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74화 (374/649)

374화. 진료소

성건우는 곧 랄프 사탕 몇 알을 꺼내 문 아래 틈에 내려놓았다.

“대답해줘서 고마워. 이건 우리 질문에 답해줘서 고맙다는 선물. 이 사탕 먹으면 배탈 날 수도 있으니까 너무 많이 먹지는 마.”

따라서 쪼그려 앉은 장목화가 그중 세 개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녀는 성건우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 어린아이들이 사탕 먹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조절하겠어. 분명 단숨에 다 먹고 배탈이 날지도 몰라.”

그녀는 다시 꽉 닫힌 문 쪽으로 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

“한 사람당 하나씩이야. 오빠나 동생 거 뺏으면 안 돼, 알았지?”

장목화는 랄프 사탕 두 개만 문틈으로 밀어 넣은 후, 아이들이 각자 하나씩 나눠 갖는 것을 확인했다.

“몇 번 핥아먹어도 배탈 나요?”

여자아이가 천진하게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네. 이따가 아빠 돌아오시면 여쭤봐.”

장목화는 어린이에겐 늘 다정했다.

“네!”

남자아이의 목소리는 약간 커져 있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도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아이샤의 집을 떠났다.

* * *

장목화가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며 이야기했다.

“아이샤 아들 말을 들어보면 아이샤는 발병 전에 이미 필요한 일감을 손에 넣었을 거야.”

아이샤의 집과 하도급 업자 안나의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걸어도 15분이면 충분했다. 교육 시간까지 더한다 한들 아이샤는 발병 전 이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을 터였다. 치안관의 조사 결과도 이와 같았다.

그러나 아이샤의 주위에는 일하는 데 필요한 꽃이 흩어져 있진 않았다. 이를 보면 그녀는 귀가 도중 갑작스럽게 무심병에 걸렸을 확률이 높았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치안관은 이 부분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행인들이 그 꽃을 다 주워가버린 이상, 그것만으론 아이샤가 무심병에 걸린 구체적 위치를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이내 아이샤의 집 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심병이 발병해 야수가 된 뒤에도 아이샤는 집으로 가려고 했어.”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엔 긴 적막이 흘렀다.

그래도 장목화는 제법 빠르게 상태를 회복했다.

“이따 아이샤의 행적을 따라가 보고, 도중에 어느 곳에 들를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 일단은 아래층 주민들을 방문하는 게 좋겠어. 아이샤가 외출했을 때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위층 주민들도 있어요. 내려오던 길에 아이샤를 마주쳤을지도 모르죠.”

성건우는 팀원들과 토론할 때처럼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평소처럼 생각이 럭비공처럼 통통 튀는 일도 없었다.

“그래, 전부 다 찾아가 보자.”

장목화는 재차 한숨을 토해냈다.

* * *

대략 30여 분간, 장목화와 성건우는 이 아파트에 있는 모든 집 문을 두드렸다.

개중엔 북쪽 기슭 불모지에서 모험 중 다친 유적 사냥꾼 주민도 있고,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이 있긴 하나 길거리에서 몸을 팔아야 하는 여자 주민도 있었고, 지금은 텅 빈 집도 있었다.

또 갖은 고생 끝에 물자를 모아 마침내 퍼스트 시티에 입성했으나 아직 공식적인 주민 신분을 얻지 못해 힘겨운 나날을 살아가고 있는 부부도 있었고, 정수되지 않은 물을 장기간 마시고 레드리버 생선을 먹어 온갖 병을 앓는 중년 거주민도 있었다. 그 거주민은 이미 가족을 다 잃었다고 했다.

탐문을 끝낸 뒤, 장목화는 딱 두 가지가 떠올랐다.

협소하고 어두운 계단, 모두 쉰 살 이하인 주민들.

“가자.”

장목화는 솔선하여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 * *

장목화와 성건우는 아이샤가 지났을지 모를 길을 따라 하도급 업자 안나의 집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도중 아이샤의 발병 지점 확인을 위해, 그들은 마치 치안관처럼 길 양옆 건물 주민들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인내심을 갖고 계속 조사한 끝에 두 사람은 마침내 한 구역을 포착했다.

7, 8층짜리 아파트들 사이에 낀, 매우 비좁은 길이었다.

