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54화 (354/649)

354화. 막으려야 막을 수 없는

그 후로 한동안 석탄재와 탄 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토론이 이어졌지만, 또렷한 조사 방향을 찾지는 못했다. 이에 셋은 나중에 짬을 내어 의심스러운 장소들만 한 번 돌아보기로 했다.

장목화는 이제 다른 봉지를 쳐다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까 그랬지, 진짜 신부는 우리를 감시했을 거라고. 그러지 않고서야 작은 흰둥이랑 빨강이 행적을 정확히 파악하고 때맞춰 두 사람을 찾아 최면을 걸지는 못했을 거라고.

하지만 난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 행적을 들킨 적은 없는 것 같아. 우린 때마다 주의했잖아. 장원 주위에 이르러 직접 조사하지도 않았고, 돌아왔을 때도 뭔가를 감지했든 아니었든 미행을 떨치는 작업부터 필수로 했어.

그렇다고 우리 차 외형이 특이한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것도 아니야. 겐도, 건우도, 나도 주위를 감지하고 정탐할 수 있는데 진짜 신부가 과연 우리 중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고 우리를 미행할 수 있었을까?

진짜 신부는 기껏해야 신규진의 기억을 통해 우리가 조씨 가문 장원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과 위드 시티의 어느 간첩에게서 그때 누가 그의 계획을 망쳤는지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을 거야.”

성건우가 재차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를 미행한 게 반 지성교 심령의 복도 급 강자일 수도 있어요. 그 감지 능력은 우리보다 훨씬 넓을 거예요. 어쩌면 각기 다른 의식의 특징을 기억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 의식을 쫓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장목화는 우습다는 얼굴이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 근데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한테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직접 습격하면 단박에 끝날 일일 텐데? 아…….”

갑자기 장목화가 짧은 탄성을 뱉었다. 게네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런 지능 로봇이 있는 한,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라도 습격에 꼭 성공하리라 보장할 순 없었다. 오히려 흠씬 얻어맞게 될지도 몰랐다. 그만큼 로봇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은 흔치 않았다.

장목화가 다시 또 덧붙였다.

“내 말은, 각성자 능력은 대부분 기이하고 기괴해서 대비가 불가하다는 거야. 심령의 복도에 이른 각성자라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우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어.

겐도 적은 발견하지도 못하고 능력의 영향으로 우리가 위기에 봉착해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을걸.

퍼스트 시티의 내분을 일으키는 게 목적이라도 진짜 신부를 파견해 우리의 경계심을 드높이는 것보다는 그가 직접 나서는 게 훨씬 나아.”

“그게 그 사람 대가일 수도 있죠. 비정상적인 사고방식.”

성건우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들은 또 한동안 토론했지만, 합리적인 결과는 낼 수 없었다. 계속 현장에서 찾은 단서를 분석해 더 이상의 수확이 있을지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목화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결정적인 단서는 없네. 이 담배꽁초에서 뭔가 검출되길 바라야지.”

그녀는 회사 정보 시스템을 통해 신뢰할만한 실험실을 찾을 계획이었다. 이 사실을 반 지성교에 절대로 들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이후에 세 사람은 전에 인쇄해둔 자료를 가지고 애쉬랜드어 입문용 교재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 * *

오후 3시쯤 깨어난 용여홍과 백새벽도 교재 작업에 합류했다.

교재 집필은 이날 저녁 무렵까지 이어졌다.

“뭘 먹을까요?”

용여홍이 식탁 위의 종이를 정리하며 영원한 난제를 꺼냈다.

장목화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국수? 퍼스트 시티에 며칠 있었더니 갑자기 국수가 당기네.”

백새벽이 찬물을 끼얹었다.

“퍼스트 시티엔 국수를 파는 데가 잘 없어요. 애쉬랜드인이 모인 거리가 아니면 식당을 찾는 것도 힘들고, 그런 거리는 거의 그린올리브에 있고요.”

그때, 게네바가 제안했다.

“남겨둔 밀가루가 있으니까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어.”

