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분파
정색한 테렌스를 보고, 성건우도 진지하게 태도를 바꿨다.
“넌 어느 교파인데?”
“초월 영성 교단.”
테렌스의 모습은 사뭇 신실했다.
이때, 장목화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대화에 끼어들었다.
“너희랑 욕망 성인 교파의 이념이 다르다는 거지? 그쪽이 달지기의 가르침을 어떻게 잘못 해석한 건데?”
테렌스가 미소를 지었다. 장목화의 표현이 퍽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모든 걸 초월하는 영성이 있다고 생각해. 이건 태어날 때부터 가진 천성이고, 우리네 심령 깊은 곳에 잠재된 빛이지.”
“달지기 만다라의 은혜라는 거야?”
일전에 장목화는 회사에서 준 자료에서 욕망 성인 교파의 교리 일부를 확인한 바 있었다. 하지만 자료에 나온 설명은 그리 상세하지 않았으며, 초월 영성 교단의 이름도 나와 있지 않았다.
테렌스가 아주 신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신이 바로 모든 걸 초월하는 영성이고, 그 신의 이름이 만다라인 거야. 신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존재해.”
성건우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화답했다.
“그럼 우린 모두 태생적으로 만다라의 신도인 거네?”
테렌스는 몹시 뿌듯해하며 조금 전 설명했던 교리로 호응했다.
“신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계신다.”
“신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계신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그 말을 따라 한 성건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혹시 너희 교단에 기도하는 방식이나 예를 갖추는 방식 같은 건 없어?”
성건우는 손동작까지 곁들이며 질문을 강조했다. 어디 동작 없이 읊는 기도문이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웃음을 터뜨린 테렌스는 바로 오른손을 들어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기도를 외웠다.
“당신들의 영성이 모든 것을 초월하기를.”
“당신들의 영성이 모든 것을 초월하기를.”
또 성건우는 곧장 그 동작을 따라 하며 열심히 호응했다.
그를 보며, 장목화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완전히 뭐, 욕망의 주인 만다라의 신실한 신도네.’
다시 테렌스가 웃으며 말했다.
“이건 사실 기도할 때 하는 손동작이고,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쓰여. 하하, 우린 친하지만 너희는 아직 우리 교단 구성원이 아니니까. 우린 서로 뺨에 입을 맞추면서 예를 표하거든? 이건 구세계에 있던 인사 중 하나야.”
‘아, 그건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은데.’
짧게 감상을 표한 장목화가 다른 곳으로 새려는 대화를 정리했다.
“계속 얘기해봐.”
몸집이 비대한 테렌스가 주머니에서 작은 은박지로 싸인 뭔가를 꺼내 천천히 포장을 풀었다. 안에 든 건 흑갈색 초콜릿 한 조각이었다.
그 초콜릿을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어 삼킨 테렌스는 눈을 반쯤 감은 채 아주 여유로운 자세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일체를 초월하는 영성이 존재해. 그렇지만 그걸 감지하고 발견하긴 매우 어렵지. 우린 늘 각종 욕망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야.
마실 것과 먹을 것에 대한 욕망, 누군가와 침대에서 뒹굴고 싶은 욕망, 남보다 더 잘나고 싶은 욕망, 즐기고 싶은 욕망, 교류하려는 욕망, 게으름을 피우려는 욕망, 정신적인 자극을 추구하는 욕망 등등.
이런 욕망들이 우리 눈을 가리고, 우리 심령을 감싸면서 모든 걸 초월하는 영성을 감지할 수 없도록 방해해.”
반쯤 감긴 테렌스의 눈을 보면 한창 일체를 초월하는 영성을 감지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당연히 지금 성건우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성건우는 초콜릿이 있던 은박지만 쳐다보며 매우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내 장목화가 떠보듯 물었다.
“그러니까 마음 깊은 곳에서 일체를 초월하는 영성을 떠오르게 하기 위해선 그 모든 욕망을 억눌러야 한다는 거야?”
