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34화 (334/649)

334화. 정보의 가치

퍼스트 시티의 사냥꾼 길드는 레드울프 구역 서북쪽, 상당한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에 자리해 있었다.

5층짜리 빌딩을 통째 차지한 사냥꾼 길드는 위드 시티의 사냥꾼 길드 홀보다 몇 배는 더 컸지만, 전자화 정도는 그곳만 못했다.

알아서 각종 임무를 확인하고 접수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가 스무 대 정도 설치돼 있긴 한데, 나머지는 전부 대형 화면과 창구들에 의지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이곳 사냥꾼 길드엔 직원이 상당히 많았다. 직원들은 글을 모르는 유적 사냥꾼에게 구두로 임무를 설명해주기도 해서, 홀 안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시끌벅적하고 정신이 없었다.

곧이어 백새벽이 한 안내원에게 길드에 정보를 팔러 왔다고 밝히자, 안내원이 2층으로 안내했다.

홀을 가로질러 2층으로 오르는 동안, 예상대로 게네바에게 많은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이 퍼스트 시티에선 로봇이 포함된 유적 사냥꾼 팀을 흔하게 볼 수 있어, 게네바를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2층, 205호.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 앞에 검은 가운 차림에 콧대가 상당히 높은 백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의 나이는 대략 쉰 살 정도로 보였다.

남자는 옅은 파란색 눈동자로 맞은편 두 사람을 빤히 보며 물었다.

“길드에 팔려는 정보가 뭐죠?”

백새벽이 무슨 답을 하기도 전,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앉은 게네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예의 바른 로봇은 흔치 않은데.”

로봇 대부분은 주인의 분부에 복종하는 걸 최우선 순위로 여겼다.

용여홍은 이 난감한 상황에 속으로 한숨을 쉬며 얼른 고개를 틀었다.

“누가 상황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 이름부터 물어보래?”

게네바가 눈에 붉은빛을 번득이며 답했다.

“‘야’가 그랬어. 사람을 대할 때는 예의 바르게 굴어야 한다고.”

야는 성건우의 별명이었다. 용여홍도 제 친구가 알려줬으리라 예상하긴 했었다. 그래서 그는 일말의 놀란 기색도 보이지 않았지만, 굳이 이렇게 반응한 건 게네바를 주인에게 잘못 교육받은 로봇으로 보이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게네바가 머신 헤븐에서 온 지능인이란 건 극비사항이었다.

대신, 용여홍은 제 친구를 욕할 수 있는 이 귀한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걔 말은 내킬 때 가끔만 들어. 일반 사람이랑 아예 다른 사람이니까.”

그때, 남자가 맞은편에서 손을 들어 올렸다.

“예의 차리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요. 전 프리드리히라고 합니다.”

백새벽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드리히 선생님, 저희는 북쪽 산기슭에서 출몰했다는 그 흰색 늑대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가 퍽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그렇습니까? 북쪽 산기슭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아뇨. 전에 그 늑대랑 비슷한 적을 만난 적 있거든요. 그래서 그 둘이 어느 정도 연관돼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백새벽이 주머니에서 반듯하게 접은 종이를 한 장 꺼냈다.

프리드리히는 몇 초간 잠시 오른손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럼 여러분도 이 정보가 반드시 쓸모 있으리란 확신은 없다는 거죠?”

“예. 하지만 마찬가지로, 길드 역시 이 정보가 반드시 쓸모없으리라는 확신은 못 하겠네요.”

백새벽의 답변에, 용여홍은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말을 어렵게 빙빙 돌리는 거 봐. 진짜 예술인데? 그건 그렇고 작은 흰둥이는 나보다 레드리버어를 훨씬 더 잘하네.’

그녀의 별명은 이렇게 늘 속으로만 불렀다. 용여홍은 아직도 백새벽의 별명을 감히 입 밖으로 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장목화의 별명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용여홍이 구조팀에서 자신 있게 막 부를 수 있는 건 ‘야’뿐이었다. ‘야’도 별명이라고 쳐줘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건우와는 어릴 때부터 제일 친했던 친구인 만큼 서로를 까는 게 더 익숙했다. 무슨 호칭을 칭하든 상대의 반격을 감당할 각오만 돼 있다면, 애초에 뭐라고 부르든 별로 신경 쓸 문제도 아니었다.

