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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372화 (372/649)

372화. 의혹

프리드리히는 두 사람이 제출한 서식을 받아 들고 대충 한 번 훑어보다가, 갑자기 입을 쩍 벌렸다.

“네? 여기 온 지 겨우 며칠 만에 벌써 장원 하나를 인수했다고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남자는 심히 놀란 눈치였다. 그도 백새벽, 용여홍처럼 유적 사냥꾼 생활을 했었고, 실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 임무를 수행하며 장원 하나를 살 정도로 돈을 번 적은 없었다.

만약 그런 임무를 두세 번 정도 더 수행했다면, 프리드리히도 말년에 유적 사냥꾼을 그만두고 이렇게 길드 일을 맡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가 쉬지 않고 일하는 건 마냥 집에서 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용주가 꽤 관대했거든요. 상당히 위험한 임무이기도 했고요.”

백새벽이 간단히 설명했다. 조씨 가문 장원과 관련한 일은 사냥꾼 길드를 통해 받은 게 아니기에 아무렇게나 둘러대더라도 상관없었다.

몇 초간 침묵에 빠져 있던 프리드리히가 자조하듯 웃었다.

“제가 젊었을 적에는 왜 그런 좋은 고용주를 만나지 못했을까요?”

“일단 으름장을 놓으면서 위협한다면 그 후는 매우 순조로워집니다.”

백새벽은 웃음기 하나 없는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를 보고, 용여홍이 잠시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건우한테 전염됐나?’

이내 프리드리히는 고개를 끄덕인 뒤 종이 두 장을 챙겼다.

“좋은 방법이네요, 이만 가봐도 좋습니다.”

사무실을 나온 백새벽은 뭔가 생각에 잠겨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한명호는 유적 사냥꾼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용여홍은 습관적으로 왜냐고 물으려다 금세 알아서 답을 찾았다.

만약 한명호가 유적 사냥꾼 일을 하고 있다면 팀 없이 홀로 움직인다 해도 반드시 길드에 여러 차례 방문했을 것이었다. 지금처럼 위장도 하지 않은 채 암흑가에서만 우연히 발견됐을 리가 없었다.

“다른 일자리를 찾았나?”

용여홍의 추측에,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안타나 스트리트 근처에서 일하고 있는 건지도. 나중에 거기 한 번 돌아보자.”

안타나 스트리트는 항구 근처긴 해도 늑대소굴보다 훨씬 더 서쪽에 치우쳐져 거의 공장 구역에 가까웠다.

오가는 사람이 많고 길이 사방팔방으로 뚫려있어 도망치기도 아주 적합했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레드리버로 뛰어들어 운을 시험해볼 수도 있었다.

다만 그 일대의 레드리버는 매우 심각하게 오염된 데다, 변이된 물고기 가운데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피와 살을 좋아하는 물고기도 상당했다.

또 그 수도 많고 겁도 없어서, 특수한 능력이나 상응하는 장비도 없는데 냅다 강에 뛰어들었다가는 즉각 저승길로 직행할 수도 있었다.

* * *

그린올리브 구역, 비좁은 골목길.

길 양쪽에 즐비한 건물 밖으로 죽 뻗어 나온 대나무 장대와 목봉에 갖가지 옷들이 널려 있었다. 덕분에 햇살이 막혀 골목길은 한층 더 어두웠다.

“수면 고양이를 본 사람은 없네.”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녀와 성건우는 한창 변이 생물을 찾는 유적 사냥꾼을 연기하며 주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차례 탐문을 마쳤다.

장목화의 활약은 상당했다. 극을 더 탄탄하게 만들고, 탐문 비용도 아끼려 의도적으로 수면 고양이는 매우 위험한 생물이고, 사람도 먹는다고 말하고 다녔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사실 장목화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심지어 수면 고양이는 그녀가 설명한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였다.

“그날 유령 고양이는 그냥 여길 지나가던 중이었나 봐요.”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늘 그 변이 생물에 본인이 지은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다.

다시 장목화가 의견을 보탰다.

“모든 동물은 고정된 활동 구역이 있어. 외부 영향을 받지 않은 이상 분명 자기 지반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을 거야. 범위를 좀 확대해서 살피자.”

그녀의 말은 수면 고양이가 있는 곳에 수종이의 숙소도 있을 것이고, 지금 이곳과 그리 멀지 않을 거란 뜻이었다.

이는 일반 동물의 습성을 근거로 한 판단이었다. 반고 바이오 연구 자료에선 변이 생물 대부분이 그러한 규율을 따른다고 했다.

