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길 위에서
두 소령을 따라 장원에 진입했을 무렵, 장목화가 소리를 낮춰 물었다.
“왜 그렇게 신이 났어?”
“곧 구세군 사람을 만나잖아요.”
언제나처럼 당당하고 솔직한 성건우의 답을 들으며 장목화도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 늘 전 인류를 구원하고 싶다고 말하는 성건우의 구호는 구세군의 강령인 ‘전 인류를 위해’를 고쳐 만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건우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세군 사람과 바로 원로의 측근은 이미 다른 곳으로 끌려간 모양이었다.
지금 구조팀 눈앞에 보이는 건 조이한 그리고 가짜 신부로 의심되는 모광호 뿐이었다. 두 사람의 눈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고, 입에는 더러운 헝겊이 물려 있었다. 그리고 양손까지 뒤로 묶여 있는 상황이었다.
눈을 가리고 입을 막은 건 최면 능력을 못 쓰게 하기 위한 조치고, 손을 뒤로 묶은 건 두 사람의 행동을 제약하려는 조치였다.
성건우는 그들을 슥 훑어본 뒤 신난 듯한 얼굴로 말했다.
“맞아.”
조이한은 형보다 살짝 마른 편에 얼굴은 팽팽하며, 코가 살짝 휘어져 있었다. 그 옆의 모광호는 안색이 좀 초췌해 보였다.
“데려가.”
듀카스의 명령에, 병사들이 조이한과 모광호를 장원 밖으로 데려나갔다.
“더 이상 우리가 할 일은 없는 거지?”
장목화가 물었다.
“그거야 너희랑 고용주 계약에 달린 문제지. 앞으론 근육도 단련하고 사격술 훈련에 힘쓰도록. 그래야 이 애쉬랜드에서 살아갈 수 있다.”
평소처럼 냉담하다고 해야 할지, 듀카스의 묘한 작별 인사가 이어졌다.
구조팀 세 사람이 아무 의미 없는 충고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자, 듀카스가 장목화를 보며 다시 입을 뗐다.
“나랑 팔씨름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장목화가 웃었다.
“확실히 말해두겠는데, 속임수 쓰기 없어.”
“그럼!”
듀카스도 매우 호쾌하게 답했다.
카시엘은 재미있는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성건우와 함께 심판 역할을 맡아주었다.
그로부터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듀카스는 넋을 잃은 채 장원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야⋯⋯. 10초도 안 돼 세 번이나 내리 졌어⋯⋯. 말이 돼? 단련이 부족했어. 근육이 부족한 거야⋯⋯.”
그의 뒤를 따르던 카시엘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세네.”
겉보기에 장목화는 근육질의 우람한 체격도 아니었다.
‘이것도 속임수라고 봐야 하나?’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말했다.
“변이가 된 건지도 모르지. 하하, 농담이야.”
카시엘이 웃었다.
“응? 생긴 것만 봐도 아류인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장목화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난 유전자 개조로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갖게 됐잖아. 그러니 아류인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야. 겉만 다를 뿐이지.’
그 사이 성건우가 그녀 대신 설명했다.
“천부적인 재능이야.”
장목화도 웃으며 덧붙였다.
“맞아, 힘써 단련해서 얻은 능력은 아니지. 듀카스 소령이 좀 많이 충격받은 것 같던데. 혹시나 이 일이 정신 상태에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몰라. 돌아가서 얘기해줘. 세상에 같은 사람은 없고, 사람들에겐 다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고. 단련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것들이 아주 많다고. 날 이기고 싶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이야.”
카시엘은 저 앞에서 좀비처럼 걷고 있는 듀카스를 보다 낮게 웃었다.
“그 말이 더 자극될 것 같은데.”
구조팀이 장원 밖으로 나왔을 때 도시 방위군은 철수 중이었다. 장목화도 포카스의 동의 아래 작별을 고하고 그곳을 떠났다.
앞으로의 일은 구조팀이 관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구조팀은 그저 이 사건으로 인한 혼란이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국방색 지프는 교외의 단단히 다져 만든 도로를 따라 도시 남문으로 향했다. 장목화는 차를 몰며 습관적으로 길 양쪽 상황을 살폈다.
