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77화 (377/649)

377화. 전보

구조팀 다섯은 순간 침묵에 빠져들었다. 지금까지 대화에 담긴 정보량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몇 초 후에야 성건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두형 선생님, 선생님은 이미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셨습니까?”

‘너무 직접적이잖아!’

용여홍이 성건우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화들짝 놀랐다.

이두형은 실소를 터뜨렸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전 줄곧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신세계 대문을 동시에 찾지 못하면, 심령의 복도에서 신세계 대문을 찾더라도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순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현실 세계 문을 찾기 전 심령의 복도에서 찾은 문으로 냅다 들어갔다간 염호와 같은 결말을 맞게 될지도 모르죠.”

순간 장목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다면 이미 심령의 복도에서의 문은 찾았지만, 감히 그걸 열고 들어갈 엄두는 내지 못하고 현실 세계에서만 노력하고 있다는 뜻일까?’

이제 생선구이 냄새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이두형도 절로 코를 벌름대더니 약간 조용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을 많이 하고 났더니 배가 고프네요.”

“조금 더 구워져야 할 것 같은데요.”

장목화가 그릴을 힐긋 보며 대꾸했다. 워낙 큰 생선이라 칼집을 냈는데도 굽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때, 성건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두형 선생님, 퍼스트 시티엔 수종이를 찾으러 오신 건가요?”

“그런 셈이죠.”

이두형은 몇 초간 침묵하다가 말했다. 답이 사실 좀 모호하긴 했다. 지금까지 좋은 선생님으로서 보인 면모와는 확연히 달랐다.

장목화는 이두형이 늪 1호 폐허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중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그와 비슷한 가치를 갖는 정보를 내놓아야만 했다. 결국 할 말이 없어진 그녀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한편 몇 초간 진지하게 고민하던 성건우가 태연하게 물었다.

“수종이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이두형이 웃었다.

“사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전 아주 많은 기억을 잃었거든요. 제 인생의 목표 중 하나가 그를 찾는 것이라는 것, 또한 그는 매우 위험한 인물이며 구세계 일부 비밀에 연루돼 있으리라는 것만 알 뿐입니다.”

“저한테 선생님 기억을 되찾아 줄 방법이 있습니다!”

성건우가 곧장 자진해 나섰다. 용여홍도, 백새벽도 눈빛을 반짝였다. 구조팀의 숙명주를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이두형이 구조팀을 한번 훑어보며 작게 웃었다.

“소용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진정한 신세계에 들어간 보리 영역 각성자를 찾아 숙명통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입니다.”

‘……이걸 추측해냈다고?’

장목화가 흠칫했다. 조금 전 디마르코 관련 이야기를 했을 때, 그 각성자의 행동만 간략히 언급하고, 그 능력은 최대한 모호하게 표현했었다.

하지만 이두형은 그런 이야기만 듣고, 조금 전 성건우가 보인 모습을 통해 구조팀이 숙명통을 발휘할 수 있는 뭔가를 가지고 있음을 추측해냈다.

장목화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신비로운 강자구나.’

이내 성건우는 자신을 얕보는 상대에게 분노는커녕 호기심만 드러냈다.

“말인 영역의 각성자에게 기억을 삭제당한 겁니까?”

“아마 아닐 겁니다.”

이두형의 말투에는 확신이 없었다.

대화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장목화가 화제를 전환했다.

“수종이는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 건가요?”

생각에 잠겨 있던 이두형이 소리 내 웃었다.

“사실 저는 그와 여태까지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적이 없습니다. 음, 여러 현상으로 볼 때 그 위험도는 여러분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만약 이 도시에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가 이렇게까지 많지 않다면 아마도 이곳 전체를 파괴해버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인간형 핵폭탄?’

장목화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러나 성건우는 오히려 웃음을 보였다.

“집안에 틀어박혀 게임 하는 걸 좋아하는 애라 다행이네요.”

이두형은 천천히 자신의 여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배경으론 점점 짙어지는 생선구이 냄새가 흐르고 있었다.

“그 교파는 정말 흥미로웠어요. 그들은 폐허 도시에서 찾은 특정 물품과 자료, 거기다 달지기에 대한 숭배심을 결합해 아주 재밌는 교리를 만들어냈어요. 자발적으로요.