다만 수종이는 늘 달랐으며, 이해 가능한 범위를 뛰어넘는 현상을 일으켰다.

“좋아요.”

성건우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위장한 두 사람은 범위를 더 확대해 주위 행인들에게 질문하며 집들도 일일이 방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한낮이었다. 그린올리브 주민 대부분이 일하러 나간 시간이라 애초에 질문할 대상부터가 극히 드물었다.

계속 걷던 와중 장목화는 순간 이 거리가 왠지 좀 익숙하다고 느꼈다. 일찍이 여기로 와 살피고 관찰한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그녀는 뭔가를 떠올리곤 빙그레 웃었다.

“휴고 여관에 거의 도착한 것 같은데?”

그린올리브 구석구석을 훑고 다니다 결국 라베 스트리트 한 골목길에 이른 것이었다. 여긴 퍼스트 시티 지형을 익힐 때 몇 번이고 거쳤던 장소였다.

“사장한테 물어도 되겠네요. 어쩌면 그 사람이 봤을지도 모르잖아요.”

성건우는 큰 기대감을 품었다.

원래 구조팀은 휴고 사장이 매우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고 여겼기에, 장목화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갑자기 장목화의 표정이 굳었다. 미간까지 살짝 구기던 그녀는 잠시 좀 공백을 둔 뒤 입을 열었다.

“뭔가 추측되는 게 하나 떠올랐는데. 건우야, 화내지 말고 들어. 수종이가 너한테 좋은 친구라는 거 잘 알아. 그 아이 잘못을 지적하려는 건 아닌데, 지금 이 현상이랑 그 애 신분에 근거하면 이렇게 추측해볼 수도 있어.”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언제 화낸 적 있었어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진지해진 그의 눈빛을 보며, 장목화는 잠시 휴고 여관을 바라보았다.

“최근 이 거리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했던 무심병……. 혹시 수종이와 관련된 건 아닐까?”

그녀가 생각하는 수종은 무심자의 왕이었다.

성건우도 전방을 응시하며 웃었다.

“사실 저도 그런 의심을 하긴 했어요. 그래서 더 찾고 싶었어요. 제가 직접 관리할 수 있게요.”

“우리 팀 능력으론 절대 그럴 수 없을 거야. 당시에도 그 이두형이라는 신비한 강자가 아니었다면 수종이도 달아나지 않았을 거야. 그럼 우리 결말이 어땠을지도 잘 모르겠네.”

장목화는 신부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에도 전혀 우쭐하지 않았다.

성건우도 그녀의 진지한 경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분명하게 이치를 설명하고 감정에 호소해볼 생각이에요.”

‘그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왠지 모르게 장목화는 구세계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한 어머니가 눈물, 콧물을 쏟고 데굴데굴 구르며 아들을 이혼시키려는 장면이었다.

어느새 모자의 얼굴은 성건우와 수종이로 바뀌어있었다.

물론 수종이가 아들, 데굴데굴 구르는 엄마는 성건우였다.

* * *

구조팀은 지금까지도 방 세 개를 동시에 이용 중이었다. 활동비도 넉넉하니, 안전 가옥 마련에 드는 비용은 절대로 아끼지 않았다.

장목화, 성건우가 차례로 휴고 여관에 들어왔지만, 프런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뒤쪽에 자리한 휴고의 방문은 꼭 닫혀 있었다.

이젠 뭐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말하지 않고도 상대의 뜻을 다 파할 수 있었다. 성건우는 저 방에 인간의 의식이 있다는 걸 읽었고, 장목화도 중대형 생물의 전기 신호를 감지했다.

조용히 프런트로 다가간 두 사람은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장목화의 귀로 거친 숨소리와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듯한 야수의 낮은 포효가 닿았다. 그녀는 손을 들어 금속 와우를 만지작거리며, 의혹 가득한 눈으로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청력이 좋지 않은 장목화는 이전까지만 해도 저런 소리를 듣기 위해선 프런트 안으로 들어가 문 근처에 바짝 붙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프런트 바깥에 있어도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이번에는 좀 강하네요.”

성건우 역시도 확실히 의혹을 드러냈다.

장목화도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고, 다시 그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득 걱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위험한 상황은 아니겠지?”

“들어가 볼까요?”

성건우가 제안했다.

만약 정말로 어떤 병증이 쉽사리 완화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병원에 이송해야 생존율이 높아졌다.

