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후속 조치
10여 초 후, 소나영이 발버둥 치듯 외쳤다.
“얼른 도망가! 폭탄이 있어!”
그 외침에 그녀와 동료들은 마침내 악몽에서 깨어나 원상태를 회복했다.
장목화는 느릿하게 숨을 토해내며 상대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그리고는 용여홍에게 말했다.
“우리는 일단 폭탄부터 제거하자.”
“네, 팀장님.”
용여홍이 본능적으로 호응했다.
이내 성건우를 돌아본 장목화는 그의 묵직한 표정을 확인했다.
신부를 제거하지 않는 한, 이러한 위험은 끊이지 않을 것이었다.
구조팀의 훈련 과정엔 폭탄 해제도 포함돼 있었다.
리모컨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폭탄이라면 전기 신호를 받을 회로가 장착돼있는 게 당연했다. 그 때문에 장목화, 용여홍은 매우 빠르게 모든 폭탄을 찾아 그 위험 요소를 모조리 제거했다.
무시무시한 폭탄들을 본 여자들은 공포에 질렸다. 자신들이 이러한 환경에서 며칠이나 살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그들을 위로했다.
“너희들이 목표가 아냐. 그냥 이용당한 것일 뿐이지.”
백새벽도 침착하게 나섰다.
“이런 짓을 저지른 사람은 바로 우리 적이야. 이제라도 우리랑 관련 없는 삶을 산다면 더 이상 이런 일을 겪지 않게 될 거야.”
소나영, 이경서, 진진희를 비롯한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더러는 아직도 혼란스러워하고, 멍한 표정을 드러낸 사람들도 있었다.
그로부터 몇 초 후, 소나영이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는 우리를 구해줬어. 난 너희들한테 목숨을 빚진 거야. 그런데 어떻게 너희랑 관련 없는 삶을 살 수 있겠어?”
“그래.”
“맞아.”
다른 여자들도 분분히 동조했다.
소나영은 다시 장목화, 성건우를 바라보다 기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난 너희가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어.”
장목화가 속으로만 긴 한숨을 내쉰 뒤 대꾸했다.
“최선을 다할게. 근데 확신은 못 해. 그동안 너희들은 위험에 봉착할지도 몰라. 어쩌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될 수도 있어.”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소나영이 웃으며 입을 뗐다.
“너희들이 없었다면 난 1, 2년 안에 죽었을 거야.”
그에 다른 여자들도 머뭇대다가도 하나둘 그와 비슷한 말을 했다.
‘아니, 우리한테 충성하라는 말이 아니었다고! 그렇게 말해놓고 돌아서서 후회할 거면서⋯⋯.’
장목화는 다시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 사이 성건우가 웃으며 대꾸했다.
“난 너희들한테 이거랑 비슷한 상황에 봉착했을 때 저항할 힘을 줄 수 있어. 위험이 기를 펴기 전에 그 싹을 잘라버릴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다고. 나를 믿기만 한다면 말이야.”
성건우가 맑은 눈으로 소나영의 답을 기다렸다. 그동안 소나영은 전 사장 오거의 현 상태를 떠올렸다. 성건우는 이미 그것만으로 충분히 제 능력을 증명한 셈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소나영은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널 믿어.”
“그럼 옆방으로 와.”
성건우가 문을 가리켰다.
장목화는 그를 가만히 바라볼 뿐 저지하지는 않았다.
* * *
옆방으로 자리를 옮긴 성건우가 소나영의 눈을 바라보았다.
“난 딱 두 가지 사실만 말할 거야. 첫째, 우리는 너를 구해줬어. 둘째, 우리는 너희가 퍼스트 시티에 안정적인 기틀을 잡을 수 있도록,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러니까 만약 누군가 너희들을 통해 우리한테 대적하려 한다면 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소나영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떠올랐다.
“난 그 자리에서 그를 쏴버릴 거야!”
짝짝짝!
성건우가 손뼉을 치며 웃었다.
“내가 상상했던 답보다 더 낫네.”
이에 소나영이 약간 부끄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 난 아직 권총을 쓰는 법도 잘 모르긴 하지만 말이야.”
“충분히 연습하면 돼.”
성건우는 이렇게만 답하고 문으로 걸어갔다.