또 마지막으로 겐 같은 경우는 게네바를 놀리는 것도, 조롱하는 것도 아닌 그저 이름을 축약한 별명이기에, 거리낌 없이 부를 수 있었다.

이윽고 프리드리히가 오른손을 거두며 웃었다.

“도박하는 듯한 느낌이네요.”

“하지만 선을 잡은 건 길드죠.”

백새벽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유적 사냥꾼은 길드에 정보를 팔 때 반드시 그 결과를 고려해야 했다. 사냥꾼과 길드의 거래는 달성됐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었다.

길드는 구입한 정보를 확인했을 때 사기라고 느껴진다면, 가볍게는 그를 쫓아가 보상을 요구하고, 신용 점수를 깎고, 상응하는 기록을 남기고, 심하게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려 상대를 체포하는 임무를 의뢰하기도 했다.

그런 길드와 비교하자면 개인의 힘은 한없이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모두가 유적 사냥꾼으로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데, 누가 감히 대형 길드를 상대로 수작을 부리려 할까.

물론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엉덩이에 불붙은 듯 급한 상황에 블랙 사냥꾼이 되길 각오하고 길드를 상대로 한탕 해 먹는 이들도 있기는 했다.

블랙 사냥꾼이란 길드에서 임무를 받지 않고 최초의 사냥꾼처럼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프리드리히가 웃었다.

“아주 냉정하시군요. 말씀해보세요, 얼마를 원합니까?”

“400오레이요.”

백새벽이 가격을 제시했다.

400오레이면 그린올리브에서 3인 가족이 1년은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정말 절약한다면 2년까지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또 군용 외골격 장치와 기계 팔을 구매하기엔 한참 모자란 금액이기도 했다. 그런 장비는 본래 잘 나오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구조팀이 이 정보를 팔려는 건 일단 홀쭉해진 지갑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차으뜸에 관련한 모든 정보를 내놓을 순 없었다. 또 애초에 구조팀은 제8 연구원 특파원인 그자의 능력을 많이 알지도 못했다.

프리드리히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만한 값을 하는 정보이기를 바랍니다.”

그는 곧장 테이블 위의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더니, 구조팀 세 명이 절차를 거쳐 400오레이를 받아 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백새벽은 그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접어둔 종이를 건넸다.

프리드리히는 종이를 받아 펼친 뒤, 옆에 놓여 있던 돋보기안경을 썼다.

「⋯⋯일전에 차으뜸이라는 자를 만난 적이 있음.

길드는 현상금 밀가루 1톤을 내걸고, 그의 정보를 찾고 있었음.

차으뜸에겐 상대를 매혹하는 능력이 있음. 타인은 저도 모르게 그를 좋아하게 돼, 그의 명령에 복종하게 됨.

그러나 이는 차으뜸의 각성자 능력이 아닌, 지불한 대가로 의심됨.

현재까지 파악된 차으뜸의 능력은,

1. 목표의 취미 강제 변화

2. 우울감 느끼게 하기

나머지는 알 수 없음.

북쪽 산기슭에 나타난 흰 늑대가 어떤 변이로 인해 남을 매혹하는 게 아니라면, 다른 능력이 더 있는지도 고려해봐야 함⋯⋯.」

순간 고개를 번쩍 쳐든 프리드리히가 백새벽과 용여홍을 쳐다보았다.

“차으뜸을 만난 적이 있다고요? 그에게 벗어나 여태껏 살아남았다고요?”

그를 놀라게 한 것은 후자인 듯했다.

백새벽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옆에 있는 게네바를 가리켰다.

“이 친구가 있잖아요.”

“친구라고요?”

프리드리히가 되묻자 백새벽이 침착하게 설명했다.

“전 황야유랑자로 일찍이 부모님을 잃고 성인이 될 때까지 지능 로봇에 의지해 살아왔답니다.”

“그렇군요⋯⋯.”

프리드리히는 그제야 안타깝게 가라앉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용여홍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백새벽은 장목화만큼이나 뛰어난 연기력의 소유자였다.