장목화는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혹시 멋대로 방에 들어갔다가 괜히 휴고의 비밀이 노출될 것이 더 염려됐다.

“음, 1분만 더 기다려 보자.”

“네.”

성건우는 프런트 안으로 돌아가 문 앞에 이르렀다. 언제라도 문을 박차고 들어갈 준비가 돼 있었다. 장목화 역시 그의 뒤를 따랐다.

시간이 1분 1초 흘러도, 방에서 들려오던 거친 숨소리와 야수의 낮은 포효는 잠잠해지기는커녕 갈수록 잦고 격렬해지기만 했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만 더 무르익고 있는 것 같았다.

콰직!

여러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행동에 나서도 될 것 같다는 뜻이었다.

1분이 지나기까진 아직 17, 8초가 더 남아있었지만, 안의 기척을 봐서는 최대한 빨리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았다.

성건우는 곧장 어깨를 살짝 낮추고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휴고의 방문은 그대로 밀려나며 옆쪽 벽에 부딪혔다.

쾅!

요란한 소리를 뒤로한 채, 장목화는 방 안을 살피며 천천히 움직였다.

방은 화장실이 딸린 보통의 원룸이었다. 그러나 가구는 침대뿐, 시멘트 바닥엔 타는 초, 바늘, 끈 여러 개와 오래된 작은 칼 등만 흩어져 있었다.

현재 휴고는 상의를 벗고 침대 앞에 서 있었다. 까무잡잡한 몸엔 채찍에 얻어맞은 듯한 흔적이 여러 갈래 나 있었다.

그 상처를 낸 것으로 보이는 채찍은 다름 아닌 휴고의 오른손에 있었다.

이내 휴고도 문 쪽의 기척을 느낀 듯 몸을 반쯤 틀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비로소 휴고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인간의 영성을 잃은 남자는 마치 야수로 변해 버린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저 혼탁한 눈동자를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뿐이었다.

‘……무심병! 휴고가 무심병에 걸렸어.’

다음 순간 장목화는 공기 중에 떠도는 짙은 땀 냄새와 타오르는 초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 수세식 변기에서 풍기는 악취 등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두드러지진 않는 각종 냄새를 맡았다.

한순간 후각이 개만큼 발달한 것만 같았다.

장목화는 도저히 이 구역감을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배 속에 있는 모든 게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때, 성건우는 이미 휴고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뭐야, 정신이 온전치 못하면 이런 끔찍한 냄새에도 면역이 되는 거야?’

장목화가 의아해하던 그 찰나, 성건우가 그대로 토를 했다.

너무 가까운 거리 탓에 휴고의 얼굴에 다 뿌려지고 말았다.

혼탁한 눈동자의 휴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본능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그러진 못했다. 그냥 그 자세로 굳어버린 듯했다.

성건우는 이 기회를 틈타 옆으로 돌아서 휴고의 귀 뒤로 주먹을 날렸다.

퍽!

휴고는 그대로 기절해 쓰러졌다.

그 사이 장목화도 더는 참지 못하고 몸을 틀어 문가에다 토했다.

그제야 장목화는 후각이 원상태로 돌아온 걸 확인했다. 악취는 여전히 또렷했지만, 아까처럼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고등 무심자로 변한 건가?”

장목화는 미간을 찡그린 채 쓰러진 휴고에게 다가갔다.

‘이 근처 구역에 다시 무심병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가?’

잠시 침묵하던 성건우가 답했다.

“아마도요.”

“근데 휴고가 들고 있던 채찍이랑 몸에 남은 흔적들은 다 뭐야?”

장목화는 의혹 가득한 얼굴로 휴고를 자세히 살폈다.

휴고의 몸엔 핏방울이 맺힌 주사 자국과 촛농에 뒤덮인 화상 자국, 칼에 베인 듯한 오래된 흉터가 여러 군데 새겨져 있었다.

성건우가 진지하게 말했다.

“촛농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려고 했나 봐요. 근데 솜씨가 형편없네요.”

장목화가 중얼거렸다.

“그렇다고 온몸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다고? 취향이 자학적인가?”

“고통으로 뭔가를 억누르려고 했던 걸까요?”

성건우가 순간적으로 떠올린 추측에, 장목화도 이번에는 반박하지 않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음……. 일단 바로 치안관을 찾아가지는 말고 휴고 사장한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한번 지켜보자.”

장목화는 단순한 고등 무심자라면 충분히 대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금 옆에는 성건우도 있으니까.

“네.”

성건우는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덤덤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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