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69화 (369/649)

369화. 부끄러운 성건우

레드울프 구역.

그리 높지 않은 이 아파트에 가짜 신부 샌델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컴퓨터를 켜고 파일 하나를 확인했다.

샌델은 상당수에 최면을 걸어 일을 처리하는 관계로, 혹여나 세세한 부분을 간과해 치명적인 실수를 할까 늘 걱정했다. 그래서 돌아올 때면 매번 제일 먼저 누구에게 최면을 걸었는지, 어떻게 걸었는지, 어떤 목적이 있었는지, 앞으로도 관리해야 할지 여부 등을 상세히 기록했다.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기 전까진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기록했었지만, 지금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컴퓨터는 정말 너무도 편리한 도구였다.

이내 샌델은 약속 시간에 맞춰 무선 통신기 앞으로 다가가 전원을 켜고 상응하는 주파수를 맞췄다. 구조팀의 분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샌델은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묵직한 걱정을 안고 전보를 해독하던 중, 첫 번째 문장부터 엄청난 충격이 밀려왔다.

「우린 이미 진짜 신부 알렉스를 죽였어.」

‘진짜 신부가 죽었다고? 겨우 그런 유적 사냥꾼 팀에게? 날 속이려는 건가? 그게 진짜 신부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나?’

샌델은 진짜 신부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신중한지, 얼마나 찾기 어려운지도 매우 잘 알았다. 사실 그에게 복수하는 것도 별 자신이 없었지만,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는 않아서 복수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뿐이었다.

구조팀이 이렇게 짧은 시간 내로 진짜 신부를 처리할 줄은 몰랐다. 아예 불가능한 얘기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가 아는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센델의 마음이 매우 복잡하게 뒤엉켰다. 기뻐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샌델은 전보를 완벽하게 해독했다.

「넌 자유야. 이제 네 삶을 선택하면 돼. 근데 더 이상 나쁜 짓은 하지 마. 만약에 우리한테 여전히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는 소식이 들린다면, 네가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낼 거야. 진짜 신부를 찾았듯이.」

이 문장을 보고서야 샌델은 구조팀이 정말로 진짜 신부를 처리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아니면 자신을 포기했을 리가 없었다.

몇 초 후, 방 안에 약간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퍼졌다.

“하하, 죽었다. 진짜 죽었어⋯⋯. 너도 그렇게 대단한 녀석은 아니었구나. 남의 손에 죽다니!”

샌델은 눈가가 촉촉해질 때까지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손등으로 눈가를 훔쳐내자, 마음마저 한결 가뿐해졌다.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는 며칠 전부터 생각했었다. 진짜 신부를 해결한다면, 혹은 그에게 복수할 방법이 없다는 걸 확인하면 퍼스트 시티를 떠날 계획이었다. 새로이 정착할 곳은 반 지성교 세력에 장악되지 않은 곳이라야 더 좋을 것이다.

샌델은 자신의 능력과 지능을 믿었다. 피라미드 꼭대기 자리를 노리지 않는 이상에는 어디에서든 잘 살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었다.

이때, 샌델의 시선이 다시 마지막 문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샌델은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평소 샌델은 능력이 있는데도 그걸 쓰지 않는 건 낭비고, 능력을 쓸 때 선악을 엄격히 구분 짓는 건 족쇄를 채우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니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그 천진한 사람들에겐 마음껏 비웃어주고 끝내는 게 옳았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웃음 하나 나오지 않았다. 정말 그 경고가 현실이 될 가능성만 헤아려보게 되었다.

솔직히 자존심 같은 건 다 내려두고 보면, 진짜 신부의 능력은, 지능과 자원, 숨는 기술까지도 모자람이 없었다. 샌델 역시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런데 그리 신출귀몰하고 무시무시한 사람이 어디선가 나타난 신비로운 팀에게 단 며칠 만에 목숨을 잃었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샌델은 어느새 퍼스트 시티 공공 네트워크에 접속해 사진 하나를 내려받았다. 주검이 된 진짜 신부의 사진이었다.

