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참을 수 없는 일
다음날 오전, 장목화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조기정에게 전보를 보냈다. 전보에는 대략적인 상황의 발전이 담겨 있었다.
가타부타 상세하게 말하지 않은 건, 상대가 이미 구체적인 경과를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반 지성교 사람이 일차적으로 제거됐고, 조이한이 포카스 저택에 갇혀있다는 사실이었다. 조기정이 이를 인지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도리를 아는 유적 사냥꾼이라면 할 보고는 해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진짜 신부의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씨 가문에서 답변이 돌아왔다. 장목화는 전보의 해독을 마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조사할 필요 없대. 이제 모든 건 포카스 장군한테 맡기래. 란스터에게 연락해 퍼스트 시티 내 조씨 가문 총관리자 조수인을 찾아서 강 왼쪽 기슭 장원 소유권 이전 절차를 마무리하래.
하하, 조기정 이 사람, 담이 너무 작은 거 아냐? 반 지성교에 그렇게 당해놓고도 철저하게 복수하기는커녕 이렇게 마무리 지어?
하, 축하연에 대해선 언급이 없네. 포카스 장군이 그런 얘기는 안 했나 봐. 축하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 거겠지.”
“적어도 장원은 하나 받았네요.”
백새벽은 얼굴엔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목소리에선 만족감이 묻어 나왔다. 황야유랑자 출신의 유적 사냥꾼인 그녀는 매번 적잖은 보수를 받을 때마다 큰 기쁨을 느끼곤 했다.
반면, 성건우는 축하연의 좌절에 몹시도 실망한 얼굴이었다.
장목화 역시 고개를 끄덕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장원 하나론 군용 외골격 장치랑 기계 팔 중에 하나밖에 못 골라.”
리만이 30%를 할인해준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통제 품목들은 실제로 거래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만약 구조팀이 연합 공업 무기 상인 리만과 연계를 형성하지 않았다면, 그에게 충격을 선사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가 갈망하던 진상을 밝혀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군용 외골격 장치나 기계 팔은 꿈조차 꾸지 못했을 터였다.
“기계 팔이 더 멋있죠!”
성건우가 곧장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러자 용여홍이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근데 군용 외골격 장치가 쓰기엔 더 쉽잖아요. 당장이라도 쓸 수 있고.”
이때 성건우가 용여홍을 보며 말했다.
“넌 이미 군용 외골격 장치 있잖아.”
“팀장님한테는 없잖아. 넌 필요 없어도 팀장님한테는 필요하다고.”
용여홍의 말이 너무도 맞는 말이라, 성건우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언제나 이어지는 친구들의 논쟁에, 언제나처럼 장목화가 웃으며 나섰다.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 보자. 어떤 걸 고르느냐가 아니라 어떤 걸 살 수 있느냐가 문제일 수도 있잖아.
자자, 오늘 할 일은 세 가지야. 첫째, 장원 소유권 이전 절차 잘 마무리 짓기. 둘째, 회사 정보원을 만나 분석이 필요한 물건을 넘기기. 셋째, 여관으로 가서 사장 찾기.”
“휴고 사장은 왜요?”
용여홍이 물었다. 백새벽도 이번엔 장목화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살짝 커진 눈으로 질문했다.
“무심병 발병이 끝났는지, 다시 돌아가도 될지 확인하려고요?”
장목화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웃었다.
“그것도 목적 중 하난데, 또 다른 목적은 우리가 그날 여관에 방문해 무심병 발병 현황을 묻고 난 뒤 어떤 사람이 따라 들어왔었는지 물어보려고. 휴고는 평범한 여관 사장이 아니잖아. 어쩌면 뭔가 눈치챘을지도 모르지.”
* * *
아침 식사를 마친 구조팀 다섯은 간단히 위장한 뒤 회색 SUV에 올랐다. 구조팀은 일단 차를 바꿔 반 지성교 사람들의 눈을 속일 작정이었다.
왼쪽 뒷좌석에 앉은 용여홍은 자연스레 창밖을 보다가 길에 오가는 차량과 정상적으로 영업 중인 가게를 발견했다.
“오늘은 군대 관할이라 병사들이 총을 쥐고 돌아다닐 줄 알았는데.”
