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39화 (339/649)

339화. 제의 (2)

“아, 뭐야! 너무 기괴한 방법이잖아!”

용여홍이 몸서리를 쳤다.

그와 반대로 성건우의 웃음은 점점 더 해사해졌다.

“너한테 배운 건데? 그때 네가 그랬잖아. 차으뜸을 죽여서 표본으로 만든 다음에 수장하고 싶다고.”

순간 말문이 막힌 용여홍은 게네바의 시선을 피하며 변명했다.

“어⋯⋯. 그건 네 추리 광대의 영향을 받아서 한 말이었잖아.”

다시 또 장목화가 나설 차례였다.

“자자, 좋아. 이 문제는 천천히 신중하게 얘기하자. 급하게 굴지 마.”

그녀는 스스로와 팀원들의 생명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니 성건우의 목표 달성을 위해 죽을 생각은 결단코 없었다. 구세계 파괴 원인과 무심병 발병 원인도 밝혀내지 못한 마당에 죽음이라니.

대화를 마무리 지은 장목화는 또 어느새 성건우를 보며 감탄했다.

“근데 섬 세 개를 극복하자마자 너 자신을 찾아낸 거야? 각성자 동호회에서 부러워 죽으려 하겠는데? 설마 이게 정신질환의 장점인가? 겁이 없는 거?”

성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그들도 얼마든지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증명서를 받을 수 있을 텐데요.”

“…….”

장목화는 언제나처럼 성건우를 무시하고 옆쪽 숲을 가리켰다.

“여기가 오늘 감시 장소야.”

“조씨 가문의 장원은 안 보이는데요?”

용여홍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아까 장목화는 분명 숲 밖의 길이 조씨 가문의 장원 정문을 통하는 주요 도로라고 했었다.

장목화가 웃으며 설명했다.

“우리랑 신부가 아무 접점도 없던 건 아니잖아. 우린 신부가 어딘가에 몰래 숨어서 감시하길 좋아하는 걸 알아. 만약 조씨 가문 장원 밖에 시야가 좋은 곳 몇 군데를 골라 감시한다면 신부한테 발각당하기도 쉬울 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여기서 행인들을 관찰하는 게 훨씬 나아. 조수인의 기억에서 확인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곧장 공격하고 그를 제압하면서 상황을 확인⋯⋯.”

갑자기 장목화가 말을 줄였다.

용여홍이 영문을 몰라 혼란에 빠진 사이, 성건우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에 감시를 맡았던 그 유적 사냥꾼 팀,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었네요.”

‘그래, 신부의 지능과 능력, 방식을 보면 조씨 가문 장원 주변에서 감시했다간 바로 들킬 거야. 낯선 이들을 알아차리긴 어렵지 않지.’

용여홍도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

이내 장목화도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양원 암살 시도 사건에서 진짜 신부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해?”

백새벽이 무겁게 목소리를 깔았다.

“가짜 신부를 미끼 삼아 모두의 시선을 돌리고 함정을 밟게 했죠.”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조씨 가문 장원이 사실 미끼고, 함정이라면? 그럼 일부 이상한 상황들도 설명돼. 그들이 모든 상납금을 내지 않았던 것도, 조기정이 이상하다고 느끼게 했던 것도, 장원 주위에서 감시하는 이들을 내버려 뒀다는 것도⋯⋯.”

장목화가 자문자답으로 말을 끝냈다.

지금까진 조씨 가문 장원을 통제하는 게 그들의 단기적인 작전이라서, 반 지성교가 조기정이 이상한 점을 알아차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가설은 너무 억지스러웠다. 아무리 단기적인 작전이라도 도중에 발생할 뜻밖의 일을 걱정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러나 이를 진짜 신부의 행동 양식과 결합해 생각하면 모든 게 딱 맞아떨어졌다.

이야기를 듣던 게네바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하나?”

장목화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아니, 속아 넘어가야 하는 사람으로서 계속 이곳에 남아 단서를 수집해야지. 최후에 뭘 더 얻어갈 수 있을지 보자고.”

“거꾸로 그들을 속이자는 건가?”