벽에 기대 쓰러진 남자는 고개가 살짝 옆으로 떨어져 있었지만, 또렷한 다크서클과 푸르스름해 보일 정도로 창백한 얼굴만은 확연하게 보였다.

모든 생기를 잃은 시신 앞바닥엔 끌린 듯한 붉은 흔적이 남았고, 가슴팍엔 웬 종이 하나도 걸려 있었다. 레드리버 문자가 인쇄된 종이였다.

「난 신부다. 난 죄인이다.」

다시금 몸서리치던 샌델은 태어나 처음으로 준법 시민이 되는 걸 꿈꾸었다.

* * *

레드울프 구역, 스턴 스트리트 25호.

커튼을 치고 전등을 켠 거실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감수자시여,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집주인 테렌스가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게 매우 공손히 물었다.

맞은편 쪽 사람은 포장을 벗긴 사탕 하나를 입에 넣었다.

“마침 정보 하나를 입수한 차에 자네 집을 지나치던 길이라 찾아왔지.”

그는 초월 영성 교단의 성직자인 듯했다.

“어떤 정보입니까?”

테렌스의 불룩한 눈두덩이 아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빛났다.

맞은편에 앉은 상대는 사탕을 물고 만족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진짜 신부가 죽었어.”

“정말입니까?”

테렌스는 진짜 신부와 직접 교류한 적은 없었다. 모르는 새에 한 차례 영향만 받았을 뿐이지만, 각종 정보를 통해 그가 얼마나 대적하기 어렵고 골치 아픈 인물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 이리 쉽게 제거됐다고?’

테렌스 맞은편에 자리한 사람이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문과 각종 생물학적 물질을 비교해보니 진짜 신부가 맞았어. 당시 소르스를 죽인 게 그자가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누가 한 짓입니까?”

테렌스가 다급히 물었다. 그러다 뭔가 번뜩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저, 전하얀 팀 짓입니까?”

맞은편 사람이 새로운 사탕의 포장을 벗기며 말했다.

“확신은 못 해. 지금 파악된 건 그 사건 참여자가 최소 셋에 로봇 한 대가 가담했다는 거야.”

“로봇이라면⋯⋯. 일단은 그들이라고 확정해도 되겠네요.”

테렌스는 놀란 와중에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며칠 전 그들한테 복수 대신 합작하자고 한 건 신의 한 수였어! 안 그랬음 오늘 블랙셔츠파 세컨드 보스 테렌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퍼졌겠지?’

테렌스 맞은편의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팀은 확실히 만만치가 않아. 잘 접근하도록 해. 앞으로 그들 힘을 빌려 그 이단 놈들한테 또 깊은 교훈을 안겨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 이단 놈들한테 퍼스트 시티 권력의 지팡이를 갈취당한다면 우리가 위험해져.”

따르릉-

테렌스가 막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거실의 전화가 울렸다. 잠시 생각하던 테렌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성건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 반 지성교의 작전은 당분간 중단될 거야.

성건우의 이야기에, 테렌스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웃었다.

‘그러겠지, 진짜 신부가 죽었잖아. 반 지성교 고위층 인물들 머리가 정상이라면 모든 작전을 중단하고 잠재된 위험을 조사하겠지. 온 교파가 함께 수렁으로 끌려 들어가는 건 막아야지 않겠어?’

“이미 진짜 신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이건 테렌스 자신이 소식에 밝다는 걸 암시하기 위해 뱉은 말이었지만, 동시에 성건우를 넌지시 떠보기 위한 말이기도 했다.

- 아, 내가 직접 알려주고 싶었는데!

성건우는 상당히 아쉬워했다.

‘역시 너희 짓이 맞았어.’

테렌스는 맞은편 인물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때, 성건우가 매우 머뭇대며 입을 열었다.

- 저, 저기. 너희한테 도움 좀 부탁할 게 있어.

맞은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테렌스가 열정적으로 물었다.

“뭔데?”

성건우는 한바탕 웃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조금 전 그 의뭉스러운 말투는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 우린 형제나 다름없지? 그래서⋯⋯. 너, 너한테 돈을 좀 빌리고 싶어.

