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29화 (329/649)

329화. 친구

국방색 지프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통로 쪽으로 이어선 줄에 가담했다.

장목화는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운 뒤 바깥을 내다보았다.

주위 새카맣게 탄 땅 위에, 낡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쪼그려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그 수도 적지 않았다.

그중 더러는 전형적인 레드리버인으로 아이홀이 깊고 눈동자, 머리색이 각기 달랐고, 더러는 피부색도 짙고, 검은 눈에 말랐지만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 후자는 애쉬랜드인 중 레드리버 유역으로 이주해온 한 분파로, 레드코스트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또 그들은 대부분 퍼스트 시티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곧이어 장목화가 차창을 내리자 165센티미터 정도 되는 레드코스트인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구조팀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태생적으로 검은 곱슬머리인 듯 보였으며, 피부는 짙은 갈색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몹시 알랑거리는 듯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혹시 도움 필요하지 않아?”

그가 쓴 언어는 순수한 레드리버어였다.

순수하다는 의미는 발음에 퍼스트 시티의 억양이 묻어난다는 뜻이었다.

장목화는 눈썹을 추켜 올릴 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레드코스트인이 좌우를 한번 둘러보더니 조그맣게 속삭였다.

“검사받지 않고 도시로 들어갈 방법이 있어. 보수만 좀 챙겨주면 돼.”

동시에 그가 검지와 엄지로 지폐를 세는 듯한 동작을 취해 보였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팀원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차창 밖의 상대를 향해 레드리버어로 말했다.

“이름이 뭐지?”

“지아디.”

레드코스트인이 웃으며 답했다.

“얼마를 원하는데?”

장목화가 질문을 이어 나갔다.

“50오레이. 진짜 저렴한 가격이야.”

지아디가 금액을 제시했다.

장목화는 잠시 고민하는 척 몇 초간의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돼?”

지아디 얼굴에 걸린 웃음이 더욱 또렷해졌다.

“나 따라와. 일단 다른 곳에서 좀 기다려야 해.”

장목화는 그 길잡이를 따라 레드리버 강 옆 폐허로 지프를 몰았다.

* * *

이곳은 아무도 없는 데다 매우 조용했다.

“일단 이 안에 앉아서 좀 기다려. 난 언제쯤 도시에 들어가면 좋을지 경비들과 상의해볼 테니까.”

지아디는 나름 온전한 편인 길가의 집 한 채를 가리켰다.

그 집 안엔 테이블과 의자 등의 가구가 놓여 있었다.

장목화는 그 집 양옆을 힐끗 살피곤 아무 망설임 없이 차 문을 열었다.

지아디는 진심 어린 미소로 구조팀이 차례로 내리는 걸 지켜보았다.

그러다 게네바의 은흑색 거대한 몸집을 본 순간, 그의 낯빛이 급변했다.

그때였다. 장목화가 길가의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동료들한테 이만 나와보라고 해도 돼.”

지아디는 애써 웃음을 짜냈다.

“뭐라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용여홍은 트렁크를 열고 개인용 바주카포를 꺼내 들더니 장목화가 가리킨 곳을 겨냥했다.

짧은 정적이 흐르는 사이, 집 안에서 네다섯 사람이 부리나케 튀어나왔다. 모두 짙은 갈색 피부를 가진 레드코스트인이었다.

하나같이 구식 돌격 소총과 소형 기관단총을 쥔 일행을 보고, 성건우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아주 열정적이네.”

“우리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려는 조치일 뿐이야.”

지아디는 억지스러운 변명으로 응수했다.

이내 성건우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키가 큰 미남자는 걷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압도할 수 있었다.

아담한 지아디 앞에서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주무르던 성건우가 매우 부드러운 눈빛과 말투로 질문했다.

“괜찮아? 아니면 좀 더 세게 할까?”

순간 구조팀 세 사람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했다. 성건우가 또 병이 도진 건지, 최근 부적절한 구세계 콘텐츠를 봤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아디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두려움에 더는 참지 못하고 크게 외쳤다.

“다, 다들 총 내려놔!”

레드코스트인들은 천천히 몸을 숙여 총기를 내려놓고 두 손을 들었다.

