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이상한 소리
“그것도 기억을 직접 곡해한 결과겠지?”
장목화가 왼손으로 오른 팔꿈치를 받치고 오른손은 입과 코 사이에 댔다.
“최면과 기억 곡해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한 적은 없어서 확신은 못 해요.”
‘지금은 또 진지 모드인가 보네.’
장목화는 자리에 앉아 본격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만약 조씨 가문 내부의 누군가가 정말로 반 지성교랑 함께 허양원을 죽이려 했다면, 장원에서의 사건은 진짜 신부가 저질렀을 가능성이 커. 근데 그렇게 신중한 사람이 직접 장원에 들어가진 않았겠지. 부근에 조용히 숨어서 모든 걸 주시하고 있었을 거야.”
성건우도 장목화와 같은 동작을 취했다.
“그럼 조수인을 비롯한 그들 기억이 왜곡된 건 어떻게 설명하죠?”
장목화는 조금 더 상세하게 몰입했다.
“장원을 처음으로 통제했을 땐 진짜 신부라도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 후에야 가짜 신부 같은 꼭두각시를 남겨뒀을 거고. 장원에 들어가 조사했던 쪽은 기억 곡해가 아닌 최면을 당한 거야. 하지만 밖에 숨어 관찰만 했던 사람들은 발각이 안 됐으니 영향도 안 받은 거지.
근데 반 지성교는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 조씨 가문 장원을 거점 삼아 그 중간에서 이익을 갈취하려 했다면 이렇게 했으면 안 됐어. 이익 갈취에서 제일 중요한 게 조씨 가문 가주의 의심을 사지 않는 거잖아. 의심을 사면 조사가 이어질 거고, 그런 상황에서는 숨어있기도 불편해지니까.
나라면 합리적인 비용인 척 일부 이익만 취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상납했을 거야. 조금씩, 야금야금 이익을 갈취하는 거지. 단번에 모든 돈을 다 차지해버리면 누가 의심을 안 하겠어?
만약에 그냥 횡령을 통해 교파를 불리고 싶은 거였다고 해도 이런 건 현명한 방식이 아니야. 나라면 관련자들 기억을 모조리 곡해하고 조씨 가문의 장원들을 팔아버렸을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시켜 그 돈으로 당당하게 다른 장원을 사들이는 거지.”
성건우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알아서 문제점도 발견하고, 계속해서 생각을 좇던 장목화도 드디어 멈칫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뱉은 계획은 너무도 야심 찼으며, 성건우도 장목화만 빤히 쳐다보고 있어서였다.
장목화는 얼른 팀장으로서 상황을 수습하고 체면을 차리기 시작했다.
“음, 그냥 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 거야. 정말로 그러겠다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난 평소엔 전혀 이런 쪽으론 생각도 안 하는데, 지금은 상황을 해결해야 하니까 상대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고심을 하는 거라고.”
그 말에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입 모양을 보세요.”
뒤이어 그가 소리 없이 입만 몇 번 움직였다.
“야, 내가 독순술을 어떻게 해?”
장목화가 성건우를 흘겨보면서도 또 그를 따라 입술을 움직여보았다.
“반 지성교? 지금 반 지성교라고 한 거야?”
그냥 떠보듯 던진 말에, 성건우가 대견스럽단 얼굴로 손뼉을 쳤다.
“정답!”
“반 지성교라면 아무리 멍청한 짓이라도 할 수 있다? 근데 반 지성교 교리에 따르면 고위층은 반드시 지능을 유지하고 신도들을 대신해 사고해야 해. 그러니까 틀림없이 꽤 똑똑할 거야. 그래, 신부도 있잖아.”
장목화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성건우가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멍청함은 전염되죠.”
“증명해봐.”
장목화가 무의식적으로 반박했다.
성건우는 곧장 입을 열었다.
“보세요⋯⋯.”
“잠깐!”
바로 그를 저지한 장목화가 이마를 긁적이며 추측에 들어갔다.
“난 반 지성교가 조씨 가문 장원을 거점 삼아 어떤 일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해. 단기적인 작전일 거야. 그러니까 자기들 움직임이 들통날 거란 건 고려도 하지 않고, 눈앞의 성공이랑 이익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인 거야.”
