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37화 (337/649)

337화. 가격 제시

위드 시티, 조씨 가문의 서재.

차를 마시던 조기정이 황급히 들어오는 큰아들 조이덕을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며 일갈하려 했던 그는 순간 전에 있었던 어떤 일을 떠올리곤 입을 다물었다.

이내 조기정이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냐?”

조이덕이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아버지, 장우병 팀이 전보를 보내왔어요.”

“벌써?”

조기정이 의아한 얼굴로 종이를 받았다. 어젯밤 이미 란스터로부터 퍼스트 시티에 막 도착한 조사원들과 접선했다는 전보를 받은 바 있었다.

「반 지성교와 관련 있고, 최면 등 각성자 능력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됨.」

내용은 짧았다. 장목화는 구체적인 조사 과정 대신 딱 결과만 전했다. 기억 곡해 능력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자신들이 어떻게 기억이 곡해된 사실을 알아낸 것인지 의혹을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

“반 지성교라⋯⋯.”

전에 있었던 암살 사건으로 위드 시티 대귀족도 그 교파를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조기정도 마찬가지였다.

이내 조이덕이 잔뜩 겁에 질려 말했다.

“아버지, 우린 계속 반 지성교와 합작한 가문은 못 찾고, 퍼스트 시티가 우리 가문을 뿌리째 뽑으려 한다고 의심했었잖아요. 호, 혹시, 이한이가⋯⋯.”

조씨 가문 차남인 조이한 입장에서 보면, 조기정과 조이덕이 모두 죽어야만 가문을 계승할 수 있었다. 그 후에 성주와 다른 귀족들까지 죽어 권력에 공석이 생기면, 퍼스트 시티의 지지를 기반으로 위드 시티를 통치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조기정도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그로부터 수십 초가 지났을 무렵, 조기정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한이가 최면에 걸린 것일 수도 있지.”

이건 그가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이덕도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죠.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

“장우병 팀에게 임무를 내려서 반 지성교가 확실한지 확인하게 해야지. 그들에게 전해라. 보수는 아끼지 않겠다고. 설령 하나, 아니 장원 두 곳을 내놔도 상관없다.”

조기정은 이제 반 지성교가 내부에 숨은 치명적인 화근이라 확신했다. 둘째 아들이 계속 반 지성교와 어울린다면, 조씨 가문은 영원히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이들이 죽거나 반 지성교에 입문한 후에나 끝이 날 터였다.

반 지성교가 이미 위드 시티 시골 귀족들에 대해 관심을 끊고 모든 힘을 퍼스트 시티에 쏟고 있다 한들, 조이한이 그들에게 가담한 상황에선 조씨 가문 전체가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조기정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곧장 성주에게 알려라. 성주와 퍼스트 시티의 관계로 그 힘을 이용할 수 있을 거다. 내 생각에는 반 지성교에 대한 성주의 원한도 결국 그들을 쓸어버려야만 해소될 것 같아.”

깊은 고민 끝에 조기정은 조씨 가문의 힘과 퍼스트 시티와의 관계만으론, 반 지성교라는 거대 조직에 대적하지 못할 거란 결론을 내렸다. 장우병 팀이 있다고 해도 역부족일 것이다. 최대한 퍼스트 시티 내에 그 조직을 혐오하는 모든 세력을 다 끌어모아야만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조이덕이 얼른 답했다. 동생이 정말 반 지성교와 결탁한 상황이라면, 그들의 첫 번째 목표는 조이덕 자신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 * *

“하, 조씨 가문 좀 봐. 아주 시원시원하네.”

전보를 해석한 장목화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장원 두 곳을 손에 넣는다면 2, 3천 오레이만 더 모아도 군용 외골격 장치와 기계 팔을 교환할 수 있었다.

구조팀이 문제없고 공평하다고 생각한다면, 리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을 터였다. 교활한 상인 리만이 당시 더러운 수작을 부렸는데도, 구조팀은 그에게 라르스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전해준 은덕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지금 당장 남쪽 교외로 가나요?”

백새벽이 물었다.