고개를 들어 길 양쪽을 살피던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성건우는 진지하게 답했다.

“단전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요.”

* * *

안타나 스트리트.

용여홍과 백새벽은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앞서 안전 가옥으로 돌아가 장목화와 성건우를 기다렸지만, 한 차례 상의를 거친 후에 계속 조를 나눠 행동하기로 결정했다.

지원을 맡은 게네바는 안타나 스트리트 밖 회색 지프에서 대기 중이었다.

구조팀은 신부를 죽인 후 붉은 SUV를 렌트카 회사에 반납했다. 게네바가 탄 회색 지프는 또 다른 회사로 가서 빌린 새로운 차였다.

안타나 스트리트 곳곳에는 불법으로 지어 올린 건물이 가득했다. 그래서 원래 더 넓었을 길도 소형차 두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게다가 주위는 매우 어둑하기까지 했다.

용여홍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비죽 튀어나온 발코니, 옷을 널어둔 대나무 장대, 횡단보도를 가로막은 별채, 무기를 쥔 채 거들먹거리며 걷는 남자를 대충 훑었다.

지금 그는 알 없는 안경을 끼고 있었다. 라베 스트리트에서 구입한 것인데, 한 유적 사냥꾼이 북쪽 기슭 불모지 어느 폐허 도시에서 주운 거라 했다.

알은 없고 테만 있어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어차피 용여홍은 시력이 좋아서 안경알의 유무나 품질 같은 건 상관없었다. 그저 위장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그냥 지나치면서 보기엔 뭐든 살 수 있는 암흑가 같지 않은데.”

용여홍이 시선을 거두며 중얼거렸다.

총포사와 술집, 도박장 등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 퍼스트 시티는 그곳들을 법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중무기나 환각성 약물, 지정되지 않은 회사에서 생산된 술을 팔지만 않으면, 또 불법으로 빚쟁이를 구금하지 않는 이상에야 질서의 손에 조사당할 리는 없었다. 기껏해야 치안관한테 수고비 조금 찔러주면 그만이었다.

신력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당시, 퍼스트 시티는 식량 공급 보장을 위해 금주령을 내리고 해당 명령을 엄격하게 집행했었다.

당시 암흑가 조직들도 밀주 공급로를 쟁탈하려 대대적으로 경쟁하면서 싸우는 일이 허다했다. 거의 사나흘에 한 번꼴로 싸우곤 했었다.

하지만 십수 년 전부터 금주 법안은 꽤 완화됐고, 덕분에 지금은 지정된 회사에서는 얼마든 술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 주위 거리와 구역을 담당하는 치안관에 대한 예의지.”

백새벽이 목에 두른 얇은 스카프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용여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리 양옆의 가게를 가리켰다.

“순서대로 탐문 할까?”

용여홍과 백새벽은 한명호의 초상화를 인쇄해서 가지고 다녔다. 장목화가 그린 것을 게네바가 스캔해 세부적인 조정까지 거친 그림인데, 인쇄된 것이라도 실제 한명호와 매우 비슷해 보였다.

이내 백새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선 신분이 명확하고 해당 정보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어떤 것도 물으면 안 돼. 자칫 잘못했다가는 특정인들에게 공갈 협박 대상으로 찍힐 수 있거든.”

“그렇구나.”

한 수 배운 용여홍은 문득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 건우가 있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대꾸했겠지?’

용여홍도 왠지 성건우는 그런 상황을 통해 한 몫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용여홍과 백새벽은 간판도 없는 어느 총포사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은 수염이 하얀 노인이었다. 그는 연합202 권총 한 자루를 진지하게 손질하고 있었다.

“레지, 살아있었네요?”

백새벽은 어느새 예전 그 유적 사냥꾼으로 돌아간 듯했다.

곧이어 레지가 눈을 살짝 치뜨고 백새벽을 힐긋 쳐다보았다.

“네가 죽을 때까지 살아있을지도 모르지.”

탁-

백새벽이 한명호의 초상을 테이블에 턱 내려놓았다.

“이 사람 본 적 있어요?”

레지가 피식 웃었다.

“다음번에 또 뭔가 물으면 그때는 돈을 받을 거다.”

‘그럼 이번에는 돈을 안 받겠다는 뜻인가?’

용여홍이 남몰래 기뻐했다.