바벨과 샌드백 등이 성물이고, 그걸 구세계에서부터 자신들의 달지기를 숭배해왔다는 증거로 여기며 매일 고통스럽게 신체를 단련해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은 당신의 몸뿐’, ‘근육이 최고’, ‘강건한 신체만이 신세계 대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리라!’ 등등의 구호를 외치죠.”

‘헬스교?’

장목화가 순간적으로 떠올린 단어였다. 뒤이어 근육에 미쳐있는 도시 방위군 소령 듀카스도 떠올랐다.

“그들의 성찬은 뭔가요?”

성건우는 언제나처럼 본인 관심사에만 집중했다.

이두형이 소리 내어 웃었다.

“고단백질의 음식이죠. 구세계의 프로틴 음료 같은 게 있다면 신의 선물로 여겨질 겁니다. 그들은 4월의 달지기, 왜곡의 그림자를 숭배합니다.”

그때, 조용히 듣기만 하던 백새벽이 이야기했다.

“현실적인 의미에서 보면 그들의 교리는 다른 교파들 교리보다 훨씬 더 실용적이긴 하겠네요.”

장목화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맞아, 어떤 각도에서 보든 신체를 건강하게 만들어서 나쁠 건 없지.”

이두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교파 신도가 꽤 많습니다. 군대나 유적 사냥꾼 사이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고요. 사실 솜씨도 괜찮고, 사격 실력도 훌륭하고, 몸도 건강하다면 애쉬랜드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물을 받은 것과 진배없죠.”

군대라⋯⋯. 장목화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용여홍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끼어들었다.

“단련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그럴 만한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을 뿐이죠.”

배불리 먹고 마시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단련은 몸만 상할 뿐이었다.

“예를 들면⋯⋯.”

웃으며 운을 뗀 성건우가 모호하게 말끝을 흐렸다.

“…….”

자연스레 용여홍의 표정이 썩었다. 무슨 대꾸를 하든 성건우는 결국 유전자 개량을 해도 키가 175센티미터밖에 안 된다는 답이 나오도록 만들 터였다.

용여홍은 조용히 이두형의 답을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곧이어 이두형이 자조하듯 웃으며 말했다.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포교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 정기적으로 먹을 것을 공급하겠죠.”

‘애쉬랜드에서 전도하기에 그것보다 효과 좋은 것도 없지.’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계속 이야기를 하며 조직의 이름도 나왔다. 이두형이 밝힌 그 조직의 이름은 성신교(聖身敎)였다.

그런 뒤, 이두형은 각기 다른 지역에서 들은 소문도 언급했다. 그는 심지어 욕망 성인 교파와 초월 영성 교단이 각자 한 구역씩 통제해 대립하는 스피릿 아일랜드에 방문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곳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각종 과일과 대마 등을 생산하기 적합한 곳이라 관련 산업이 고도로 발달해 있으며 그것으로 각양각색의 물자를 교환하는 곳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성건우가 불쑥 물었다.

“구세군에도 가보셨나요?”

이두형이 웃으며 답했다.

“가봤죠. 사실 그다지 특색있는 곳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사람들 정신상태는 분명 달랐어요. 게다가 두 가지 극단적인⋯⋯.”

그때, 요리사가 움직이자 자연스레 대화가 끊겼다. 요리사는 다 구워진 생선의 껍질, 뼈, 살코기를 분리해 모두의 앞에 놓아주었다. 너무도 맛있는 냄새에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게네바도 눈치껏 그런 척했다.

“이제 먹어도 되겠네요.”

이두형이 먼저 살코기를 한 점 집어 눈을 반쯤 감고 천천히 음미했다.

성건우는 곧장 생선 껍질 한 조각을 집었다. 그 자체의 독특한 맛과 위에 뿌려진 조미료는 서로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침샘을 폭발시켰다.

대접하는 사람도, 대접받는 사람도 모두 만족한 식사였다. 심지어는 게네바도 배터리를 가득 충전한 상태였다.

* * *

구조팀과 이두형과 헤어졌을 때 하늘은 이미 어둑해지는 중이었다. 행인들은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고, 그 수는 오후보다 몇 배나 더 늘어있었다.

“연락할 수단이 없다는 게 참 안타깝네요.”

성건우가 아쉬움에 중얼거렸다. 장목화 역시 아쉬움을 느꼈다.