“…….”

상대의 목소리에 잔뜩 집중하던 테렌스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그 어마어마한 사건을 처리한 이들이, 지금 돈 빌려달라고 한 건가?

* * *

“뭐래요?”

용여홍이 막 밖에서 돌아오는 장목화, 성건우를 보고 물었다.

이곳은 구조팀이 준비한 어느 안전 가옥 안이었다.

장목화는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건우도 부끄러우면 말을 더듬더라고.”

성건우가 곧장 변명했다.

“친형제라도 돈 얘기는 신중하게 해야죠.”

장목화는 다시금 웃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테렌스가 가진 돈도 그 정도는 안 된대. 하긴, 퍼스트 시티에 단번에 장원 하나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근데 블랙셔츠파 보스랑 초월 영성 교단 사람들을 통해 돈을 모아보겠대. 정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리만과의 거래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구조팀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지 않으려 테렌스에게 돈을 좀 빌려보려 했다.

하지만 진짜 신부를 죽이며 막강한 위세를 얻은 이 상황에선, 사실 모든 부탁이 다 억지로 보호비를 뜯어내려는 수작처럼 느껴지긴 했다.

“그러는 수밖에 없겠네요.”

용여홍이 한숨을 내쉬었다.

짝!

장목화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한 뒤, 입을 열었다.

“번잡스러운 일은 끝났으니 이제 신부의 기억을 말해보자.”

그러자 성건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맛있는 걸 먹으면서 축하하는 게 먼저 아닌가요?”

“아직 저녁 시간도 안 됐잖아.”

장목화가 짜증을 냈다.

“애프터 눈으로 치면⋯⋯.”

지지 않고 반박하던 성건우가 갑자기 말을 채 맺지도 못하고 인상을 썼다.

“왜 그래?”

장목화보다 게네바가 더 앞서 물었다. 성건우의 표정 변화를 가장 먼저 분석해낸 것이었다.

성건우는 이내 손목에 찬, 검은 머리카락으로 짠 장신구를 바라보았다.

“입맛이 없어.”

뒤이어 장신구를 풀고 옆에 내려둔 그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이제 다시 생겼다. 역시 이거 문제였나 봐.”

맹목의 고리라 불리는 이 장신구는 진짜 신부 알렉스를 처치한 뒤 얻은 전리품 중 하나였다. 알렉스에겐 또 다른 초월적 아이템 두 개가 있었지만, 능력을 다 소진하고 평범한 물건으로 돌아와서 딱히 신기한 구석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백새벽이 말했다.

“심령의 복도 깊은 곳에 진입한 각성자 기운을 고체화해 만든 물건이잖아. 능력 하나만 부여하는 게 아니라 일정 정도 대가도 부가하는 걸까?”

“아마도.”

간단히 답한 성건우는 애프터눈 티를 기대하며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장목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근데 우리가 전에 얻은 겁쟁이와 숙명주엔 그런 특징이 없었는데⋯⋯.”

“모든 초월적 아이템에 대가가 따르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용여홍이 원인 추측에 나섰다. 물론 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기도 했다. 당시 성건우가 의도적으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었다.

“이론적으로 그럴 리가 없어. 비슷한 물건이 같은 방식으로 생산됐다면 같은 규율을 따르겠지.”

장목화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도 큰 확신은 없었다. 아직 심령의 복도나 각성자 기운 같은 것들의 본질을 밝히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겁쟁이와 숙명주가 부가하는 대가가 너무 작아서 건우가 무시해버린 걸 수도 있어.”

게네바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그 순간, 성건우가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내리쳤다.

“아! 알겠다. 겁쟁이와 숙명주가 부가하는 대가는 저한테 있어선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예요. 그래서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 거죠.”

덕분에 새로 영감을 얻은 장목화도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숙명주는 보리 영역에 속하고, 건우는 아마도 장생 영역인 것 같아. 이 두 영역에서 요구하는 대가의 표현 방식이 굉장히 비슷했던 걸로 기억해. 그 예시가 바로 정신 방면의 문제지.”

용여홍도 어렴풋하게나마 뭔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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