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모험은 절대 금물이다
그런데 그때, 앞에서 안내하던 지아디가 조금씩 굴러가는 지프 옆으로 다가와 차창을 내린 장목화 곁에 섰다.
“근데 운전자는 좀 바꾸는 게 좋겠어. 넌 너무 예뻐서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기 쉬워. 레드리버인이었다면 경비들이라도 감히 어쩌진 못할 텐데. 귀족이나 관원의 딸일 수도 있으니까. 근데 너희는 전부 애쉬랜드인이잖아.”
“하.”
장목화는 기쁨이 담긴 건지, 분노가 담긴 건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서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전체를 볼 줄 아는 팀장은 상대의 충고를 받아들여 뒷좌석의 용여홍을 돌아보았다.
“작은 빨강이, 네가 운전해줘. 작은 흰둥이는 선글라스 꼭 끼고.”
그렇게 장목화도 선글라스를 끼고 차를 세운 뒤, 용여홍과 교대하려 차에서 내렸다가 순간 뭔가를 보고 멈칫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성건우가 선글라스를 주섬주섬 끼고 있었다.
“넌 왜 껴?”
성건우는 언제나처럼 진지하게 답했다.
“그 사람들이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잖아요. 늘 조심해야죠.”
장목화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냥 스스로를 탓했다. 성건우에게 구세계 콘텐츠를 허락한 자신의 잘못이지, 달리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때 게네바가 입을 열었다.
“나도 껴야 하나? 누가 그러던데, 로봇을 탐내는 사람도 많다고.”
장목화는 웃음을 참는듯한 백새벽을 힐끗 보다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선글라스를 써봤자 네 그 엄청난 자태가 가려지겠어?”
이윽고 장목화에게 밀려 뒷좌석 가운데 자리에 앉게 된 성건우가 말했다.
“망토를 두르면 되지!”
게네바는 그의 말은 깔끔히 무시했다.
구조팀에 망토 같은 건 없었다. 있는 거라곤 포대 자루뿐이었다.
포대 자루를 두르면 오히려 나 좀 봐달라고 울부짖는 꼴 아니겠는가.
* * *
잠시 후, 구조팀 지프가 드디어 관문 앞에 섰다.
모두의 눈앞에 장갑차로 이뤄진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지아디는 능숙하게 그 바리케이드 사이에 난 틈으로 가, 다리를 지키던 병사 하나와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지아디의 손이 눈보다 더 빠르게 병사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20오레이는 결국 병사의 주머니에 안착했다.
곧이어 다리를 지키는 병사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운전자인 용여홍에게 차창을 내리고 트렁크를 열라고 지시했다.
차량 내부를 한번 대충 살핀 그들은 트렁크에 실린 물건도 슬쩍 뒤지기만 하더니, 군용 외골격 장치가 든 나무 상자 하나 열지 않고 검사를 마쳤다. 몹시 눈에 띄는 개인용 바주카포에 대해서도 약속이나 한 듯 못 본 척했다.
그 말 같지도 않은 검사 끝에 수거된 건 군용 통조림 몇 개뿐이었다.
“이만 가봐.”
다리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만족한 듯 길을 내주었다.
지프는 천천히 레드리버 대교에 진입했다. 그러자 성건우가 강력한 코어 힘을 이용해 장목화 앞쪽으로 몸을 쑥 내밀더니, 창밖으로 고개를 빼고 지아디에게 손을 흔들었다.
자신을 용서해 준 듯한 형제를 보고, 지아디는 감동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너무 과한 거 아냐?”
장목화가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물론 이런 행동이 추리 광대 능력의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만 성건우가 과연 그런 목적으로 행동하는 건지, 역할에 몰입한 나머지 정말로 지아디 일당을 형제로 여기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 * *
일행이 탄 지프는 두 번째 관문까지 무사히 통과해 다리를 빠져나갔다.
이제 퍼스트 시티의 모습이 점차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고층 빌딩 대신 저층 빌딩이 떼를 지어 있고 그 스타일이 각기 다르다는 것뿐, 이곳은 구세계의 대형 도시와 매우 비슷했다.
그리고 지금 구조팀의 눈앞에 보이는 거리는 상당히 넓었지만, 특정 구역 건물들이 심각하게 침범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비좁게 느껴졌다.
“서쪽으로 자리한 게 그린올리브 구역이에요. 거기 거주하는 사람들은 전부 하층민들이고요.”