“좋아!”

성건우가 신나게 호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팀 내 탄소 기반인 네 명이 식탁에 나란히 둘러앉았다.

흰색 앞치마를 두른 게네바가 그 앞에서 능숙하게 밀가루를 반죽하고, 밀어서 펴고, 잘라서 면으로 만들기까지 하고 있었다. 게네바가 국수를 만드는 과정이 그리 예쁘다고 할 순 없어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긴 했다.

“훌륭한데.”

용여홍이 게네바를 칭찬했다.

게네바는 눈에 붉은빛을 두어 번 번득이며 대꾸했다.

“타르난에 있었을 때 요리 영상들을 다운로드 해뒀었거든. 더 인간다워지고 싶어서. 오늘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짝! 짝! 짝!

성건우가 셰프 게네바를 향해 손뼉을 쳤다.

잠시 망설이던 용여홍은 겐의 자신감을 더해주고자 박수 행렬에 동참했다. 이때 백새벽은 이미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장목화만은 뭔가 생각에 잠긴 듯 미동도 없었다. 그러자 성건우가 그녀의 눈앞에 대고 손바닥을 흔들어 보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장목화가 잠시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우리가 반 지성교의 시선을 끌었을지도 모르는 장소가 떠올랐어.”

“어딘데요?”

백새벽과 용여홍이 동시에 물었다.

장목화의 낯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포카스 장군의 저택.”

“포카스 장군의 저택이라니⋯⋯. 왜요? 그때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용여홍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장목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씨 가문 장원과 관련된 사건을 쭉 나열하고 머릿속으로 한 번 훑어봤어. 그 모든 과정 중에 우리랑 직접적으로 접촉한 사람은 많지 않아. 조씨 가문 비밀 연락원인 하비스트 목욕탕 사장 란스터, 조씨 장원 집사 조수인, 반 지성교 구성원 신규진, 포카스 장군과 그 저택에 있던 하인과 경비병들.

그들이랑 면대면으로 마주했을 때 나랑 건우는 항상 경계심을 드높였어. 남들한테 감시당하고 쫓긴 적도 없고, 우리 숙소를 들킨 적도 없어.”

“맞아요. 근데 왜 포카스 장군 저택을 콕 짚으신 거죠?”

다시 이어진 용여홍의 물음에, 장목화가 차분히 설명했다.

“아무래도 거기서 실수했을 가능성이 제일 커서. 보통 때는 장군의 저택에 있는데 몰래 감시당할 리가 없잖아. 거긴 아무 문제도 없어야 하는 일종의 보안 시설이어야 하니까. 그래서 나랑 건우도 거기선 딱히 경계를 높이지 않고 그들한테 엄청 협조적으로 응했어.

어쩌면 그러는 중에 암시를 받은 거 아닐까? 그래서 돌아오는 동안에도 경계도 안 하고, 미행을 살피는 것도 소홀히 해서 행적을 들킨 게 아닐까?

그저 암시일 뿐이라면 잠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원상태로 돌아오니까 이후엔 그런 문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잖아. 그때 우린 겐이랑 같이 들어가지도 않았어, 그런 상황에 대처해줄 지능인이 없었던 거야.

맞아, 기억 나. 그때 우린 포카스 장군의 저택을 떠난 뒤 일단 여관에 가서 무심병 발생 상황을 물었어. 그 후에 곧장 아이언메달 스트리트 숙소로 돌아갔고. 또 오늘 우리 작전도 거기서 시작됐잖아.”

용여홍이 흠칫 놀랐다.

“그럴 리가……. 팀장님이랑 건우 둘 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암시에 걸렸다니⋯⋯.”

반 지성교가 그렇게나 무시무시한 조직이라니.

백새벽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 듯했다.

장목화는 한숨을 토해내며 옆쪽의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건우, 숙명주로 그 기억 한번 되돌려봐 봐. 당시 우리 언행에 무슨 문제가 있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보면 되잖아.”

