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63화 (363/649)

363화. 새로운 일

잠시 고민하던 성건우가 말했다.

“그렇게 자부심도, 조심성도 강한 사람이라면 분명 한 번이라도 현장을 직접 조사하려 할 거예요.”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맞아, 분명히 직접 관찰해서 세부 사항들을 면밀하게 확인할 거야. 그렇지만 자기 모습을 드러내진 않겠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상황을 직접 관찰하려면, 그건⋯⋯.”

장목화의 눈썹이 꿈틀대던 그때, 성건우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건 우리가 지금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이겠네요!”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형과 도구를 이용해 관찰하고 감시하기!

그러면 꼭두각시들이 누군가에게 미행당하는지까지 확인 가능했다.

순간 흥분한 장목화가 바닥을 가리켰다.

“맞아! 진짜 신부가 혹시 이 건물에 있으려나? 아니면⋯⋯.”

급히 손으로 그린 지도를 든 그녀가 표시된 몇 가지 지점을 가리켰다.

“우리가 골랐던 고층 빌딩 중에 있지 않을까?”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장목화도 이젠 저 박수는 신경도 쓰지 않고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우리가 전에 배제한 건물들도 생각해 봐야 해. 그렇게 높지 않고 포카스 저택이랑 지나치게 가까워서 배제한 건물들. 그렇지만 진짜 신부는 우리랑 달리 반 지성교한테 발각당할 염려 같은 건 안 해도 돼.”

그 순간, 휴식을 마친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가 교대하러 들어왔다. 그러던 중 용여홍이 장목화, 성건우가 약간 흥분한 걸 예리하게 알아보았다.

“팀장님, 무슨 수확이라도 있었어요?”

장목화는 바로 웃으며 전의 관찰 결과와 그걸 분석하고 추측했던 내용을 설명한 뒤,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진짜 신부는 전에 없이 우리랑 가까운 곳에 있을지 몰라.”

용여홍도 금세 흥분해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진짜 신부 소재는 어떻게 확인하죠? 건물들을 다 뒤져야 하나요?”

“그것도 방법인데, 조건에 부합하는 건물이 너무 많아. 그 건물에 딸린 방도 너무 많고. 하나하나 수색하다간 시간만 버릴 거야. 시간만 소요되면 다행이지, 방마다 수색할 때 소란이 일어날 거고, 진짜 신부는 그 기척을 감지하고 먼저 도망쳐 버릴 거야.”

장목화의 답변에 이어, 생각에 잠겨 있던 백새벽도 입을 열었다.

“각 건물 밖에서 이틀씩 지키면서 그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을 관찰하고 신부랑 비슷한 사람이 있는지 찾는 건요?”

게네바가 동조했다.

“그 사람도 먹을 걸 구입하고 정신을 각성시킬 물건도 사야 하니까 2, 3일에 한 번은 외출해야 할 거야.”

그러자 성건우가 반대 의견을 표했다.

“왜? 그 사람한텐 꼭두각시가 있잖아. 꼭두각시한테 사달라고 하고 바통 터치를 하듯이 간단하게 전달만 받으면 돼.”

가짜 신부 샌델도 늑대소굴의 감시 카메라 영상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전달받았었다.

“신중한 진짜 신부는 관찰 구역에 진입해 어지간하면 밖으로 안 나갈 거야. 생필품은 다른 사람한테 전달받고. 하하, 이 구역 아파트엔 집마다 화장실도 다 딸려 있고. 잠깐만……. 방법을 알겠어!”

장목화의 얼굴에 돌연 미소가 번졌다.

“어떻게요?”

용여홍이 아주 협조적으로 나섰다.

장목화는 즉각 차분하게 설명했다.

“건물들 쓰레기장으로 가서 뒤져보자. 진짜 신부는 수면 장애가 있어 정신이 쇠약해진 상태일 거야. 그런 상태에선 주위 환경에 엄청 예민해져. 특히 휴식을 취할 땐 소리나 냄새까지 아주 까탈스럽게 굴 게 분명해.

지금은 날씨도 점점 더워져서 냄새나는 쓰레기도 집에 절대 오래 놔두지 않을 거야. 물론 이웃한테 최면을 걸어 처리할 가능성이 크지.

음……. 그래도 한 쓰레기장에 플래그십 담배랑 랄프 사탕의 포장 등이 동시에 발견되면 진짜 신부가 그 건물 내 어딘가에 있다는 뜻일 거야!”

