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56화 (356/649)

356화. 기나긴 뒤끝

치안요원들은 감히 교통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첫째론 경고, 다음으론 사격, 마지막엔 폭격으로 다스렸다.

이를 두고 원로원에서는 비슷한 제안이 자주 제기되었다. 도시에 들어오는 모든 차량은 필수적으로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임시 번호판을 발급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해당 차량과 차주를 연계시킬 수 없어 실제적인 효과는 없었다. 외래 차주는 대부분 퍼스트 시티 시민이 아니니 이곳에선 아무 신분도 없었고, 이름을 댄다고 한들 그게 본명인지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사냥꾼 길드와 합작해 등록 자료를 받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겠지만, 퍼스트 시티 원로원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리는 없었다.

거기다 원로원에서 임시 번호판 발급 등을 수시로 제안하는 건 사실 그를 통해 별도의 수입을 올리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번호판 발급 비용이 곧 퍼스트 시티 입장료인 셈이었다.

장목화는 계속 감시 카메라 영상을 자세히 살폈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단서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들고 사장에게 물었다.

“휴고 씨, 혹시 이 영상 복사해가도 될까요?”

“그래, 너희가 지난 며칠간 공으로 낸 방값 보답으로 칠게.”

휴고의 승낙이 떨어지자, 게네바는 곧장 앞으로 나서 조작을 시작했다.

그사이, 성건우가 또 다른 질문을 했다.

“마리 부인은 요즘 어떤가요?”

장목화가 얼른 덧붙였다.

“무심병으로 자식을 잃은 그 여성분이요.”

휴고는 덤덤하게 답했다.

“그저께만 해도 보이더니 어제부터는 안 보이네. 그린올리브 거주민은 다들 삶에 허덕이는 사람들이야. 정신이 온전치도 못한 사람이 며칠이나 버틸까. 그래도 편안한 방식으로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떠났길 바랄 뿐이야.”

휴고도, 구조팀 다섯도 한동안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 * *

짙은 빨간색 SUV가 적당한 속도로 여러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겉보기엔 그린올리브 구역을 한번 구경하려는 차량으로 보였다.

운전은 백새벽이 맡았고, 장목화, 성건우, 용여홍, 게네바는 모두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석탄재와 그을린 흙 등을 찾았다. 동시에 며칠째 보이지 않는 미친 여자를 찾으려 노력하기도 했다.

차는 어느새 익숙한 장소에 이르렀다. 늑대소굴이 있는 그 거리였다.

고개 들어 8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보던 장목화가 말했다.

“올라가서 여자들을 만나자. 여기까지 온 김에 애쉬랜드어 입문용 교재 전반부도 나눠주고. 학습은 빨리 시작하면 빨리 시작할수록 좋으니까.”

현재까지 애쉬랜드어 입문용 교재는 5분의 2 정도만 완성된 상태였다.

“네.”

팀원들 전체가 동의했다.

* * *

7층으로 올라가니, 원래 이곳에 있던 암흑가 조직 일당이 보였다. 여전히 권총을 쥐고, 다들 똑같은 검은 반팔 티셔츠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들이 매우 공손해졌다는 것이었다.

“소나영은?”

백새벽이 물었다.

최근 여자들은 매일 돌아가며 번역기를 챙겨 몇몇 종들과 함께 외출했다. 패스트푸드 식당 영업 준비는 늑대소굴에서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소나영 아가씨는 안에 계십니다. 다들 레드리버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블랙셔츠파 구성원 하나가 구조팀을 알아보고 아첨하듯 웃었다.

구조팀은 워낙에 인물도 출중하고 로봇 게네바와도 함께 하고 있어서, 아무리 위장한다고 한들 가까이 접촉한 사람들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인 후 다 함께 늑대소굴로 걸음을 옮기는데, 장목화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뒤를 돌았다.

“혹시 이런 담배 본 적 있어?”

장목화가 주머니에서 담배꽁초가 든 투명한 봉지를 꺼냈다.

