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발견
테렌스는 가까스로 순찰 중인 항구 경비대를 피해 3번 항구에 도착했다. 고개를 한번 돌려봤지만, 주위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성질을 꾹 눌러 참고 사람이 오기만 기다렸다.
그로부터 대략 7, 8분 정도 지났을 무렵, 테렌스가 걸어온 일을 따라 두 인영이 다가왔다. 테렌스는 그들과의 거리가 4~50미터 정도로 좁혀졌을 때 인기척을 느끼고 뒤로 돌았다.
달빛 아래, 익숙한 장목화와 성건우의 모습이 비쳤다.
“함께 일하게 되어서 기쁘네.”
성건우의 인사에 테렌스가 흠칫 놀랐다.
10여 초 후, 겨우 정신을 차린 테렌스가 웃으며 화답했다.
“즐거운 합작이 됐으면 좋겠어.”
장목화는 테렌스에게 합작의 내용을 묻는 대신 의혹부터 표했다.
“넌 퍼스트 시티에서 손에 꼽히는 조직과 달지기를 모시는 비밀 교파에 속해있잖아. 근데 왜 우리랑 합작하려는 거야?”
테렌스가 웃었다.
“너희가 보여준 여러 모습이랑 임무 기록을 보고. 무엇보다 감히 우리 블랙셔츠파를 건드렸다는 게, 너희가 그만큼 강하고 뒷배도 든든하다는 뜻 아니겠어? 너희는 분명 애쉬랜드인 위주로 이뤄진 대형 세력 출신일 거야.”
그간 구세계 콘텐츠를 섭렵한 성건우는 드디어 이 대사를 써먹게 됐다.
“과연 그럴까?”
테렌스는 구조팀 내력에는 관심 없다는 듯 화제를 전환했다.
“너희가 반 지성교를 조사하고 있는 건, 퍼스트 시티에서 발생한 내분에 관여하고 싶기 때문이겠지? 내가 정보 하나를 줄 수 있어.”
장목화가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원하는 게 뭐야? 아니, 합작의 조건을 물어야 하나?”
테렌스도 웃으며 답했다.
“너희 협조를 받아 어떤 일을 하겠다는 사치스러운 생각 같은 건 안 해. 왜냐면 너희한테 이 정보를 알려주는 것 자체가 우리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르거든. 우리가 원하는 건 하나야.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너희가 파악한 정보 중 일부를 우리랑도 공유하는 거.”
그의 말은 약간 어색하게 들렸지만, 태도는 매우 겸손했다.
“이렇게 좋은 일도 다 있네?”
성건우가 중얼거렸다.
장목화도 똑같은 생각을 하다가 잠시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말해봐, 어떤 정보인데?”
테렌스는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3번 항구 근처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한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린 욕망 성인 교파 내 한 구성원의 신분을 파악 중이었어. 그렇지만 그 사실을 폭로하는 대신 암암리에 관찰하기만 했지.
그 여자 이름은 신시아야. 귀족의 후예고, 퍼스트 시티 상류 사회에서 이름난 사람이지. 상당한 실권자들이랑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신시아가 최근 세 장소를 방문해 세 사람을 만났는데 한 명은 사냥꾼 길드의 크리스티나, 다른 한 명은 감찰관 알렉산더였어.”
장목화의 눈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꿈틀거렸다.
‘이 시기에 욕망 성인 교파 구성원이 2대 거두 알렉산더를 만났다고?’
이어, 테렌스는 세 번째 인물을 밝히는 대신 다른 이들부터 소개했다.
“신시아가 단순히 알렉산더 감찰관을 만나러 간 거였다면 별로 놀랄 것도 없어. 퍼스트 시티 상류 사회엔 욕망 성인 교파 지지자가 적잖이 있거든. 여러 귀족은 자기 입으로 인정은 안 하지만 사적으로 천체 집회에 참여해. 이 집회는 욕망 성인 교파랑 스타일이 굉장히 비슷하지. 하하, 상류 사회에 자리한 많은 귀족이 향락과 욕망에 빠져 있거든.”
그러자 장목화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상류 사회? 구세계가 파괴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신력이 시작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상류 사회가 생겨?’
그 사이에도 테렌스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근데 신시아가 알렉산더 감찰관을 만나러 가기 이틀 전에 누군가를 만났어. 서튼이라고, 명목상으론 화가인데 조사해보니 반 지성교 구성원일 가능성이 굉장히 커 보였어.”
“어떻게 생겼는데?”
성건우가 다급히 물었다.
테렌스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구겼다.
“키는 170센티미터도 안 되고 비쩍 말랐어. 머리는 회색으로 염색해서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고.”
