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줄
통로가 약간 길어서, 추격대는 몇 분 후에야 출구를 찾아 나왔다. 바깥은 조씨 가 장원을 벗어난, 타웨이 리버 근처 언덕의 으슥한 공간이었다.
“차 바퀴 흔적이 있어. 최근에 남겨진 거야.”
카시엘이 쪼그려 앉아 바닥에 남은 흔적을 자세히 살폈다.
“급하게 굴 것 없어.”
듀카스가 고개를 끄덕인 후, 무전기를 들고 포카스에게 이곳 상황을 전달했다. 동시에 병사와 교통수단을 보내달라는 부탁도 남겼다.
장목화, 성건우, 게네바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물러나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때, 장목화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말했다.
“뭔가가 하나의 줄로 엮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낚싯줄인가요?”
성건우가 웃으며 물었다.
“그럴지도.”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게네바도 자연스레 대화에 섞여들었다.
“모광호와 조이한이 미끼인 건가? 반 지성교가 낚으려는 게 뭐지?”
장목화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앞으로의 상황을 봐야 알겠지? 어쩌면 낚싯줄이 아니라 구세계 인형극에서처럼 인형을 조종하는 줄일지도 몰라.”
구조팀이 대화하던 사이, 조씨 가문 장원을 포위하고 있던 병사 일부가 차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그러나 그중 구조팀의 국방색 지프는 없었다.
장목화, 성건우, 게네바는 어쩔 수 없이 군용차 트레일러에 끼어 앉았다.
구조팀 셋은 양손으로 덧문을 꼭 움켜쥐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이들의 머리카락뿐이었다.
“풍경 하나는 기가 막히네. 건물도 특색있고.”
장목화는 주변 풍경 감상에 빠졌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도 노예들은 곳곳 논밭에 흩어져 갖가지 일만 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오가는 차는 많지 않았다. 도시 바깥길도 진흙으로 가득해서 차 바퀴 흔적은 어렵지 않게 추적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듀카스, 카시엘의 명령 하에 멈췄다 다시 달리길 반복하며 차분하게 길을 쫓았다.
* * *
대략 10분 정도 지나, 군용차들이 또 다른 장원 밖에 멈춰 섰다.
밀과 귀리, 호밀뿐만 아니라 포도까지 재배하는 장원이었다.
제일 먼저 차에서 내린 카시엘은 쪼그려 앉아 바퀴 자국을 살폈다.
“그 차야. 이 장원으로 들어갔어.”
나머지도 속속들이 그곳으로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확인을 했다.
듀카스는 조이한과 모광호가 탄 차가 장원 문 뒤로 사라진 것을 알고, 고개를 들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여긴 바로 원로가 제일 좋아하는 장원이야. 수시로 방문도 하지.”
‘바로 원로⋯⋯.’
장목화가 그 이름을 되뇌며 성건우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러곤 입 모양으로만 이야기했다.
‘줄이 엮였어.’
바로라는 원로는 퍼스트 시티 실권자 중 한 명으로, 집정관 겸 총사령관인 베울리스의 부관이었다.
그들은 원로원에 대량의 지지자를 거느리며 엄청난 환란이 일어나지 않은 한, 현 상황을 최대 유지하는 것을 이념으로 삼았다. 반고 바이오 내부에서는 그들을 보수파로 분류했다.
반면 혁명을 갈망하는 원로원 신진 구성원들은 가이우스를 중심으로 ‘퍼스트 시티 개조, 주민에게 토지 환원’을 주장했다. 그래서 반고 바이오에선 퍼스트 시티 동쪽 군단장 가이우스를 변혁파로 분류했다.
중립을 택해 두 대형 파벌 논쟁에 끼어들지 않는 장군과 감찰 체계의 원로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들은 중간파라고 불렸다. 반쯤 퇴역한 것이나 다름없는 포카스는 바로 그 중간파에 속했다.
이런 건 비밀이랄 것도 없어서 다른 세력들도 거의 다 파악하고 있었다. 장목화 역시 회사에서 준 자료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다.