이두형은 퍼스트 시티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핸드폰도 없었고, 주소나 전보의 주파수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저 구조팀 질문에 쿨하게 손을 흔들며 오가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 말을 듣고, 게네바가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그 사람한테 빌붙으려고?”

장목화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왜 이렇게 직설적이야? 빌붙는다는 말은 또 언제 배웠지? 겐은 눈치부터 좀 키워야겠네. 아……, 건우 하나도 감당이 안 되는데.’

장목화는 차마 옆으로 돌아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문제의 남자 성건우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수종이가 퍼스트 시티에 있는 한, 언젠가 이두형 선생님을 또 만날 거예요. 그땐 꼭 신비한 이미지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지.”

“……그래, 소원 꼭 이루렴.”

곧이어 장목화는 용여홍, 백새벽에게 조용히 복화술로 이야기했다.

“쟤네랑 떨어져서 가자.”

슬금슬금 셋, 둘로 나뉜 구조팀은 여러 안전 가옥 중 한 곳으로 향했다.

* * *

시간이 거의 다 된 것을 확인하고, 구조팀은 무선 통신기를 켰다. 연합 공업의 무기 상인 리만에게 거래 시간과 장소를 받기 위해서였다.

앞서 블랙셔츠파의 테렌스는 성건우에게 분명 그만한 거금을 현금으로 모으긴 어렵지만, 등가의 물자를 보태줄 수는 있다는 뜻을 전했다. 또, 담보만 충분히 맡겨두면 이자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장목화는 일단 군용 외골격 장치를 맡겨뒀다가, 거래가 끝나면 신형 기계 팔로 담보를 대체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기계 팔은 한동안 사용이 불가해서 테렌스에게 맡겼다가 천천히 갚아나가도 상관없었다.

처음에 성건우는 게네바를 담보로 맡기겠다고 제안했지만, 테렌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더는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구조팀은 연락을 담당하는 안전 가옥으로 가 리만에게 전보를 보냈다.

한참 뒤, 무선 통신기 신호음이 울렸다.

장목화는 전보를 받아 보조칩으로 빠른 해독에 나섰다.

그런데 첫 번째 단어를 해독한 순간, 그녀의 눈꺼풀이 경련했다.

「살려줘!」

속도를 더 높인 장목화는 금세 전보를 완벽하게 해독해냈다.

「살려줘! 코르네 스트리트 55호.」

“리만이 위험에 처한 걸까요?”

용여홍이 내뱉듯 말했다.

장목화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리만이 무기 밀수를 했던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잖은가. 게다가 그는 퍼스트 시티에 인맥도 상당히 있는 데다, 훌륭한 장비를 갖춘 강력한 부하들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세간의 이목을 끌 정도로 대대적으로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꽤 신중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 위험에 빠졌다고?

그때, 백새벽이 의문을 제기했다.

“리만에게 위협을 하고, 우리한테 전보 보낼 시간도 줄만 한 일이 대체 뭘까요?”

그 말에 장목화가 고개를 돌려 성건우와 게네바를 바라보았다.

둘은 같은 방향, 같은 속도로 고개를 저었다.

이내 게네바가 입을 열었다.

“정보가 부족해서 분석이 불가해.”

이를 보고 용여홍이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이 전보가 가짜일 가능성은요? 리만을 붙잡고 고문해 누군가 연락 방식을 알아냈고, 우리를 꾀어내려고 이런 전보를 보낸 거라면요?”

“음, 그것 역시도 리만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뜻이야.”

장목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건우가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리의 군용 외골격 장치랑 T1형 기계 팔도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죠.”

그 말은 용여홍과 백새벽의 마음에 못처럼 박혔다.

“우리의 적이 리만을 찾아 우리와 대적하자고 협의했을 가능성은?”

게네바는 또 다른 가능성을 분석해냈다. 전보 역시 일종의 함정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지. 리만이 거래 장소를 선택해왔잖아.”

이젠 용여홍도 머리가 꽤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음, 근데 우리가 리만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그 사람이랑 우리 관계를 보면 우위를 차지한 건 우리 쪽이잖아.”

이내 전보를 다시 보던 장목화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어쨌든 일단 코르네 스트리트로 가봐야겠어. 모습을 바로 드러내진 말고 몰래 관찰부터 해보자.”

“네, 팀장님!”

성건우도 이 상황에 매우 신경 쓰고 있는 듯 즉각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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