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58화 (358/649)

358화. 추적

본인 가게로 돌아온 리치가 언제 썼는지 모를 주소와 수신인이 적힌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때였다. 선글라스를 낀 남녀 한 쌍이 가게로 들어왔다.

“이거 고칠 수 있을까요?”

머리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은 여자가 소형 스피커를 내려놓았다.

리치는 바로 편지 봉투와 메모리 카드를 내려놓고 스피커를 받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을 그의 컴퓨터에 연결해 검사를 진행했다.

그 사이 키 큰 남자 손님이 민첩하게 편지 봉투를 집어 들고 웃었다.

“연애편지입니까?”

“아닙니다.”

리치는 반사적으로 봉투를 잡아채 위에 적힌 주소를 가렸다.

남자도 끈덕지게 캐묻기보단 그냥 스피커 검사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 헤이, 네가 정말 보고 싶어⋯⋯.(*주: 모원웨이, ‘네가 없다면’)

노랫소리가 번지는 사이, 리치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 문제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러자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입을 쩍 벌리고 감탄을 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손을 대자마자 고치다니!”

“⋯⋯.”

리치는 무슨 반응을 할지 알 수가 없어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포니테일 스타일의 여자가 물었다.

“얼마죠?”

“1드라세면 되겠습니다.”

리치는 원래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이렇게나 자신을 추켜세워주자, 공으로 돈 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두 남녀가 떠난 뒤, 리치는 편지 봉투를 꼼꼼히 살피며 안에 추적기가 들어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후 재빨리 메모리 카드를 넣고 입구를 봉했다.

점심 무렵, 가게 문을 닫고 밖으로 나선 리치는 이 거리 유일한 우체통에 그 편지 봉투를 넣었다.

* * *

오후, 오래된 자전거를 탄 녹색 제복 차림의 우체부가 우체통에 든 편지를 수거해 크로스백에 담았다. 그중엔 리치가 넣은 편지도 포함돼 있었다.

우체부는 정해진 노선을 따라 곳곳의 우체통들을 방문했다.

그러다 레드울프 구역 근처의 한 아파트를 지나칠 때였다. 갑자기 우체부의 표정이 멍하게 변했다. 그는 그 상태로 리치의 편지를 꺼내 들었다.

편지 봉투에 적힌 주소는 이곳이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우체부는 이 아파트의 한 우편함에 편지를 넣고 떠났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금세 하늘이 어둑해졌다.

리치의 봉투가 있는 이 아파트에 한 남자가 일과를 마치고 귀가했다.

키 작은 남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자연스레 우편함으로 가, 안에 든 편지 한 통을 꺼냈다. 봉투엔 완전히 다른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를 보고 약간의 표정 변화를 보이던 남자가 5층으로 올라갔다.

천천히 복도를 가로질러 남자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곳은 본인의 집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남자는 갑자기 그 앞에서 신발 끈을 고쳐 묶더니, 들고 있던 편지를 그 집 문틈에 슬쩍 끼워 넣었다.

촘촘히 친 커튼에 불도 켜지 않은 어둑한 집 안.

창백한 손 하나가 쑥 빠져나와 편지를 챙겼다.

그는 곧장 편지 봉투를 뜯고 안에서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그런 다음 간단히 메모리 카드를 검사한 뒤, 편지 봉투 안에도 메모리 카드 겉면에도 별도의 전자 제품이 부착돼있지 않음을 꼼꼼히 확인했다.

보이는 건 편지 봉투 안에 죽어있는 작은 벌레 한 마리뿐이었다. 아마도 편지 봉투를 봉하기 전에 들어갔던 모양이었다.

이내 그는 휴대용 컴퓨터를 켜고 부가적으로 장착한 리더기에 메모리 카드를 넣었다.

그런데 새롭게 나타난 드라이브를 클릭해 열자마자, 컴퓨터 운행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더니 스피커의 음소거 상태가 해제되며 음량이 최대로 높아졌다.

애앵! 애앵!

소방차 사이렌처럼 요란한 소리가 집 안을 메웠다. 소리는 꽉 닫힌 창밖까지 새어나가며 한 남자의 우렁찬 목소리를 전했다.