경험 많은 백새벽도 흡연자가 아니고, 퍼스트 시티 모든 곳을 돌아 다녀본 것도 아니라 담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블랙셔츠파 구성원이 봉지를 받아들고 담배꽁초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거 플래그십 담배 아닙니까? 항구 선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담배죠. 싸고 강하니까요. 냄새도 질 낮은 연초를 말린 뒤에 직접 말아 피우는 싸구려 담배랑 거의 비슷하게 독합니다.”

“강하다는 게 무슨 의미야?”

장목화는 그런 방면으론 완전히 무지했기에 계속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블랙셔츠파 구성원은 손짓까지 해가며 열심히 설명했다.

“저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네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느낌이 아주 강하다는 겁니다. 아, 정신이 번쩍 들어요. 아주 만족스럽죠.”

“정신이 번쩍 든다?”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성건우도 그녀를 보며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늘어지게 하품을 해 보였다.

수면 장애.

현장에서 발견한 흔적과 말인 영역 관련 자료를 결합해보면, 일차적으론 수면 장애를 앓는 진짜 신부가 각성을 위해 수시로 외부적인 힘에 기댄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장목화는 다시 블랙셔츠파 구성원을 돌아보았다.

“이런 담배는 어디 가면 살 수 있는데?”

블랙셔츠파 구성원이 창밖을 가리켰다.

“항구에서요. 여러 잡화점에서 이 담배를 취급합니다.”

“항구⋯⋯.”

장목화가 그 단어를 반복하는 사이, 성건우는 벌써 늑대소굴로 들어가 항구 쪽으로 난 유리창 앞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예전에 여자들이 늑대 소리를 흉내 내며 손님을 끌어들였던 자리이기도 했다.

장목화도 그쪽으로 다가가 서쪽 항구를 바라보았다. 화물선과 짐이 가득한 그곳에서는 수시로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레드리버 연안에 이 항구만 있는 게 아니에요. 북쪽 기슭 불모지와 연계된 것만 해도 두세 개는 되죠.”

백새벽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장목화는 그녀를 보며 찬찬히 추리를 시작했다.

“새벽이 네 말은 선원들이 다른 항구에서 하선하고 불모지에서 사냥한 뒤, 그곳의 그을린 흙을 퍼스트 시티로 옮겨왔을 수도 있다는 거야?”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크죠. 저들은 씻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옷이랑 바지, 신발 같은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게네바가 얼른 따라붙었다.

“연탄 작업장 대부분도 강 근처에 붙어있어. 항구에서 멀지 않아.”

“알겠다!”

성건우가 갑자기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내리쳤다.

장목화, 용여홍은 별 기대감도 없이 그를 돌아봤지만, 성건우는 눈빛을 반짝이며 굳건한 진리를 이야기했다.

“진짜 신부는 우연히 플래그십 담배를 피워보고, 그게 자기한테 잘 맞는다는 생각에 수시로 항구에 와서 한 무더기씩 산 거예요. 그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원들이 북쪽 기슭에서 옮겨온 그을린 흙이랑 연탄재를 밟은 거죠. 우린 항구에 있는 잡화점을 차례로 들려서 이 담배를 대량으로 구매한 사람을 찾으면 돼요! 그러면 바로 진짜 신부를 적발할 수 있겠네요!”

용여홍은 본능적으로 성건우에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니 정말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단, 진짜 신부가 어떤 담배를 피웠는지 중요한 정보가 없으니 지금 성건우의 추리가 반드시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장목화도 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잡화점 주인들이 과연 진짜 신부 모습을 제대로 기억할까? 진짜 신부의 습관대로면 본능적으로 상대의 기억을 곡해하고 자기 생김새를 흐릿하게 만들었을 거야. 맞은편에 누가 있든 신경도 쓰지 않는,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행인이 아닌 이상에는.”

백새벽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진짜 신부 스타일이 아니야. 그는 반드시 직접 나서야 하는 때가 아닌 이상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잖아. 그 사람한텐 종도 있고, 심지어 꼭두각시도 있어. 그냥 그들한테 담배 사 오게 시키면 돼. 진짜 신부는 직접 차까지 몰고 항구로 와서 잡화점에 방문할 이유가 없어.”

짝! 짝! 짝!