골든애플 구역에도 랄프 사탕을 먹는 이는 있지만 플래그십 담배까지 피우는 이는 드물었다. 그건 항구와 그린올리브 구역 중노동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했다.

‘쓰레기를 뒤진다⋯⋯.’

잠시 그 광경을 상상하던 용여홍이 답했다.

“네, 팀장님!”

* * *

낡은 재킷을 걸친 보젠이 약간 겁을 먹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분명 일반적인 옷차림을 했지만, 기이한 가면을 쓴 남녀 한 쌍이 있었다.

보젠은 교외에 남은 마지막 논밭까지 넘긴 뒤, 골든애플 구역의 넝마주이로 전락한 신세였다.

여긴 다른 구역과 달랐다. 이곳 거주자들은 종종 남은 음식을 쓰레기로 버려서,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동시에 쓰레기 더미 속엔 그린올리브 구역에 팔아넘길 수 있을 만한 물건들도 적지 않았다. 보젠은 이따금 그런 물건들을 팔아 카스나 드라세를 벌곤 했다.

“긴장할 것 없어요. 저희는 당신을 도우러 온 겁니다. 당신 혼자 이 많은 쓰레기를 뒤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잖아요.”

냄새 때문에 방독면을 착용한 성건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보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경계심 어린 표정만 드러냈다.

이내 쪼그려 앉은 성건우가 뭉쳐진 종이 몇 장을 본 후 보젠에게 건넸다.

“얼마 안 쓴 종이네요. 나중에 뭐라도 기록할 때 쓸 수 있겠어요.”

보젠은 그걸 받아 들진 않았으나 이대로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이 건물 쓰레기장에선 음식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때 장갑을 낀 장목화가 성건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일이나 해.”

“겸사겸사 찾은 거죠.”

성건우는 자신이 시간을 허비한 게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보젠은 각자 일에 바빠 자신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남녀를 보고 잠시 망설이다 용기 내 합류했다.

이건 단순한 일이 아닌, 보젠이 살아가기 위한 생존 방식이었다.

보젠이 구겨진 종이봉투를 열었다. 그 안엔 귀리 빵 한 조각과 엄지만 한 햄이 들어있었다. 먼지가 좀 묻긴 했지만.

기뻐하던 그는 장목화, 성건우를 돌아봤다가 자신에겐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걸 확인하곤 급히 먼지를 털고 햄을 먹었다. 뒤이어 귀리 빵도 입에 쑤셔 넣었다. 주위에서 풍기는 복잡하고 고약한 냄새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행여 빼앗길까 급히 먹어 하마터면 목이 막힐 뻔했지만, 이 경험 많은 넝마주이는 능숙하게 미리 찾은 은백색 물통을 꺼내 물 몇 모금을 들이켰다.

한편 장목화와 성건우는 쓰레기 더미서 혹여나 존재할지 모를 단서를 뒤지는 데 여념이 없었다.

봉지에 넣어 종류별로 분류한 쓰레기는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었다. 검사도 훨씬 쉬웠지만, 분간 없이 멋대로 버린 쓰레기는 답이 없었다. 계속 뭔가 발효되는 듯한 냄새가 풍겼고, 그중 일부는 썩어있는 것도 있었다.

그러다 보젠이 물을 마시는 소리를 듣고 장목화가 고개를 돌렸다.

40대로 보이는 남자는 눈동자가 파랬으며, 얼굴엔 갖은 고생의 흔적이 역력했다. 또 어지럽고 덥수룩하게 자란 옅은 노란색 수염엔 상당한 부스러기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물로 목을 축여 음식물을 겨우 삼킨 보젠이 왼손으로 입가를 훔쳤다. 그때, 장목화는 그 손이 무의식중에 아주 가볍게 떨리는 걸 발견했다. 잠시 고민 끝에 그녀가 한쪽 고무장갑을 벗고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혹시 이 담배 아세요?”

게네바가 찍어둔 플래그십 담배 사진이었다.

물통 뚜껑을 닫던 보젠은 왼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한테 묻는 거냐?”

“네.”

장목화가 단호하게 답했다. 이 질문에 답한다면 보수를 줄 수도 있다고 덧붙이려는데, 보젠은 이미 진지하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플래그십 담배네. 필터가 짧아서 소용없어, 피워봤자 아무 맛도 안 나.”