그러던 그때, 그녀의 시야에 번쩍 발하는 불빛 한 덩어리가 들어왔다.
장목화는 어렵지 않게 빛의 정체를 파악했다.
유탄, 로켓포, 혹은 포탄이 발사될 때 나타나는 불빛이었다.
‘적습이다!’
장목화는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핸들을 꺾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묵직한 충격으로 인해 지프는 길 반대편까지 떠밀렸다.
콰광!
차 오른편에서 일어난 폭발에 대량의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먼지 속엔 활활 타오르는 구체 같은 불빛이 번득이고 있었다.
지프는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렸다. 이 구역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갑자기 또 그 바퀴에 깔린 바닥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콰광! 콰광!
지뢰들이 폭발하며 지프를 그대로 날려버렸다.
쿠우웅!
땅으로 추락한 지프가 데굴데굴 굴렀다.
이 순간 장목화의 머릿속엔 물음표가 연달아 떠올랐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불가능하지! 이 도로에 차가 얼마나 많이 지나간다고! 근데 어떻게 우리 차만 지뢰로 정확히 노릴 수 있어?’
지프는 몇 바퀴를 구른 뒤에야 뒤집힌 상태로 멈췄다.
빠른 결단 하에 장목화는 곧장 안전벨트를 풀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성건우도 재빨리 차에서 굴러 나왔다.
이때, 성건우의 시야에 빛나는 구두코 한 쌍이 들어왔다. 그 구두를 따라 위로 시선을 옮기자, 비쩍 마르고 키가 큰 남자가 보였다.
새카만 소용돌이 같은 남자의 눈은 성건우의 영혼을 그대로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혼란에 빠진 성건우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생각이 마구 날뜀에 따라 인격도 바뀌었다. 그 상태에서 그가 앞뒤 생각하지 않고 냅다 외쳤다.
“겐!”
게네바는 훌쩍 튀어 올랐다가 산처럼 묵직하게 착지했다. 그 덕분에 성건우는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
실패한 남자는 황급히 달아나려 했지만, 갑자기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패배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남자는 다시 제자리에 멈춰서 몸을 돌리더니 성건우에게 계속 최면을 걸려고 시도했다. 그러자 게네바가 그를 그대로 덮치며 강철 주먹을 쳐들었다.
퍽!
그 일격에 남자가 그대로 정신을 잃자, 장목화와 성건우의 눈앞에 펼쳐져 있던 광경은 마치 거울처럼 삽시간에 깨져버렸다.
파르르 몸서리를 치며 정신을 차린 장목화는 아직 지프 안에서 여전히 운전 중인 자신을 발견했다. 성건우 역시 옆자리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때, 뒷좌석에 앉아있던 게네바가 큰 소리로 외쳤다.
“차 세워!”
장목화는 그제야 지프가 도로를 벗어나 넘실대는 타웨이 리버로 향하고 있는 걸 깨달았다.
끼익-!
지프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겨우 멈춰 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게네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장목화는 성건우를 보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진짜 신부의 습격인가?”
조금 전 상황이 위드 시티 사냥꾼 실드에서 허양원이 겪었던 것과 매우 흡사했다. 모두 다 여러 사람이 끌려든 환각이었다.
다만 환각 속의 게네바는 실제 존재가 아닌, 성건우와 장목화의 인지에서만 비롯된 허상이었다.
성건우는 모처럼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진짜 신부는 이 방법으로 정념 선사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했어요. 그는 이제 저한테 억지쟁이 능력이 있다는 것과 그 대가 덕분에 최면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거예요.”
“또한 우리한테 겐이 있다는 것도 알았어. 각성자 대부분에게는 천적과 같은 존재인 겐이.”
한숨을 토하며 호응한 장목화가 몇 초간 주위 감지에 들어갔다.
“전기 신호가 너무 많아서 뭐가 진짜 신부의 것인지 알 수가 없네. 어쩌면 이 중에 진짜 신부의 전기 신호는 없는지도 모르고. 그 능력 범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으니까.”