행동파 성건우는 벌써 문으로 향했고, 게네바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장목화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급할 거 없으니 오후에나 가자. 오전엔 골든애플 구역이나 한 바퀴 돌면서 주요 목표의 주위 상황을 관찰하는 거야. 그러다 숨어있는 보호자를 발견하면 앞으로 계획을 세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차는 어떻게 가져갈까요?”

용여홍이 물었다.

“한 대면 충분해. 두 대는 너무 튀고. 잊지 마,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면 안 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하면 남들 시선을 받게 될 거야.”

장목화는 대답하며 무선 통신기를 숨겼다.

* * *

그렇게 휴고 여관을 나온 구조팀은 원래 타고 다니던 국방색 지프에 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골든애플 구역으로, 퍼스트 시티 귀족들의 주거 구역이라 지나치게 낡은 차는 눈에 더 띄기 때문이었다.

개조 여부야 그 구역에선 문제도 아니었다. 귀족들 차량에는 원래 있던 방탄 시스템에 별도의 장치까지 장착돼 있었다.

차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용여홍은 창밖 풍경과 행인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한 여자가 튀어나왔다.

등이 굽었으며, 탁한 눈은 잔뜩 충혈된 여자였다.

“다섯 번째⋯⋯.”

용여홍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벌써 이 거리에서만 무심병 환자가 다섯 명이나 나왔다.

남회색 제복 차림의 치안관들이 그녀를 쫓는 사이, 장목화는 차 속도를 늦추며 미간을 구겼다.

“왜 이렇게 무심병 발병 빈도가 높지?”

무심병의 폭발적인 발병 이후 한동안 그 주위 구역에서 무심자가 나타나는 건 정상적인 현상이었다. 무심병 환자들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퍼스트 시티 내의 발병 빈도는 놀라울 정도로 높은 편이었다. 물론 장목화도 통계로 보면 이 빈도도 합리적인 범위란 건 알고 있긴 했다. 그런데 왠지 지금 상황이 좀 더 다르고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전 이것보다 더 높은 빈도로 무심자가 생기던 것도 경험했거든요. 그것도 퍼스트 시티에서 있었던 일이었어요.”

백새벽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것도 퍼스트 시티에서 있던 일이었다고? 여기 뭔가 터가 안 좋나? 이번 병례 자료를 수집해봐야겠어. 뭔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장목화가 앞 유리 너머 전방을 응시하며 말했다. 무심병 발병 원인을 조사하는 것 역시 구조팀의 주요 역할이었다. 그건 구세계 파괴 원인과도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성건우가 매우 의욕적인 모습으로 호응했다.

* * *

골든애플 구역 거리는 넓었다. 거리 양옆으로 자리한 집들도 지나치게 높지 않고 간격이 충분했다. 게네바가 살던 타르난의 그곳과 비슷했다.

사방에 전봇대, 가로등, 조각상, 가로수들이 흩어져 있는 이곳은 참 조화롭고 평화로웠다. 용여홍은 이 광경을 직접 보지 못했다면 이곳과 그린올리브 구역이 한 도시에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을 것 같았다.

전에 방문한 레드울프 구역은 구세계에서 살아남은 고층 빌딩이 몇 채 있다는 걸 제외하면 그린올리브 구역보다 조금 더 깔끔할 뿐이었다.

장목화는 운전 중인 백새벽을 봤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성건우는 한참 생각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평소 그녀는 성건우가 헛소리하는 쪽을 더 반겼다. 성건우가 조용하다는 건 곧 어마어마한 한 방을 날릴 거라는 예고나 다름이 없었다.

성건우가 고민에 잠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떤 노래가 지금 제 마음을 대변하고 이 분위기에 잘 어울릴지요.”

“지금 네 마음이 어떤데? 내가 선별하는 걸 도와줄게.”

게네바가 친절하게 제안했다.

성건우는 이미 모든 음악과 콘텐츠를 그에게 복사해뒀다. 게네바의 저장 공간은 충분했으며, 부족하면 여러 슬롯에 메모리 칩을 꽂아 용량을 더 늘려도 됐다.

성건우가 막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려는데, 운전하던 백새벽이 말했다.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어.”

현재 지프는 라운드힐 스트리트를 달리고 있었다. 거리에 이런 이름이 붙은 건 말 그대로 작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해 있기 때문이었다.