“거기서 전단지를 인쇄하고 있는 걸까요?”
성건우의 눈이 반짝였다. 그 오탈자 가득한 반 지성교의 전단지에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장목화는 곧 침대 가장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럴 수도.”
성건우가 바로 뒤따르는 걸 보고, 장목화가 문고리를 쥔 채 뒤돌아 웃었다.
“어디로 가는지 안 물어봐?”
성건우는 바로 정색했다.
“전 여홍이가 아니에요.”
다시 장목화가 웃었다.
“그럼 내가 지금 어디로 가서 뭘 할까?”
성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웃돈 얹어달라고 하기!”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던 장목화가 놀란 듯 웃었다.
“반 지성교랑 관련된 사건이면 조 의원한테 우리가 더 많은 보상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 알리면서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지. 동시에 그가 퍼스트 시티의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지도 확인해야 하고. 반 지성교에 깊은 앙심을 품은 실권자면 좋을 텐데.”
최후의 평가 결과 위험도가 지나치게 높다면 그녀는 곧장 이 임무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반 지성교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대형 세력이었다. 구조팀이 맡은 주요 임무와 관련이 없는데도 괜스레 멍청한 미친놈 집단을 건드리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다.
“용광로 교파랑 반 지성교가 관련돼 있는지 모르겠네요.”
성건우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바로 란스터를 찾진 않을 거야. 조 의원한테 전보부터 보내야지.”
장목화는 곧장 문고리를 돌렸다.
* * *
아래층으로 내려온 두 사람은 란스터에게 작별을 고한 뒤 지프에 탔다.
장목화는 옆쪽에 있는 하비스트 목욕탕을 한번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증막에 들어가 있다가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까 진짜 좋더라.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아. 나중에 우리 식구 다 데려가야지.”
순간 성건우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뭔가 고민에 빠진 듯했다. 장목화가 그 연유를 묻기 전, 그가 또 알아서 입을 열었다.
“게네바도 한증막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데⋯⋯.”
장목화도 로봇에 대해 크게 아는 바가 없었다.
* * *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지프는 도시 주요 도로에 진입했다. 지프는 퍼스트 시티 서북쪽 그린올리브 구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골든그레인 구역의 남쪽 끝에 자리한 성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좀 이른 시간이니까 조씨 가문 장원 주위 환경을 관찰할 수 있을 거야. 조사는 하지 말자. 그냥 지형만 익혀두자고.”
장목화가 말했다.
다행히 지프는 위드 시티에서 그 난리를 겪고 새롭게 개조되어 있었다. 그러니 반 지성교 사람이 알아볼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내 성건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빨강이가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왜, 여홍이가 있었으면 간단하게 지형을 익히는 것도 직접적인 충돌로 발전했을 거라고? 하여간, 건우야. 너는 친구를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다. 그래도 지난 며칠은 아무 문제도 없이 무사했잖아.’
장목화는 속으로만 열심히 대꾸하고 말았다.
* * *
오후 3시 정각에서 시곗바늘이 조금 더 움직였을 무렵, 지프가 휴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주차는 어제 그 자리였다.
장목화는 처음 보는 회색 SUV가 주차된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
“우리 작은 흰둥이도 돌아왔나 보네.”
SUV를 자세히 살피던 성건우는 아쉬움인지 안도인지 모를 한숨을 보였다.
“총알구멍은 없네.”
장목화는 언제나처럼 성건우를 깔끔히 무시하고 여관으로 향했다.
홀 안 프런트엔 아무도 없었다. 뒤쪽에 자리한 방의 나무 문도 꽉 닫힌 상태였다.
장목화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데, 성건우는 벌써 거기로 달려가고 있었다. 프런트에서 여관 사장 노릇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 하고 살짝 한숨을 쉰 장목화는 큰 소리를 내는 건 꿈도 꾸지 못하고 재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성건우가 제멋대로 굴기 전에 얼른 저지해야만 했다.
성건우를 따라 프런트 쪽으로 다가간 장목화가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헉……, 헉…….”
굳게 닫힌 나무 문 안쪽에서 웬 소리가 들려왔다. 슬픔에 젖은 야수가 내뱉는 것 같은, 낮은 포효 소리 같았다.