‘차으뜸을 만날 때 로봇이 어딨었어? 그리고, 네가 다 클 때까지 보살펴준 게 게네바라고? 새벽아……. 너 언제부터 이랬니? 팀장님한테 물든 거야?’

그때, 프리드리히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이런 매혹 능력이 로봇에겐 효력을 미치지 못하는가 보군요. 그것도 아주 중요한 정보입니다. 좋습니다. 이만하면 400오레이는 충분하죠.”

장목화가 정한 가격인 400오레이는 전의 현상금을 고려한 결과였다.

퍼스트 시티에서 보통 품질의 밀가루 1킬로그램은 대략 4~6드라세 정도로, 오레이로 환전하면 0.5오레이였다.

물론 이는 아무 사고 없이 무사할 때의 가격이었다.

퍼스트 시티와 위드 시티 같은 곳도 밀가루 1킬로그램이면 어떤 상황에선 한 사람 목숨을 좌지우지했다. 애쉬랜드의 다른 거점들과 다르지 않았다.

구조팀이 요구한 400오레이는 보통 품질의 밀가루 800킬로그램 값이었고, 가치는 전에 걸린 현상금과 거의 비슷했다.

백새벽은 곧 지폐 400오레이를 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돌연 50오레이를 세어 프리드리히에게 도로 내밀었다.

“한 가지 임무를 의뢰하고 싶습니다.”

프리드리히는 차분히 바닥을 가리켰다.

“임무 의뢰는 아래층에서 담당합니다.”

그러나 백새벽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한 친구를 찾고 있어요. 아주 예민한 유적 사냥꾼이에요. 누군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의뢰를 발견하면 곧장 숨어버릴 겁니다. 그러니 길드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어요. 현지 인맥이 충분한 유적 사냥꾼에게만 이 의뢰를 몰래 전달해주세요. 상세한 정보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어디서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보통 어느 구역에 나타나는지, 그것만 알아내면 돼요.”

사냥꾼 길드 부회장은 이런 비공개 의뢰 접수 역할도 맡고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곧 백새벽이 건넨 지폐 다발을 들고 살짝 흔들었다.

“겨우 이 정도의 보수로는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겨우 50오레이를 받자고 모든 인맥을 동원하려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상관없습니다.”

백새벽은 답을 하며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장목화가 그린 한명호의 초상이었다. 그림 속 인물은 살아 숨 쉬는 듯 생생했다. 동시에 장목화는 그 옆에 한명호의 눈동자 색과 그의 이름을 비롯한 내용도 적어뒀었다.

의뢰를 맡긴 백새벽은 용여홍과 게네바를 데리고 1층 홀로 돌아갔다.

홀에선 최근 어떤 임무가 떴는지 대충 살폈지만, 어떤 임무를 접수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퍼스트 시티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려는 것일 뿐이었다.

이내 밖으로 나온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가 이제 다른 곳을 돌아보려는데, 마침 그들 앞쪽으로 일련의 차량 행렬이 지나갔다.

행렬은 전부 짙고 검은 승용차로 이뤄져 있었다. 유리에도 특수한 처리를 한 건지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거대한 차량 행렬에 압도당한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았다. 동시에 고개를 틀어, 앞을 멍하니 응시하는 백새벽을 쳐다보았다.

긴 차량 행렬이 길 끝으로 사라졌을 무렵, 용여홍이 겨우 말을 붙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백새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하비스트 목욕탕, 어느 방 안.

성건우의 설명을 듣고, 장목화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이 반 지성교랑 관련된 것 같다고? 당시 허양원을 암살하려던 게 조 씨 가문 짓이었단 말이야? 말도 안 돼. 조기정과 조이덕은 귀족 의사당에 있었어. 같이 터져 죽을 수도 있는데? 조 씨 가문에 무슨 갈등이 있는 걸까?”

성건우는 장목화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조수인의 기억 속엔 장원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 몇 명 더 있었어요. 척 봐도 다른 곳에서 입양한 것 같았죠. 아무래도 맞지 않는 세부 사항이 많았어요. 거기다 그들은 수시로 장원 안팎을 드나들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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