플래그십 담배는 퍼스트 시티 내 다른 담배에 비해 냄새가 아주 독했다. 손으로 말아 만든 담배에 가까울 정도였다. 더불어 길이가 너무 짧아 거의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하는 필터로도 유명했다.

“피워봤습니까?”

성건우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이번엔 보젠이 빙그레 웃었다. 자신이 발견한 음식에 두 사람이 관심도 두지 않는 걸 보고 어쩌면 친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쓰레기장에선 별별 종류의 담배꽁초가 다 나오거든. 젖어있지만 않으면 주워서 한두 모금 정도는 피울 수 있어. 거기다 음식까지 찾아서 배를 불린 날은 기분이 어찌나 좋은지.”

보젠은 두 사람이 자신과는 다르다는 걸 이미 눈치챈 상태였다. 그들은 본인 경쟁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니 경계할 필요도 없었다.

담배꽁초 이야기에, 장목화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모든 종류의 담배에 대해 알고 있겠네요?”

“전에 피워보기도 했고, 쓰레기장에서 종종 나오는 신문에 각종 담배 광고가 나오기도 하니까. 난 글을 알거든!”

보젠은 약간 좀 뿌듯해 보였다.

“플래그십 담배꽁초는 어디서 주웠는데요?”

“보자……. 쓰레기장에서 찾아낸 물건들을 팔려고 그린올리브로 가던 길이었지? 항구 쪽을 지나던 중에 길에서 주웠어. 상당히 기대했었는데⋯⋯.”

바닥에 떨어져 있던 플래그십 담배는 그의 손님이라도 사서 피울 수 있는 것이라 그냥 내버려 두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거의 아무 효력도 없을 정도로 짧은 필터엔 남은 향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약간 실망한 장목화가 한 번 더 확인해보았다.

“혹시 이 근처 거리에서 이 담배꽁초를 주운 적은 없나요?”

“없어.”

보젠이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최근 일주일 동안 어느 건물을 방문했었나요?”

해당 빌딩은 후보에서 제할 생각이었다.

“게드 빌딩, 허스트 아파트⋯⋯.”

보젠은 오른손을 하나씩 꼽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장목화는 약간 뻣뻣한 그 손을 보며 보젠의 오른손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윽고 장목화는 보젠이 언급한 건물 이름을 기억에 새기며 쓰레기장 밖으로 나가, 부근의 구석진 곳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게드 빌딩, 허스트 아파트⋯⋯ 등등은 2순위로 넘겨. 일단 그 건물은 배제하고 나머지 건물부터 살펴봐.”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에게 내리는 지시사항이었다.

알겠다는 답이 돌아오자, 장목화도 다시 무전기를 넣고 돌아갔다.

쓰레기장에선 성건우가 한창 보젠과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뭘 찾아? 급할 것 없어. 쓰레기 차도 몇 시간이나 지나야 올 거야.”

보젠이 새로 알게 된 친구에게 위로를 건넸다.

“알겠어요.”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쪼그려 앉아 고무장갑을 꼈다.

보젠 역시 쓰레기 속 보물을 찾으며 낮게 웃었다.

“여기선 종종 재미있는 물건들도 나와. 전에 겨울엔 불투명한 봉지에 싼 옷들도 발견했다고. 맞혀봐, 무슨 옷이었게?”

성건우가 협조적으로 말을 받았다.

“코트? 솜옷?”

보젠이 고개를 절레절레 짓곤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짙은 남색 양말, 검은 가죽 부츠, 비단 속옷, 검은 바지, 흰 셔츠, 검은 조끼, 검은 정장이 하나씩 들어있었어. 귀족 양반들이 가장 즐겨 입는 그런 종류. 꽤 새것인지 기운 흔적도 없더라고.”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장목화는 천천히 맞장구치면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짐작했다. 레드스톤 마켓의 바람둥이, 웰러 같은 부류 아니겠는가.

엄연히 남편이 있는 어느 집 부인을 위로하던 한 귀족이, 그녀의 남편이 예정보다 일찍 귀가하자 옷 입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창문으로 냅다 뛰어내린 모양이었다.

그 후엔 밖에서 기다리던 하인을 만났거나, 강도를 당했다며 치안관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누군가가 빨랫줄에 널어둔 옷을 훔쳤을 것이다.

바람을 피운 부인은 남자가 남겨둔 옷, 양말, 신발을 남편에게 들키기 전에, 허겁지겁 봉투에 넣어 쓰레기통에 버린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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