백새벽이 간단히 설명하며 용여홍과 자리를 바꿨다. 유일하게 퍼스트 시티에 와 본 경험자로서 여러모로 그녀가 운전대를 잡는 편이 나았다.
게네바는 이를 굉장히 아쉬워했다. 일찍이 머신 헤븐이 비밀리에 제작한 퍼스트 시티 지도를 다운로드해두긴 했으나, 타르난을 지키는 데엔 아무 소용도 없을 것 같아 그에 관해 학술적인 연구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그는 머신 헤븐 내부 인터넷과 연결도 끊어둔 상태였다.
지프가 도심에 진입하자 거리 양옆으로 남루한 행색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수도 적지 않았다.
대부분 레드리버인 아니면 레드코스트인인데, 몇몇은 ‘가이드’등의 종이 팻말을 들고 있었고, 또 더러는 앳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뻣뻣한 표정과 더러운 차림으로 끊임없이 주변을 오가는 차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백새벽은 이 구역을 그대로 가로질러 전방 거리에 진입했다.
그다지 높지 않은 이곳 건물들은 그린 올리브 구역에 속한 듯했다.
장목화는 차창을 내려 각기 다른 스타일의 건물들을 구경했다.
“목욕탕이 무지 많네⋯⋯.”
흥미롭다는 듯한 그 목소리에, 백새벽이 운전을 하며 대꾸했다.
“퍼스트 시티가 막 건립됐을 때 주민들은 무심병과 전염병의 원인이 불결해서라고 믿고 대중목욕탕을 많이 지었대요. 근데 점점 사람이 많아지고, 수자원이 부족해지니까 정수 시스템도 제대로 운행이 되질 않아서 대부분이 문을 닫았죠. 지금 남은 목욕탕 대부분은 윤락업소를 겸하고 있어요. 손님이라면 남녀도 가리지 않아요.”
그 후로 구조팀은 백새벽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거나 질문도 하며 굉장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 * *
그렇게 10여 분 정도 지나, 지프는 3층짜리 황토색 건물 앞에 멈췄다.
문에 붙은 간판엔 레드리버어로 된 글씨가 쓰여 있었다.
[휴고 여관]
브레이크를 밟은 백새벽이 휴고 여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여관의 가장 큰 장점은 사장이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는 거예요. 거기다 사장이랑 이 근처 거리를 담당하는 치안관이 사이가 꽤 좋아서, 누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와 불심 검문할 염려도 없고요.”
용여홍은 우리가 방에서 못된 짓을 할 것도 아닌데 그걸 왜 걱정해야 하느냐고 물으려다, 불현듯 군용 외골격 장치 두 대가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그걸 치안관에게 들킨다면, 설령 자신들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한들 의심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이었다.
물론 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치안관과 부하들은 동시에 머리에 손을 얹고 바닥에 꿇어앉아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겠지만.
백새벽은 휴고 여관 옆쪽 주차장으로 지프를 몰았다.
그러자 성건우가 실망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주차장은 지하에 있을 줄 알았는데.”
장목화도 그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간 구조팀이 감상한 구세계 콘텐츠 속 대도시 주차장은 보통 지하에 자리해 있었다. 구역 대부분이 다 폐허 상태인 레드스톤 마켓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애쉬랜드 최대 도시 퍼스트 시티 주차장이 지상에 있을 줄이야.
주차를 마친 뒤 백새벽이 동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골든애플 구역과 레드울프 구역 같은 곳엔 지하 주차장이 있어. 퍼스트 시티가 건립될 때 일부 건물은 원래 형태에 맞춰 개조됐는데, 일부 건물은 주민들이 분배받은 땅에 알아서 지어 올렸어. 통일된 규정 같은 건 없었고.”
“어쩐지 도로 상태도 별로고 건물 스타일도 제각기 다르더라니.”
장목화는 그제야 의문이 해소된 듯,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퍼스트 시티 동남쪽 끝, 교외 근처에 자리한 골든애플 구역은 귀족들의 주거 구역이었다. 그리고 도시 중앙의 레드울프 구역은 원로원, 정무청, 감찰원, 총독부, 지폐 공장, 화폐 공장, 에너지 공급센터 등이 있는 퍼스트 시티의 핵심이었다.
즉, 관원들과 어느 정도 신분을 갖춘 시민들이라면 모두 그곳에 기거했고, 각종 상인단과 회사 역시도 그곳을 주목하고 있었다.