장목화의 입 모양을 확인한 성건우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물론 장목화는 그가 정말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바로 장로와 연루된 일이면 우리 멋대로 결정할 수 없어. 장군께 알려.”
카시엘이 동료에게 말했다.
듀카스도 아무리 근육에 진심이라도 머리까지 근육으로 채워진 건 아니라,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차분히 무전기로 포카스에게 추격 결과를 알렸다.
보고를 듣고, 포카스가 냉정하게 말했다.
- 모든 작전을 일시 중단한다. 내가 가지.
장목화는 이내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병사들과 거리를 벌렸다.
성건우와 게네바 역시 눈치껏 그녀를 따라 물러났다.
장목화는 그들을 보며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이따 어떤 극이 펼쳐질지 모르니 우리는 일단 가만히 지켜만 보자.”
“아아, 난 극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는데.”
아쉬워하는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일의 경중은 파악할 줄 알아야지.”
잠시 후, 조씨 가문 장원을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과 전투 로봇들이 포카스의 장갑차를 호위하며 나타났다.
포카스는 두 소령을 불러 몇 분간 구체적인 상황을 물었다. 그리고 다시 장갑차로 들어가 한동안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포카스가 장갑차 문을 열고 나와 그 옆에 섰다. 그는 한번 주위를 둘러본 뒤,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병사들은 내 명령에 따르도록!”
이 순간 포카스는 아주 엄숙했다. 숱이 많이 빠진 황토색 머리칼도 더 이상은 우습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모든 병사 앞에 서서 큰소리로 호령했다.
“우린 현재 반 지성교라는 사이비 종교 조직 구성원을 쫓고 있다. 그들은 일찍이 소르스 장로를 죽이며 이 도시에 한 차례 혼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위험한 존재다. 그들은 우리를 전복하기를 원하며, 모든 시민이 그들 꼭두각시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명령에 따르기만 바란다.
모든 시민의 안전을 위해, 퍼스트 시티의 미래를 위해, 우린 반드시 최선을 다해 그 조직 중요 구성원들을 잡아들이고 조직 자체를 소멸시켜야 한다.
그러니 이 작전에 누가 연루돼 있든, 누가 저지하든, 절대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 모든 결과는 내가 책임질 것이다! 우리한테는 집정관의 영장이 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퍼스트 시티의 법률에 부합한다!”
포카스의 연설에 상당수 병사가 무기를 높이 쳐들며 외쳤다.
“장군! 장군!”
그러자 나머지도 분위기에 휩쓸려 목청을 높였다.
환호가 점차 잦아졌을 때, 포카스는 바로의 장원을 가리켰다.
“제군들, 이곳을 인수할 것을 명령한다! 사격을 허락한다!”
지금 포카스는 당시의 명성을 되찾은 늙은 사자 한 마리와도 같았다.
“명령 받잡겠습니다, 장군!”
병사들이 입을 모아 호응했다.
포카스는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뒤, 조리 정연하게 갖가지 임무를 배정했다. 임무는 전과 마찬가지였다. 일부 병사는 전투 로봇 일부와 흩어져 장원을 포위했고, 나머지 병사들과 전투 로봇은 듀카스, 카시엘을 따라 바로 장원의 대문으로 향했다.
병사들이 장목화, 성건우, 게네바 앞을 지나치던 때, 듀카스가 멈춰 섰다.
“같이 가겠나?”
장목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너희가 상황을 정리하고 나면 그때 가서 목표만 확인할게.”
듀카스도 재차 권하는 대신 길을 재촉했다.
이윽고 병사들은 장원 근처에 이르러 문 앞 경비병의 무장을 해제하고 거침없이 안쪽으로 쳐들어갔다. 장목화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여러 병사의 보호를 받고 있는 포카스를 쳐다보았다.
장군은 장갑 지휘차 조수석에서 차분히 바로의 장원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콰광!
갑자기 하늘을 뒤흔들 듯 우렁찬 굉음이 울려 퍼졌다. 바로 원로의 장원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었다.
다음 순간 밀집된 총성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엔 높이가 서로 다른 폭발음도 섞여 있었다.