일순간 표정이 확 굳은 장목화가 안의 동정을 경청하고자 그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방 안에서 대형 생물의 전기 신호가 느껴졌다.
그 이후로 이상한 소리는 두 번 더 울렸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문 안쪽이 고요해지자, 장목화는 쿵쾅대는 심장을 안고 성건우에게 눈짓을 했다.
장목화도, 성건우도 재빨리 프런트에서 벗어나 홀로 돌아갔다. 뒤이어 계단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프런트 안쪽에 있는 나무 문이 열렸다.
나무 문 안에선 여관 사장 휴고가 나왔다. 땀을 흘렸는지 금색 머리칼과 린넨 셔츠가 축축하게 젖었고, 주름지고 그을린 얼굴은 약간 창백해져 있었다.
잠시 장목화와 성건우를 바라보던 휴고가 느릿한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 있나?”
성건우가 바로 답했다.
“프런트에 아무도 없으면 안 되죠. 도둑맞으면 어쩌려고요.”
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 난 이 구역에 있는 도둑이라면 다 알고 있으니.”
“저희가 걱정이 과했나 보네요.”
장목화는 웃으며 성건우를 끌고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온 후에야 고개를 튼 장목화가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방금 저 방이 뭔가 이상해서 가 봤던 거야?”
성건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그냥 휴고 대신 프런트를 잠시 맡아주려고요.”
“…….”
장목화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 * *
202호로 돌아간 장목화와 성건우는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를 기다렸다.
드디어 다시 모인 구조팀은 오늘 있었던 일을 다 함께 공유했다.
장목화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당분간 생활비는 걱정할 필요 없겠네. 음, 내일은 개인용 바주카포를 100오레이로 바꾸자. 퍼스트 시티에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화력을 갖춰두고 있어야 하니까.”
100오레이는 신차를 사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SUV 담보론 손색이 없었다. SUV는 생산된 지 70년이 넘은 데다 대대적인 수리를 거친 차였다.
렌트카에 대한 얘기가 마무리될 무렵, 용여홍이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정말 반 지성교랑 관련된 사건을 맡아야 하나?”
“우리가 안 맡으면 위드 시티에서처럼 급작스러운 사건에 휘말릴 거야.”
답한 건 백새벽이었다. 장목화는 이에 약간 놀랐지만 용여홍에게 뭐라고 하진 않았다.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반 지성교는 늘 나쁜 짓을 벌이길 좋아했다. 그것도 수많은 이들이 연루된 나쁜 짓이었다.
결국 최종적으로 이 임무를 맡을지는 위험도에 따라 결정할 생각이었다. 위험할 것 같다면 퍼스트 시티 관련 부서에 신고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이윽고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모두한텐 사이비 종교와 맞설 책임이 있지!”
그 말에 게네바가 손뼉을 쳤다.
성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에 짧은 감사를 표했다.
몇 초 후, 장목화가 정색하고 백새벽을 쳐다보았다.
“혹시 이 여관 주인에 대해 더 아는 거 있어?”
백새벽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 머물 때 사장은 손님한테 무엇도 묻지 않아요. 손님도 그렇고요.”
장목화는 고개를 틀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
“나랑 건우가 돌아왔을 때, 프런트엔 아무도 없었어⋯⋯.”
그리고 그녀는 사장의 방에서 야수가 낼법한 낮은 포효를 들었던 때를 있는 그대로 전달했다.
“내가 감지하기론 그 방에 대형 생물의 전기 신호 하나가 잡히더라고.”
“인간의 의식도 하나 잡혔죠.”
성건우가 덧붙였다.
“슬픈 울음소리, 낮은 포효, 창백한 안색, 땀⋯⋯. 어떤 병에 걸린 걸까요? 아니면 모종의 아류인인가? 기이한 종교를 믿는 것일 수도 있겠죠? 퍼스트 시티에는 크고 작은 종교가 꽤 많거든요.”
장목화가 했던 표현을 되뇌던 백새벽이 여러 추측을 꺼내놓았다.
장목화는 잠시 기억을 반추해보다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됐어, 여관 사장 이야기는 그만두자. 우리랑은 별 관련 없는 일이니까. 좀 쉬어, 이제. 저녁에 회사 정보원을 만나러 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