- 저는 반 지성교 신부입니다. 얼른 저를 잡아가세요! 저는 반 지성교 신부입니다. 얼른 저를 잡아가세요!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멋대로 움직이는 컴퓨터를 꺼볼 생각도 하지 않고 냅다 문으로 내달렸다.

그가 막 문을 연 순간,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던 소리가 다르게 변했다.

짙은 원망이 어린 남자의 목소리였다.

= 헤이, 네가 정말 보고 싶어⋯⋯.

남자의 발이 잠시 멈칫한 듯했으나 다시금 열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가던 남자가 2층에 이르러 복도를 가로질렀다. 그러다 마침 문 열어 놓고 저녁 식사 중이던 한 집으로 쳐들어가선, 그 집 창문을 통해 아파트 뒤쪽 골목길로 뛰어내렸다.

탕!

그 순간 총성과 함께 남자의 발 앞에 놓여 있던 돌이 산산조각이 났다. 자칫 잘못했으면 남자의 목숨을 앗아갔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건 저격수의 실수가 아닌 것 같았다. 분명한 경고였다.

흠칫 놀란 남자는 느릿하게 양손을 들어 올렸다. 도주를 포기한 건, 다음 총알은 반드시 제 몸에 박힐 거란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현재 수십 미터는 떨어져 있을 저격수에게 능력을 발휘할 수도 없으니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다.

고요한 골목길에서 울리는 총성이 짧은 긴장감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리 길게 가지 못한 건 퍼스트 시티에서는 무기를 소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소수의 열정적인 시민들만 치안관을 찾아 까닭을 물었을 뿐, 대부분 아무 관심이 없었다.

남자는 양손을 들고 한참이 지나서야 앞에 나타난 한 인영을 보았다.

검은 긴팔 티셔츠를 입은 인영은, 바로 성건우였다.

“총을 쏜 건 내가 아니야.”

성건우가 눈을 감은 채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저격수는 따로 있으니 허튼짓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남자는 침묵한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성건우를 어떻게 제압하고 인질로 삼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저격수에 대항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때, 성건우가 감은 눈을 번쩍 떴다. 170센티미터 정도에 약간 안색이 초췌한 남자는 정신 상태가 썩 좋다고 할 순 없지만, 그리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성건우는 남자의 갈색 머리, 짙은 갈색 눈동자를 보며 한숨을 뱉었다.

“가짜 신부네.”

구조팀은 이번 추적에 장목화의 생물 전기 신호 감지 능력과 게네바가 만들어낸 바이러스를 이용했다.

원래는 전자기기 수리점 사장 리치를 추적했으나 그가 도구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가 편지를 봉하기 전에 작은 벌레를 집어넣었다.

그 능력을 모르는 자에게 작은 벌레 한 마리는 별것도 아니겠지만, 그건 일종의 생물 추적기였다.

또 벌레가 봉투 속에서 오래 살아남긴 어렵다는 판단하에, 게네바는 따로 메모리 카드에 바이러스를 하나 심어두기도 했다. 컴퓨터에 연결되면 스피커를 최대 음량으로 틀고 그 안에 저장된 음성을 재생하게 하는 바이러스였다.

봉투 속 벌레로 대대적으로 범위를 좁힌 구조팀은 소리에 의지해 목표를 포착하고 상대의 예상 도주 경로로 흩어졌다.

그렇게 뒷골목을 맡은 성건우와 장목화가 급히 도망친 적을 성공적으로 포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상대는 가짜 신부였다.

“가짜 신부⋯⋯.”

눈이 마주친 순간, 성건우에게 최면이 걸린 남자가 흠칫 놀랐다. 연달아 몇 차례나 표정 변화를 보이던 남자는 성건우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왜 나를 가짜 신부라고 부르는 거지?”

성건우는 대답 대신 검은 천 하나를 던져주었다.

“눈부터 가려.”

말하는 사이, 성건우도 다시 눈을 감았다.

몇 초간 망설이던 가짜 신부는 순순히 천을 주워 눈을 가렸다. 도망칠 틈도 보이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 저격수까지 있으니 도무지 수가 없었다.

무전기로 장목화와 연락한 성건우는 그제야 다시 눈을 뜨고 웃었다.