성건우는 계속 지아디의 어깨를 안마해주며 부드럽게 물었다.

“우리가 이 폐허로 안 들어왔으면 어떡하려고 그랬어?”

“겨, 경비를 매수해서 너희가 간단한 검사만 받고 도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줬겠지.”

지아디가 바들바들 떨며 답했다.

성건우는 미소를 머금은 채 질문을 이어갔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의 뒤통수를 쳐 온 거야?”

“그, 그,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통은 여기까지 쫓아오지 않으니까.”

지아디가 울상이 된 얼굴로 순순히 답했다.

이때 장목화가 나섰다.

“경비를 매수하는 데는 얼마나 들지?”

“20에서 30오레이 정도면 충분해.”

겁에 질린 지아디가 대답했다.

그 답에 성건우가 급변한 얼굴로 상대를 발로 차 쓰러뜨린 뒤, 허리춤에 꽂혀 있던 권총을 뽑아 들었다.

“우리한테는 50오레이 달라고 했잖아! 이 악덕 업자.”

눈앞에 보이는 시커먼 총구에 지아디는 당장이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결국 오줌까지 지리고 말았다.

“우, 우리는 약탈만 하, 하는 거지, 사람을 해치지는 않아.”

그가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 순간, 성건우는 갑자기 다시 웃으며 친절하게 그를 일으켜 세우고 몸에 묻은 흙먼지까지 툭툭 털어주었다.

“겁먹을 것 없어. 우린 아주 선량한 사람들이거든. 하지만 아직 몇 가지 질문이 더 남아있어.”

이 상황을 말없이 관망하던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천천히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 진짜 쟤는 종잡을 수가 없다, 종잡을 수가 없어.’

지아디는 로봇의 시선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고 애써 웃으며 말을 받았다.

“무슨 질문?”

“이곳 경비들, 매수하기 쉬워?”

이번엔 장목화가 물었다.

지아디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별문제가 없는 이상 오레이라면 환장을 해. 금지 물품을 압수하면 윗대가리 놈들만 이득을 보지만, 오레이는 그들 주머니로 들어가니까.”

‘퍼스트 시티는 회사보다 훨씬 형편없게 관리되고 있구나.’

장목화는 지아디의 설명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최근 도시 내에 무슨 큰 사건이 발생했거나 하지는 않았고?”

지아디는 딸랑이처럼 고개를 저었다.

“없었어. 평소랑 똑같았어.”

“너희는 전부 다 퍼스트 시티 시민이야?”

지아디는 곧장 양손을 쳐든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맞아. 근데 최근 몇 년간 하층민의 삶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어. 황제가 살아있었을 당시만도 못하지. 우리랑 도시 방위군 일부 대위, 또 중대장이랑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그들을 통해 수고비를 벌 수 있기 때문이야. 그 사람들이 레드리버 대교 입구 검사 담당이잖아.”

‘수고비라⋯⋯. 총으로 협박해 강탈한 돈도 수고비라고 할 수 있나?’

장목화는 하마터면 콧방귀를 뀔 뻔한 걸 겨우 참았다.

그 후로 퍼스트 시티 현 상황에 대한 질문 몇 가지를 더 하다가, 장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우리가 도시 내로 들어갈 수 있게 다리를 지키는 병사를 잘 구슬려 줘.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으니까.”

그 말에 지아디가 얼굴 근육을 열심히 움직여 한껏 아첨했다.

“문제없지! 돈은 내가 낼게. 너희가 낼 필요 없어.”

장목화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래도 되겠네. 너희가 우리를 등쳐먹으려고 했던 것에 대한 대가로.”

지아디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 천천히 돌아섰다. 그렇게 구조팀을 등진 그의 얼굴에 점차 웃음이 피어올랐다.

‘다리를 지키는 병사한테 말만 하면, 내력도 모르는 이 자식들한테 복수할 수 있어! 중무기에다 로봇까지 데리고 있다니, 퍼스트 시티를 파괴하려는 거 아냐? 때가 되면 저 자식들이 가진 물자는 공평하게 나눠 갖고 남자는 광산으로, 여자는 목욕탕으로, 로봇은 다른 곳으로 팔아넘기는 거야!’

지아디가 막 한 걸음을 디딘 그때였다.