게네바가 분석을 보완했다. 장목화의 방안도 생각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가 내린 최종 결론보단 중요도가 낮다고 판단했었다.

성건우가 장목화를 도와 설명을 덧붙였다.

“속이는 게 아니라 전략적인 기만인 거지.”

“그게 뭐가 다르지?”

게네바는 매우 정직했다.

장목화는 혹시 또 성건우가 헛소리를 할까 싶어 얼른 화제를 돌렸다.

“만약 진짜 함정이라면, 반 지성교는 누굴 노리는 걸까?”

“우린 아니겠죠.”

용여홍이 말했다. 구조팀이 언제 반고 바이오를 떠나 퍼스트 시티에 도착할지를 예측할 순 없었을 터였다. 게다가 조씨 가문 장원에서 있었던 사건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진행돼 온 일이었다.

백새벽이 퍼스트 시티 쪽을 한번 돌아보며 말했다.

“조씨 가문은 아직 자격이 충분하지 않아요. 반 지성교는 그들을 통해 도시 안의 어느 세력을 일망타진하려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다. 좋아, 일단 차는 숨기고 각자 정해진 위치로 가서 행인들을 감시해보자.”

장목화는 모두를 보며 말했지만, 사실 여기서 진정한 감시 임무를 맡은 건 성건우 뿐이었다. 조수인의 기억에서 몇몇 목표를 목격한 이는 성건우밖에 없었고, 그가 그린 초상화론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구조팀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숲으로 숨어들었다.

* * *

약 2시간 후, 조씨 가문 장원 쪽에서 총알구멍으로 가득한 소형트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럭이 향하는 방향은 퍼스트 시티 쪽이었다.

운전자는 검은 머리칼에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였다. 잎을 직접 말아 만든 담배를 물고 몸까지 살짝 흔드는 모습에서는 상당한 여유가 느껴졌다.

장목화가 성건우를 향해 눈짓했다. 저 남자가 목표에 포함돼 있냐는 의미였다. 전에도 적잖은 이들이 이곳을 지나쳤지만, 조수인의 기억 속 용의자에 포함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성건우가 드디어 고개를 끄덕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신규진.’

신규진은 조수인의 기억 일부에선 익숙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지만, 어떤 기억 속에는 다른 사람과 혼재돼 있었다. 또한 특정 부분에선 그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 설명되기도 했다.

장목화는 사실 성건우의 입 모양을 해독하진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확실한 답을 얻었다. 그녀는 곧 게네바 쪽을 돌아보면서 세 손가락을 펼쳤다. 행동을 개시하라는 신호였다.

나무 뒤에 쪼그려 앉아 있던 게네바가 즉각 튀어나왔다. 다리 금속 관절에 힘을 주고 붕 떠오른 그는 신규진이 모는 소형트럭의 보닛에 착지했다.

조악한 담배를 물고 있던 신규진이 곁눈으로 이 광경을 목격하곤 고도로 긴장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다 매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신규진은 갑작스럽게 달려든 상대가 누구인지, 특징이 무엇인지 판별하기도 전에 오른발에 무게를 싣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그는 이미 이런 상황에 관한 훈련을 받은 바 있었다. 이때는 절대로 차를 세워서는 안 됐다. 좌우지간 냅다 달리는 게 제일 좋고 안전한 방법이었다.

부우웅-!

소형트럭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게네바는 보닛 위에서 앞 유리와 그대로 충돌했다. 그러자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고 말았다.

게네바를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게네바는 아주 충실하게 계획을 이행 중이었다. 장목화가 걱정하는 건, 불쌍한 운전자 신규진이었다.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이 신규진은 깨진 유리 파편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뒤를 이어 품으로 빠르게 달려든 묵직한 금속에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갈비뼈도 벌써 몇 개 부러져 있었다.

일반적으로 앞 유리에 쇳덩이가 날아들면, 곧장 속도를 낮추거나 방향을 틀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신규진은 오히려 속도를 더 높였다. 이는 인간이 로봇보다 더 단단한지 객기를 부려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승부의 결과는 뭐,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달걀로 바위를 깨부술 수 있겠는가? 소형트럭은 어느 정도만 더 달리다가 힘겹게 멈춰 섰다. 이것도 게네바가 핸들을 통제하며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신규진의 다리를 치워준 덕분이었다.