“이게 끝이야?”
소나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에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다 됐어. 잘했어.”
성건우가 그녀를 칭찬한 뒤, 다시 사람들이 모인 방으로 돌아갔다.
뒤이어 성건우는 다른 여자들과도 차례로 일대일 면담을 진행하며, 구조팀을 해하려 하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주었다.
그중 더러는 소나영처럼 곧장 총을 뽑아 들고 반격하겠다고 했고, 더러는 상대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했으며, 더러는 겉으로만 협조하는 척하면서 구조팀에게 몰래 정보를 흘려주겠다고 답했다.
성건우도 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까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 * *
성건우가 면담으로 한창 바쁠 때,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는 늑대소굴을 샅샅이 수색 중이었다. 그 전에 그들은 현재 패스트푸드 식당의 종이 된 블랙셔츠파 구성원에 대한 심사도 이미 다 마쳤다.
철저한 조사를 끝냈지만, 더 이상의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다시 성건우가 홀로 돌아오자, 용여홍이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하면 저 여자들도 신부의 최면에 저항할 수 있어?”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저항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격에 나서기까지 할걸. 진짜 신부는 자칫 잘못하다간 저 애들한테 죽을지도 몰라. 그러면 북쪽 기슭 불모지 어디다가 잘 묻어두고, 때마다 그 무덤 앞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큰 소리로 비웃어야지.”
‘잔인한 놈⋯⋯.’
친구를 아래위로 훑어보던 용여홍이 다시 또 물었다.
“그럼 우리한테도 그런 능력을 발휘해서 신부의 최면에 저항할 수 있게 해주면 안 돼? 그때 차으뜸에게 그랬던 것처럼.”
성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신부가 너한테 무슨 목적을 가지고 최면을 걸지 알 수가 없잖아. 근데 저 여자애들한테는 무슨 짓을 할지 충분히 추측이 되니까, 그런 조건에 상응하는 추리를 걸면 돼.
하하! 너만 괜찮다면 예상할 수 있는 신부의 목적을 다 나열해놓고, 그 모든 상황에 저항할 수 있게 추리 광대 능력을 하나하나 발휘해 줄 순 있지. 근데 그렇게 많은 추리 효과가 중첩되면 네가 정상적으로 생활이 될까?”
점차 의욕을 빛내는 성건우를 보며, 용여홍은 바로 그를 외면했다.
“그럼 됐어.”
용여홍은 곤란한 상황에 한발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곁에 있던 장목화도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조를 나눠서 움직이진 말자. 겐이랑 함께 있어야 진짜 신부의 비밀스러운 접근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결정을 마친 그녀는 늑대소굴의 전 사장 오거를 바라보았다.
“여기도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겠지?”
오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여긴 비교적 중요한 곳이니까. 입구 쪽에 한 대 설치돼 있어.”
장목화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그럼 지난 며칠간 녹화된 영상을 가져와.”
그때, 소나영이 끼어들었다.
“그 감시 카메라는 벌써 고장 났어.”
“언제?”
장목화가 캐물었다.
“아, 아마도 그저께 밤에.”
이번엔 이경서가 답했다. 그녀는 당시 들었던 종들의 보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저께 밤? 조씨 가문 장원 반 지성교 구성원을 체포한 그날 밤이잖아. 진짜 신부가 그때 늑대소굴에 왔었다고?’
용여홍이 혼란에 빠진 사이, 장목화가 계속 질문을 이어나갔다.
“감시 카메라는 아직 있지?”
“하드디스크를 도둑맞았어.”
오거가 솔직하게 답했다.
장목화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진짜 신중하네. 진짜 신부는 과학 기술의 산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경계하고 있는 거야.”
이내 백새벽이 물었다.
“다른 카메라는 없어? 전부 다 망가진 거야?”
오거가 홀 천장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에 한 대 더 있긴 해.”
장목화는 이에 대해 크게 놀라진 않았다. 일찍이 그쪽에서 늑대소굴 안을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 한 대를 발견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감시 카메라를 훑어보며 물었다.
“저것도 고장 났어?”
“응.”
오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질문을 위해 갖가지 세세한 부분들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비교해보던 장목화가 순간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녀가 곧 대수롭지 않은 척 물었다.
