은 무탈해 보였지만, 상당히 다급하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 모습에 장목화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다 성건우, 게네바를 이끌었다. 리만에게 가는 동안에도 절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윽고 셋이 막 방에 들어선 순간, 리만이 밖을 두어 번 살피더니 재빨리 나무 문을 닫아버렸다.

“드디어 왔네!”

연합 공업 출신의 무기 상인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구름을 뚫고 날아오른 화살 한 발은 천군만마를 불러오는 법이지.”

성건우가 애쉬랜드어로 진지하게 말했다.

리만은 기본적으로 애쉬랜드어를 알아듣긴 했지만, 성건우가 한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장목화도 그 말을 설명해주진 않았다.

“리만, 별일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우리한테 살려달라고 한 거야?”

질문하기 전, 그녀는 이미 방을 한 번 둘러보며 구조 파악을 끝냈다.

안은 굉장히 깔끔했고 방은 총 두 개, 화장실은 하나였다. 또 탁자, 의자와 더불어 퍼스트 시티 관영 방송국 유일한 채널만 수신 가능한 TV도 있었다.

곧이어 리만의 얼굴에 굉장한 공포가 드리워졌다.

“기이한 일이 일어났어. 정말 어마어마한 위험이 느껴졌다고.”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이던 장목화가 바닥을 가리켰다.

“네 부하들이 배반이라도 했어?”

리만이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에 나섰다.

“이것도 배반으로 볼 수 있을 진 모르겠는데⋯⋯. 퍼스트 시티에 올 때는 걱정한 적이 없었어. 인력도 충분하고 믿을만한 각성자 경호원까지 고용한다면, 나랑 내 물건의 안전이야 확실히 보장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어. 여태껏 모든 게 다 정상적이었다고. 근데, 이 아파트에 온 뒤부터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어…….

첫째로 날 보는 리처드슨의 눈빛이 이상해졌어. 꼭 날 죄수로 여기는 것 같았어. 본인도 경호원이 아닌 간수가 된 것처럼 굴더라고. 나를 내내 지켜보면서 이 방도 못 떠나게 했어. 전부 내 안전을 위한 일이라면서.

맞아, 틀린 말은 아니지. 근데 난 엄연히 리처드슨을 경호원으로 고용했다고. 고용주랑 경호원 사이에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야? 이상하지 않아?”

리만의 얼굴에는 재차 공포에 질린 표정이 떠올랐다.

“그냥 미친 거 아닐까?”

성건우가 진지한 답을 내놓았다.

“아니야! 내가 리처드슨이 화장실 간 사이에 론달도 찾아갔거든? 아, 론달은 내 수하고, 서로 안 지도 오래됐어. 론달한테 리처드슨이 좀 이상하다고 했더니 ‘보스, 리처드슨 말이 맞아요, 방에 얌전히 계세요.’ 그러더라고.”

론달의 말을 전하는 리만의 얼굴에 더욱 짙은 공포심이 어렸다. 아직도 그로 인한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야. 전부 낯선 사람이 됐어! 그냥 날 여기에 가둬두고 있다니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도 안 돼. 그래서 기회를 틈타서 몰래 무선 통신기로 너희한테 도움을 청한 거야.”

점점 흥분하는 리만을 보고, 장목화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래, 그래. 이해해. 그런 일을 겪으면 누구라도 겁먹지. 일단 진정하고, 리처드슨한테 문제가 생기기 전에 혹시 누구랑 접촉했었는지 기억해?”

리만도 일찍이 그 문제를 고민해본 듯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길에서 마주친 행인들을 제외하면 누구랑도 접촉한 적이 없어.”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럼 우리가 론달한테 가서 이야기해볼게.”

동시에 그녀는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았다.

리처드슨을 선택하지 않은 건, 그가 각성자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리만이 그의 능력과 대가를 잘 아는 것도 아니었다.

* * *

론달은 2층에서 구조팀을 가로막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검은 옷차림에 금발, 푸른 눈의 남자는 한눈에 봐도 몸이 상당히 탄탄해 보였다.

성건우는 환하게 웃으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거래 끝났어. 리만이랑 우호적인 합작 관계를 맺기로 했지. 그리고 너희는 리만의 믿음직한 부하들이지? 그러니까⋯⋯.”

론달과 동료는 순간 큰 깨달음을 얻은 듯 순수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 어려워하지 말고 말 해봐, 우리가 도울 일이라도 있어?”

성건우가 곧바로 물었다.

“듣자 하니 너희가 리만이 외출하는 걸 막았다던데?”

“맞아. 밖이 얼마나 위험한데 보스를 쉽게 내보낼 수 있겠어?”

론달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 행동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는 스스로를 여전히 리만의 부하로 인식하고 있었다.

살짝 인상을 쓰고 지켜보던 장목화가 잠시 생각하다 성건우에게 말했다.

“어째 너랑 좀 비슷한 것 같다?”