그게 바로 초월 영성 교단의 이념이라기엔 믿기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테렌스의 이 비대한 몸집도, 다짜고짜 초콜릿을 우적우적 먹던 그 모습도 도무지 욕망을 억누르는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테렌스가 웃으며 눈을 번쩍 떴다.
“아니. 이건 이단 교파가 가진 잘못된 생각이야. 회귀 교파라고 불리는 그쪽은 다른 지역에서 활동 중이지.
아가씨, 스스로를 억누르려 하지 마. 욕망은 오직 방출할 수만 있지, 제거할 순 없어. 욕망은 제거될 수 없는 존재야. 살아있는 한, 식물인간이 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우린 그걸 두려워하면 안 돼. 그걸 정확히 인지하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 생각해봐, 질펀한 잠자리를 갖고 난 뒤엔 뭔가 기묘한 상태가 찾아오지 않아?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고, 머리도 맑아지고, 욕망도 사라지고, 뭔가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 들잖아?”
장목화와 성건우 모두 진지하게 초월 영성 교단의 이념을 설명하는 남자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답하지 못하는, 할 수도 없는 두 사람의 얼굴엔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표정이 걸려 있었다.
테렌스도 답을 들을 거란 기대는 없었는지 그냥 계속해서 할 말만 했다.
“그게 바로 일체를 초월하는 영성에 가까워졌단 뜻이야. 구세계 어느 문헌에는 이걸 현자 타임이라 부른대. 내 각성자 능력의 이름도 거기서 따온 거야. 현자의 순간을 느낀다는 건 신의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지.
현자, 그 이름만 봐도 대단한 존재란 게 느껴지지? 현자는 진정으로 영성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런 각도에서 볼 때 우린 어떻게 심령을 목격하고 끄집어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아낼 수 있어.
바로 욕망의 방출이야.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소한 뒤에 찾아오는 극치의 평안, 극치의 해탈 속에서 심령을 느끼고 찾는 거지. 우리의 기도 방식은 순간순간의 욕망을 곧장 방출하는 거야.
잠자리를 갖고 싶으면 바로 누군가와 자고,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바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술을 마시고 싶으면 바로 마시고, 단 게 먹고 싶으면 그게 몸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고기가 먹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서 그 욕망을 채우고, 누군가를 때리고 싶으면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날리면 돼.”
‘그럼 누군가를 때려죽일 수도 있잖아. 거꾸로 네가 맞고 죽든가⋯⋯.’
장목화가 속으로만 반박하다가 차분하게 물었다.
“욕망 성인 교파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순간 테렌스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그들은 각종 욕망과 일체를 초월하는 영성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해. 욕망 안에 영성이 있고 영성 안에 욕망이 있는 거라고, 그것 역시 신령의 또 다른 일면이라고 생각하지.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그래서 그들은 각종 욕망을 태우고 증발시킴으로써, 그 안에서 일체를 초월하는 영성을 감지하고 움켜쥐어야 한다고 주장해.”
장목화도 이제야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욕망이 영성을 파악하는 데 방해되는 요소니까, 그걸 방출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들은 욕망 역시도 신성하다고 여긴다는 거고?”
테렌스가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맞아. 그들은 신령을 모욕하고 있어.”
‘만약 그게 신령을 모욕하는 거라면, 또 달지기가 실존한다면 그런 사람들을 멸하지 않은 것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 너희의 만다라가 그쪽 생각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거나 근본적으로 그런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든가.’
이번에도 장목화는 소리 낼 수 없는 말을 속으로만 대신했다.
그 사이, 성건우가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의 성찬은 뭐야?”
테렌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욕망이나 중독 증상을 달래는 음식이지. 커피나 와인, 또 구세계부터 생산됐지만 지금은 몇몇 극소수 공장에서만 생산되는 특별한 음료 같은 거.”
육중한 몸을 일으킨 테렌스가 거실에 있는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상당히 새것 같은 냉장고에선 구세계 느낌이 물씬 풍겼다.