이내 몸을 튼 그녀는 게네바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상세히 설명한 뒤, 마지막으로 당부를 덧붙였다.
“우리가 멍해져 있거나 정신이 빠져있는 걸 발견하면 곧장 깨우거나 기절시켜버려. 어떤 방법을 써도 상관없어.”
게네바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재차 주위를 둘러보던 장목화는 지프를 도로로 천천히 몰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다시 또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 진짜 신부가 이대로 포기할지, 아니면 우리 특징을 노려 또 한 번 공격할지 모르겠네. 일단은 작은 흰둥이랑 작은 빨강이부터 만나자.”
* * *
현재 용여홍과 백새벽이 있는 이 길은 조씨 가문 장원으로 향하려면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회색 SUV는 길가 숲에 숨겨져 있었다.
곧이어 저 멀리 국방색 지프가 달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끝났어!”
성건우가 창을 내리고 손을 흔들었다.
“반 지성교 사람을 잡은 거야?”
백새벽이 약간 의심쩍다는 듯 물었다. 그녀와 용여홍은 타웨이 리버 근처 어느 장원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지는 걸 들었다. 하지만 그곳과 조씨 가문 장원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성건우는 의도적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린 못 이겼고, 그쪽도 안 졌어.”
싸움이 무승부로 끝났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용여홍은 돌연 성건우의 말을 다시금 자세히 곱씹어보았다. 그 말의 뜻은 그게 아니었다.
“반 지성교가 목적을 달성했다고?”
용여홍이 근처에 멈춘 지프로 다가갔다.
마침 차 문을 열고 내린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모종의 의미에서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리고 그녀는 점점 가까워지는 백새벽과 용여홍을 향해 멈추라는 듯 오른손을 뻗어 보였다. 이내 그녀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 후에 진짜 신부를 맞닥뜨렸어. 만약 그 능력이 흔치 않은 능력이라면 분명 그 사람이 맞아. 그래서 나랑 건우는 오는 도중에 겐에게 자료를 받아서 기억을 비교해보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고쳐진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봤어. 혹시 모르니까 너희도 한번 비교해봐.”
백새벽과 용여홍 역시도 중요한 기억을 게네바에게 저장해두었었다.
백새벽은 바로 전술 배낭에서 휴대용 컴퓨터 한 대를 꺼내, 게네바에게 데이터 케이블을 연결했다. 장목화도 자신의 컴퓨터를 용여홍에게 건네며 백새벽과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게네바의 포트도 상당해서 동시에 여러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백업해둔 기억을 내려받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니 압축이 해제되었다.
용여홍은 먼저 내용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나랑 건우는 어릴 때부터 늘 함께 자라온 죽마고우다. 수시로 날 놀리는 게 취미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래도 건우는 참 착한 아이다. 농담에도 대부분 선의가 담겨 있다⋯⋯.」
순간 용여홍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뭐, 뭔가 이상해⋯⋯. 쟤 농담에 무슨 선의가 있어. 다른 사람 체면 같은 건 생각해주지도 않는데. 나, 난 진짜로 쟤를 죽이고 싶었다고⋯⋯.”
누군가와 대항하듯 힘겹게 중얼거리던 용여홍이 마지막 말을 내뱉고서야 어느 쪽 기억이 옳은지 깨달았다. 자신이 성건우를 죽이고 싶었을 리가.
용여홍은 무릎을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 난 최면에 걸렸었어! 헉, 아니면 기억 일부가 곡해됐었던 거야!”
백새벽도 점차 차갑게 식어가는 눈으로 장목화를 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내, 내가 팀장님을 질투한다고? 왜? 내가 팀장님의 늘씬한 키랑, 예쁜 얼굴, 강한 힘, 주변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능력,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리는 서글서글한 성격을 샘낸다고? 나, 난 분명히⋯⋯.”
“분명히 뭐?”
성건우가 호기심을 드러내자마자, 장목화가 즉각 허튼짓하지 말라는 듯 그를 홱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