오른쪽 뒷자리에서 성건우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구세계 콘텐츠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용여홍은 부정하고 싶었지만 정말로 구세계 콘텐츠에서 비롯된 상상이라 할 말이 없었다. 곧이어 앞자리 조수석에서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포카스가 바로 장원에서 반 지성교 구성원과 구세군 사람을 체포한 뒤에 그렇게 빨리 움직일 거라고 생각한 거야? 곧장 다른 원로들한테 연락하고, 군대를 소집하고, 바로의 계파를 통제할 거라고?”
용여홍이 진지하게 물었다.
“원래 그런 작업은 미처 손쓸 틈 없이 빨리 진행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상대가 대비할 틈도 없도록?”
장목화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구체적인 상황은 구체적으로 분석해야지. 포카스는 아직 충분한 지지 세력을 찾지 못해서 정변이 일어나는 걸 막으려는 걸 수도 있어. 또 그는 정말로 반 지성교랑 아무 관계도 없어서, 그 사이비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보다 타협적이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처리하겠다고 결심한 걸 수도 있고.”
운전 중인 백새벽도 말을 보탰다.
“충분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선 무엇도 정확한 게 없어.”
“하긴.”
용여홍은 구세계 콘텐츠 때문에 너무 편협하게 생각한 것을 깨달았다.
이때 게네바가 불쑥 물었다.
“이럴 때 화가 나진 않나? 모두가 자기 의견을 부정할 때 말이야.”
잠시 침묵하던 용여홍이 웃으며 말했다.
“정상적인 상황 아닌가? 내 생각이 반드시 옳기만 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근데 넌⋯⋯.”
성건우의 목소리가 중간에 그쳤다. 뒤돌아 자신을 쏘아보는 장목화의 눈빛을 마주한 탓이었다.
“그렇군.”
게네바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인간 행위 유형의 새로운 표본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차는 계속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린올리브 구역으로 향했다.
구조팀이 여태 한 번도 지난 적 없는 거리 위로, 구조팀의 새로 바뀐 차량이 달리고 있었다. 짙은 빨간색에 사나워 보이는 SUV, 이번에 구조팀이 새롭게 바꾼 차였다.
* * *
여관에 돌아오니, 프런트에 사장 휴고가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약간 주름이 진 남자는 오늘도 맹물과 검은 빵을 먹고 있었다.
“매일 그렇게 비슷한 음식을 먹으면 안 질려요?”
성건우가 물었다.
휴고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애쉬랜드에 사는 대부분은 먹을 게 있기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해.”
“근데 당신은 그 대부분이 아니잖아요.”
성건우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자 휴고가 구조팀을 한번 쓱 훑어보았다.
“전에는 그랬지.”
전에 겪은 힘겨운 삶이 남긴 습관이라는 의미였다.
자꾸만 새는 이야기로 인해, 장목화가 나서서 가볍게 물었다.
“최근에도 무심자가 나타났나요?”
“없었어. 이제 돌아와도 돼.”
휴고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이번 무심병은 며칠 만에 거의 열 명에 가까운 피해자를 냈다는 뜻이네.’
장목화는 한숨을 내쉬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휴고 씨, 저희가 지난번에 왔을 때 기억하세요?”
“기억해.”
휴고는 한 단어로만 간단히 답했다.
“그럼 혹시 그때 저희를 쫓던 사람이 있었나요?”
“있었지.”
‘있었다니! 그럼 휴고한테 단서를 찾을 수 있겠어!’
용여홍은 순간 충격과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이번엔 구조팀 중 휴고와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백새벽이 나섰다.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보셨어요?”
휴고는 문 쪽을 힐긋 바라보았다.
“차에서 안 내렸어. 개조된 검푸른 SUV를 타고 있었지. 너희가 여기 들어왔을 땐 좀 멀리 세워뒀다가, 너희가 떠나니까 그제야 쫓아가던데.”
“먼 곳에 세워뒀다는 건 어떻게 아세요?”
용여홍이 호기심을 표했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당시 휴고가 계속 프런트에만 있었다고 했었다. 지금 여기서 보이는 건 문 바깥쪽이 전부였다.
휴고가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문 앞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뒀거든.”
“⋯⋯.”