든든한 게네바 외에도 구조팀엔 숙명주라는 또 하나의 비기가 있었다. 반 지성교에 대항하기에 이보다 더 탁월한 건 없었다. 장목화는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디마르코가 정말 고맙기까지 했다.

진지한 얼굴로 말없이 듣고만 있던 성건우는 바로 청록빛을 발하는 야명주를 꺼냈다. 전보다 밝기가 옅어졌던 구슬은 서서히 빛을 내기 시작했다.

* * *

기원의 바다.

허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성건우가 아홉으로 분열되었다.

거대한 파도가 솟구치며 안에 담긴 무수한 미약한 빛이 확장되었다.

빛 속에 담긴 각양각색의 화면 중에, 성건우들은 각자 한 구역씩 맡아 포카스 저택을 방문했을 당시부터 아이언메달 스트리트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있었던 일들을 선별해냈다.

그 후, 이를 어떻게 편집해 한 편의 영화로 만들지 고민하는 듯 기억들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살피는 작업이 진행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심사를 마친 뒤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현실 세계로 복귀할 시간이었다.

* * *

성건우가 숙명주를 거둬 넣으며 말했다.

“저랑 팀장님은 포카스 장군의 저택을 떠나 돌아오는 동안 확실히 경계를 늦췄어요. 딱히 주위를 경계한 적이 없네요.”

그 말에 용여홍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는 장목화와 성건우가 포카스 장군 저택에서 정말로 모종의 암시를 받았다는 뜻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때 다시 성건우의 말이 이어졌다.

“근데 우리가 상황이 변해서 방심한 건지, 아니면 외부의 영향 때문에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성건우를 지켜보던 장목화가 아예 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우리가 언제 영향을 받았는지는 발견하지 못했고?”

성건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가 장군 저택에서 접촉한 사람이 몇 없어요. 그들과 나눈 대화에는 이상한 점이 없었고, 누군가랑 눈이 마주쳤다고 멍해지거나 하지도 않았어요.”

‘그게 더 무서운데!’

용여홍이 흠칫하며 무의식중에 백새벽을 바라봤다가 그녀 역시 안색이 어두워진 걸 발견했다.

장목화는 더더욱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들 중에 있는 거네? 단순한 암시를 거는 작업은 최면처럼 복잡하지 않을 거야. 손짓 한 번, 눈빛 한 번, 혹은 평범해 보이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미칠지도 몰라. 반 지성교는 퍼스트 시티에 내부 갈등을 불러오고 싶어 해. 그러니까 누군가를 포카스 장군 저택에 파견해 상황이 발전하는 걸 막으려 했을 가능성이 커.”

성건우가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숨어서 감시하고 있던 게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일 수도 있어요. 목자 부이용도 있잖아요. 오랜 시간 그 능력 범위 안에 노출돼 있었고 우린 그런 감시를 정상적이라 여겨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서서히 암시를 받은 거죠.”

용여홍은 더 식겁했다.

“포카스 장군에게 알려야 할까요?”

장목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문제의 원인이 포카스 장군이면 어쩌려고? 그날 장군 저택 안에서 가장 얘기를 많이한 게 그 사람인데?”

결국 용여홍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러니까 상황이 심각한 거야. 우린 문제의 본질조차 파악이 안 되니 아예 참여하지 않는 게 나아. 우리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진짜 신부의 손길만 차단할 수 있으면 그만이야.”

장목화는 이내 게네바를 돌아보았다.

“겐, 듣고만 있으면 어떡해. 이제 국수를 끓여야지.”

“간장이 없어.”

게네바가 난처해했다.

레드리버인이 주류인 퍼스트 시티에 간장은 흔치 않은 양념이었다. 그렇다고 간장을 구하러 애쉬랜드인 밀집 구역으로 갈 바에는 차라리 그곳의 국숫집에 방문하는 게 나았다.

다행히 레드울프 구역은 애쉬랜드에서 생활 수준이 꽤 높은 곳이라, 게네바는 다른 조미료를 이용해 어렵게나마 국수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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