이내 레지가 초상화를 한 번 슥 훑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 봤어. 특징도 딱히 없는데 누가 기억하겠어?”

백새벽은 바로 초상화를 챙겨 총포사를 나왔다.

“한명호가 그렇게 특징이 없었나?”

용여홍은 총포사를 한번 돌아보며 조용히 투덜댔다.

한명호는 눈의 흰자도 누르스름하고, 얼굴에는 가로 세로로 난 두 갈래 흉터도 있는 남자였다. 이 정도면 한눈에 띄는 특징 아닌가?

백새벽이 덤덤하게 말했다.

“레지 말은 길에서 맞닥뜨린 적도, 이렇게 생긴 사람이 중무기를 사려 한 적도 없다는 뜻이야. 레지는 안타나 스트리트 무기 상인들이 내세운 지하 길드 회장이야. 레지가 본 적 없다는 건, 한명호는 무기를 사려고 여기 온 게 아니란 소리야.”

“그럼 부근에 일자리를 얻었나? 우연히 여길 지나친 건가?”

용여홍이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백새벽은 고개를 저었다.

“눈썰미 좋고 식견도 있는 한명호라면 그냥 스쳐 가기만 해도 이 거리가 뭔가 이상하단 걸, 그것도 아주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거야. 그 후론 안타나 스트리트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없다면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엔 발길도 들여놓지 않으려 했겠지.”

또한 한명호가 퍼스트 시티에 도착한 지는 이미 꽤 됐을 테니, 최근에야 안타나 스트리트에 처음 방문했을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 * *

뒤이어 백새벽, 용여홍은 술집, 도박장, 암시장 등을 돌아다니며 비슷한 질문을 했다. 하지만 다들 본 적이 없다는 답만 내놓았다.

이는 한명호가 안타나 스트리트에 온 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도, 금지된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도, 술을 마시기 위해서도, 도박하기 위해서도 아니라는 의미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해버릴 순 없었다. 뭔가 빠뜨린 부분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제 불법 진료소에 가서 물어보자.”

백새벽은 순서대로 하나하나 차분히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

용여홍도 자세히 생각해보니 한명호가 이곳에 의사를 찾아왔을 가능성도 적지 않겠다고 생각됐다.

유적 사냥꾼 일을 하지 않아도 한명호는 분명 그만큼 또 위험한 일을 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아류인은 당연히 불법 진료소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백새벽과 용여홍은 간판이 없는 한 진료소에 들어섰다.

금테 안경을 낀 진료소 의사는 등받이에 기대앉아, 발행된 지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모를 예전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어디 불편한 데라도?”

그가 두 사람을 힐긋 바라보았다.

백새벽은 쓸데없는 말 대신, 곧장 한명호의 초상화를 꺼냈다.

“혹시 이 사람 본 적 있나요?”

몇 초간 초상화를 자세히 보던 의사가 웃으며 신문을 내려놓았다.

“저는 직업윤리가 있는 편이라.”

백새벽은 아무 말 없이 5오레이 지폐를 꺼내 의사 앞에 친히 놓았다.

의사는 바로 목을 가다듬었다.

“크흠, 며칠 전에 찾아왔었죠. 두 분도 아시겠지만, 안타나 스트리트에서 제 의술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수준이니까요.”

그는 지폐 하나에 직업윤리를 참 잘도 내던졌다. 애초에 불법 진료소 의사와 직업윤리가 같이 놓일 수 있는 단어이긴 하던가?

“다쳤던가요?”

용여홍이 물었다.

의사는 안경을 추켜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심장 문제였어요. 아시다시피 아류인은 대개 신체의 변이를 겪으면서 일정한 결함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딱히 누군가애게 살해당하는 일이 없어도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겁니다. 그 사람 심장에는 태생적인 결함이 있었어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심각해졌겠죠. 지금은 굉장히 또렷해져 있습니다. 적합한 심장을 찾아 교체하지 않으면, 단순한 약물만으로는 2년도 채 못 살 거예요.”

용여홍은 한명호가 참 안쓰러웠다. 평생을 인간으로 살고 싶어 오래도록 고생했는데, 꿈은 한순간 다 깨져버리고 아류인이라 겪어야 하는 큰 병까지 앓고 있었다니. 잔인한 불행은 원래 사정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법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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