소형트럭이 멈추자, 게네바가 차에서 내린 뒤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다 이쪽으로 뛰어오는 장목화와 성건우를 보고 조용하게 꿍얼거렸다.

“이러면 사고 난다는 거 모르나? 돌아가서 칠을 다시 해야겠어.”

“탄소기반인이라면 누구나 머리에 쥐가 날 때가 있는 법이지.”

성건우는 진심으로 인간을 대변했다.

가까이 다가온 장목화는 운전석에 쓰러진 신규진을 걱정스럽게 살폈다.

“그래도 죽지는 않았네.”

“내가 적절한 자세로 치명적인 위치를 피한 덕분이야.”

게네바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 자부심에도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방금 같은 상황에선 갑자기 날아든 쇳덩이에 사람 머리가 깨졌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장목화는 신규진을 조심스럽게 끌어내 숲 가장자리 흙바닥에 눕혔다.

의료 검사 설비의 역할을 맡은 게네바는 바로 신규진의 상태를 확인했다.

“갈비뼈 몇 개만 부러졌어.”

장목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주위 50미터 반경 안에 대형 생물의 전기 신호는 없어.”

그녀는 무고한 생명을 해쳤을까, 반 지성교 교도라도 죽였을까 걱정한 게 아니었다. 꼬임에 속아 넘어간 게 아닌, 일정 역할을 맡아 직접 작전에 참여할 만큼의 핵심 인물에게서 정보를 캐내지 못할 것을 염려한 것뿐이었다.

“인간의 의식도 없네요.”

성건우가 청록빛을 발산하는 야명주를 꺼냈다. 본래 의식을 잃은 상대에게는 추리 광대보다 숙명통이 더 유용하게 쓰였다.

청록빛이 번득이는 와중, 용여홍은 성건우의 눈이 텅 비며 초점을 잃는 걸 보았다. 다음 순간, 의식을 잃은 신규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신규진은 곧 양팔로 몸 곳곳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목표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선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네.”

그러나 당시 디마르코는 상대의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도 억지로 육신을 통제할 수 있었다. 방해나 저항도 어느 정도만 영향이 있을 뿐이었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신규진이 잔뜩 신나서 온몸 곳곳을 더듬고 있었다. 용여홍은 진짜 짜증 난 나머지 연거푸 손사래를 쳤다.

“야! 빨리 기억이나 뒤져봐, 진짜 변태 같잖아.”

백새벽도 그 말에 십분 동의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네⋯⋯.”

신규진의 목소리가 점차 흐려지더니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로부터 한참 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반 지성교 사람이었어. 조씨 가문 장원을 통제하라는 명령을 받고 거기로 파견됐나 봐. 음, 진짜 신부나 다른 고위층을 만난 적은 없어. 기억 속에 그와 비슷한 인영이 등장하지도 않아. 중요한 기억을 곡해 당한 걸 수도 있겠지만. 조이한 곁에 있는 검은 트렌치코트 남자의 명령에 따르고 있어. 그 사람 이름은 모광호, 아마 최면 능력을 발휘하는 각성자일 거야.”

이야기 중에 신규진이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멋대로 접은 종이 몇 장을 꺼냈다. 그 종이들 위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고는 함정이고 지식은 독약이다.」

「사고를 포기하면 무심뼝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지식을 전파하면 반드시 무심뼝에 걸리게 된다.」

장목화는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읽으니까 내 머리가 다 이상해지는 것 같아. 꼭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이런 전단지에 진술까지 더하면 조 의원한테 반 지성교의 짓이 맞다는 걸 확인시켜줄 수 있겠어. 겐, 이 전단 좀 사진으로 찍어서 저장해……, 야! 넌 이만 돌아와. 숙명주(宿命珠)를 아껴야지.”

숙명주란 장목화가 이 야명주에 붙인 이름이었다. 구슬은 디마르코가 부활하지 않는 이상, 그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심령의 복도 급 강자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충전할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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