테렌스가 냉장고에서 꺼낸 건 새카만 음료 두 병이었다. 뒤이어 냉장고 아래 얼음 칸에서 도구로 얼음도 꺼내고, 빠르게 돌아와 오거에게 주방에서 유리잔 세 개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칙-
청량한 소리와 함께 검은 음료의 병마개가 열렸다. 테렌스는 그대로 오거가 가져온 컵에 그 액체를 부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뽀글뽀글 소리와 함께 검은 음료에서 커피색 거품이 피어올랐다. 마지막으로 테렌스는 컵에 얼음까지 몇 조각 띄웠다.
곧이어 오른손을 들어 검지와 중지로 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그가 기도를 끝낸 뒤, 성건우와 장목화를 향해 컵을 들어 보였다.
“마셔봐.”
테렌스는 바로 고개를 살짝 젖히고 검은 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성건우 역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테렌스와 같은 동작을 취하며 공손히 호응하곤 얼음을 띄운 음료를 마셔보았다.
몇 초 후, 성건우가 내려놓은 컵엔 벌써 음료가 반 정도 줄어들어 있었다. 그는 테이블에 놓인 음료병을 보며 진심 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교파도 꽤 괜찮은 것 같네.”
‘이거 콜라잖아.’
사실을 알아도 그대로 드러낼 순 없었다. 장목화도 사실 들어보기만 했지 실제로 접한 적은 없어서, 그냥 아무 표정 없이 음료를 살짝 홀짝여보았다. 시원한 느낌과 독특한 맛에 퍽 만족했다.
그렇게 성찬을 공유한 테렌스가 갑자기 의문을 제기했다.
“너희들, 근데 왜 나한테 바로 욕망 성자 교파 소속이냐고 물어본 거지? 전에 그들과 접촉한 적이 있나?”
장목화가 솔직하게 답했다.
“응. 위드 시티에 친구 하나가 크리스티나라는 여자 때문에 함정에 빠진 적이 있어. 욕망 성인 교파에 소속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거든. 아직은 의심에 불과하지만.”
테렌스가 살짝 입을 벌렸다.
“아, 사냥꾼 길드에 있는 그 여자? 그래, 비교적 활동적인 용의자지. 그렇다고 무턱대고 복수하겠다고 나서진 마. 욕망 성인 교파는 상류층과 꽤 긴밀하게 연결돼 있거든.”
“응.”
태연한 척했지만, 장목화는 느닷없이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
* * *
이제 테렌스 주변 사람들을 처리하고 추리 광대의 순환 논증이 한동안 유지될 거라는 것도 확인했다. 성건우와 장목화는 오거를 데리고 스턴 스트리트 25호에서 나와 지프에 올랐다.
장목화는 차를 몰면서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퍼스트 시티에는 각성자가 정말 많네. 곳곳에 각종 종교 조직도 볼 수 있고. 공개적이든, 비공개적이든. 이건 퍼스트 시티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거야. 여러 해 동안 그런 국면을 제압해오면서도 아무 소란도 일어난 적이 없잖아.”
그러자 성건우가 눈앞의 길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이제 여홍이가 왔으니⋯⋯.”
“아, 여홍이 그만 좀 놀려!”
장목화도 웃음이 터졌다.
* * *
퍼스트 시티, 사냥꾼 길드 홀.
한명호 관련 소식을 얻지 못한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는 2층에서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용여홍이 한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저 사람 위드 시티 사냥꾼 길드 부회장 아냐? 크리스티나?”
백새벽, 게네바는 고개를 돌려 금발 푸른 눈의 30대 여성을 확인했다. 거친 피부와 살짝 큰 모공을 제외하면, 상당히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흰 셔츠에 파란 대각선 무늬가 들어간 긴 바지 차림도 참 멋스러웠다.
용여홍이 정확히 보았다.
여자는 위드 시티 사냥꾼 길드의 부회장 크리스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