* * *
휴고 여관에 들어가니, 사장은 프런트에서 이른 저녁을 먹는 중이었다. 메뉴는 간단했다. 익힌 콩 한 접시에, 검고 거친 빵 한 덩이가 전부였다.
사장은 대략 삼사십 대 같았다. 피부는 햇볕에 그을린 데다 눈가, 이마, 입가에 주름도 져 있었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그다지 노쇠해 보이지 않았다. 금빛 머리카락은 여전히 반짝거렸으며, 새치 같은 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 여관의 이름, 휴고가 바로 그의 이름이었다.
“방 세 개 주세요.”
백새벽이 유창한 레드리버어로 말했다.
그 순간, 성건우가 쭈뼛거리며 물었다.
“그, 그런 방은 없나요?”
그러자 용여홍이 그를 보며 말했다.
“다섯 명이 함께 묵을 수 있는 방? 방도 여러 개 있고?”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속으로 이렇게 꿍얼댔지만, 실은 용여홍도 그런 방을 원했다. 모두가 함께 있는 편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휴고는 옅은 파란색 눈동자로 성건우 일행을 훑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위트 룸은 대형 호텔에나 있는 거지.”
‘타르난에 있는 아이노 사장은 사업 수완이 꽤 좋은 편이었네.’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냥 방 세 개 주세요.”
“방 하나당 하룻밤에 1오레이야. 보증금은 5오레이.”
휴고가 덤덤하게 답했다.
“일단 일주일 동안 묵을게요.”
말을 마친 장목화가 지폐 다발을 꺼내 26오레이를 헤아렸다.
구조팀이 원래 가지고 있던 오레이는 위드 시티에 머무르는 동안 이미 다 써버렸다. 지금 가진 건 성건우의 형제 허양원이 준 선물로, 액수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휴고는 받아 든 지폐를 꼼꼼히 세고 진짜인지 확인도 한 후에야 서랍에서 표찰이 붙은 은백색 열쇠 세 개를 꺼냈다.
“202호, 203호, 204호.”
장목화가 열쇠를 받아들었다.
* * *
여관에 엘리베이터는 없어서, 구조팀은 직접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갔다.
“깔끔한 편이네.”
문을 연 장목화가 방을 확인한 후 소감을 밝혔다.
방 구조는 보통 여관과 비슷했다. 침대 두 개가 공간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머지 공간엔 테이블과 소파가 놓여 있었다. 또 방마다 작은 화장실이 하나씩 딸려 있기도 했다.
잠깐의 휴식 끝에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는 장목화와 성건우가 묵고 있는 202호로 모여들었다.
용여홍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여관 사장 식단이 형편없던데, 퍼스트 시티에서는 여관이 돈벌이가 안 되나?”
치안관과도 꽤 사이가 좋다는 편치곤 메뉴가 너무 소박했다.
그 말에 백새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 먹는 거야 문제없을 정도로 벌 거야. 그냥 저 사람이 지독한 짠돌이라 그래. 거의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돈을 아낀다니까.”
황야유랑자 출신인 그녀조차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휴고는 절약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뭐, 트라우마 같은 걸 수도 있잖아.”
장목화는 금속 와우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하다가, 손뼉을 가볍게 쳤다.
“자자! 이제 회의해야지? 앞으로 작전도 잘 짜야지.”
성건우는 성실하게 손뼉을 쳤지만, 그에 호응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곧이어 팀장 장목화가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주요 임무는 맥시미언, 그러니까 퍼스트 시티 오레이의 후손을 찾아 그가 어떤 단서를 찾았는지 확인하는 거야.
현재까지 수집한 정보론 현재 살아있는 오레이 직계 후손은 아비아라는 손녀랑 마커스라는 외손자뿐이야. 각각 골든애플 구역 라운드힐 스트리트 14호와 골든애플 구역 크라운 스트리트 57호에 살고 있고.
우리 계획은 아주 간단해. 그들이랑 접촉할 기회를 노려서 건우랑 친구가 되게 만드는 거지.
여기서 가장 주의해야 할 건 어마어마한 위험이 잠재돼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구세계 파괴 원인과 무심병의 기원을 조사하려는 노력을 모조리 제거하려 하는 세력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우린 반드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해. 차라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모험은 절대 금물이야.”
한참 그녀의 말을 경청하던 게네바가 손을 번쩍 들었다.
꼭 성건우가 하나 더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