성건우는 백새벽의 날카로운 분석에 박수로 화답했다. 본래 그의 칭찬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백새벽도 구조팀 생활이 오래돼서인지 그리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발언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맞아, 우린 진짜 신부랑 두 번이나 마주쳤고 회사에서 자료를 받기도 했어. 그걸 토대로 한 판단이니까 100퍼센트 정확하다고 할 순 없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전에 검푸른 SUV를 타고 우릴 미행했던 그 사람은 진짜 신부가 아닐 가능성이 커. 그날 우리를 습격했던 건 진짜 신부일 테지만.

음, 가설을 세워볼까? 진짜 신부가 정말로 항구에 와서 북쪽 기슭의 그을린 흙이랑 석탄재를 밟고 플래그십 담배 한 팩을 샀다고 쳐. 그럼 여기서 그가 직접 처리해야만 하는 일이 뭐였을까?”

장목화는 팀원들의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혹시 진짜 신부의 종의 우리 뒤를 쫓다가 늑대소굴을 발견하지는 않았을까? 그 보고를 들었으니 진짜 신부는 직접 공격하려고 여기로 온 거야.”

용여홍이 화들짝 놀랐다. 지금까지 들은 추리 중, 논리에도 부합하고 몹시 그럴듯하기까지 했다.

장목화는 즉각 성건우에게 눈짓을 해 보인 뒤 그와 함께 늑대소굴 안쪽으로 향했다. 게네바, 백새벽, 용여홍도 그 뒤를 바짝 따랐다.

* * *

가장 안쪽에 자리한 방에선 책을 읽는 낭랑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자들은 언어를 배우기 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 중이었다.

곧이어 장목화가 문을 세 번 두드리자, 책 읽는 소리가 뚝, 멈췄다.

게네바가 즉시 처리 프로그램에 따라 주위 환경을 확인했다. 그와 성건우, 장목화는 철저한 분업으로 최상의 협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 생명체를 검사하는 게 게네바의 역할이라면, 성건우, 장목화는 각자 인간의 의식과 생물 전기 신호에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무슨 일이야?”

안에서 소나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늑대소굴의 종이 문을 두드린 것이라 생각한 듯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는 레드리버어로 말했다. 매우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난 며칠간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어 보였다.

소나영의 목소리를 듣고, 장목화가 알아서 문을 열었다.

안에선 소나영, 이경서를 비롯한 여자들이 침대 가장자리나 다른 곳에서 가져온 의자에 앉아 열심히 레드리버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너희들이었구나.”

소나영이 기쁜 얼굴로 일어났다. 그녀의 오른손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따라 일어난 다른 이들 중에서도 몇몇이 윗옷 주머니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

장목화의 머릿속에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나 그녀가 따로 명령하기도 전, 성건우의 눈동자가 짙어졌다.

성건우의 재빠른 반응으로 인해, 여자들은 주머니에 넣은 손을 더 이상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동시에 게네바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여러 탄소 기반인 앞을 막고 서서 큰 소리로 외쳤다.

“폭발물들이 엄청 많아!”

“폭발물이라니⋯⋯.”

용여홍이 히익,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신부는 정말이지 뒤끝이 너무 길었다. 막으려야 막을 수도 없었다.

장목화는 멍한 얼굴을 한 여자들을 보며, 백새벽에게 말했다.

“새벽아, 저 사람들 주머니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해볼래? 겐, 너는 밖에 있는 종들을 소집해서 그들을 지켜봐. 누구라도 이상한 낌새를 보이거든 곧장 사살해도 좋아.”

“그래.”

게네바가 즉각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소나영이 혼란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걱정하지 마, 너희랑은 별 상관없는 일이야. 너희가 다칠까 봐 그러지.”

장목화가 위로를 건넸다.

이미 빠르게 다가가 수색하던 백새벽은 곧 소나영의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하나 꺼냈다.

“이게 대체⋯⋯.”

소나영은 이 상황에 크게 놀란 듯했다. 뒤이어 그녀는 누군가 머릿속을 때리는 듯한 통증에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뒤로 백새벽은 무려 리모컨 일곱 개를 찾았다.

동시에 방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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