추리 광대 능력의 특징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가요?”

성건우가 기대감 어린 말투로 되물었다.

그 사이 론달은 2층의 한 방문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리처드슨, 잘 잤어?”

장목화, 성건우, 게네바는 동시에 몸을 돌렸다.

한 남자가 문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이는 스물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였다. 짧고 헝클어진 머리는 검은색이며, 갸름한 얼굴엔 파란색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짙은 색 셔츠와 긴 바지를 입은 남자는 검은색 둥근 테 안경을 끼고 있었다.

남자는 리만이 거금을 들여 고용한 경호원 리처드슨이었다. 마찬가지로 연합 공업 출신으로 원래는 엔지니어였고, 리만과 여러 차례 합작하는 동안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왔다고 했다.

“당신들은?”

리처드슨이 구조팀을 보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론달은 열정적으로 답했다.

“보스의 친구들이자 사업 파트너. 우리가 이번에 퍼스트 시티로 오게 된 게 이 사람들이랑 거래하기 위해서야.”

리처드슨은 약간 두꺼운 안경알 너머의 파란 눈동자로 장목화, 성건우, 게네바를 차례로 훑어보았다.

“누가 당신들한테 이 아파트를 알려준 거지?”

“리만이. 설마 보스가 그 정도 자격도 없는 건 아니지?”

장목화가 웃는 듯 아닌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몇 초간 침묵하던 리처드슨은 론달을 비롯한 리만의 부하들을 돌아봤다.

“사업 파트너라도 위층으로 올라가면 안 돼. 안전이 가장 중요하잖아.”

론달이 난처해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이미 위에 올라갔다 왔어.”

리처드슨의 눈이 커다래진 찰나, 성건우와 장목화는 이미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때였다. 두 사람은 돌연 나른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서 빈둥대고 싶어졌다.

‘귀찮아. 또 싸우고, 총을 뽑고, 위협하고, 조사해야 한다니. 일이 끊이질 않잖아. 게으름 피울래, 옆에 누워서 겐이 처리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장목화는 지난 몇 년간 쌓인 나태함이 폭발하듯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 시간, 성건우는 이미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앉을 수 있다면 굳이 일어날 필요도 없고, 누울 수 있다면 앉을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는가.

리처드슨이 이 모습에 흠칫 놀라던 와중, 갑자기 시야로 사발만 한 강철 주먹이 하나가 보였다.

퍽!

리처드슨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동시에 나태한 상태를 벗어난 장목화는 다시금 생기를 되찾았다.

‘이 사람 능력이 이런 거였네.’

장목화는 조금 전에 마주했던 느낌을 되새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리처드슨을 향해 냅다 달려든 건 의도한 바였다. 게네바가 뒤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으니, 최대한 각성자의 다양한 능력을 직접 경험하는 게 앞으로 어떤 방안을 세울 때도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론이었다.

리만은 리처드슨의 구체적인 능력은 알지 못했지만, 전에 몇 차례 합작한 덕에 대략이나마 상대의 수준을 판단하고 있었다.

다만 그녀도 성건우가 왜 아무 능력도 발휘하지 않고 리처드슨에게 달려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평범한 머리론 도저히 가늠이 안 됐다.

한편, 구조팀 세 팀원이 리처드슨을 기습하는 것을 보고, 론달을 비롯한 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총구를 쳐들었다.

그 순간, 바닥에 누워있던 성건우가 벌떡 일어나 신중한 얼굴을 했다.

“이 사람은 내부 간첩이야. 리만을 해하려 한 장본인이라고! 무엇보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 당장 이 사람부터 처리해야 해.”

그의 말에 론달을 비롯한 리만의 부하들은 큰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그들은 성건우 말에 증거가 있는 건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안전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 진심으로 믿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사고회로야? 건우가 추리 광대 능력을 쓴 것 같지도 않은데.’

장목화는 론달부터 부하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이내 3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돌아보았다.

“이제 내려와도 돼!”

무려 10초가 지난 뒤에야 성실한 농부처럼 보이는 리만이 아주 조심스레 2층으로 내려왔다.

“보스, 나가시면 안 됩니다.”

론달을 비롯한 이들이 분분히 나섰다.

그러자 성건우가 다시 진지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건 내부 간첩을 처리하기 위한 거라고. 안전이 가장 중요하잖아!”

론달을 비롯한 부하들이 다시 또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비켰다.

‘뒤에 문장은 딱히 필요도 없는 말인데……. 건우가 성공의 키워드를 찾아낸 모양이네.’

장목화는 씩 웃고 있었다. 성건우가 찾은 키워드는 바로 ‘안전’이었다.

또한 이는 추리 광대와 구분이 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추리 광대는 하나의 결론을 유도해, 상대가 본인 스스로 도출한 결론을 믿게 하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 결론과 상반된, 모순된 일이 발생한다면 단순히 결론을 반복한다고 해서 그 효과를 유지하거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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