구조팀의 이번 목표는 오레이의 손녀 아비아였다.

차가 안정적으로 전진하는 와중, 구조팀은 라운드힐 스트리트 14호 건물을 바라보았다. 아주 고풍스러운 건물이었다. 돔형 지붕을 떠받치는 돌기둥들은 같은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뻗은 푸른 덩굴 식물에 휘감겨 더더욱 자연스럽고 멋스러웠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레드스톤 마켓이나 타르난의 독채와는 사뭇 달랐다. 그보단 레드리버 유역의 고전적인 느낌이 더 짙은 곳이었다.

반면에 대문은 4층 건물의 입구라기엔 상당히 과장된 듯 보였다. 아래쪽 절반만 열어도 2미터가 넘는 거구도 무리 없이 드나들 높이였다.

아마도 어지간히 힘 있는 손님을 초대하지 않은 이상, 성대한 파티를 여는 게 아닌 이상, 저 갈색 대문은 항상 아래 절반만 열려 있을 것 같았다.

“계속 쳐다보지 마.”

장목화가 시선을 거두며 팀원들에게 주의를 줬다. 그녀는 이곳을 매우 위험한 곳으로 여기고 있었다. 차라리 아비아를 놓칠지언정, 위험을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

팀장의 지시를 따라, 성건우, 용여홍, 게네바도 속속들이 눈길을 거뒀다.

그 사이 용여홍은 곁눈으로 한 여자를 확인했다.

나이는 스물일고여덟 살 정도 되어 보이고, 키는 용여홍 자신과 엇비슷했다. 흰색 드레스 차림을 한 여인의 금색 머리칼은 구불거리고 있었으며, 눈동자 색은 옅은 파란색이었다. 전체적으로 짙은 얼굴선에서는 고전미가 물씬 풍겼다. 약간 코가 큰 편이라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차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여자였다.

흠칫 놀란 용여홍은 앞 좌석으로 얼른 시선을 돌리고서야 불현듯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렸다. 구조팀의 2대 목표 중 하나인 그 인물이 확실했다.

“팀장님, 아비아 우비스! 아비아예요!”

용여홍이 다급히 외쳤다. 스치듯 본 것이라 정확히 확인은 안 되지만, 아비아 곁엔 적잖은 수의 사람이 함께 있었다.

장목화는 곧장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다시 보지는 마.”

그녀 역시 룸미러를 힐긋 바라보기만 할 뿐 아비아를 돌아보진 않았다.

아비아가 출현했다는 건 비밀 보호자 역시 근처에 있으리란 뜻이었다. 구조팀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행동한다면 곧장 간파당할 테고, 그럼 상황은 더더욱 골치 아프게 변할 수 있었다.

그때 성건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팀장님, 근데 작은 빨강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남자잖아요. 그렇게 예쁜 사람이 지나간다는 데, 안 돌아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장목화도 자신이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과민반응을 보인 걸 깨달았다.

“하긴. 나도 예쁜 사람을 보면 몇 번이고 뒤돌아보는데.”

그녀는 다시 대담하게 몸을 돌려 아비아 일행을 바라보았다. 용여홍도 곧장 고개를 돌렸지만, 성건우와 백새벽은 그냥 앞만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앉아있는 자리는 아비아의 정 반대편이기 때문이었다.

성건우도 마음 같아선 용여홍과 게네바의 앞쪽으로 몸을 쭉 뻗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서라도 아비아를 보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충동을 억눌렀다.

우연히 마주친 미인을 힐끔거리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나, 우연히 마주친 미인을 보겠답시고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건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물론 구조팀 식구끼리는 성건우가 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인 걸 잘 알지만, 아비아를 몰래 보호하고 있는 강자들은 달랐다. 성건우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구조팀을 주목하기 시작한다면 참 곤란해질 터였다.

‘경호원들이 꽤 많아,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도 알 수가 없고.’

용여홍은 그냥 적당히 시선을 거뒀고, 장목화도 마찬가지로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저 사람들, 전부 문제가 있어.”

장목화가 침착한 표정으로 팀원 모두에게 주의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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