돌연 성건우가 양손을 쳐든 지아디의 동료들 쪽으로 돌아섰다.

“봐봐. 너희는 레드리버어를 해. 나도 레드리버어를 하고. 너희들한텐 무기가 있어. 나한테도 무기가 있고. 그러니까⋯⋯.”

‘……뭐지?’

지아디는 그가 무슨 행동을 하는 건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순간, 그의 동료 하나가 크게 깨달았다는 듯 외쳤다.

“빨리! 지아디가 경비한테 너희를, 아니 우리를 팔아넘기려고 해!”

일순간 지아디는 누군가에게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동료에게 욕을 하며 분노해야 할지, 당장 꿇어앉고 애원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느릿하게 돌아선 지아디는 구조팀의 얼굴과 다시 마주했다. 누군가는 웃고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놀란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 사이 지아디를 향해 천천히 다가간 성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봐. 난 방금 네 어깨를 주물렀고, 넌 내 질문에 답했어. 그럼 우린 어떤 사이일까?”

세 번째 심령의 섬을 극복한 이후, 성건우의 추리 광대 주문은 더 유연해져 있었다. 세 단락의 구조만 유지하면 이젠 반문의 형식으로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몇 차례 표정 변화를 보이던 지아디는 갑자기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쿵쿵 쳤다.

“내가 형제를 팔아먹으려고 하다니! 난 죽어도 싸!”

성건우는 즉각 지아디의 양손을 잡아주며 진지하게 말했다.

“다음엔 그러지 마.”

‘아주 자비로우시네.’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사실 지아디 일당을 지금 당장 레드리버에 빠뜨린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지아디는 남을 해친 적이 없다고 했지만, 장목화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저들이 저항하는 사람들을 순순히 놓아줬을 리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저들을 공격할 수 없었다. 지금 이곳은 레드리버 대교와 너무 가까웠고, 다리를 지키는 병사들은 지아디 일당과 한패였다. 혹여나 여기서 큰 소란이 일면 구조팀의 업무 진행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이내 통한에 젖어 생각을 고쳐먹은 지아디는 눈물을 훔치며 국방색 지프를 친절하게 안내했다. 그의 동료들 역시 강가에 있는 폐허 은신처로 물러났다.

* * *

차가 다리 끝을 향해 천천히 돌아설 때, 장목화는 게네바에게 눈에서 발산되는 색을 바꾸란 신호를 보냈다. 지능 로봇이 아닌 평범한 로봇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와 동시에 성건우는 차창을 내리고, 장목화가 그의 손에 쑤셔 넣었던 20오레이를 내밀었다.

“됐어! 괜찮아!”

지아디가 손사래를 쳤다.

“내 성의를 무시하는 거야?”

성건우의 표정은 한껏 굳어있었다.

“아, 아니.”

지아디도 그의 으름장에 바로 꼬리를 내리고 20오레이를 받아들었다.

성건우가 다시 바르게 앉자, 용여홍이 아주 조그만 소리로 속삭였다.

“돈은 왜 줘? 저 사람한테.”

저 악당들에게 한 방 먹이긴커녕 돈을 쥐여주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건우는 용여홍을 힐긋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래야 쟤가 돌아간 후에도 자기 돈이 줄었다는 걸 모를 거 아냐.”

황당한 얼굴을 하던 용여홍도 곧바로 성건우의 말을 알아차렸다.

‘⋯⋯아아, 만약 돈이 줄면 동료들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을 테고, 지아디는 바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겠지? 그럼 추리 광대 효과도 사라지는 거고. 근데 그걸 물어보는 사람이 없으면 지아디 일당은 순환 논증을 형성하면서 아무 문제도 알아차리지 못하겠지. 시간도 꽤 오래 갈 거야.’

이내 운전 중이던 장목화가 물었다.

“대략 얼마나 유지될까?”

성건우는 차창 너머 앞장선 지아디를 보면서 답했다.

“별일 없으면 최소 한 달은 유지될 거예요.”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럼 됐어.”

한 달이면 구조팀이 퍼스트 시티 내에서 행동하는 데 아무 문제도 없었다. 심지어 그 사이 현지 토박이인 지아디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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