성건우는 바로 실망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장목화가 뭔가 생각에 잠겨 물었다.
“반 지성교랑 욕망 성인 교파가 다시 손잡고 알렉산더를 노린단 거야?”
이는 반 지성교가 퍼스트 시티 내부 갈등을 심화하려는 것 같다는 구조팀의 판단과도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였다.
‘설마 그들 다음 목표가 포카스가 아닌 알렉산더인가? 사건의 집행자는 반 지성교 사람이 아니라 욕망 성인 교파 구성원인 건가? 이걸로 알렉산더 감찰관 주위 경호원들을 다 속일 수 있나?’
하나하나 떠오르는 의혹들에, 장목화의 눈앞이 부연 안개처럼 흐려졌다.
테렌스는 정색하고 대꾸했다.
“추측이라고밖엔 말 못 하지. 너희가 이 정보를 가지고 확인해주기만 바랄 뿐이야. 성의 표시를 위해서 늑대소굴은 더 이상 손 안 댈게. 거기 여자들을 귀찮게 하지도 않을 거야. 근데 오거를 비롯해서 그 녀석들은 돌려줘.”
“두세 달만 더 빌릴게.”
장목화는 첫 번째 문장엔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두세 달 후면 소나영을 비롯한 여자들도 레드리버인과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을 테고, 사격 솜씨도 꽤 늘어있을 것이다. 거기다 번역기 도움까지 받으면 블랙셔츠파 구성원들의 도움은 필요없어질 테다.
장목화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성건우가 끼어들었다.
“걔들이 저지른 죄들만 보면 최소한 10년은 더 부려 먹어야 하는데.”
성건우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고, 테렌스도 논쟁 대신 생글생글 웃었다.
“그럼 10년으로 해. 나한테 찾아와 녀석들의 생활비를 요구하지나 말고.”
사실 테렌스가 부하들을 언급한 건 직속 상사로서의 마지막 자존심 때문이었다.
장목화는 성건우가 또 생활비를 요구해도 되는 거였냐고 물을 것 같아서, 얼른 나서서 자리를 정리했다.
“무슨 수확이 생기거나, 공유할만한 정보를 얻으면 또 전화할게.”
“좋아.”
테렌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떠나는 테렌스를 보며, 성건우가 물었다.
“알렉산더를 감시해야 할까요?”
깊은 고민에 잠겨 있던 장목화가 말했다.
“우리한테는 그럴 능력이 없어. 알렉산더에게 접근할 방법도 없는데 어떻게 욕망 성인 교파 행동을 저지해? 게다가 그들이 정말 알렉산더를 노리고 있다면 진짜 신부는 나타나지 않을지도 몰라. 회사에 보고하는 게 낫겠어. 골치 아픈 일은 부장과 이사들한테 맡기자. 그럼 회사에서 여기 파견된 정보원들을 동원해 일을 처리하겠지. 우린 계속 포카스 장군만 감시하는 거야.”
성건우가 웃었다.
“좋아요, 전 거기서 아직 할 일이 남아있잖아요.”
“……뭔데?”
장목화가 한껏 경계심을 높였다.
* * *
다음 날 오전, 장목화와 성건우는 밤새도록 감시한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와 교대하고 건물 꼭대기 층 방에 들어갔다.
성건우는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그림과 글자가 가득한 종이를 꺼냈다.
“주위에 공용 화장실 분포도예요. 대부분 무료고, 청결도도 괜찮아요.”
장목화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거길 중점으로 살피자. 진짜 신부 같은 사람이 보이는지.”
곧이어 두 사람은 각자 망원경 하나씩 들고 장군 저택 주위를 오가는 이들을 관찰했다. 감시하며 순서대로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 * *
오후 5~6시, 하늘이 어둑해질 무렵, 장목화가 감시 구역에 들어온 검푸른 SUV를 포착했다. 차엔 검은 바탕에 흰 글씨가 쓰인 번호판이 달려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돌린 장목화는 망원경으로 운전자가 검은 옷에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걸 발견했다.
번호판은 원로원에 속한 것으로, 그 번호판이 부착된 차는 골든애플을 검문 없이 드나들 수 있었다.
흠칫 놀란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말했다.
“저 차 봐, 전에 우리 미행하던 그 차 아냐?”
유일하게 다른 점은 그때 그들을 미행하던 차에는 번호판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맞아요.”
성건우가 빠르게 답했다.
장목화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신부의 꼭두각시가 이 구역에 나타났다는 건 그들이 아직 포카스 장군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지.”
이는 구조팀에 주어진 기회였다.