“왜냐하면 진짜 신부는 키가 175~180센티미터 사이고, 다크서클이 짙어서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 사람이거든.”

이야기를 듣던 가짜 신부는 머리를 움켜쥔 채 고통을 드러냈다.

이내 성건우가 물었다.

“메모리 카드를 받아 그 안의 내용을 확인하고, 정리한 정보는 누구한테 전달하려고 했지?”

이 순간에도 아파트 어느 집 안에선 계속 음악이 흘러나왔다.

- 헤이, 네가 정말 보고 싶어⋯⋯.

갈색 머리, 짙은 갈색 눈동자를 가진 가짜 신부는 성건우의 질문에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일그러지기 시작한 얼굴이 상당히 사납기까지 했다.

그는 가까스로 사력을 다해 말을 토해냈다.

“모, 목자, 부이용, 장로.”

“부이용? 혹시 그 사람도 키가 175~180센티미터 사이고, 다크서클도 짙어서 전체적으로 피곤해 보이는 스타일인가?”

성건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방금 한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가짜 신부가 말하는 장로 부이용이 사실은 진짜 신부가 위장한 것이라 여겼다. 통제돼 있던 이 불쌍한 남자는 진정한 목자 부이용을 만난 적조차 없을 터였다.

가짜 신부의 일그러진 얼굴에 점차 두려움이 번졌다.

“그,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어, 어떻게 이럴 수가⋯⋯.”

그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야.”

성건우는 한 발 앞으로 나가, 오른 손날로 정확히 가짜 신부의 귀 뒤를 가격했다. 가짜 신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참혹한 고통에서 벗어났다.

이내 성건우는 그를 아무도 없는 골목길로 데려간 뒤, 주머니에 넣어둔 청록색 야명주를 꺼냈다.

* * *

미약한 빛으로 번득이는 기원의 바다.

아홉으로 나뉜 성건우가 숙명주로 가짜 신부의 모든 기억을 불러왔다.

고정된 거대한 파도 속, 성건우들이 분업과 합작으로 가장 최신의 또렷한 기억부터 그 전으로 끊임없이 진짜 신부의 모습을 찾아 거슬러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건우들이 중요한 기억 하나를 찾아냈다.

가짜 신부의 이름은 샌델이고, 그저께 목자 부이용에게 편지를 받았다. 샌델은 암호를 대비해 발신자가 틀림없는 목자 부이용임을 확인한 후, 늑대소굴의 감시 카메라 영상을 어떻게 회수할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 기억 덕분에, 성건우는 소위 목자 부이용이 주로 편지를 이용해 샌델에게 명령을 전달했고, 발신자의 이름과 편지 봉투에 적힌 주소는 매번 달랐다는 걸 확인했다. 발신자는 당연하게도 최면으로 인해 도구가 된 사람이었으며 주소 역시 척 봐도 가짜였다.

이따금 그는 샌델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고, 만남도 세 차례 가졌다.

그러나 그 만남 속 부이용의 모습은 굉장히 흐릿했다. 이렇다 할 특징도 없었고, 걷는 장면조차 충분치가 않아 판별하기가 어려웠다.

확실한 건 키가 장목화와 거의 비슷하고, 얼굴에 짙은 다크서클이 있으며 차마 숨기지 못한 피로감이 역력하다는 것뿐이었다.

장목화와 키가 비슷하다는 건 진짜 신부로 의심되는 남자의 키가 분명 175~180센티미터 사이라는 뜻이었다.

샌델은 약속된 시간에 전보를 보내는 방식으로 보고를 했다. 하지만 상대는 전보를 받기만 할 뿐 발신하지는 않는 무선 침묵 상태를 유지해서, 기술적인 수단으론 해당 신호에 대응하는 위치를 알아낼 수 없었다.

성건우는 다시 빠르게 그 이전의 기억을 뒤져 샌델이 신부가 됐을 당시의 기억을 찾았다. 이 기억에는 곡해된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성건우도 지금 도구를 이용하는 참이라 가장 기저에 있는, 잠재의식에 가장 가까운 기억을 불러온다거나 그걸 환원할 수는 없었다.

언제 어디서건 숙명주의 에너지를 아껴야 했다. 성건우는 빠르게 조사를 끝낸 뒤에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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