“저 카메라랑 입구에 설치된 카메라는 모델이 서로 다른 것 같네. 동시에 설치한 게 아닌가 봐?”
오거는 아첨하듯 웃어 보였다.
“입구에 설치된 건 몇 년 전에 설치한 거라 최근엔 저런 모델을 찾아보기 힘들지. 저건, 저건⋯⋯. 저걸 언제 설치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말을 하던 그의 얼굴에 점차 멍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도⋯⋯.”
블랙셔츠파 구성원들과 여자들도 분분히 고개를 내저었다.
순간 용여홍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진짜 신부는 대체 얼마나 많은 함정을 배치해놓은 것일까.
장목화는 곧장 총으로 그 카메라를 겨냥했지만, 방아쇠를 당기진 않았다. 그녀는 픽, 웃으며 아이스모스 권총을 벨트에 다시 꽂아 넣었다.
“진짜 신부도 과학 기술의 산물을 이용할 수 있는 모양이야. 게다가 방법을 두 가지나 준비했어. 폭탄을 터뜨리는 게 가장 좋은 결과였겠지만, 폭발시키지 못하더라도 저 감시 카메라로 우리가 어떻게 이 위기를 해결하는지, 우리한테 어떤 비밀 수단이 있는지 확인하려 했던 거야.”
백새벽이 덧붙였다.
“이곳에 원래 감시 카메라가 있었으니, 한 대 더 늘린다고 해도 발각당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게다가 감시 카메라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고 있던 몇몇 사람들은 이미 최면에 걸린 상태였다.
장목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전자 제품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를 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 부분은 신경도 못 썼을 거 아니야.”
아직도 충격에 빠진 용여홍 곁에서 성건우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여우가 드디어 꼬리를 드러냈네요!”
용여홍은 또 어리둥절한 얼굴로 친구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장목화는 웃으며 성건우의 말을 받았다.
“한동안 기다렸는데도 폭발이 일어나지 않으면, 분명 사람을 보내서 영상이 저장된 메모리 카드를 회수하러 오겠지. 좋아! 그럼 누가 메모리 카드를 찾으러 올지 기다려 볼까?”
이 거리, 심지어 그린올리브 대부분엔 유선 인터넷이 깔려 있지도 않았으며 무선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핸드폰이 있고, 퍼스트 시티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일부 상인도 이 구역에선 전화와 문자밖에 쓸 수 없었다.
* * *
이틀 뒤, 오전. 한 전자기기 수리점 주인이 늑대소굴에 방문했다.
오거는 그와 꽤 친한 편이라, 가게에 회로 고장이 나면 그를 찾곤 했다. 물론 복잡한 문제는 아니고, 상황이 급할 때만 그러했다.
“카메라가 고장이 났다고?”
이미 중년에 접어든 남자가 고개 들어 입구에 설치된 카메라를 보았다.
남자는 대부분의 레드리버인처럼 원래 나이보다 조금 더 노숙해 보였으며, 피부는 모래에 갈린 듯 거칠었다.
“그래, 전부 다 고장 났어. 그래서 자네가 좀 봐줘야 할 것 같아. 정 안 되겠으면 새 걸로 바꿔줘. 그것도 벌써 쓴 지 몇 년이나 됐으니까.”
오거는 최면에선 벗어났으나 여전히 기억을 찾진 못한 상태였다.
전자기기 수리점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중고 제품이 몇 개 있어. 질도 꽤 괜찮고.”
“리치, 정말로 중고 맞아? 중중고나 중중중고인 건 아니고?”
오거가 사장의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농담을 했다. 그런 뒤, 블랙셔츠파 구성원을 불러 간이 사다리를 준비시켰다.
능숙하게 검사를 진행하던 리치가 늑대소굴 안쪽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보고 약간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이내 가져온 공구 상자에서 메모리 카드 하나를 꺼낸 그는 카메라에 들어있던 메모리 카드와 맞바꿨다. 그 후 간단한 검사로 추적기 같은 건 장착돼있지 않다는 걸 확인하곤, 메모리 카드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리치는 빠르게 수리를 마친 뒤 오거에게 비용을 받고 늑대소굴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