이 심각한 상황에,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낮은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예상과 현재 상황이 거의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어, 장목화가 성건우와 게네바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인데⋯⋯.”
“창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네요.”
성건우도 비평을 남겼다.
격전 소리는 짧게만 이어졌고, 바로의 장원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로부터 또 한참 지났을 무렵, 장원에 들어갔던 차 한 대가 나왔다. 그 안에서 듀카스, 카시엘이 뛰어내려선 멀리 있는 포카스를 향해 경례했다.
“장군,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목표를 전부 체포했습니다!”
포카스는 장갑차 안에서 고개를 끄덕인 뒤, 큰 소리로 물었다.
“왜 무전기로 보고하지 않고?”
듀카스와 카시엘은 잠시 서로를 보며 망설이다가 역시 큰 소리로 답했다.
“현장에는 반 지성교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바로 원로의 측근, 그, 그리고 구세군의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방으로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가 여러 병사의 귀에 똑똑히 닿았다.
‘구세군?’
장목화가 눈썹을 추켜 올렸다.
퍼스트 시티에 있어 구세군은 영원한 최고 숙적이었다.
퍼스트 시티에서 볼 때 반 지성교와의 결탁은 내부 감투싸움이라 타협의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구세군과 연루돼 있다니,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
장목화는 눈썹을 추켜 올리며 장갑차 안의 포카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골치 아픈 문제 앞에, 늙은 사자 같은 포카스의 낯빛도 심히 무거워져 있었다.
이때 게네바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말투로 물었다.
“저들은 왜 무전기로 보고하지 않고 직접 나와서 이야기하는 거지?”
인간의 행위 분석과 시뮬레이션 메커니즘을 보완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중요한 건 여기 자리한 모든 사람 앞에서 말했다는 거야. 안 그랬으면 퍼스트 시티 원로원 내의 인물들끼리 서로 타협하고 이 상황을 대강 마무리 지은 뒤에 저 두 사람을 희생양 삼았을지도 모르니까. 그렇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아니까 저들도 상당히 안전해진 거지.”
“그렇군.”
게네바는 이 상황을 기록에 남겼다.
“정말로 극이 펼쳐졌네요.”
성건우는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잠깐의 정적 끝에, 포카스가 장갑 지휘차에 장착된 확성 시스템을 이용해 듀카스와 카시엘에게 명령을 내렸다.
“반 지성교의 구성원, 바로의 측근, 구세군의 사람을 전부 데리고 나와라. 따로따로 심문하겠다.”
“예, 장군!”
한결 안도한 듀카스와 카시엘은 다시금 정중히 경례했다.
그 광경을 보며 장목화는 생각에 잠긴 채 혼잣말을 했다.
“반 지성교의 진정한 목적은 퍼스트 시티 내부 갈등을 심화하고 상류층을 분열시켜 혼란을 일으키는 거였을까?”
이는 그들 계획에 특별히 노리는 대상도, 위험한 함정도 없었다는 뜻이었다. 반 지성교는 그저 하나의 뚜껑을 열어젖히도록만 상황을 설계했다. 그 뚜껑을 열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당연하게도 바로 포카스였다.
포카스는 중간파에 속해 있고, 인기가 많으며, 도시 방위군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데다, 본인 자체가 대단한 장군이었다.
장목화의 말을 들은 성건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는 도구였네요.”
구조팀은 이 사건에서 거의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반 지성교에 다른 목적이 있었음을 미리 간파했더라도, 결과를 바꾸지 못하고 여기저기 바쁘게 뛰어다니기만 하는 도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숨을 쉬는 성건우의 얼굴에서 실망한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상기돼있다는 표현을 쓰는 게 더 적절했다. 적수를 찾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진짜 신부, 혹은 퍼스트 시티에 있는 반 지성교 장로, 목자 부이용은 확실히 강해. 얕잡아보면 안 돼. 어쨌든 우린 그쪽 때문에 50오레이는 벌었네.”
장목화는 자조하듯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 듀카스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확인하러 가자고.”
“좋아!”
성건우가 힘차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