그런 답을 듣게 될 줄은 몰라서, 용여홍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 공백은 성건우가 손뼉으로 채웠다.
“과학 기술은 삶을 바꿔주죠.”
퉁퉁퉁!
게네바도 깊이 동감한다는 듯 손뼉을 쳤다.
장목화는 정말로 이들과 모르는 사람인 척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은 잊지 않았다.
“휴고 씨, 혹시 그 영상 좀 볼 수 있을까요?”
막 답을 하려던 휴고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얼굴 근육에 어렴풋이 경련까지 일어난 것 같았다.
“일단 화장실 좀.”
빠르게 말을 뱉어낸 그가 벌떡 일어나 데스크 뒤쪽 방으로 향했다.
“뭐, 가끔 절대로 참을 수 없는 일이 있잖아요.”
이해한다는 듯 중얼거리던 성건우가 큰 소리로 물었다.
“제가 대신 프런트 좀 보고 있을까요?”
쾅!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달려간 휴고가 요란하게 문을 닫았다.
장목화, 백새벽, 용여홍은 멍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장목화는 저 방에서 흘러나오던 야수의 거친 숨소리를 떠올렸다.
“반복적으로 발작하는 병인가?”
물론 그녀는 혼잣말로 한 얘기지만, 주변엔 또렷하게 다 들렸다.
그러자 성건우가 휴고를 변호했다.
“정말로 속이 불편해진 걸 수도 있죠.”
용여홍은 언제나처럼 반박하고 싶었지만 지금 휴고가 이 프런트 바로 뒤쪽 방에 있어서 그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2, 3분 뒤 드디어 나무 문이 열리고, 휴고가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금발은 축축이 젖어있고, 린넨 재질의 낡은 셔츠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안색도 창백하니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정작 휴고는 별것 아니라는 듯 설명했다.
“소화기관에 문제가 좀 있거든.”
“그럴 줄 알았어요. 치료가 필요하세요? 특효약이 필요하세요?”
성건우의 말에, 휴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만성질환이야. 괜찮아.”
장목화는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휴고는 상태가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조금 전 일은 정말로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한 것 같았다.
“영상이야 보여줄 수 있지.”
휴고가 데스크 아래에서 낡은 휴대용 컴퓨터 한 대를 꺼내, 능숙하게 케이블을 연결하고 전원을 켰다. 해당 영상을 찾은 후엔 컴퓨터를 데스크 위에 놓고 모두가 볼 수 있게 돌려주었다.
화면엔 장목화, 성건우가 탄 회색 SUV 뒤를 따라 검푸른 SUV가 나타났다. 그 차는 회색 SUV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감시 카메라가 비추는 구역이라 모든 게 확연히 다 보였다.
“그래, 그때 우린 회색 SUV를 타고 있었어. 작은 흰둥이랑 빨강이가 지원을 맡았을 때 탔던 것도 그 차였고.”
장목화가 또 다른 연관점을 찾았다.
그 사이 영상 속 회색 SUV가 여관 밖에 멈추자 개조한 흔적이 또렷한 검푸른 SUV도 길가에 섰다. 차 양옆 창은 짙은 색으로 선팅이 되어있어서 안쪽에 누가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감시 카메라는 그 차의 앞 유리를 비추고 있었다. 많이 흐릿하긴 해도 안에 한 사람만 탑승해 있다는 건 확인이 되었다. 검은색 옷차림에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이었다.
다시 장목화와 성건우가 여관 밖으로 나와 회색 SUV를 타고 떠나자 검푸른 SUV 또한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나섰다.
“번호판은 없네.”
용여홍은 구세계에서 쓰이던 차 번호판 시스템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표했다. 번호판이 있었다면 그것 역시 단서가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은 퍼스트 시티였다. 오가는 유적 사냥꾼이 아주 많고 이로 인해 차량 폐기율도 높은 곳에서 차 번호판을 발부한다는 건 실제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방침이었다.
관리자들도 번호판 다는 걸 강제하지 않는지라, 번호판 부착은 오로지 개인이 결정하는 문제였다.
다만 번호판을 달지 않은 차량이 교통 규칙을 어겼을 경우, 교통을 지휘하는 치안요원들에게 강력한 화기를 지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