“보아하니 반 지성교는 주로 포카스 장군을, 욕망 성인 교파는 감찰관 알렉산더를 노리는 것 같아. 두 가지 중 하나만 성공해도 퍼스트 시티 정세는 깊은 나락에 빠져버리고 말 테니까.”
장목화의 말에,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반 지성교는 포카스, 욕망 성인 교파는 알렉산더를 택한 거지?”
장목화는 성건우의 기이한 호기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포카스 장군에게는 이미 세속적인 욕망이 없어서 욕망 성인 교파의 미끼를 물지 않을지도 모르지⋯⋯.”
말을 잇던 그녀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포카스의 뒷담화를 하는 게 아무래도 좀 미안했다. 무엇보다 욕망 성인 교파 각성자라면……. 고자도 충분히 욕망에 휩싸이게 하지 않겠는가? 그들도 그저 분출할 통로가 없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뿐이었다.
잠시 딴 길로 샌 장목화가 다시 정색하고 말했다.
“알렉산더는 퍼스트 시티 2대 거두 중에 하나야. 그 곁에 포진한 경호원은 포카스 장군이랑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겠지. 귀족 계층이어야만 목표에 접근해 욕망 성인 교파에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어.
마찬가지로 반 지성교는 전부터 포카스 장군 저택에 대한 침투를 진행해 왔으니, 그들이 이곳을 맡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지.”
접근은 성관계의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이내 성건우가 내려놓은 망원경을 들었다. 그의 목표는 언제까지나 이 구역에 있는 몇몇 공용 화장실이었다.
장목화도 더는 저지하는 대신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다른 단서를 포착했다고 곧장 여기 감시를 포기 안 한 게 다행이네.”
그녀 역시도 내내 관찰하던 검푸른 차량에 눈길을 돌렸다. 그런 뒤, 원로원 소속 번호판 A125 번호를 기억에 새기곤, 목표의 동향에 잔뜩 집중했다.
또 다른 가짜 신부를 태운 것으로 의심되는 검푸른 SUV는 포카스 저택을 지나쳐 전방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크게 반 바퀴 돌아 포카스 저택 후문에 진입했다.
그곳은 장목화와 성건우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그로부터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검푸른 SUV가 다시 시야로 들어와 또 다른 길로 골든애플 구역을 빠져나갔다. 속도도 내내 일정했다.
장목화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이야기했다.
“진짜 신부가 꼭두각시를 보내 장군 저택 내부의 반 지성교 간첩과 연락하게 한 건가?”
성건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골든애플 구역 공용 화장실은 그다지 인기가 없네요.”
그린올리브 구역과 비교하면, 이곳은 공용 화장실을 쓰는 사람이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 구역의 공용 화장실 분포율은 그린올리브보다 훨씬 더 높았다. 거의 모든 거리에 있을 정도였다.
“진짜 신부는 여기 없어. 설마 화장실 하나 쓰겠다고 이 멀리까지 찾아오겠어?”
코웃음을 치던 장목화가 갑자기 또 생각에 잠겨 혼잣말처럼 말했다.
“만약 네가 진짜 신부라면 포카스 암살 작전에 참여하기로 한 후에 어떻게 할래? 진짜 신부의 관점에서 생각해봐.”
그러자 성건우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입을 가리고 하품했다.
“⋯⋯야이씨! 그 사람 모사가 아니라,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성건우는 그제야 자세를 바로 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진짜 신부는 신중하면서도 교활한 사람이죠.”
장목화가 동조했다.
“그래, 그는 이렇게 큰일을 저지르려 할 때 조수 역할만 맡은 상황이라도 각 방면의 상황을 모조리 또렷하게 파악하려고 해.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음, 꼭두각시를 통해 연락하고, 주위를 관찰하고, 각 방면의 동향을 파악한다 해도 크게 안심은 못 할 거야. 꼭두각시만 어떻게 믿겠어?
꼭두각시가 수집한 정보엔 중요한 부분이 빠졌을 가능성이 아주 커. 그 정도로 극단적인 자부심과 신중함을 가진 사람이면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가 극단적인 자부심을 가졌다는 건, 위드 시티에서 만난 가짜 신부 곽정수에게서 얻은 정보였다.
당시 곽정수는 기억이 살짝 왜곡돼 있었을 뿐이라 최면에서 벗어나자마자 자신이 가짜 신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이 가짜 신부가 기억에서라도 진짜 신부가 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조치라고 추정했었다.
마찬가지로 최근에 만난 가짜 신부 샌델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었다. 자신이 신부가 되던 순간의 기억은 곡해됐으며, 진짜 신부의 존재를 잠시 잊었지만 성건우가 최면 효과를 거두자마자 자신이 가짜 신부란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